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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강좌 제38회] 목회자가 본 장공 김재준의 영성 / 전성록 목사

목요강좌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7-09-07 17:28
조회
680

[제38회 長空사상연구 목요강좌] 발제
일시 : 2016년 4월 28일(목) 오후 5~7시


목회자가 본 장공 김재준의 영성


전성록
(어량교회 담임목사)


-목차-
[1] 서론
[2] 성령체험과 신비의 영성
[3] 변화산상에서의 변모와 부활의 영성
[4] 성육신적 신앙 – 말씀과 실천의 통전적 자유의 영성
[5] 전적인간구원 – 범우주적 사랑의 영성
[6] 결론


[1] 서론


장공(長空) 김재준(이하 장공)은 그 시대의 역사적 상황을 통해 들려오는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했던 그리스도인이고 목회자이며 신학자였다.1) 장공의 기품은 서구 기독교인들이나 교리에 찌든 한국 보수적 그리스도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자유인이요 풍류인이었다.2) 장공의 신학은 성서적 실재론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하면서도 상황이 변함에 따라 그의 삶과 실천에 통전적 영성으로 발전되었다. 그는 한국 보수적 기독교의 정통주의 신학과 교권주의에 맞서서 영적 인격적인 복음의 자유를 위하여 일생동안 고난과 투쟁의 길을 선택하였다. 그의 삶과 신학은 20세기 후반 한국 신학계에 새로운 신학적 사고를 위한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장공은 한국교회의 초대 선교사들의 서구신학의 전통적 유산을 새롭게 해석하여 주체적인 신학적 사고의 틀을 제시하였다. 특히 장공의 신학은 정통주의 신학의 영향으로 영·육 이원론, 타계주의, 교회주의, 축자영감설 등에 빠진 한국교회를 개혁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따라서 장공의 신학은 “머리의 신학이 아니라 가슴으로 그리스도의 심장을 만나는 살아있는 신학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장공의 신학은 그리스도 중심의 신학이요, 성령의 신학이요, 역사신학이요, 삶의 신학이었다.”3)


1) 주재용 편,『김재준의 생애와 사상』(서울: 도서출판 풍만, 1986), 19. 여기서 전 한신대학의 정대위 학장은 김재준 목사의 아호인 장공(長空)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장공선생의 아호는 진짜로 멋지다. 萬里長天의 무변 광활한 푸른 하늘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는 글자들, 누가 감히 그 궁창의 높고 크고 밝음을 헤아려 알 수 있으랴.…無邊大와 久遠의 상징. 장공선생은 문자 그대로 맑고 높고푸르른 하늘을 한 마리의 학과 같이 날아다니면서 말할 것은 말하고 행할 것은 행하는 ‘자유인’이다.그리하여 그는 ‘자유, 정의, 질서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자유이다.” 김경재,『씨알들의 믿음과 삶』(서울: 나눔사, 1990), 9. 김경재 역시 장공의 뜻을 인상 깊게 쓰고 있다. “사람들은 그의 인격과 마음의 세계가 광활한 창공처럼 높고 넓어 그의 호를 장공(長空)이라 불렀다.” 김경재는 장공 김재준의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장공의 탄생은 한국 역사와 개신교사에 획을 긋는 중요한 사건으로 평가한다. “신라에 불교가 공식 전래된 지 200여년이 지나 원효대사와 의상 대사를 낳았고, 조선 왕조가 유교를 국가 이념으로 삼아 건국한 지 200년쯤 되자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를 낳았다. 그와 비슷하게 그리스도교는 한국 땅에 전래된 지 200여년 만에 대승적 기독교 시대를 연 선구자 김재준과 함석헌을 낳았다.” 김경재,『김재준 평전』(서울: 도서출판 삼인, 2001), 3-4.
2) 김경재,『김재준 평전』(서울: 도서출판 삼인, 2001), 165. 김경재에 의하면 장공은 넓고 깊고 높은 인간성 안에는 예언자들의 히브리 정신과, 무위자연의 탈속적인 노장(老莊)정신과 목숨을 버릴지언정 지조를 굽히지 않는 선비정신과 화엄선사들의 걸림 없는 묘공(妙空)의 텅빈 정신 가운데 그리스도의 충만한 영이 때론 햇빛처럼 때론 바람처럼 때론 작열하는 백광처럼 그를 추동하며 이끌어갔다.
3) 김경재,『장공의 영성신학, 씨알들의 믿음과 삶』(서울: 전망사, 1990), 25-49.


장공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모방이었다. 그는 예수처럼 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가 실현되도록 한국교회와 사회를 위하여 십자가를 짊어졌고 무량애(無量愛)로 민중을 사랑했으며 인간의 자유를 위해 투쟁했다.4)


4) 김재준, “최대의 계명: 그 일체성에 대하여,” 김재준목사기념사업회 전집4권(오산: 한신대학출판부, 1992), 288. (이하 전집〇권으로 표기한다.)


이러한 장공에 관한 연구는 장공의 전집 18권이 1992년에 출간된 이래 지금까지 꾸준히 계속되어 매우 다양하고 깊이 있는 연구 성과를 쌓아왔다. 개별적으로도 많은 연구서들이 발간되었으며 1988년부터 장공기념사업회를 통해 총체적 연구가 다양하게 여러 측면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그러나 장공의 신학과 목회적 삶에 대한 전체적인 맥락에서 장공의 영성을 다루는 본격적인 연구는 아직 미흡하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첫쩨 장공은 신학을 ‘학문 체계화’하지 않고 신학의 순례에 있어서 학(學)의 체계화라는 것을 두려워하고 반항했던 분으로서5) 한국의 보수 신학계가 ‘자유주의 신학’과 ‘신정통주의 신학’을 혼동하거나 같은 범주로 곡해하였다는 점이다.6) 둘째 장공의 신학은 예언자적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하는 주체적 참여 신학이다. 따라서 그의 교회론과 기독론에 대한 비판과 공격은 보수주의자들과의 대화의 단절을 가져왔고 에큐메니칼한 대중성을 가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5) 전경연, “김재준 론,”주재용 엮음, 『김재준의 생애와 사상』(서울: 풍만출판사, 1986), 40.
6) 주재용, “한국 기독교사에 있어서 김재준의 사상적 위치,”『김재준의 생애와 사상』205.


장공의 영성신학에 대한 연구는 현실의 상황 속에서 책임적으로 행동하려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문제를 밝히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장공의 영성에 관한 체계적인 연구는 그의 신학사상을 이해하고 미래의 한국교회를 건강하게 성장시키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2] 성령체험과 신비의 영성


오늘날 기독교 신학은 “급성 성령 망각증”에 걸려 있다. 기독교 신학은 수세기 이래 그리스도론 중심적인 신학에 강하게 사로잡혀 왔기 때문에 구원사건인 오순절 사건을 망각해 왔다. 딜슈나이더(Dilschneider)는 이러한 모든 ‘그리스도론 중심주의’에 맞서 ‘성령의 신학’을 주창한다.7) 그리스도론은 로고스가 받아들인 인간적 본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성령론은 ‘인간적 본성이 아니라 바로 인간의 인격, 곧 나와 너’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리스도의 중보 행위가 본질적으로 대리적인 것이라면, 성령은 단지 우리 안에서 우리에게 활동할 뿐만 아니라, 우리를 자신의 행동 안으로 받아들인다. 성령은 자신의 활동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활동하게 만든다.8) 성령은 인간 안에 임재 하여 신생과 성결을 진행한다. 그것이 ‘영의 사람’으로의 출발이며 성장이다.9) 그러나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역사적 속죄사업을 수행하고 부활 승천하신 후 아버지께로 돌아가 성령을 보낸다는 약속이 오순절 날 성령강림 사건을 통해서 성취된 후 본격화 되었다.10)


7) O. A. Dilschneider, Der Geist führt in die Wahrheit, Ev. Komm., H 6. 333f. 이신건 역,『교의학』412. 재인용.
8) R.Bohren, Predigtlehre, (Neukirchen: Neukir chener verlag, 1971), 65, 70.
9) 김재준, “종교적 자유와 인간생활,” 전집5권, 78.
10) 김재준, “성신과 신비경험의 제상,” 전집4권, 198.


1920년 서울 유학 3년 동안은 청년 김재준의 정신세계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서울 승동 예배당에서 열린 장로교회 연합사경회에 참가하여 마감 날 큰 은혜를 받고 하나님을 믿기로 결단했다. 그는 영의 사람으로 거듭나는 중생(重 生)의 체험을 하였고 성경말씀이 꿀 송이 같고 기도에 욕심쟁이가 됐다고 고백했다. “나는 ‘그렇다’ 하고 마음을 열었다. 가슴에 뜨거운 정열이 타올랐습니다. 무어라 말할 수 없이 기뻤습니다. 그 기쁨은 생리적, 심리적 작용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이것이 성령 강림이로구나 하고 벅찬 기쁨에 황홀해졌습니다. 그것은 나와 하나님의 신비한 관계였기 때문입니다. 인간 차원 이상의 초자연적 관계였습니다. 기도하고 싶어 견딜 수 없었고 성경 말씀 읽기가 꿀같이 달았습니다.”11)


11) 김재준, “서울 3년.” 전집13권, 47-48. 참조: 장공 기념사업회, “성령체험과 삶의 변화,” 『김재준의 삶과 신학』 802-803.


성령체험은 성령의 내주(內住)를 통하여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 있어서 내가 산다.’는 바울의 고백처럼 살아계신 하나님을 새사람이 되어 믿는 것이다. 즉 성령체험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얼마나 그리스도의 모습이 나 자신의 형성에 구현되게 하느냐, 얼마나 이웃을 사랑하고 조건 없이 봉사하며 얼마나 선을 행할 능력으로 행사하느냐에 그 가치가 결정된다. 즉 성령체험만이 신앙생활의 전부는 아니다. 신앙생활에는 세 가지 요소가 있다.


그 첫째는 ‘교리’요, 둘째는 ‘신비적 영교(靈交)’요 셋째는 ‘사회적 실생활’이다.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어야 할 것임과 동시에 또한 서로 조화되어야 할 것이디. 이 세 가지 중 어느 한 가지만을 너무 극단적으로 고조하는 때에는 우리의 신앙생활에 변태가 생기는 것이며 따라서 악마에게 틈탈 기회를 허 하는 것이다.12)


12) 김재준, “신앙생활의 조화,” 전집1권, 138.


이 신앙생활의 세 가지 요소가 중립이나 타협이 아닌 조화를 이룰 때 사랑의 대단원을 이룰 수 있다. 여기서 장공은 특히 ‘신비적 영교’를 강조한다. 교리만의 종교는 백골(白骨)과 같다. 그러면 여기에 살을 붙이고 피가 돌아서 생기를 띠게 하는 것이 신비적 영교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교통을 통하여 남이 보지 못하는 세계를 보고 또 느낀다.13) 따라서 우리는 성령을 체험해야 한다. “위대한 신학자, 사상가는 지능적 사색적으로 성령의 능력을 받을 것이며 기독교적 사회운동가 교회 정치가 등도 성령의 능력 아래서 그 지혜와 의지력이 길러질 것이다. … 성령은 극히 자유로워서 그 시대와 경우를 따라 자기의 좋으신 뜻대로 역사하시기 때문에 신자나 교회 안에 국한되지도 않으신다.”14) 따라서 성령체험은 하나님이 개인에게 준 은혜이므로 스스로 간직하여 오직 주와 함께 기뻐할 것이요 결코 일반인에게 자랑하거나 선전하지 말아야 하며 또한 각자 개인에게 준 거룩한 정열(Passion)이므로 실제생활에 있어서 하나가 되어 지양하면서 연합되는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는 일에 초점을 모아야 한다.


13) Ibid., 140.
14) 김재준, “기독교 신비주의와 그 건전성,” 전집9권, 312.


[3] 변화산상에서의 변모–부활의 영성


장공은 미국 유학에서 돌아온 뒤 1935년 2월『落穗』에 실린 “그리스도의 復活에 對한 硏究”라는 매우 중요한 신학논문을 발표하였다. 그는 먼저 성서가 증언하는 그리스도의 부활의 역사적 사실성을 진지하게 다루고 나서 부활체로서의 그리스도와 부활의 종교적 의의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는 그리스도교는 우선 역사적 의미에서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말하면서 그리스도의 부활기사에 대해서도 우선 그 역사적 고찰부터 시작함이 견고한 연구방법이라고 강조한다. 여기서 장공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님이 하신 ‘역사적 사실’이라고 고백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사실성에 대한 철학적, 과학적 해석이 이 사실 자체의 진실성을 좌우할 수 없는 이상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위대하신 기적 앞에 머리를 숙여야 한다.15)


15) Ibid., 75.


변모기사(막 9:1-8)에서 신학적으로 중요한 점은 엘리야나 모세가 자신들의 과거를 가지고 나타났다는 사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엘리야는 예언자를 대표했고, 모세는 율법을 대표해서 예수와 대화했다는 사실에 있다. 그러나 예수는 이 사건을 일반인에게 감추고 자신을 일반 민중과 일치시킴으로 속량의 사랑을 성취하려고 하였기 때문에 이 비밀의 공개를 부활 이후로 연기시켰다.16) 로마서 12장2절과 고린도후서 3장18절에 의하면 “‘변형하사’는 다만 그 외모만이 아니라 그 깊은 데까지, 다시 말하면 신자가 그 인간성 자체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17)에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변모기사는 그리스도의 존재 그대로의 본 모습을 잠깐 보여 주신 것이라 할 수 있고 또한 세상을 떠난 자와 그리스도 안에서 한 교제에 들어감을 보여 준다. 그리고 세상을 떠난 자도 그리스도와의 대화에서, 산 자도 그리스도와의 대화에서 서로 만나는 것을 볼 때 수난과 영광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난이 그리스도 안에서 영광으로 변화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고난이 그대로 영광이 된다. 이런 의미에서 ‘변모’의 사건은 바울이 말한 ‘영체’(Spiritual Body)가 범죄한 인간의 종말적인 구원에서 이루어질 인간성의 완성이라면, 그것이 범죄 이전의 인간성과 상통하며 그리스도의 부활체는 그 처음 익은 열매라고 할 수 있다.


16) 김재준, “통일을 위한 신학의 방향,” 전집12권, 347.
17) 김재준, “변모설화의 신학적 고찰,” 전집5권, 29.


따라서 장공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까지의 몸과 부활 후의 몸은 분리되지 않지만 구분한다. “영원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영으로, 영원하신 성자로 보좌에 앉으신 성육신 이전의 그리스도, 그가 성육신 하셔서 인간이 되셨을 때의 그리스도, 삼일 후에 다시 무덤의 육체와 연합하여 그 육체를 영의 몸으로 변화시켜 영화롭게 하신 부활의 그리스도, 그리고 그 몸으로 승천하시고 다시 나타나실 그리스도 - 여기에는 구분은 있어도 분리시킬 수 없는 일련의 한 생명체로서의 진행이 보여 진다.”18) 여기서 장공은 부활, 승천과 재림의 예수의 몸은 인간존재의 원형이라고 말한다. 예수의 변모, 즉 부활, 승천과 재림은 그의 신성의 드러남이고, 변화산상에서의 예수의 변모는 그것이 우리들의 모습이어야 할 ‘참 인간상’의 점광(漸光)이다. 따라서 “언젠가는 우리도 영의 몸을 입을 것이다. ‘우리가 흙으로 된 첫 사람(아담)의 형상을 입은 것처럼, 또한 하늘에 속한 그 분의 형상을 입을 것이다.’ (고전 15:48)라고 말한 바울의 예언은 우리의 신앙고백이어야 한다.”19) 결국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미래의 희망의 근원이다.20)


18) Ibid., 31-32.
19) 김재준, “나의 입장,” 전집12권, 248.
20) Jürgen Moltmann, 전경연 편역,『하나님의 체험』(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82), 33. 재인용.


그리스도의 부활 사실과 우리 인간의 부활신앙은 기독교를 “생명의 종교, 삶의 종교, 생활건설의 종교, 살리는 종교”로 만든다.21) 다시 말하면 이 부활신앙에 뿌리박은 약속된 불멸의 생명체험이 온갖 생활건설에 생명의 핵이 되고 이웃을 살리는 생명의 맥박이 된다. 또한 부활신앙은 그리스도인의 종말론적 소망이다. 이제 죽음은 삶의 주(主)가 아니다. 죽음은 삶의 권세에 정복되었다. 종말에는 영원한 생명을 표현할 영의 몸, 영광의 몸, 부활의 몸이 된다. 이제 인생은 죽음의 권세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약속 아래 있다.22) 그러므로 그리스도 신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속죄의 죽음을 보고,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영원한 생명의 영광스런 ‘영체’를 소망한다.23) 즉 인간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함께 새 창조의 미래가 들어오며 새 생명을 소망한다.24) 장공은 부활신앙에 뿌리박은 그리스도인은 ‘자유하는 인격’으로서 생활건설에 생명의 핵이 되고 남을 살리는 생명의 맥박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21) 김재준, “부활신앙과 생활건설,” 전집7권, 289-299.
22) Ibid., 289.
23) 김재준, “역사의 원점을 찾아서,” 전집18권, 80. 부활을 앞두고 크리스천은 어떤 각오를 할 것인 가? 에 대하여 장공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의와 사랑과 신령한 은혜에 이 몸을 바쳐 이 몸으로 ‘의의 병기’를 삼으며 한 알갱이 밀알인 이 몸을 그리스도의 고난에 심으면 거기서부터 부활의 신령한 몸이 싹트는 것입니다. 이 거룩한 속죄 애의 수난정신이 죄인의 마음속에 부활해야 할 것입니다. 이 정신적인 부활이 없으면 육체의 부활도 무의미한 것입니다. 이 내적인 부활이 없으면 외적 역사적인 부활은 하나의 영원한 고민이요 저주일 것입니다. 거룩한 영혼에 완비한 몸을 입히는 것이 그리스도의 부활임과 동시에 장차올 우리들의 부활도 뜻있게 하는 것입니다. 김재준, “교회력에 따른 메시지,” 전집3권, 99.
24) Jürgen Moltmann, Das Kommen Gottes, 68.


[4] 성육신적 신앙 – 말씀과 실천의 통전적 자유의 영성


장공은 자유를 인간의 속성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기반으로 이해한다. “내게 자유를 달라!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달라!”한 비통한 부르짖음은 결국 모든 인간의 속 깊은 본심(本心)의 부르짖음을 대언(代言)한다.25) 장공은 기독교인의 ’자유‘의 문제를 다른 모든 문제를 논할 때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해한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은 자유하는 주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신앙에서 자유에 대한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신앙양심의 자유를 위하여 환란과 학대와 유리와 투옥과 그리고 순교에까지 용진한 수만만의 신앙의 ‘자유인’을 회상한다.”26) 즉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는 “창조주 신앙에 의하여 존재의 허무감에서 해방되고 속죄의 은총에서 율법적 양심의 자유를 얻고 부활신앙에서 죽음의 극복과 영원한 생명의 체득(體得)을 현실화 한다. 그리고 속량 윤리의 실천에서 봉사의 의미를 즐긴다.”27) 그러므로 장공은 인간의 자유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아들이는데 신앙이 있다고 강조한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은 인간이 올라와서 얻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내려와서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 계셔서 하나님 아들이 인간의 아들(son of man)이 되셨습니다. 그는 인간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의가 인간의 악을 대신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거룩이 인간의 죄를 대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원이 인간의 시간을 포섭하셨습니다. 이제 인간이 할 일은 이 하나님이 하신 일을 ‘그렇습니다’ 하고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만입니다. 아무 선행조건도 없습니다. 그것이 ‘신앙’입니다. 그를 신임하는 태도입니다. 이 신앙이 우리를 자유하게 하는 것입니다.28)


25) 김재준, “자유를 위한 변,” 전집2권, 322. 이오갑은 장공에 대하여 말한다. “한 인물의 수십 년에 걸친 삶과 사상의 전체를 단 한 마디로 잘라 말하는 것이 가능한가, 옳은가하는 의문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를 볼 때 가장 대표적인 어떤 하나로 표상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고, 긍정적으로 보면, 그 인물을 아주 특징적으로 그리고 분명하게 부각시키는 장점도 없지 않다. 동시대인들과 비교해서, 김교신이 조선혼의 사상가이고, 이용도는 신비주의자이고, 함석헌은 씨ᄋᆞᆯ의 사상가이고, 장준하는 민족과 반독재의 투사라면, 장공의 삶은 자유로 점철되어 있고, 사상의 중심에도 자유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이해를 가진 ‘자유의 사상가’로 본다.” 이오갑, “장공의 자유론,” (장공기념사업회: 목요강좌, 2008) 2. 참고. “자유의 맥락에서 본 장공 김재준의 삶과 사상”,『신학사상』141호, (2008 여름호), 7-37.
26) Ibid., 80.
27) 김재준, “종교에서 말하는 행복,” 전집5권, 374.
28) 김재준, “신앙과 자유,” 전집3권, 325-326.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서, 선교하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사시고, 성령으로 우리 안에 계시는, 이 모든 것은 인간을 자유하게 하기 위함이다. 이것은 인간의 짧은 일생의 일상생활에 있어서도 가장 핵심적인 기본은 자유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크리스천의 자유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의 모든 조건을 다 포괄하는 것이다. 그것은 신앙자유와 시민자유의 구별이 없다. 정신과 물질, 개인과 사회, 종교와 역사 등은 두 영역으로 뚜렷하게 갈라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얽혀져 모두가 한 ‘생명체’로 사는 실존인 것이다. 그러므로 정치적 독재에 항거하는 것은 신앙 자유를 위한 운동이 되는 것이며, 경제적 빈곤과 사회적 불의와 싸우는 것은 정신적, 도덕적 자유를 위한 투쟁이 되는 것이다. 자유는 이렇게 고귀하면서도 잃어버리기 쉬운 것이므로 ‘굳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매지 말라’는 바울의 고백처럼 자유는 부단히 항쟁하는 경우에만 그 생명이 유지되고 또 신장된다.29)


29) Ibid., 423-424. 장공은 평화에 대하여 말한다. ‘평화’란 “세상이 아무리 소란할지라도 나 개인의 마음은 평안하다” 하는 옛날부터의 신앙인의 자랑은 지금에 와서는 큰 평가를 받지 못한다. 거기에 머무는 평화는 하나의 ‘에고이즘’이요, 역사에서의 도피 구실밖에 되지 못한다. 평화라는 것은 전 세계 전 인류의 인간관계가 정상화하는 때에 비로소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세계평화, 전쟁방지, 문화교류, 상부상조, 친교증진 등의 역사적인 평화운동이 함께 추진되는 때에만 ‘평화’가 삶의 기록으로 남는 것이다. 그러므로 크리스찬의 자유와 평화는 실생활에서의 모든 조건을 다 포괄하는 것이며 역사적 상황에서 ‘유리’ 또는 ‘초연’한 경지에서 그 결실을 기대한다는 것은 망상이라고 말한다.


장공의 기독교적 역사이해는 자유하는 인간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 역사의 문제는 인간성 자체의 문제이다. 기독교는 역사적 회의주의와 상대주의 그리고 비인간적인 경향을 극복한다.30) 즉 기독교 자체가 역사적 종교이며 역사 안에 임한 그리스도의 행동 목표는 인간 자유의 완성이다. 그러므로 크리스천의 소명은 그리스도가 하늘의 보좌를 버리시고 인간 역사 안에 성육신하셔서 이 역사의 구원을 위하여 그 피의 최후의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쏟아 땅에 묻힌 ‘한 알의 밀’이 되신 것 같이 크리스천도 역사 안에 보냄 받은 것은 역사에서 도피하라는 것이 아니라 역사 안에 그 전 존재를 쏟아 그리스도의 속량의지에 충실 하라는 데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주어진 한국의 정치, 경제, 교육, 문화의 각 부문에 그리스도의 정신이 그 조형이념이 되며 혼이 되게 하는 데 책임적으로 진력해야 한다.31)


30) 김재준, “역사 안에 임한 그리스도,” 전집4권, 522-523.
31) Ibid., 304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이 우리를 옳다 하시니, 누가 우리를 대적하며 누가 우리를 정죄할 것이냐.’하는 신앙이 종말에까지 뻗치는 한 ‘자유’는 꺼지지 않는다. ‘자유’는 사회의 것, 개인의 것, 그리고 하나님의 것임을 밝혀주고 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 본질인 “말씀이 육신을 이루어 이 세상에 오셨다”는 성육신 신앙의 진리(요 1:1-5:14, 골 2:9-10, 엡 2:14-18)는 결국 교회와 국가, 종교와 문화, 성스러운 것과 속된 것, 영원한 것과 시간적인 것, 그리고 모든 철학과 종교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하여 장공은 성 아우구스티누스, 칼뱅, 리처드 니버로 이어지는 신학적 입장을 받아들였다.32)


32) 김경재, 『김재준 평전』216. 장공의 사회 참여, 역사 참여 신학의 밑바탕에 니버 형제의 신학 사상이 많은 영향을 끼쳤다. 특히 리처드 니버(Helmut Richard Niebuhr)의 ‘복음의 생명력에 의한 가치 변혁론’은 큰 영향을 주었다. 리처드 니버의 ‘복음의 가치 변혁론’을 이해하기 위한 몇 가지 중요한 신학적 테마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철저한 유일신관이다. 이것은 기독교의 배타적인 교리적 신관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절대적인 것이요, 역사 속에서 구현된 일체의 가치와 피조물을 절대화하지 않고 상대화시킨다는 입장이다. 둘째, 철저한 인격주의와 응답적 책임 윤리이다. 인간은 대체 불가능한 절대적 깊이와 존엄성을 가진 인격체이므로 물상화하거나 수단으로 전락할 수 없다. 인격적 관계 속에서 책임적 응답을 함으로써 인간은 윤리적 존재가 된다. 셋째, 변화 관정 속에서 형성되어 가는 경험적 윤리주의이다. 도덕적 결단이란 과거 전통과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의 구체적 행동이다. 고정된 율법주의란 불가능하다. 넷째, 그리스도(복음)는 죄로 물든 세상을 그대로 방치하거나 폐기 처분하거나 그대로 용인하는 것이 아니라 질적으로 가치 변혁을 시킨다. 김경재,『김재준 평전』217-218.


장공은 기독교 신앙의 근본 터전이 되는 ‘성육신 신앙’은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변절되고 타락하고 창조 질서 관계가 깨어진 세계이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그리스도와 성령을 보내 구원사역을 지금도 지속하신다는 신앙 고백적 신념으로 이해한다. 그러므로 한국의 민주주의와 인권 운동을 통해 현실 변혁적 운동체 속으로 깊이 관여한 것은 본래적 신앙인의 ‘실천행동’이며 그리스도 신앙은 곧 삶 속에 성육신하는 ‘생활신앙’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33) 따라서 장공의 영성신학의 핵심적 본질은 ‘성육신적 영성’을 그의 현실이해 속에 관철하는 데 있다. 그의 성육신적 영성은 물질과 몸과 대지, 차안과 피안을 대결적 구조나 분리 관계 또는 양자택일로 보지 않고, 그 양자를 통전적 구조 속에서 파악하는 것을 본래적인 ‘성서적 실재관’이라고 이해한다.34)


33) Ibid., 220.
34) Ibid., 219.


따라서 장공은 “말씀이 육신을 이루어 이 세상에 오셨다”는 성육신(成肉身)신앙의 진리에 따라 ‘예’와 ‘아니오’를 분명하게 말해야할 때를 놓치지 않고 역사현실의 한 복판에서 ‘실천 신앙’, ‘생활 신앙’의 소금과 누룩의 참모습을 강조한다.


[5] 전적 인간구원 - 범우주적 사랑의 영성


오늘날 현대 문명 앞에서 무기력한 인간들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희망과 위로와 기쁨이다. 또한 인간을 점점 허무하게 만드는 현실 속에서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는 구원 받는다’는 확신이다. 그 구원은 개인적, 초월적, 타계적 구원만이 아니라 현재의 구원과 미래의 구원을 포함한다. 예수는 전 세계를 구원하는 메시야, 즉 ‘구세주’시다.35) “인간존재의 원점은 창조주시고 인간구원의 원점은 그리스도 예수 자신이다. 우선 30대까지 짧은 예수의 생애와 교훈과 죽음과 부활과 영생, 그리고 승천과 재림 등이 우리 자신들의 삶과 죽음과 영생이 되어야 한다.”36) 그렇다면 인간을 구원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장공은 전적인 구원(Total Salvation)이란 주제로 그 구원의 넓이와 길이와 깊이를 다루고 있다.


35) 김재준, “인간 구원,” 전집12권, 439.
36) 김재준, “역사의 원점을 향하여,” 전집18권, 99.


1) 예수는 생리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을 구원한다.


인간은 하나하나의 개인을 의미한다. 개인은 ‘산 혼’(Nephesh Hayah)이다. 여기서 ‘Nephesh’는 히브리어로 생리적인 몸, 즉 육신을 말한다. 생리적인 인간은 하나님이 흙으로 빚어 만드시고 하나님 자신의 입김을 불어 넣으니 ‘산 혼’이 됐다(창2:7). 하나님의 입김이 생동력이 되는 생리적 존재가 개인이다.37) 장공은 예수의 인간구원이 이 생리적으로 병든 인간, 그들 육신의 병을 고침으로써 그 인간의 ‘몸’을 성하게 해주는 일이었다고 말한다. 따라서 ‘삶의 경제적 차원’에서의 해방은 건강, 영양, 의복 및 주택에 대한 인간의 물질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만족할 만하고 정당한 노동 생산물의 몫을 공급해 주는 사회정의가 속해 있다. 노동에 대한 자본의 특권화는 가난의 악순환을 강화한다. 따라서 사회정의는 오직 경제능력의 재분배를 통해서만 될 수 있다.38)


37) 김재준, “인간 구원,” 전집12권, 439.
38) Jürgen Moltmann, Der gekreuzigte Gott:Das Kreuz Christi Als Grund und Christlicher Theologie, Chr. Kaiser Verlag München: 1972. 김균진 역『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서울:한국신학연구소,1979), 338.


또한 예수는 성령의 화신이기 때문에 인간들 속에 도사리고 앉은 악령을 성령의 권능으로 내쫓고 인간을 인간 본연의 하나님 형상으로 회복시켜 하나님과 사람의 재 연합(reunion)을 가능케 하였다.39)


39) 김재준, “예수와 이적,” 전집4권, 315.


2) 예수는 가정적 이기주의에서 구원했다.


장공은 인간이 사는 보금자리인 ‘가정’이 자연질서나 사회질서의 산물이기 전에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직결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즉 “크리스천 가정은 그 성립의 원초부터 그 ‘기반’이 종교적입니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크리스천 가정은 하나님을 모신 집입니다. 남편과 아내, 그리고 그 위에 제3의 높은 차원인 하나님을 정점으로 한 삼각형적인 공동체입니다.”40) 예수는 가정을 ‘이웃사랑’의 극치로 보았으며 ‘하나님 사랑’의 전형(典型)으로 여겼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가정적인 하나님을 암시한다. ‘아버지 -성령- 아들’로서의 하나님은 가정의 구성요소로써의 하나님의 존재양식이다.41) 여기서 장공은 성령의 역할을 자세히 설명한다. “‘성령’은 ‘어머니’로서의 성격과 역할을 맡은 것이다. 예수는 ‘가정’을 폐한 것이 아니라 가정을 드높여 하나님의 존재양식으로까지 승화시킴으로써 ‘가정 인간’을 구원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모신 가정은 그리스도가 개인이나 가정만이 아니라 이웃, 사회, 전 세계에 구원의 주이기 때문에 이웃, 사회, 나라, 세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즉 우리가 받은 은혜를 다른 사람들과 공익을 위해 나누어 주어야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은사 전체는 우리의 이웃들의 유익을 위해서 분배하라는 조건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고 위탁하신 것이다.42) 따라서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과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그러므로 “크리스천은 ‘My Home’주의”에 농성하고 평안할 수 없으며 우리가 사는 나라와 조국의 이남과 이북에, 그리고 “전 세계에 열린 'My Home'주의”를43) 강조한다. 즉 크리스천의 사랑은 자기, 자기 가족, 자기 교회, 또는 자기 국경 등 동굴 속의 사랑을 넘어 사랑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


40) 김재준, “가정이라는 공동체,” 전집16권, 275.
41) 김재준, “인간 구원,” 전집12권, 441.
42) Inst., Ⅲ:9:5. “인간은 자기를 맹목적으로 사랑한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각각 자기가 잘났다고 생각하며 그 가슴속에 일종의 왕국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인간은 끊임없이 자기 허물을 돌보며 겸손한 마음을 회복해야 한다. 동시에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에게서 받은 재능을 보면 그 재능을 높이며 그 사람들을 존경하라는 것이 우리가 받은 명령이다. Inst., Ⅲ:9:4.
43) 김재준, “가정이라는 공동체,” 전집16권, 279.


3) 예수는 민족적인 편파심과 민족적 이기주의에서 인간을 구원한다.


인간구원은 성서의 중심사상이다. 구약성서의 뼈대인 출애굽사건은 인간해방의 원형이다. 그러므로 구원은 국경이나 민족, 그 밖의 어떤 자연적 문화와 조건에 제한될 수 없다. “인간구원의 사명은 국경, 민족, 또는 문화권을 초월한다.”44) 다시 말하면 ‘삶의 문화적 차원’에서 인간을 소외의 악순환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을 인정하는 동일성을 의미한다. 인간은 다른 사람을 인정하며 그들과 사귀는 과정에서 자기 존중과 자기 신뢰를 획득한다. 또한 인종적, 문화적 및 인격적 차이를 인정하는 것과 자신의 동일성에 대한 의식은 서로 결합되어있다. 그러므로 동일성과 인정은 서로 속하여 상대방 없이는 불가능하다. 해방이 사회화 가운데서 인격화하는 것을 의미하고 또 다른 사람을 인정하는 가운데서 동일성을 발견하는 것을 의미하는 한에서 “해방은 인간소외의 악순환으로부터의 해방에 대한 상징이다.”45)


44) 김재준, “선교와 선교정책의 시대적 의의,” 전집5권, 348-349. 칼뱅은 그의 예정론을 전개함에 있 어서 예지와 예정을 구분한다. 예지란 과거와 미래를 한 눈에 현재의 일로 파악하는 하나님의 지 식을 말한다. 즉 그 모든 것이 그의 앞에 놓여있는 것 같이 보시며 식별하신다는 뜻이다. 그 반면에 예정이란 하나님께서 각 사람이 어떻게 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스스로 미리 결정하시는 의지의 결단을 말한다. 이는 모든 사람이 같은 상태로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어떤 사람을 위해서는 영생이 예정되며, 어떤 사람을 위해서는 영원한 저주가 예정된다. Inst., Ⅲ: 21: 5.
45) J. Moltmann, Der gekreuzigte Gott, 339.


4) 예수는 인간을 사회적인 비인간화에서 구원한다.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의 존엄성을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보며 그 형상에 대해서 경의와 사랑을 표시해야 한다.46) 그러나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기 형상대로 하나님을 만들었다고 단언하고 자기 자신 안에서 ‘신의 양상’을 스스로 투사하였으므로 남은 것은 자연의 범주 안에 동물적인 인간뿐인 것이다.”47) 즉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자연에 있으면서 자연을 조성하는 인격의 자유를 자연법의 범주에 넣음으로 말미암아 부지불식간에 자연법의 종이 되어 자신을 기계로 만들어 버렸다. 여기서 인간성은 확실히 타락하고 상실하여 비인간화 되었다.


46) Inst., Ⅲ:7 :6.
47) 김재준, “그리스도와 세속주의,” 전집2권, 273.


예수는 사회에서 상실된 그들의 인간 존엄의식을 드높이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떳떳하고 바른생활을 시작하게 한다. 또한 가난 때문에 몸을 팔지만 그들의 친구로서 그들을 아무 차별 없이 꼭 같이 존엄한 인간으로 인격적으로 대접함으로써 감격스러운 인간구원이 된다. “그리스도의 정신이 마음에 충만하여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는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주체와 주체의 관계요 주체와 물상의 관계는 아니다. ‘믿음’은 나와 예수님과의 인격관계요 나와 책이나 나와 교훈이나 나와 학설이나 나와 신조의 관계가 아니다. 그러나 내가 어떤 이데올로기를 신앙대상으로 삼는 때는 나는 그 ‘통’속에 갇혀서 잘못하면 통조림이 되고 만다. 거기에는 생명이 없다.”48)


48) 김재준, “복음의 자유를 확보하라!”, 전집2권, 5.


5) 예수는 종교적인 인간학대에서 인간을 구원했다.


기독교 문명은 기독교를 국교로 채택한 이래 하나의 기독교적 권력 구조에 의하여 성취한 문명이다. 즉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거대한 권력을 발동하여 종래의 비기독교적인 생활양식을 박멸 또는 흡수하고 모든 ‘문명’을 기독교적 방향에서 통일했던 것이다. 이 현상은 중세기에서 그 절정에 달했고 문예부흥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는 여러 가지 분해 작용에 의하여 악화 또는 변모의 과정을 밟고 있다. 하지만 소위 ‘기독교 문명’이 진실로 ‘그리스도의 마음을 바탕으로 한’ 문명은 아니다.49)


49) 김재준, “기독교와 문화,” 전집7권, 402. 장공은 ‘문명’에 대하여 설명한다. 넓은 의미에서 ‘문명’은 종교의 산물이 아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인간이 있는 고장에는 문명이 있다. 그 내용과 정도에 따라 각기 특수한 민속(民俗)이 있고, 도덕적 표준이 있고, 가정과 사회의 생활양식이 있고, 경제, 법, 교육, 오락, 예술, 인간과 사물에 대한 이해(철학), 그리고 종교가 있다. 이것은 인간에게는 (일반생물과 다른) ‘자유’라는 ‘열린 문’이 있어서 그것을 통하여 무엇인가를 창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의 이상을 자기들 사회 속에 구체화하는 창조활동을 전개했다. 그 결산이 곧 문명이다. 여기서 종교가 문명의 한 중요한 부분이기는 하였으나 문명전체가 종교의 산물인 것은 아니다. 김재준, “기독교와 문화,” 전집7권, 402.


장공은 기독교 문명이 저지른 죄과가 너무나 심했기 때문에 올바른 ‘기독교 문명’이 조성된다면 그 문명의 터전은 반드시 ‘그리스도의 마음’이어야 한다고 역설한다.50)


50) Ibid., 403. 한국 개신교의 ‘눈먼 교권적지도자들’은 1953년 당시 ‘예수교장로회 총회’에서 김재준 목사를 ‘이단자’로 정죄하고 축출한지 60년이 지났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그를 ‘신신학자, 인본주의 신학자, 자유주의 신학자’라고 단정하고 ‘주홍글씨’를 장공 가슴에 붙이고 있다. 김희현,『하나님만 믿고 모험하라』(서울: 너의 오월, 20134), 5-6.


장공은 율법의 근본정신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하는 데 있음을 말한다. 여기서 ‘하나님을 사랑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을 사랑하는데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인간주의시대에 인간권을 주장하면서 자기와 상대방을 백과 흑같이 대립시키는 ‘바리새적 인간교만’을 배격하고, ‘인간존중’과 ‘인간사랑’을 실천하면 그 안에서 모든 율법조문은 저절로 이루어진다. 장공은 마태복음 5장17절-30절을 율법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예수는 ‘내가 율법을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아라, 율법을 완전하게 하러왔다.’고 자기 입장을 천명했다. 예수가 유대교권 내에 태어났으니까 이 말씀을 유대교 율법 사회에만 적용하게 되었지만, 세계적으로 볼 때, 고등종교는 유대교만이 아니고 불교, 유교, 인도교 등등이 있었으므로 그런 종교들과 예수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예수는 ‘내가 불교나, 인도교나 유교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려고 왔다.’ 하고 천명했을 것이다.51)


51) Ibid., 438. 오늘날 세계 신학계와 종교학계는 인류가 경험한 종교다원사회를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한다. 즉 배타주의, 포용주의, 다원주의적 입장이다. 장공의 신학적 입장은, 굳이 위의 세 가지 범주 속에 분류한다면 포용주의 입장이라 하겠으나 서구신학의 단순한 성취설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장공은 한국 기독교라는 종교가 한국 종교다원사회 속에서 한 몫을 차지한 기성종교 만신전(pantheon)에 등록된 하나의 역사적 종교로 안주하게 되는 것을 반대한다. 그런 뜻에서 상대주의적 종교다원론도 거절한다. 장공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생명의 샘, 진리의 샘, 그 원점에로 기독교가 돌아가서 다시 새롭게 갱신될 때면, 능히 그 자유롭고도 충분한 새로운 생명력이 한국의 생명실재 전체를 새롭게 누룩처럼 변혁시킬 원천(原泉)을 지니고 있다고 믿는다. 김경재,『씨알들의 믿음과 삶』45-46. 기독교와 타종교와의 대화에 관한 장공의 논문들은 아래의 것들을 참조하라. 김재준,『장공저작전집』제1권 논문 중에서 “한국의 재래종교와 그리스도”, “기독교와 불교의 대화는 가능한가”,『고토를 걷다』중에서 “토착종교에의 기대”


6) 예수는 ‘국가’라는 이름의 폭력주의적 정치권력 구조에서 인간을 구원한다. 인간의 삶의 정치적 차원에 있어서 억압의 악순환으로부터의 해방은 민주주의를 의미한다.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정치적 책임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존엄성을 의미한다. 이 권력의 악순환은 평등하고 정당한 정치적 책임의 분담을 통해서만 정치권력으로부터의 인간의 소외와 그의 정치적 무감정이 극복될 수 있다. 민주주의 운동의 목표는 인간을 정치적 억압과 권리 박탈로부터 해방시킴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을 가능케 하고 실현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한 국가 내에서만 타당한 것이 아니라 서로 경쟁하는 국가들 간에도 타당하다.52) 그러나 장공은 사회혁명과 함께 인간혁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53)


52) J. Moltmann, Der gekreuzigte Gott, 338-339.
53) 김경재, 『김재준 평전』216. 장공은 라인홀드 니버로부터 기독교 신앙과 현실정치의 관계에 대한 신학적 통찰을 받아들인다. 라인홀드 니버는 그의 신학적 윤리학에서 집단 관계에서의 윤리와 개인 관계에서의 윤리적 태도가 매우 다른 특징을 드러내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즉 인간은 개인관계에서는자신을 절제하고 희생을 감수하며 보다 예민한 도덕적 감수성을 견지하면서 ‘도덕적’으로 처신해 갈수 있다. 그러나 노사관계, 정당관계, 사회계층관계, 국가관계, 이익단체들 간의 관계 등 집단과 집단관계는 “서로 사랑합시다.”라는 도덕적· 종교적 설교로 그 갈등이나 대립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집단관계에서는 ‘힘의 균형과 상호 견제 작용’을 통해 ‘정의’를 최대치로 실현시킴으로써 ‘사랑’을 간접적으로 실현해야 한다고 보았다. 또한 민주주의 제도란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선을 가급적 최고 수치의 근사치로 실현해 내자는 정치제도였다. 김경재, 『김재준 평전』215-216.


장공은 ‘새로운 인간’ 하나하나를 만들면 자연스럽게 ‘정의로운 사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개인주의적 경건주의 기독교 윤리를 소박한 낙관주의로 보았다.54) 모든 사회혁명은 ‘새로운 사회’ 뿐만 아니라 ‘새로운 인간’을 만들어 내는 혁명이어야 한다. 그러나 새로운 인간을 만든다는 것은 새 실존을 만든다는 것이어서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것보다 비교도 안 될 어려움이 있다. 새로운 인간상은 성령체험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54) 김경재, 『김재준 평전』216. 장공은 라인홀드 니버로부터 기독교 신앙과 현실정치의 관계에 대한 신학적 통찰을 받아들인다. 라인홀드 니버는 그의 신학적 윤리학에서 집단 관계에서의 윤리와 개인 관계에서의 윤리적 태도가 매우 다른 특징을 드러내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즉 인간은 개인관계에서는자신을 절제하고 희생을 감수하며 보다 예민한 도덕적 감수성을 견지하면서 ‘도덕적’으로 처신해 갈수 있다. 그러나 노사관계, 정당관계, 사회계층관계, 국가관계, 이익단체들 간의 관계 등 집단과 집단관계는 “서로 사랑합시다.”라는 도덕적· 종교적 설교로 그 갈등이나 대립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집단관계에서는 ‘힘의 균형과 상호 견제 작용’을 통해 ‘정의’를 최대치로 실현시킴으로써 ‘사랑’을 간접적으로 실현해야 한다고 보았다. 또한 민주주의 제도란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선을 가급적 최고 수치의 근사치로 실현해 내자는 정치제도였다. 김경재, 『김재준 평전』215-216.


‘새로운 인간’은 성령으로 거듭난 인간, 위로부터 다시 난 인간에게 있어서는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그리스도의 부활과 함께 새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탄생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것이 있기 전에는 온갖 혁명의 nightmare는 또 한 페이지 피의 비극을 재현할 것뿐인가 합니다. 수평선적이 아니고 수직선적인 혁명은 기적을 요합니다. 이 혁명은 폭력으로가 아니고 사랑으로 진행합니다. 기만과 압박으로가 아니라 정의와 자유로 되어집니다.”55)


55) 김재준, “인간 혁명,” 전집1권, 327.


성령으로 거듭난 새 인간이 새로운 사회의 주역이 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 장공은 통일한국이 남한의 자유민주주의와 북한의 인민사회주의가 더 높은 차원에서 종합된 제3의 길을 제시한다.56) 그것은 이데올로기나 정치체제의 차이를 넘어서 인간존엄의 근거 위에 토대를 둔 새로운 사회이다.


56) 김재준, “통일을 위한 신학의 방향,” 전집12권, 352.


7) 예수는 인간을 자연 질서에서 ‘영’의 질서에로 회복시킴으로 해서 인간구원의 마감단계를 성취했다. 장공은 창조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은 지구를 낙원으로, 하나님의 ‘정원’으로 설계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낙원을 보호하고 개발할 인간을 ‘자기 형상대로’지어 이 낙원을 그들에게 맡겼습니다. 인간은 이 낙원의 ‘소유자’가 아니라, ‘청지기’ 즉 Steward로 임명되었습니다.57)


57) 김재준, “범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 전집16권, 348.


땅, 즉 ‘지구’는 창조주 하나님이 특별히 계획하신 아름다운 생명의 ‘낙원’이다. 즉 자연은 인간의 삶의 광장이다. 그런데 자연은 인간의 타락으로 곤고를 당한다.


장공에 의하면 위에서 언급한 일곱 가지 악순환들이 상호 결합된 구조로서 서로 작용하며 이를 통하여 인간의 삶을 비인간화와 죽음으로 이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통전적 구원을 위한 행동은 이 악마적인 영역의 위치를 밝히고 동시에 그들의 상호작용을 알아야 한다. 장공에 의하면 이 전적 인간구원을 위한 행동은 모든 생활을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도록 하기 위하여 이 일곱 차원에서 동시에 통전적으로 작용하여야 한다. 이 통전적구원은 종말론적으로 범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를 의미한다. 장공의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는 역사의 온전한 실현으로서의 신국의 완성이다. 장공의 기독교적 역사관은 자연과 분리된 역사가 아니다. 장공에게 있어서 역사란 자연과 역사가 함께 어울려 불가분리적 통전된 하나의 실재로서의 역사이다. 이제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예언의 시대는 끝나고 그는 범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에 ‘우주적 그리스도’ (cosmic Christ)로 영원히 왕 노릇하게 된다.58)


58) 김재준, “범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 전집16권, 349. 장공의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 비전은 그의나이 80세 이후 새롭게 주창된 것이 아니라 그의 나이 40대,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1945년 이차대전 직후, 해방 전후의 혼란기에 이미 그 모든 사상의 골격이 갖추어 피력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남북한에 단독 정부 형태가 아직 각각 들어서기 전, 1945년 8월에 그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국가 구성의 최고 이상과 현실성’이라는 부제를 붙인 강연 서두에서 밝히고 있다. 김경재,『씨알들의 믿음과 삶』47.


장공은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 건설을 위하여 삶과 죽음의 의미와 사명으로 받아 헌신할 것을 당부한다. 역사의 목표는 ‘하나님 나라’다.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간구하는 주기도는 “역사의 완성인 하나님 나라의 임재와 성장과 종말을 기원하는 인간의 절규다. 하나님 형상으로서의 존엄한 인간의 믿음이며 소망이다.”59) 여기서 장공은 하나님 나라가 위와 아래와 왼쪽과 오른쪽-동서남북 모두에 뻗친 통전된 공동체라고 말한다. 즉 ‘범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전 우주에 적용되는 영원한 생명의 길이며, ‘교회’는 ‘범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의 거점(據点)이며 전진기지이다.60)


59) 김재준, “역사의 원점을 향하여,” 전집18권, 101. 종말론의 핵심적인 개념은 ‘하나님의 나라’다. 하나님의 나라란 ‘만물의 새로운 상태’(슈니빈트), ‘세계의 전환’(보른캄), ‘돌입하는 세계의 완성’(예레미아스), 기존질서의 철저한 변혁과 역사의 무조건적인 전환을 의미한다. 새로운 것은 ‘나사렛 예수’ 안에서(눅 11:20, 17:21)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 4:17)는 사실이다.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돌입한다. 그는 역사와 세계의 전환을 가져온다. 따라서 신약성서의 종말론은 역사초월적이면서도 동시에 역사내재적인 것으로 이해된다. 종말은 역사를 끝장내고, 완성한다. 종말은 비역사적인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그리고 망설임 없이 역사 안으로 들어온다.
60) 김재준, “새 하늘 새 땅,” 전집9권, 351. 장공은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를 건설하는 것이 교회의 의무이고 신앙인의 비전이라고 밝힌다. “지금도 우리의 비전은 낡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나중이신 하나님의 설계도 안에 그려진 완성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행진은 계속될 것입니다. 골인할 때까지!” 또한 장공은 사랑의 범위를 설명한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사랑은 에로스, 아가페, 필로스를 모두 갖춘 사랑입니다. 이런 사랑의 범위를 넓혀서 개인, 가정, 사회, 국가, 그리고 국제적으로 확충시키려는 것이 사랑의 공동체 운동입니다.” 김재준,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 전집18권, 530.


장공은 우리가 세계적 사랑의 공동체, 더 나아가서는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를 구현하기 위해서 우리의 모든 것을 바친다면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며 공동체 안에서 함께 영생할 것임을 강조한다.61)


61) 김재준,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 전집18권, 530.


[6] 결론


본 연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얻어진 장공 김재준의 영성 이해가 오늘의 현실에서 갖는 의미를 밝히고 글을 맺으려 한다. 장공은 인간존재의 원형으로서의 인간이해를 예수의 몸으로 해석했다. 즉 그리스도의 부활은 신자의 부활에 대한 전제임과 동시에 그 원동력이다. 신자의 부활체에 대한 장공의 이해는 차가운 철학적 사변이나 관념이 아니라 철두철미한 성령체험과 신앙체험에 기초한 영성신학임을 주목해야 한다. 장공의 영성신학은 부활신앙에 뿌리박은 ‘자유하는 인격’으로서 생활건설에 생명의 핵이 되고 남을 살리는 생명의 맥박이 되는 것으로서 오늘의 역사적 현실에 적합한 영성신학을 가능케 한다. 인간의 영생의 삶은 그리스도의 모방으로써 자기부정과 십자가를 지는 삶이다. 그리고 부활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죽음이 삶에 삼킨바 되어 무덤을 헤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봉사하는 인간이다. 장공의 부활생명의 희망은 사변이 아니라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하나님과 인간 자연에 통전되어 있다.


장공이 그의 나이 40대에 신학사상의 골격을 갖추어 밝힌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의 비전을 밝히고 있다. 장공의 영성신학은 장공신학의 기본적 특징일 뿐만 아니라 그의 삶의 성격을 이해할 수 있다. 장공의 ‘범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는 그의 종말론적이며, 역사의 온전한 실현으로서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다. 이 새 하늘과 새 땅의 비전은 현세적이면서 초월적이며, 역사와 자연이 대자연 앞에서 조화를 이루며, 하나님의 영이 하늘과 땅을 통일하는 그리스도가 개입, 역사, 성취하시는 범 우주적 새로운 생명 공동체이다. 따라서 성육신 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장공신학의 주제이고 근거였다. 인간의 영성과 그 원형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는 성육신하여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인간의 억압받는 자유를 회복하였다. 장공의 성육신적 영성은 물질과 몸과 대지, 차안과 피안을 대결적 구조나 분리 관계 또는 양자택일로 보지 않고 통전적 구조 속에서 파악하는 ‘성서적 실재관’으로 이해한다. 그러므로 “성육신적 영성 신학은 한국 개신교가 전래된 이후 대체로 보수적 선교사들과 교회 지도자들이 형성해 온 ‘영혼 구원을 목표로 하는 기독교’, ‘사후 천국 생활을 대망하는 기독교’, ‘현실 역사를 사탄의 지배 왕국으로 보는 기독교’, ‘구원 체험을 인간 내면의 성령 체험으로만 제한하는 기독교’, 복음 진리를 ‘교회당 안에 저장해 두는 기독교’에 대하여 자유, 평등, 정의, 사랑이 숨쉬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도록 변혁시켜 가야할 책임이 있다.”62) 뿐만 아니라 역사의 한 복판에서 한국의 민주주의와 인권운동을 통해 현실 변혁적 운동체 속에 깊이 관여한 것은 본래적 신앙인의 ‘실천 행동’이며, 그리스도 신앙은 곧 삶 속에 성육신하는 ‘생활 신앙’이 되어야한다고 강조한다. 장공은 땅을 버리고 하늘로 올라가는 타계주의적 영지주의적 기독교로부터 육을 입고 화육하는 화육적 영성에로의 복귀를 촉구한다. 이것은 예언자적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하는 장공의 역사신학의 핵심주제가 된다. 장공의 성령체험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장공의 삶과 신학사상을 지탱해주는 두 기둥이다. 그러므로 그의 신학은 역사적 상황과 시대에 따라서 강조점의 차이가 있지만 신학적 일관성과 연속성을 가지고 있다.


62) 김경재, 『김재준 평전』220-221.


이러한 장공의 신학과 실천은 책임적인 행동을 요구하는 절박한 상황에서 정체성의 위기에 직면한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지침이 될 수 있다. 특히 오늘날 한국교회는 정통주의적 근본주의 신학의 영향으로 다시 영·육 이원론, 타계주의, 교권주의, 물신주의, 교회주의와 축자영감설에 빠져있다. 그것은 성서와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잘못된 신학적 이해에서 초래된 것이다. 따라서 장공의 영성신학의 이해는 한국교회의 미래와 건전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에 올바른 방향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