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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의 글

[0956] 5ㆍ16혁명과 그 정통성

장공전집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8-05-11 15:25
조회
583

5ㆍ16혁명과 그 정통성

우리가 보통 「혁명」이라 할 때, 그것은 폭력행위에 의하여 현존 권력구조를 근본적으로 전복시키고 새로운 정치권력을 형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물론 좁은 의미에서의 「혁명」의 정의다. 넓은 의미에서의 「혁명」은 정치만이 아니라, 사회, 문화, 종교, 기술 등에 있어서 지금까지의 그것에 비하여 월등하게 새롭고 강력한 바탕과 분량의 것을 형성했을 때 사계에서「혁명」이 일어났다고 말하게 된다. 지금 과학 기술학적으로 급격하게 변천하는 세계를 살고 있는 우리는 날마다 혁명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그래서 지금은 「혁명의 시대」라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건전한 법치민주국가에 있어서는 폭력행위에 의한 정권전복과 탈취를 의미하는 「혁명」이 있을 수가 없다. 그때 그때의 법에 의한 개선과 사회변신으로 충분한 발전과 향상을 기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권력으로서 그 부정 부패 또는 무능력의 도가 극점에 접근하여 도저히 점진적인 개선에 맡길 수 없다고 판정되었을 때, 上述(상술)한 바와 같은 혁명은 제2의 선으로 허용되며 국민도 「올 것이 왔다」는 생각에서 크게 동요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폭력혁명이 비민주적 수단이라는 한 가지 이유 때문에 그것을 전적으로 죄악시한다는 것은 너무 과한 완전주의라 하겠다. 역사는 그 생동과정에서 때로는 그런 수단을 필요로 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역사에서 그런 예를 무수히 발견한다. 근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사이에도 불란서 혁명, 미국 독립전쟁, 소련 공산정권, 스페인의 프랑코정권 등이 모두 폭력으로 대결하여 획득된 것이었고 지금도 국가안보는 폭력에의 가능성을 기준으로 계산하는 것이 상식이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정계적인(Legitimacy)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으나 유일한 현실(real) 임에는 틀림없다.

이 현실이 상당한 기간을 계속하여 국내,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으면 그 안에서 스스로의 Legitimacy가 형성되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전국민적으로 그것이 정계성, 또는 정통성을 인정받는다는 것은 그리 용이한 일이 아니다. 물론 계엄령 또는 강령한 조치법에 의하여 질서를 세우는 일은 그리 어려울 것이 없겠지만, 일반국민이 자발적인 구김새 없는 심정으로 그 정권의 정계성을 인정하게 된다는 것은 조작만으로 성취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 정권이 국민정기의 주류에 충실하여 그 실현에 두드러진 업적을 계속 남기고 있다는 사실이 전국민에게 인정되는 때에만 가능하게 되는 것이라 하겠다.

5ㆍ16군사혁명도 다른 나라들에서의 그것과 다를 것이 없는 비상수단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단 한 사람의 살해도 없는 무혈혁명이었다는 것이 드물게 보는 다행한 일이라 하겠다.

그 당시의 혁명공약은 6개항으로 되어 있었다. 반공을 국시의 제일의로 삼고 반공체제를 재정비 강화한다는 것 UN현장을 준수하고 국제협약을 이행하고 미국을 위시한 자유우방과의 유대를 굳게 한다는 것 국내사회의 모든 부패와 구악을 일소하고 국민도의와 민족정기의 퇴폐상을 시정하여 참신한 기풍을 진작한다는 것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 자주경제재건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것 국토통일을 위하여 공산주의와 대결할 수 있는 실력을 배양한다는 것 이런 과업이 성취되면 참신하고 양심적인 정치인에게 정권을 이양하고 자신들은 군인본연의 임무에 복귀한다는 것 등이었다.

이 혁명이 완전무혈로 성공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당시의 사회상황이 혁명의 가능성을 성숙시켰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 요인을 지적한다면 4ㆍ19 혁명의 파동이 실어다준 정권을 엉겁에 받은 민주당정권이 자체분열 등 약세 때문에 쾌도난마적 행정력을 발휘하지 못한 데 대한 불만 민주당정권의 감군계획 군 내부의 군기문란 둥이 거론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군사정권은 국회와 모든 정당, 사회단체를 해체시키고 헌법을 무효화하고 삼권을 국가재건 최고회의에서 장악했다. 이것은 말하자면 민주주의 체제의 전적 폐기를 의미하는 것이었으나, 국가생명을 회복시키기 위한 「응급수술」이라는 것으로 국민의 양해를 구하였다. 응급수술 중에는 가족도 친구도 의사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것이 사실이므로 국민은 침묵 속에 다음 막을 기다리는 긴장으로 나날을 보냈던 것이다. 모든 혁명정권이 그러하듯이 우리 나라의 군사정권도 정계성을 찾기에 민감이었던 것 같다. 군사혁명이념이 사회혁명, 국민혁명에로 그 범위를 확충하여 전체국민과 동질이 됨으로 그 정계성을 수립하려는 설계도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이 재건국민운동으로 나타났으나 국민의 본격적인 향응을 받지 못하여 유야무야로 끝났다. 군사정권이 제시한 건국이념은 국가이익을 토대로 한 민족주체성의 확립과 그 행사였던 것으로도 생각된다. 그러나 그것은 히틀러, 뭇솔리니 등의 민족주의에서 악몽을 겪은 자유제국에서만이 아니라, 우리 국민 자체에서도 일제의 민족주의에 시달린 음산한 경험을 해소시킬 수 없었기 때문에 냉담한 반응 밖에 거둘 수 없었다. 결국 3ㆍ1 정신, 4ㆍ19 정신의 계승이라는 의미에서 5ㆍ16 혁명의 정계성을 찾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하여튼 「응급수술」이란 것은 극히 짧은 시간 안에서 그 성패를 끝내야 하는 것이므로 2년 이상 계속한다는 것은 무리한 일이 아닐수 없었다.

그리하여 민정에의 준비가 시작되어 1962년 7월 11일에 헌법심의위원회가 발족되고 헌법개정책, 정당법안, 선거법안 등이 입안, 공청을 거쳐 최고회의에 부의되었다. 1962년 11월 5일 최고회의의 의결을 얻어 즉일 공시, 30일 간의 공고기간이 끝나자 다시 최고회의의 의결을 거쳐 동년 12월 17일에 국민투표에 부쳤다. 유효투표 78%의 창성으로 가결 12월 26일 정식 공포되었다. 그래서 응급수술은 끝나고 입헌국가로 재생된 것이다.

이 헌법은 3ㆍ1 정신, 4ㆍ19 정신, 5ㆍ16 정신을 계승한다고 그 서론에 명기되어 있다. 3ㆍ1 정신은, 우리 민족의 자주 독립을 선언하고 그것을 쟁취하기 위하여 최후일각, 최후일인까지 싸운다는 정신이었다. 이 정신은 이조말 개화운동의 뒤를 이은 것이었으나 그 자주독립이 왕조복벽을 상정해 본 일은 전혀 없었다. 그렇다면 독립선언대로 독립된 우리 나라가 자주민주주적인 국가여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것이며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의 민족자결, 자유민주 체제주장에 동조한 것임에 틀림없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 독립운동의 여파로 성립된 상해임시정부가 역시 자유민주 체제를 채택한 것은 당연한 정계사상이었으며, 공산체제는 언제나 비정계 독재임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이 자유민주 국가의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승만 박사가 취임 당시 국민 앞에 선언한 자유민주수호의 책임을 무시하고 독재와 부정을 감행했을 때, 전국민의 의사를 대변하여 4ㆍ19 학생 데모가 벌어진 것이었다. 이 4ㆍ19혁명은 민주국민을 반역한 비민주독재정권에 항거하여 우리 나라의 자유, 민주정통을 회복한 반정 운동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3ㆍ1과 4ㆍ19정신을 계승했다고 말하는 5ㆍ16혁명은 당연히 자유민주체제의 구현을 위한 것이어야 마땅하다. 한 헌법에 두 가지 상반되는 정신이 계승될 수 없기 때문이다 “왜 혁명을 했느냐?” 묻는다면 “4ㆍ19혁명 정신을 구현시킨다는 의미에서 집권한 민주당정권이 너무 무기력해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소망이 없다고 보았기 때문에 4ㆍ19정신을 쾌속하게 구현시키기 위한 비상수단으로 5ㆍ16혁명을 감행했다”고 대답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군정에서 민정에로 이양되고 군정 때의 최고회의 의장이 민선에 의하여 대통령으로 취임할 무렵에 이미 각오하고 또 헌법을 준수한다는 취임서약에 의하여 국민에게 공포된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 나라에 있어서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역행하는 정치는 결코 허용될 수 없는 것이며 정권의 정계성은 이 주류에서 발견되어야 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런데 현정권의 집권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힘의 안정경향과 아울러 이 자유민주체제에의 정계성보다도 산업사회 건설에의 효율성이 지나치게 강조되어 효능을 위한 수단의 다양성이 너무 강조되는 경향이 증대되는 것 같다. 그래서 해 놓은 일의 양에서 정권의 정계성을 확립시키는 주장을 정당화하려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그것은 옳은 방향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박정희 정권이 계승되는 한, 국민은 언제나 군사혁명정권의 변형으로 밖에 느끼지 않는 것이며, 그 후광에서 현정권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국민으로서 잘못된 견해라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박정희 의장의 민주공화당 제일차 대통령입후보 수락연설을 보면 그 입후보 동기를 설명한 구절에서 “5ㆍ16 혁명의 앞장을 섰고 국민적 혁명완수의 책임을 느끼는 본인은 … 차기민정은 반드시 혁명이념을 계승하여 혁명정부가 못다한 과업을 기어히 완수하기 위하여” 입후보를 수락한다고 언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화당강령 제1에 자유민주주의 체제확립을 다짐하고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군정연장의 ‘뉘앙스’가 불식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 국민의 실감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이제라도 현정권이 그 정통성을 좀더 확실하게 수립하려면 행정의 효율성보다도 자유민주체제에의 충성을 국민 앞에 재규명하고 그것을 사실로 입증하는 것이 방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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