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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좌 및 강연

[목요강좌 제8회] 김재준의 생활신학의 원리와 구조 / 류장현 박사

목요강좌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7-07-14 17:02
조회
1812

[8 長空사상연구 목요강좌] 발제
일시 : 2005121() 오후 5-7

김재준의 생활신학의 원리와 구조

류 장 현 박사
(한신대 겸임교수 / 조직신학)

주님의 영이 내게 내리셨다. 주님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셔서, 포로 된 사람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눈먼 사람들에게 눈 뜸을 선포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 주고,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눅 4:18-19)

I. 들어가는 말

[1] 연구의 필요성과 목적

하늘 씨앗이 이 땅에 떨어진지 1세기가 넘었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세계교회로부터 “선교의 기적”이라고 평가받을 만큼 놀라운 성장을 했다.1) 그러나 한국교회는 현재 대내외적 위기상황에 직면해 있다. 내적으로는 그동안 성장에 치우쳐 등한시했던 교회의 세속화를 극복해야 하며 외적으로는 21세기 탈산업화 사회에 적합한 교회로 변화되어야 한다. 특히 한국교회의 개혁의 결과로 태동된 한국기독교장로회는 희년 50년을 지나면서 목회현장에서 극복의 대상이었던 정통주의 신학의 영향으로 기장성과 한신성의 상실 위기에 직면해 있다.2) 이런 상황에서 종교개혁자요 사회개혁자였던3) 김재준 목사(1901 - 1987, 이하 ‘장공’으로 쓴다)의 생활신학을 연구하는 일은 한국교회의 위기를 극복하고 21세기 탈산업화 사회에서 교회가 나아갈 방향을 찾는 매우 소중한 작업이 될 것이다.

1) 장공은 한국교회의 양적 성장 요인으로 한국교회의 종말적인 위기상황, 유교의 높은 윤리적 훈련, 불교와 도교의 허무주의를 극복하는 기독교의 영원한 생명에 대한 약속, 한국인의 종교의식(샤머니즘과 기독교의 구조적-논리적 유사성), 1907년 이후 열광적인 부흥운동, 정통주의 신학의 영향을 들고 있다(11권, “한국교회의 선교적, 사회적 사명”, 131-138).
2) 장공은 1959년 기장총회에서 지역감정과 교권욕으로 동지적 친교가 상실되는 것을 슬퍼했으며(김재준,「범용기: 장공 김재준 자서전」(서울: 도서출판 풀빛, 1983), 28. 286), 1984년 기장총회에서 총회 안에 교회주의 그룹, 부흥회식 성령그룹, 사회참여 그룹, 사회정의를 위한 행동적 정의 그룹의 일치를 강조했다(김재준,「귀국직후」(서울: 선경도서출판사, 1985), 168). 그리고 1983년 한신대학 교수 평가회에서는 기업보다도 혼에 살아야 할 한신대학의 일치를 강조했다(a.a.O., 68). “나는 한신대학에 소망을 걸고 있습니다. 될 수만 있다면 내 무덤을 캠퍼스 뒤 언덕 송림 속에 만들고 내 혼이 캠퍼스를 날마다 밤마다 지켜보며 복을 빌고 싶은 생각입니다.”(18권, “병석의 삶”, 390).
3) 손규태,「장공 김재준의 정치신학과 윤리사상」(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2), 101, 153, 155-156.

장공은 종교적으로 인간을 억압하는 정통주의 신학을 비판하면서 생활신학과 생활신앙을 강조한 목사, 신학자, 교육자로서 교회의 사회적 책임성과 역사 변혁을 강조했다. 또한 그는 한신대학교 설립과 한국기독교장로회 창립에 중심인물로 참여했으며 1960년대 이후 민주화 운동과 인권운동에 크게 공헌한 민주투사이기도 했다. 그의 신학은 생활신학, 생활신앙, 생활종교를 원리로 인간혁명, 교회개혁과 사회개혁을 추구하는 구조로 형성되어 있다. 그 원리와 구조를 관통하는 핵심은 전우주적 사랑의 공동체이다. 이 논문은 이런 장공의 생활신학의 원리와 구조를 밝히는데 목적이 있다.

[2] 연구의 방법과 범위

장공은 18권의 전집을 낼 만큼 많은 종류의 글을 남겼다.4) 그 안에는 신학 논문만이 아니라 수필, 수상문, 설교문, 강연록, 신변잡기가 담겨 있다. 그것을 신학적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공의 신학은 미국 유학에서 귀국 후 발표한 예언자들에 대한 초기 논문에서 나타난 사상이 후기까지 크게 변하지 않고 유지된다.5) 그의 신학은 투쟁의 산물이다. 그는 해방 전후에 정통주의 신학에 포로가 된 교회개혁과 60년대 이후 민주화 운동을 통한 사회개혁에 전념했다. 그 출발은 인간의 변화이며 그 목표는 교회개혁과 사회개혁을 통한 전우주적 사랑의 공동체의 형성이다.

4) 장공 김재준 목사 기념사업회 편,「김재준 전집」(오산: 한신대학교 출판부, 1992, 이하 ‘O권’으로 쓴다).
5) 장공의 초기 논문은 “출애굽 연대에 관한 고찰”(웨스턴 신학교 신학사 졸업논문), “오경비판과 주전 8세기 예언운동”(신학석사학위논문) 그리고 신학지남에 발표한 “욥기에 현한 영혼불멸”(1933. 5), “전기적으로 본 예레미야의 내면생활”(1933. 9), “아모스의 생애와 그 예언”(1933. 11), “실재의 탐구-전도서를 읽고”(1934. 11)가 있다.

이런 장공의 신학에 대한 연구는 신학적 관심에 따라서 다양한 연구 결과들이 있지만 필자는 장공 전집에 나타난 장공 신학의 원리와 구조를 찾아갈 것이다. 그래서 이 논문은 장공 전집 18권을 기본 자료로 사용했고 장공에 관한 연구논문을 이차 자료로 활용했다. 이차 자료는 간접적으로 인용될 것인데 그것은 무가치해서가 아니라 저자의 신학적 관심에 따라서 장공의 신학을 부분적으로 소개하기 때문이다. 또한 장공의 신학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그의 글을 신학적으로 분석하는 차원을 넘어서 강의, 대화와 인격을 통한 감동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필자는 장공을 직접 만난 일도 강의를 들은 일도 없기 때문에 이 논문은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필자는 장공의 신학과 삶에 대한 평가보다는 그의 사상을 충실히 요약할 것이다. 그것이 장공의 신학과 삶을 왜곡하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II. 장공의 성령체험과 삶의 전향

[1] 성령체험

장공은 유교에서 우주만물의 근원과 삶의 의미에 대한 해답을 찾았지만 발견하지 못했으며 언제나 유교의 계율을 초월한 자유를 그리워했다. 이렇게 유교의 교훈과 계율을 넘어서는 진리를 찾아서 방황하던 장공이 예수를 영접한 것은 김익두 목사의 부흥회였다. 그는 “호기심”에6) “구경삼아”7) 서울 승동교회에서 있었던 김익두 목사의 부흥회에 참석했다. 그는 마지막 날 창세기 1장 1절의 창조주 하나님에 관한 설교에서 자신이 찾았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어서 예수를 믿겠다고 결단했으며 그때 성령체험을 했다. 그것이 1921년 봄 장공이 20살 때였다. 그는 당시의 체험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6) 9권, “새벽의 메아리”, 96.
7) 9권, “나의 인생관”, 141.

그 순간, 정말 이상했다. 가슴이 뜨겁고 성령의 기쁨이 거룩한 정열을 불태우는 것이었다. 성경 말씀이 꿀송이 같고 기도에 욕심장이가 됐다. 교실에서 탈락한 자연인이 교회에서 위로부터 난 영의 사람이 됐다.8)

8) 김재준, 범용기, 43.

나는 성령의 내주를 경험했다. 맨 처음 믿기로 작정한 때에 폭포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성령의 하늘 위로와 기, 그리고 복음 증거 때문에 사람 없는 외따른 집 독방에서 핍박자의 쇄도를 기다리던 깊은 자정(밤12시)에 내 생명 속에 화산처럼 솟구쳐 오르던 그 형언할 수 없는 영의 기쁨이었다. 그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는 성령 안에서 고요히 살고 있다.9)

9) 18권, “내가 믿는 하나님”, 187. vgl. 9권, “나의 인생관”, 141. 장공은 그 체험을 “성령강림”으로 생각했다(18권, “조약돌 몇 개”, 406).

그것은 체험적 감정에 매몰되는 신비주의와 신인일여(神人一如) 같은 범신론적 체험이 아니라 나와 너의 인격적 관계에서 영원을 만나는 영교체험(靈交體驗)이었으며 성령세례를 통해서 자연인에서 성령의 사람으로 변화된 중생을 체험한 사건이었다. 김경재는 이 중생 체험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청년 김재준이 겪은 거듭남의 체험은 기독교 교리에 대한 지적(知的) 동의도 아니었고, 단순히 전통 권위에 대한 수용도 아니었다. 단순한 종교적 감정과 과잉 흥분도 아니었으며, 도덕적 양심의 지상 명령에 대한 윤리적 순명도 아니었다. 그 모든 것들 이상의 사건이었다. 진리의 영이시오 사랑의 영이신 창조주 하나님이 성령으로 청년 김재준의 마음을 직접 방문해 주신 사건이었다. 성어거스틴이 경험했고, 캘빈이 증언하는 ‘성령의 내적 증인’이 일어난 사건이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이 앞으로 평생 그의 충직한 종으로 한 민족을 위해 일할 김재준을 “너는 나의 것이다”라고 이끄시고 그와 동행하기 시작한 하늘의 사건이었다.10)

10) 김경재,「김재준 평전: 성육신 신앙과 대승기독교」(서울: 삼인출판사, 2001), 27-28.

장공은 자신의 성령체험을 하나님의 섭리, 성령의 역사, 삼위일체 하나님 체험이라고 고백했다. 그 후 그는 “나는 변하여 새 사람이 됐다”는11) 사실을 실감했으며 그의 삶은 온전히 하나님께 이끌린 삶이 되었다.12) 성령을 체험한 후 장공은 성경 읽기와 기도와 전도에 힘쓰며,13) 성 프란체스코, 톨스토이, 가가와 도요히코(賀川豊彦)의 전기와 저작물을 통해서 무소유의 삶을 배우므로 신비적 체험과 실천적 삶을 일치시켰다. 그러나 그는 성령을 체험한 후 3년 동안 물세례를 받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물세례를 부정하는 “영지주의적 생각”이14) 아니라 성령으로 이미 세례를 받았다는 확신과 물세례를 받은 교인들의 위선적 신앙생활에 대한 실망 그리고 형식적인 물세례보다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는 중생의 체험이 중요하다는 종교적 형식주의에 대한 거부감이다.

11) 12권, “그리스도와 함께 50년(1)”, 130. 또한 장공은 “하나님은 나를 수령에서 건져내 주셨다”(12권, “그리스도와 함께 50년(1)”, 129). 그리스도가 찾아오셨고, 프란체스코가 손잡아 주었다. “인간 사랑 때문에 철부지 소년을 불러 주신 것이다”라고 고백한다(15권, “상한 갈대”, 11).
12) 18권, “출애굽”, 424-425. vgl. 18권, “조약밭”, 416.
13) 18권, “나의 생애와 신학”, 150. 18권, “조약돌 몇 개”, 406. 장공은 성령체험을 한 후 기도의 사람이 되었다. 그는 20세 때에 서울 남산에서 새벽기도를 했다. “그 때 남산은 내 정원이요, 친구요, 내 성소기도였다. 아닌게 아니라 새벽 바위 밑에 끊어 앉아 기도하기를 잊지 않았다”(김재준, 고토를 걷다, 282). 또한 평양에 있을 때는 새벽마다 모란봉 꼭대기 일정한 바위 밑에서 꿇어 앉아 기도했다. “나의 모란봉 기도는 아버지와의 대화였다.”(a.a.O., 283. 또한 5권, “자연을 대변한다”, 236, 18권, “백운산가”, 123, 18권, “나의 생애와 신학”, 146ff., 12권, “그리스도와 함께 50년(1)”, 132). 장공에게 성서는 문학, 철학, 역사, 과학에 관한 책과는 다른 인간 구원에 관한 기록이다(2권, “순례의 길(2)”, 199-201).
14) 손규태, 장공 김재준의 정치신학과 윤리사상, 32.

나는 믿은지 3년이 넘었지만 세례받을 생각은 없었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다는 경험 때문에 물 세례 같은 형식은 군더더기라고 느꼈던 것이다. 그리고 세례 받았다는 신자, 제직들에게서 별다른 인간 변혁을 찾지 못했다는 것도 한 이유였다. 그래서 나는 ‘형식 불요’라고 항변해 봤다.15)

15) 김재준, 범용기, 52.

장공이 세례를 받고 기독교에 입교한 것은 친구 김영구(金永九)의 죽음이 직접적 계기가 되었다. 김영구의 죽음은 장공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장공은 친구의 죽음을 통하여 “인간의 무의미와 죄악과 허무를 이기는 길은 오직 이러한 그리스도 신앙에서만 찾을 수 있다”고16) 확신했고 마침내 민족주의자 김영구(金永狗) 목사의 설득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장공은 “그 당시의 교회에 이유모를 반항만 늘어갔다.”17) 그는 여러 교회를 다니며 예배에 참석했지만 축음기가 돌아가는 것처럼 생명력 없는 설교에 실망했다. 그들의 설교는 “환골탈태한 자기 말을 하는 것 같지 않았다”,18) 곧 하나님 말씀을 완전히 소화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기독교 진리에 목말라하며 3년 동안 매주일 오후 2시 YMCA의 일요강좌에 참석했으며 매일 경성도서관에서 기독교 서적을 탐독했다. 특히 그는 내촌하천(內村賀川)의 책을 많이 읽었지만 무교회주의는 반대했다.19) 그때 그는 관습적인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진짜 예수의 제자가 되겠다고 다짐했으며 프란체스코처럼 청빈의 삶을 살겠다고 결단했다.

16) 9권, “나의 인생관”, 147.
17) 8권, “신변여적 : 내가 영향 받은 신학자와 저서”, 182.
18) 12권, “그리스도와 함께 50년(1)”, 131. 또한 18권, “조약돌 몇 개”, 407.
19) 8권, “신변여적 : 내가 영향 받은 신학자와 저서”, 206. 장공은 목회자들에게 평생 학도(學徒)가 되라고 권면하면서 자신의 경험에서 얻은 독서의 좌우명을 소개한다(a.a.O., 209-210).

[2] 성령체험의 의미

장공은 유교의 천(天)이 너무 막연한 개념이기 때문에 인간을 넘어서는 초자연적인 신, 조상의 혼백, 무당의 잡신 또는 귀신과는 다른 참 하나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김익두 목사의 창세기 1장 1절에 관한 설교를 듣고 참 하나님을 발견했다.20) 그는 우주만물의 근원과 삶의 근원에 대한 해답을 성서의 창조주 하나님 신앙에서 발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로 작정했다. 그 때 장공은 성령을 체험했는데 그 신학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20) 18권, “조약돌 몇 개”, 399, 406.

첫째, 성령체험은 장공의 삶과 신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그것은 장공을 자연인에서 성령의 사람이 되게 했으며 그의 신학과 신앙의 원동력이 되었다.21) 장공은 성령체험을 통하여 신학은 객관적 학문의 작업이 아니며 신앙은 정통주의자들처럼 교리와 신조에 대한 지적 동의가 아니라 살아계신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만남과 실천적 삶의 문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므로 “(장공의) 진보주의적, 역사적 성서 이해는 급변하는 현대 역사 속에 사는 우리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해 주는 일에 공헌했다. 그러나 한편 사회, 정치적 연구에 치우친 나머지 초월적인 하나님의 종교적 차원이 가려질 위험성 또한 개제되어 있다. 여기에 공헌과 위험성을 함께 가진 한국 진보주의 신학의 초석이 있다”라는22) 비판은 장공의 신학이 초월적인 삼위일체 하나님 체험에 기초하며 역사비판적 성서 해석이 초월적 하나님의 뜻을 해석하여 역사적 현실에 적용하는 해석학적 수단이라는 사실을 간과했다.

21) 장공은 인생 60년을 회고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성령체험 이전과 이후로 구분한다(9권, “나의 인생관”, 140-141).
22) 유동식,「한국신학의 광맥」(서울: 전망사, 1982), 140.

둘째, 성령체험은 해방의 체험이었다. 장공은 유교의 윤리적 엄격주의 때문에 늘 자신을 불효자로 생각했으며 이런 환경에서 그의 혼은 자유분방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성령체험을 통해서 유교의 계율주의로부터 벗어나는 자유와 해방을 경험했다.

그 순간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경험했다. 지금까지의 유교적인 윤리와 규례에서 해방됐다. ‘분토같이 버렸노라’한 바울의 말이 영락없는 내말이 된다.23) 바울이 율법주의에서 해방된 것같이 나도 유교와 모든 원시 종교적 전통과 습성에서 해방된 것을 인식한다. 교리, 시도 등 바리새적인 번쇄에서 속죄사랑이 살아계신 그리스도 자신에게 마음을 열어 그를 영접함으로서 자유함을 얻었다는 것도 경험한다.24)

23) 12권, “나의 입장”, 246.
24) 12권, “나의 입장”, 249.

그 자유는 유교적 율법주의에서 해방, 정죄의식에서 해방, 죽음과 심판의 무서움에서 해방, 성령의 내주와 그 내주에서 오는 영의 즐거움에 대한 확신,25) 그리고 권력에서 자유, 물질적 소유에서 자유, 공포와 죽음에서 해방이었다.26) 장공이 신학에 입문했을 때 모든 비기독교적 또는 비직접적인 과거를 단절하려 했던 것도 그리스도인의 자유가 이런 해방에서 탄생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27) 참으로 그는 기독교에서 유교의 교훈과 계율을 초월한 “자유하는 영”의 사람으로서의 “낭만 정신”을 발견했다. 그것은 전락자에 대한 사랑의 너그러움, 죽음에서 절망하지 않고 생명을 노래하며 영원을 모험하는 모습과 부활에 나타난 불퇴전의 삶의 의욕을 의미한다. 장공은 이런 자유인의 표상을 무소유의 방랑 성자 프란체스코에서 찾았다.28) 그러나 장공은 이 자유의 체험을 개인적 차원으로 축소하지 않았으며 인간혁명과 교회개혁과 사회개혁으로 확대시켰다. 그것은 자유를 사랑으로 완성하는 일, 곧 개인 윤리가 사회윤리로 발전하는 사랑의 발전 형태이다(갈5:13-15).

25) 12권, “나의 입장”, 246. 그는 부모에게 전도의 편지를 거의 매일 보냈으며 제사의식에 불참하여 불효자란 낙인이 찍히기도 했다.
26) 12권, “나의 입장”, 250. 장공은 80세를 넘으면서 불교의 무아해탈(無我解脫), 공자의 70에 종심소욕이불유구(七十從心所欲而不踰矩), 노자의 무위이화(無爲而化)의 자세로 욕심 없는 큰 인물로 생활했다(18권, “기념비와 욕덕비”, 10. vgl. 18권, “은퇴목사 모임에서”, 2-3). 송창근 목사가 20세 때 지어준 장공이란 호는 “무일푼의 방랑자”란 뜻을 가지고 있다(18권, “아시시 프란시스와 나”, 217).
27) 12권, “나의 입장”, 250.
28) 9권, “무소유의 낭만”, 144-145.

셋째, 장공이 체험한 성령은 창조의 영과 해방의 영이다. 그는 1983년 7월 캐나다에서 작곡가 박재훈 박사와 북캐나다를 여행하고 돌아오는 차중에서 영감을 받아 쓴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찬양시에서 성령을 인간과 교회와 사회를 변혁시키는 창조의 영과 해방의 영이라고 노래한다.29)

29) 김재준, 귀국직후,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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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 당신의 재창조 없이
새사람 없나이다
새 역사도 없나이다.

성령님 능력 없이 교회도 선교도 없나이다.

오순절 성령 강림 그것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성령의 폭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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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성령님 은혜 하늘 어머니 사랑
그 무량애 품속에
전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로
영원히 영광스레
살으오리다.

넷째, 장공은 신비 경험을 간직한 지성인이었다. 그는 김익두 목사의 부흥회에서 성령을 체험한 후 귀낙동 학교 교사 시절에 두 번째로 기쁨이 넘치는 성령의 위로를 받았으며 1984년 초동교회 여신도 연합회 헌신예배에서 성령의 역사를 체험했다. 특히 장공은 두 번째 성령충만을 체험했을 때의 기쁨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그 순간 나는 황홀할 정도로 가슴이 벅차고 기쁨이 넘치고 즐거워졌습니다. 그 기쁨은 내게서 나오는 기쁨이 아니었습니다. 성령의 위로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두 번째로 성령의 충만을 경험했습니다.30) 그렇게 평화롭고 기쁠 수가 없었다. 성령의 위로란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인간의 감정, 판단, 설계, 심리 작용 등등 혈육에 속한 것이 아니라 위에서 주어지는 ‘영’의 감격이었다.31)

30) 18권, “조약돌 몇 개”, 410-411.
31) 김재준, 범용기, 59.

또한 장공은 여러 번 꿈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신비체험을 했다. 그는 일본 유학을 앞두고 유학을 떠나라는 소명을 받은 꿈, 미국 유학을 놓고 기도 중에 환상 체험, 일제 말기 8월 14일에 꾼 일본과 독일의 패망을 알리는 해방의 꿈, 6. 25 전쟁 직전에 꾼 전쟁으로 인한 비참함과 서울 탈환에 대한 예언적인 꿈, 악성 이질로 병원에 입원하기 전에 예수를 만나는 꿈과 입원했을 때 치유를 알리는 꿈을 꾸었다.32) 그는 7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늘 중생을 통하여 날로 새로워지는 ‘속사람’을 생각했다.33) 참으로 그는 성령의 신비적 체험과 학문적 지식을 겸비한 민족의 예언자였다.

32) 김재준, 고토를 걷다, 288-297. 그리고 5권, “만생여록”, 157. 161-162. 5권, “인생만추”, 323.
33) 5권, “만생여록”, 223-234.

[3] 장공의 삶의 성서적 전거

장공의 삶은 누가복음 4장 18-19절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하는 제자직의 삶이었다. 그는 본문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고난의 도전과 수난자의 응전”이란 논문에서 자세히 설명한다. 예수는 언제나 “자기 죽음을 전 인간, 창조에서 종말에 걸쳐 이 세상에 왔다간 모든 인간들의 죄와 죄벌을 속량하는 용서의 제물로 바친다는 의식을 견지하고 있었다.” 그의 선교는 “가난한 자, 병든 자, 불구자, 갇힌 자, 포로 된 자 편에 서서 그들에게 자유와 해방을 준다”는 선언이었다. 그는 광야에서 “십자가 없는 선교에의 유혹”을 받았지만 십자가 없는 영광, 십자가가 없는 민중의 칭찬과 풍부한 물질로 민중의 생활을 부요하게 하는 방법을 버리고 자기희생적인 사랑의 실천인 십자가의 고통을 택했다. 그것은 정치적으로 열심당의 일원, 종교적으로 신성모독죄, 사회적으로 율법질서의 파괴이다. 따라서 예수는 성전종교에는 흥미가 없었으며 “사회와 교회에서 버림받은 ‘전인간’들을 찾아 제일선에서 그들의 고통을 나누고 그들의 소망이 되고 대변자가 되었다.”34) 그것은 십자가의 길이었다.

34) 16권, “고난의 도전과 수난자의 응전”, 245-247.

이렇게 누가복음 4장 18-19절은 예수 자신의 실존적인 삶의 강령이요35) 인간 해방의 선언으로서36) 고통당하는 민중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는 선언과37) 인간을 정신적, 육체적, 물질적, 사회적 노예상태에서 구출하여 자유인으로 만들어 자유와 정의와 평화가 일체되어 운영되는 하나님 나라를 세운다는 인간화와 사회화의 선언이다.38) 장공의 삶은 이런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모방이었다. 그는 예수처럼 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 전우주적 사랑의 공동체가 실현되도록 한국교회와 사회를 위하여 십자가를 짊어졌고 무량애(無量愛)로 민중을 사랑했으며 인간의 자유를 위해 투쟁했다.39) 그러므로 그의 신학은 “머리의 신학이 아니라 가슴으로 그리스도의 심장을 만나는 살아있는 신학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김재준의 신학은 그리스도 중심의 신학이요, 성령의 신학이요, 역사신학이요, 삶의 신학이었다.”40) 장공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언제나 인간회복, 인권존중, 사회정의, 민주정치 등 인간을 인간답게 살도록 하는 모든 운동의 마르지 않는 샘터였다.

35) 12권, “말씀을 새긴다”, 390.
36) 11권, “세계, 교회, 인간”, 120.
37) 12권, “말씀을 새긴다”, 390.
38) 10권, “한국에서 기독교의 위치와 사명”, vgl. 425. 9권, “의의 봉화”, 330.
39) 4권, “최대의 계명 : 그 일체성에 관하여", 288.
40) 김경재,「장공의 영성신학, 씨알들의 믿음과 삶」(서울: 전망사, 1990), 25-49.

III. 생활신학의 원리와 특징

[1] 생활신학

장공이 신학을 연구하게 된 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에 의한 일이었다. 그는 “뉴욕 유니온의 출장소”같았던 청산학원에서 급진적인 자유주의 신학을 배웠고 프린스톤 대학에서 “알짜 보수주의”인 근본주의 신학을 배웠다.41) 그의 신학은 비판자들이 오해한 것처럼 자유주의 신학도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것처럼 신정통주의도42) 아니다. 물론 장공이 청산학원을 졸업할 때 “바르트의 초월론”을 논문으로 제출했고 박형론과의 논쟁에서 바르트를 옹호했지만 성령체험을 통한 중생의 강조, 성서에 대한 철저한 역사비판적 해석, 타종교에 대한 포용주의적 태도, 삼위일체론의 이해, 한국적 신학의 형성 등은 신정통주의와 구별된다.43) 또한 장공이 단순히 서구 신학을 한국에 소개하고 한국 상황에 적용한 비독창적인 신학자라는 비판은44) 타당성이 없다. 그는 서구 신학을 한국의 종교와 영성에 맞도록 재창조했으며 한국적 신학 형성을 위해 노력했다. 그는 자신의 신학을 기독교의 실학파 구실을 하는 “생활신학”45) 혹은 “인간의 신학”, 더 정확히 “인간의 생활”에 주목하는 “제4일의 신학”으로 표현했다.46) 그 특징은 다음과 같다.

41) 8권, “신변여적”, 182-183. 장공은 처음부터 신학을 공부하려고 하지 않았다. 고등사범이나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여 교사가 되려고 생각했다. 그는 신학교를 졸업했지만 목사를 할 생각이 없었으며 그렇다고 무교회주의나 교회출석 중지도 단호히 결단하지 못했다(15권, “피동과 신의”, 367).
42) 천사무엘,「김재준: 근본주의와 독재에 맞선 예언자적 양심」(서울: 살림 2003), 235.
43) 장공은 성서를 동양적 견지에서 이해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장공에 의하면 십자가의 죽음은 공(空), 허(虛), 무(無), 영(靈)을 통하여 그 단절의 깊이와 철저성이 더욱 밝게 드러날 수 있다(6권, “일반 서설”, 22-23).
44) 천사무엘, 김재준: 근본주의와 독재에 맞선 예언자적 양심, 20-21.
45) 16권, “후기”, 354.
46) 12권, “장공칼럼(6)”, 90.

첫째, 생활신학은 체험의 신학이다. 장공은 자신의 신학을 체계적으로 서술한 신학자는 아니었다. 단지 그 방향설정과 지시만을 했다. 그는 22년(1940-1961) 동안 한신대 교수로 일했지만 한번도 자신을 ‘학’(學)을 위한 ‘학’의 사람으로서 ‘학’을 했다고 자부해 본적이 없다.47) 그것은 야훼 하나님이 “영원히 활동하는 신”으로서48) 살아계신 인격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객관적 연구 대상이 아니라 체험의 대상이며 예언자적 선포와 행동을 요구하는 시대적 요청에 의해서49) 그리스도의 메시지가 고정된 교조적인 물상(物相)이 아니라 변천하는 시대와 세대에 자유로 변모하며 생동하는 ‘생명의 말씀’이 되어야 한다는 깨달음50)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진리의 신학적 체계화를 거부하며 언제나 하나님과의 인격적 만남, 곧 실존적 체험을 강조한다.

47) 12권, “그리스도와 함께 50년(1)”, 135.
48) 18권, “신학의 거소”, 278.
49) 8권, “생활건설의 종교”, 213.
50) 12권, “나의 입장”, 247.

나는 신학함에 있어서 그것이 학(學)으로서 보다도 ‘사람’으로서의 요소를 더 많이 앞세워야 할 것이라는 점에서 스스로 고민하고 있었다. 신앙이란 것은 하나님과의 주체적인 응답일 것이요, 무슨 원리원칙이거나 도덕교훈이거나를 앞세울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나는 학과목(學科目)들에 대하여 무슨 ‘반발’같은 것을 느끼기도 했다. 객관화(客觀化), 물상화(物相化)한 학으로서의 신학이란 것은 다른 어느 학문과도 다를 것이 없는 하나의 학일 것뿐이므로 그리 낭만적인 것도 못되고 스릴을 주는 것도 아니라고 불평했다...신학이 객관화 물상화의 과정을 밟아 다시 인격적, 주체적인 생명에 화신(化身)하여 하나의 고백으로 선포되는 때 그 신학은 학문이면서도 학문의 영역을 넘어 하나의 발언(發言)으로 선포되는 것이며 그것은 창백한 관념의 세계가 아니라 피와 살이 꿈틀거리는 예언의 외침으로 된다는 그것이었다.51)

51) 8권, “신변여적”, 182-183.

나는 체제화 또는 체계화란 것을 싫어한다. 살아계신 내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주격으로서의 그 분은 좋아하지만 그리스도에 ‘관한’ 그를 객관화, 물상화한 개념으로서의 신학 체계 같은 데는 별 관심이 없었다...나는 예수님을 ‘학(學)’으로 대하려는 것이 아닌 살아계신 예수님 어쨌든 그대로를 모시고 싶었다.52)

52) 12권, “그리스도와 함께 50년(2)”, 141-142.

둘째, 생활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십자가의 구속에 주목하는 그리스도 중심적 신학이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신학적으로 탐구하는 이론적 신학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삶을 재현하는 실천적 신학이다. 장공은 그리스도 이외에 어떤 신학이나 어떤 주의에 속하기를 거부한다. 그는 자신의 신학적 입장을 자유주의와 근본주의를 넘어서는 “살아 계신 그리스도주의”라고53) 말한다. 그것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역사 속에 오셔서 인간들을 상실태에서 구원하여 참된 인간으로 회복시키려는 성육신의 교리에 근거한 “성육신의 윤리”로54) 나타난다.

53) 김재준, 범용기, 97.
54) 7권, “그리스도와 세계”, 233-234.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내 삶의 핵심으로 모시고 교회 생활을 내원(內圓)으로, 사회생활을 외원(外圓)으로 해서 어떤 통전(統全) 비슷한 것을 내 생활에서 발굴해 보기로 한다.55)

55) 12권, “그리스도와 함께 50년(1)”, 143.

그러므로 생활신학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종교적이며 사회적으로 억압당하는 인간의 해방(혹은 자유와 구원)에 집중되어있다. 장공은 미국에서 신학을 연구할 때 신학보다는 인간의 실존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바르트, 부룬너, 틸리히, 불트만 등 인간 심정을 산체로 영사한 작품에 더 감격했으며 예수를 만나서 완전히 전 존재의 바탕이 변해 새사람, 새피조물, 영의 사람이 된 바울을 가장 존경하였고 캐나다에 체류할 때에는 어떤 주의나 전략을 말하기 전에 ‘인간’을 재발견해야 하며 인간을 인간답게 대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셋째, 생활신학은 통전적(統全的) 신학이다. 청산학원에서 자유주의 신학과 프린스톤 대학에서 근본주의 신학의 한계를 깨달은 장공은 20세기 신학의 특징을 분열이 아니라 통전적 신학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교파신학, 근본주의와 자유주의 신학, 정통주의와 신정통주의, 가톨릭과 개신교 신학의 논쟁을 지양하여 ‘인간과 인간 문화와 역사’에 관여하는 세계교회적인 신학을 추구하고 주관적 체험(신앙)과 객관적 논리(캐학) 및 인간으로부터의 신학과 하나님으로부터의 신학을 종합하며 인간 실존의 공통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타종교와 대화하는 통전적 신학을 주장했다.56) 그래서 그는 신앙생활의 세 요소인 교리, 신비적 영교, 사회적 실생활(“복음 선전과 사랑의 실행”)이 서로 조화된 신학,57) 곧 기성종교에 안주하는 형식적인 종교인, 세속을 떠나서 온전히 초세상적인 신비경험에 몰입하는 신비적인 종교인, 소용돌이치는 역사의 현장에 뛰어들어 신앙을 증거하는 역사적인 종교인을 하나로 통일하기를 원했다.58) 그래서 장공은 인본주의나 자유주의와 결합된 자유주의 신학, 성서축자영감설을 통해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관계를 상실하는 정통주의 신학, 자연신비적 신인합일에 근거한 탈역사적이며 개인주의적인 신앙을 강조하는 성령운동을 비판하지만 자유주의 신학의 신앙과 양심의 자유를 인정하고, 정통주의신학의 진리수호의 정신을 수용하며, 성령체험과 건전한 성령운동을 부정하지 않는다. 참으로 생활신학은 보수와 진보, 신앙과 실천, 교리와 생활을 일치시키는 통전적 신학이다.

56) 5권, “신학의 갈 길”, 334-344.
57) 1권, “신앙생활의 조화”, 141, vgl. 김재준, 고토를 걷다, 94.
58) 10권, “신비와 세속”, 447.

넷째, 생활신학은 신학이 인간의 삶에서 사건이 되는 살아있는 신학이다. 그것은 인간혁명을 출발점으로 사회를 개혁하는 사건의 신학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정점으로 하고 개인과 사회를 저변의 두 점으로 한 삼각형적 생명체로서의 생활신학”과 “하향적인 권위주의가 아닌, 자유와 정의와 신실로 교류하는 아가폐적 사랑의 신학”이며59) “밑바닥에서부터 경험된 서민의 생활신학”이다.60) 또한 그것은 상아탑에서 연구되는 지식인들의 지적 유회가 아니라 인간의 일상적인 삶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며 민중의 삶에서 나오는 “민중신학”과 “서민신학”이다.61) 그러므로 장공은 ‘신학은 인간학이다’라고 말한다. 그것은 불트만처럼 인간의 실존 이해를 통해서 하나님을 인식하는 실존주의적 신학이 아니라 인간의 일상적 생활에 관심을 가지고 인간의 자유를 추구하는 삼위일체 하나님 신앙에 근거한 신학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생활신학은 “생활인의 신학”으로서 자연히 “평신도의 신학”이 되며 신자와 세상, 교회와 사회, 기독교와 타종교, 신자와 불신자의 관계가 신학적으로 재검토되고 재천명된다.62)

59) 12권, “장공칼럼(6)”, 90.
60) 12권, “장공칼럼(6)”, 91.
61) 12권, “장공칼럼(6)”, 90. “제 4일 신학의 방향은 수직으로 꽃히는 독점 권위주의가 아니라 밑바닥에서부터 경험된 서민의 생활신학일 것이다”(a.a.O., 91).
62) 7권, “생활종교를 지향하는 교회의 갱신”, 334.

다섯째, 생활신학은 한국적 신학의 모색이다. 장공은 북미에 체류하는 동안 한국적 신학을 모색했다. 그는 서구신학이 이미 교권과 정권의 시녀가 되었기 때문에 한국 민족과 역사에 토착화한 기독교와 “동양신학, 한국신학, 생활신학”의 이름으로 부를 수 있는 교회신학, 화해의 신학, 혁명의 신학, 민중의 신학보다 더 깊이 “우리의 혈맥에 뿌리박은 신학”을 구상했다.63)

63) 15권, “북미유기 제 7년”, 203.

동양 사상이란 토양에 원시기독교, 더 나아가서 예수의 기독교, 적어도 사도들의 기독교를 심어야 한다.64)

64) 15권, “북미유기 제 7년”, 204.

이런 한국적 신학의 구상은 한국의 역사적 상황에서 만난 하나님 체험을 기초로 하는 신학을 수립하여 예수의 삶과 죽음을 남한과 북한과 해외동포의 공통적인 민족적 종교로 만들어 우리 민족의 모든 생활에 활력소가 되게 하자는 것을 의미한다.65) 그래서 장공은 우리 민족의 역사와 고대종교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했으며 선교 2세기에 한국교회의 과제를 한국사의 토양에 뿌리박은 한국적 기독교를 발전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65) 15권, “북미유기 제 7년”, 203-204.

[2] 생활신앙

생활신학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에서 생활신앙으로 구체화된다. 그것은 생활과 분리된 신앙이 아니라 생활로 체현된 신앙(요1서 3:16), 곧 행하는 믿음을 의미한다. 그것의 성서적 전거는 야고보서이다. 생활신앙은 장공 자신의 인생의 좌우명(생활십계명) 및 선린 형제단 이념과 행동 강령에 잘 나타나 있다.66) 장공에 의하면 생활신앙은 기장성을 의미한다. 기장성은 “바울이 주장한 복음의 자유”와 야고보가 말하는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생활”이다.67) 그것은 전적인 그리스도를 전적인 인간 생활에 증언하는 일이다.

66) 경동교회 40년사 편찬위원회 간행,「경동교회 40년사」, 1985, 33-34. 장공의 인생의 좌우명은 유교 선비적 자기 수련의 자세, 성프란시스의 청빈 사상, 예언자 정신과 작은 자를 배려하는 사랑의 마음, 예수의 명령에 순명하라는 실천적 제자직 의식, 자연과 생명 존중사상을 내포한다(김경재, 김재준 평전, 61).
67) 15권, “야화원잡기”, 266.

나는 신학 생활에서 신에 대한 이론보다는 그리스도 자신을 배우고 그리스도를 살고자 힘썼습니다. 야고보는 ‘행함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 했고, 이신득의의 주창자인 바울도 ‘오직 행하는 믿음이 너를 의롭게 한다’고 했습니다. 나는 이것을 생활신앙이라 이름합니다.68)

68) 18권, “신학의 거소”, 283.

생활신앙은 누가복음 4장 18-19절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실천하는 신앙이다. 곧 초월자 하나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와 우리를 거룩하게 한 것처럼 우리도 생활로서 하나님이 거룩하신 분임을 증명하는 일이다. 즉 성육신한 말씀을 성육신한 신앙으로 삶에서 몸으로 증거하는 것이다. 그래서 생활신앙은 인간의 역사를 하나님의 역사로 바꾸는 일, 곧 하나님 나라의 실현을 생활의 목표로 한다. 그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생활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이 육화된 신앙을 의미한다. “‘먹는다’는 것이 중요하다. 밥이 있어도 그것을 먹는 인간만이 사는 것이다...‘말씀’도 그렇다. 먹어야 한다. 그 말씀을 내 마음에 넣어 음미하고, 그것을 소화하여 내 생각, 내 감정, 내 생활, 내 행동으로 되게 해야 한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말’이 되어 내 몸, 내 삶으로 고백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을 나는 말씀의 인간화라고 말한다...그러므로 말씀을 먹는다는 말은 예수를 먹는다는 말이 된다.”69) 따라서 생활신앙은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삶, 곧 시천주(侍天主), 양천주(養天主), 행천주(行天主)의 삶을 의미한다. 생활신앙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그리스도 자신의 생활 모습을 그리스도교와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일상생활에서 몸으로 연출하는 신앙이다.

69) 9권, “말씀을 새긴다(1)”, 33-34.

둘째, 생활신앙은 행동하는 신앙이다. 신앙은 신인일여(神人一如)를 추구하는 자연신비적인 황홀경이 아니라 현실적이며 역사적인 행위이다. 신앙은 “현실을 더 큰 현실로 극복 성취하려는 행동”이며 “하나님의 영력으로 현실을 창건해가는 생활이다.”70) 또한 신앙은 “하나님의 행동에 동참하는 인간의 행동이다.”71) 이렇게 신앙은 추상적 교리에 대한 지적 동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사에 참여하는 구체적인 행동이며 현실을 변화시키는 생활이다. 그러므로 신앙은 세속적인 사회에서 사건으로 나타나야 한다. 또한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을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자기 마음으로 하고 그리스도의 모습이 자기에게 성격화해야 한다.”72) 즉 신비적 경험은 감정에 이끌려 현대적 바리새이즘으로 전락하기 쉽기 때문에 그 생활에서 성령의 열매(갈5:22-23)를 통하여 성령의 사람임을 입증해야 한다. 따라서 생활신앙은 하나님의 구원하는 활동에 동참하는 삶이요 일상에서 성령의 열매를 맺는 생활이다.

70) 4권, “기독교의 기본 문제”, 16.
71) 10권, “말씀을 새긴다(10)”, 34.
72) 9권, “기독교 신비주의와 그 건전성”, 312.

셋째, 생활신앙은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친교이다.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교리나 그것에 대한 지적 동의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기 때문에 성령체험을 통한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친교를 전제한다. 그것은 지금도 우리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일하시는 신학적으로 정제된 그리스도가 아니라 ‘살아계신’ 그리스도와의 친교를 의미한다.73) 참된 친교는 그리스도와의 자연신비적인 합일, 곧 탈역사적인 신인합일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에 동참하는 신앙행위이다.74) 이렇게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관계가 모든 것을 규정하기 때문에 생활신앙은 관습, 율법, 교리, 교권 등의 외부적인 구속력에 의해서 조성되거나 운영되는 타율적 삶이 아니라 “자유하는 영의 활동, 자발적인 사랑의 친교에서 엉키어진 공동사회”를75) 지향하는 신율적 삶이다.

73) 12권, “장공칼럼(6)”, 226.
74) 10권, “그리스도 고난에의 참여”, 149.
75) 3권, “새 세기를 지향하는 그리스도교”, 307.

[3] 생활종교

생활신앙은 생활종교를 지향한다. 기존교회는 ‘하나의 교회’로서의 친교를 상실하는 교파주의, 하나님 말씀을 사상 체계에 고정시키는 신학주의, 교회와 세상을 구별하는 교회주의와 성령의 활동을 저해하는 신조주의에 빠져서 생명력을 상실했다. 그것은 생활종교를 통해서 극복되어야 한다. 영적 체험(신비종교)과 교리적 변증(교조종교)은 결국 삶으로 나타나야 한다(생활종교). 그 때 교회는 인간의 구원을 선포하는 산종교가 된다.76) 장공은 생활종교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76) 7권, “생활종교를 지향하는 교회의 갱신”, 333-334.

첫째, 생활종교는 은나라 성탕왕이 7년 가뭄으로 고통당하는 백성을 대신하여 자신을 스스로 반성하고 책망하며 제물로 삼아 하늘에 간구한 것처럼 백성의 고난과 죄과를 대신 짊어지고 자신을 제단에 바치는 거룩한 대속애를 실천하는 종교이다.77) “새 세대를 지향하는 그리스도 종교는 그러므로 정체(政體), 신념체계(信念體系), 기구(機構), 법등(法等)을 앞세우는 종교에서 자유하는 영적 인격적 복음적인 종교로, 세상에서 자신을 유리시켜 영원에 몰입하려는 형이상학적 종교에서 하나님이면서 세상을 찾아와 세상을 위하여 목숨까지 주신 현실적 사회적 성애(聖愛)의 종교로, 편파적 독선의 종교에서 무한대의 사랑의 보자기 안에서 만유를 화육(和育)시킬 수 있는 대아량(大雅量) 종교로, 과거에 고착된 화석된 종교에서 부단히 높게, 넓게, 깊게 그 전선을 넓히려는 활동과 생장의 종교로, 어떠한 환경에도 지배받지 않고 오직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하나님 나라 건설에 일편단심을 바쳐가는 종교, 그리고 모든 신자가 다 선교자 의식으로 땅위에서 자기의 영역을 천국화하려는 교육과 훈련과 전투의 종교, 구원 받는데 만족하는 종교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좌불안석하는 종교로! 이런 그리스도교는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대로 예수님 자신의 종교였던 까닭이다.”78) 그러므로 생활종교는 예수에 ‘관한’ 종교가 아니라 예수의 종교이다. 그것은 “기관 종교와 말의 종교”가 아니라 “변화시키는 종교, 생활하는 종교”이며,79) “책의 종교”와 “율법주의적 종교”가 아니라80) “인격의 종교”이다.81) 그것은 신비주의에 도취된 탈역사적 “베드로의 교회”가82) 아니라 누가복음 4장 18-19절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역사에서 재현하는 실천적 종교를 의미한다.

77) 18권, “생활신앙과 생활신학(2)”, 290-291.
78) 3권, “새 세기를 지향하는 그리스도교”, 314-315.
79) 3권, “썩어가는 제국”, 145.
80) 9권, “한국교회의 기독교화”, 359.
81) 2권, “살해자 군상”, 229.
82) 3권, “산상의 신학”, 34-36.

둘째, 생활종교는 먹고, 입고, 자고, 일하고, 여행하고, 토론하고, 기도하고, 전도하고, 가르치고, 배우고, 죽는 인간의 일상생활에 의미와 격려와 소망을 주는 종교이다. 그것은 헬라 전통의 기독교가 아니라 히브리 전통의 기독교이다.83) 히브리 전통은 야고보서에 잘 전승되어 있다. 그것은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사회적 관심이 순수하고 열렬한 기독교”(약1:27)를 의미한다.84) 그러므로 생활종교는 역사적 상황에서 새 시대의 주인공이 될 “근로 대중의 인간화 운동”과 “사랑에 근거한 사회정의의 구현 운동”에 관심을 가진다.85) 장공은 이런 생활신앙에 근거한 생활종교를 창립했다. 그것이 1945년 12월 첫 주일에 시작한 야고보 교회(현 경동교회)이다. 그것은 장공의 교회개혁의 이상이 반영된 첫 교회였다. 그는 해방이 된 1945년 12월 첫 주에 송창근 목사와 한경직 목사와 함께 각자 교회를 마련하여 설교하기로 작정하고 지성인들과 학생들을 위한 특수 교회를 설립했는데 평소 생활신앙을 강조했기 때문에 교회 이름을 야고보 교회로 했다.86) 그 후 생활신학과 생활신앙을 정체성으로 가진 한국기독교장로회가 태동되었다.

83) 11권, “개혁교회의 재개혁 방향 설정”, 1-2. vgl. 8권, “생활건설의 종교”, 215.
84) 11권, “개혁교회의 재개혁 방향 설정”, 3.
85) 11권, “개혁교회의 재개혁 방향 설정”, 10.
86) 김재준, 범용기, 253-256. 송창근은 선교와 목회를 주목적으로 하는 ‘바울교회’(현 성남교회)을, 한경직 목사는 이북 피난민을 위한 ‘베다니 교회’(현 영락교회)를 설립했다.

셋째, 생활종교는 인간의 실존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이웃종교와 대화하며 협력하는 열린 종교이다. 장공은 인간 실존의 공통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타종교와의 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기독교와 모든 종교는 인간과 인간의 화평, 신뢰와 협동을 위한 공동목표를 가지고 있다. 또한 모든 종교는 그 형성 과정에서 특이한 전통과 예식과 건물 양식을 가지고 있지만 원점은 하나이다. 기독교의 사랑, 불교의 자비, 유교의 인(仁)과 천도교의 인내천은 모두 인간 구원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모든 종교는 인간존중, 인간 사랑과 인간 구원에서 한 몸으로 통할 수 있다.87) 종교간 대화는 교리적 논쟁을 피하고, 자신의 종교를 절대화하지 말며 겸손하게 다른 종교를 존경하고, 상대방을 굴복시키거나 회심시키는 것이 아니라 서로 보충하며 배우는 자세로 해야 한다.88) 그러나 하나님만이 절대신이며 기독교가 민족 전체의 종교가 되어야 한다는 장공의 주장은 포용주의적 실천 모델을 대변한다. 생활종교는 생활신앙을 실천하기 위하여 언제나 이웃 종교와 협력한다.

87) 18권, “별스럽게 굴지 않는다(2)”, 474. 5권, “신학의 갈 길”, 344.
88) 7권, “기독교와 불교의 대화 가능한가?”, 159-161. 장공은 히야네 선생으로부터 타종교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개방적 태도를 배웠으며 학기말 시험에 “조선의 제종교와 기독교”를 제출하여 만점을 받기도 했다(김재준, 범용기, 68)

생활신학과 생활신앙과 생활종교는 분리되지 않는다. 생활신학은 생활신앙과 생활종교의 신학적 원리이고 생활신앙은 생활신학과 생활종교의 실천적 자세이며 생활종교는 생활신학과 생활신앙의 종교적 형상이다. 생활신학, 생활신앙, 생활종교는 철저하게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모습을 재현하는 원리이다. 그것은 오직 성령의 도우심으로 가능하며 역사적 상황에서 구조적 형태로 나타난다.

IV. 생활신학의 구조와 특징

장공은 생활신학의 원리를 구체적인 삶의 문제에 적용한다. 그는 인간혁명(혹은 구원과 자유)을 기초로 교회개혁과 사회개혁을 추구하며 그 궁극적 목표는 인간과 사회와 자연이 하나 되는 전우주적 사랑의 공동체의 형성이다. 장공 신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전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는 이미 초기 사상에 나타난다. 그것은 하나님과 인간과 자연이 하나 되는 “대조화의 생활”(1940년)에서89) 전우주를 속량하고 포섭하는 “그리스도의 나라”(1947년)를 거처서90)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1948년)에서91) 구체화되었다. 인간혁명, 교회개혁과 사회개혁은 한 생명체로서 삼각형의 세 점처럼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그 세 점을 연결한 한 점에 장공이 성령체험을 통해서 인격적으로 만난 초월적인 삼위일체 하나님이 존재한다. 그것이 완전히 성취된 상태가 전우주적 사랑의 공동체이다. 그러므로 장공의 생활신학과 생활신앙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정점으로 한 인간혁명, 교회개혁과 사회개혁을 통해 전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를 형성하려는 종말론적 희망의 운동이었다. 그는 이런 전우주적 사랑의 공동체에 상응한 교회와 사회를 건설하기 위하여 인간을 억압하는 세속화된 교회와 불의한 사회에 대항하여 투쟁했으며 그 출발점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타락한 인간의 구원이다.

89) 1권, “신앙생활의 조화”, 138.
90) 1권, “교회에 대한 충성”, 297.
91) 1권, “인간한계와 복음”, 318. 장공이 말년에 전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를 강조하고 한국 고대종교와 사상에 관심을 가진 것은 80년대 이후 장공 사상의 변화(유동식, 풍류도와 한국의 종교사상, 260-270)가 아니라 초기 사상의 발전으로 이해해야 한다.

[1] 인간혁명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셔서, 자유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굳게 서서, 다시는 종살이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갈5:1).

장공은 정치적 억압, 경제적 착취, 사회문화적 소외, 종교적 대립으로 비인간화된 인간을 구원하는 일을 혁명의 최우선 과제로 생각했다. 그것은 해방 전후에 정통주의 신학으로 그리스도와의 친교를 상실한 인간의 구원 및 60년대 이후 산업화 과정에서 착취당하는 민중의 구원과 군사독재정권의 억압으로 신음하는 백성의 구원 그리고 말년에 전우주적 사랑의 공동체에서 하나님과 사회와 자연과 하나 되는 인간 구원으로 나타났다. 장공에게 있어서 인간혁명은 언제나 모든 혁명의 전제이다. 인간혁명이 없는 사회혁명은 반혁명으로 인해 파괴, 복수, 분풀이를 반복하는 혁명의 악순환에 빠지며 새로운 계급에 의한 계급지배와 계급우상을 만든다. 따라서 인간혁명이 없는 사회혁명은 “복수심의 아들”이며 “공포의 친구”로서 피의 비극을 재현한다.92) 인간혁명은 오직 성령에 의한 중생 체험을 통해서 가능하다. 그리고 오직 성령으로 거듭난 새로운 인간만이 사회혁명을 가능하게 한다. 그것은 장공 자신이 성령체험을 통해서 체득한 진리이다.

92) 1권, “인간 혁명”, 324-327. 또한 9권,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는가?”, 256. 장공에 의하면 혁명은 인간의 문제이다(8권, “공산주의의 후진국 침투와 교회의 책임”, 291).

새 사람이라는 것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사회 구조의 산물이 아니라 영적으로 다시 난 인간입니다. 이것은 하늘이 하는 일이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새 사회’도 그러합니다. 하늘나라가 땅에 임하는 때에만 가능한 것입니다. 사회 구조 자체가 하나님의 영광이 머무는 장막이어야 하겠기 때문입니다. 제3차원이 필요합니다. 역사적 혁명은 이것을 가져오지 못합니다. 운명적으로 제 2차원밖에 갖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인간, 위로부터 다시 난 인간에게 있어서는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그리스도의 부활과 함께 새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탄생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93)

93) 1권, “인간 혁명”, 326-327. 8권,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한다”, 234-235.

장공은 인간혁명을 하나님과의 관계와 사회적 관계에서 이해한다. 먼저 그는 비인간화의 본질적 문제를 하나님과의 관계 상실에서 찾는다. 하나님과의 관계 상실이 허무주의요 인간상실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부정하는 무신론적이며 물질주의적인 상황과 유물론, 과학만능주의, 인본주의에서 인간의 피조성과 죄성에 근거한 연약성, 제한성, 유한성을 깨닫고 하나님에게로 돌아갈 때 극복될 수 있다.94) 또한 인간혁명은 사회혁명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것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을 기준으로 보는 것이다.95) 인간은 계급적, 경제적, 민족적, 국가적, 종교적, 이념적 차원을 넘어서 인간이기 때문에 무조건 존엄하다.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을 비인간화하는 모든 요소는 “귀신”이며96) “악마적”이며97) 하나님의 형상을 짓밟는 것이다. 인간학대는 하나님 학대이다. 인권운동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신의 카운터 파아트 counter part"라는 사실에 근거한다. 이런 종교적 신념과 배경이 없는 인권운동은 유행을 따르는 패션 쇼의 모델이 되기 쉽다.98)

94) 2권, “그리스도와 세속주의”, 270-278. vgl. 9권, “인간을 상실한 현대인에게”, 392ff.
95) 16권, “비젼을 보는 세대”, 121.
96) 11권, “사탄아 물러가라”, 73.
97) 15권, “야화원여록”, 161.
98) 김재준, 귀국직후, 250.

완전한 인간혁명은 하나님 나라에서 완성된다. 하나님 나라는 가장 완전한 사회, 곧 “각 개인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인간 존엄을 되찾고, 사회가 하나님의 의와 사랑으로 일체가 된 나라”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정점에 모시고 개인과 사회가 그 저변으로 된 삼각형적 생명 관련에서만 실현 가능한 도안이다.”99) 따라서 인간혁명은 하나님을 정점으로 개인과 사회가 하나님과의 정상관계를 회복할 때 완성된다. 그 때 인간은 성령을 통해서 자신이 하나님 형상으로 창조된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인간의 비인간화는 궁극적으로 폭력적 방법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로 극복될 수 있다. 성령의 역사는 자연신비적인 신인합일이 아니며 인간성과 윤리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의 더러워진 양심을 정화하며 사회적 양심을 창조하여 참된 선을 행하게 하고 약한 의지를 강하게 하여 이웃 사랑을 실천하게 하는 “인간 갱신운동”이다.100)

99) 16권, “인간아 네가 어디 있느냐?”, 102-103.
100) 12권, “예언자의 성격과 사명”, 461.

하늘위에 초월하신 하나님이 역사 안에 인간으로 오시고 다시 인간 하나 하나의 마음 속에 성령으로 임재하시는 하늘의 새 창조 운동만이 새 인간 산출을 가능케 한다. 이것이 현실화한 것이 펜데코스테, 성령강림 사실이었다.101)

101) 3권, “현실화한 하나님(성령강림절)”, 120. vgl. 1권, “신생”, 337. 4권, “진실에의 향수”, 235.

인간혁명은 통전적 구원을 지향한다. 장공은 개인의 영혼구원만을 강조하고 경건의 훈련을 소홀히 하는 칭의론의 한계를 비판하면서 통전적 구원(Total Salvation)을 주장했다. 예수의 해방은 “전우주적이며 전존재적인 의미”를 포함한다.102) 그는 질병에서 해방, 걱정과 불안과 절망 등 실존적인 허무에서 해방, 인간을 율법 조문과 도덕적 규율의 틀에서 해방, 사회적 해방, 죽음에서 해방, 자연으로부터의 해방, 무지에서 해방, 자기 자신에게서 해방, 정치경제적이며 사회적인 관계에서의 해방, 죄책감에서 해방을 선포한다.103) 곧 예수는 개인구원, 가정과 사회 구원, 역사구원, 종교에서의 구원, 모든 악마적인 권력 구조에서의 구원, 자연 환경의 구원을 통해서 인간을 통전적으로 구원하여 참된 자유인이 되게 한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가장 철저한 인간 혁명, 사회혁명, 종교혁명을 위한 싸움의 표징이었다.”104)

102) 김재준, 고토를 걷다, 40.
103) 9권, “그리스도와 인간 해방”, 171-173, 10권, “인간 해방 총력전”, 226-228. 12권, “장공칼럼(1)”, 12. 12권, “인간 구원”, 445.
104) 9권, “그리스도와 인간 해방”, 187.

인간은 혼과 육체와 영성과 도덕성을 한 몸에 지니고 있는 존재입니다. 인간 구원은 전적인 인간의 전적인 구원을 의미합니다. 전 사회적 전 우주적 전적 구원을 요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 역사를 우리 주 하나님과 그 아들 그리스도의 역사로 변질시킬 의무를 갖고 있습니다. 그것이 교회의 대사회적 사명이고 복음 전파의 목표입니다.105)

105) 김재준, 고토를 걷다, 184-185.

장공은 언제나 외적 해방보다 내적 해방을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진정한 인간 해방은 인간 자신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영이신 성령을 통해서 가능하다. 그것이 진정한 인간혁명이다.

그(필자: 예수)의 방법은 사랑을 통한 인간성 혁명, 스스로 속죄제물이 되어 십자가에 몸을 던짐으로써 인간을 자연적인 노예에서 해방하고 인간관계에서의 저주에서 탈출시키고 하나님의 영으로 거듭난 영의 사람,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된 새 인간으로 변혁시키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자유인으로 자유와 정의의 역사를 창건해 갈 수 있게 하려 한 것이었다. 그야말로 최후의 혁명이며 가장 근본적인 혁명이었다.106)

106) 10권, “혁명과 그리스도”, 190-191. vgl. 11권, “위대한 복음과 우리의 심상”, 316. vgl. 9권, “신학과 교회 개혁으로 새 인간상 부활”, 365-367. 7권, “해방과 구원”, 188. 장공의 자유관은 인간의 내적 자유보다 외적 자유를 더 강조한다는 점에서 균형을 잃고 있다는 천사무엘의 비판은 오해이다(천사무엘, 김재준: 근본주의와 독재에 맞선 예언자적 양심, 229).

이런 근본적인 인간혁명을 전제하지 않는 선교 운동, 신학운동, 정치혁명은 언제나 인간을 노예화한다.107) 인간혁명은 모든 혁명의 출발점이다.

107) 10권, “장공잡기(2)”, 400.

[2] 교회개혁

네가 무엇을 보려고 교회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법복입은 성직자냐?
색유리창으로 스며드는 화광(和光)이냐?
높이 들린 제단이냐?

네가 무엇을 들으려고 교회에 나가느냐? 조직된 설법과
감미로운 성가더냐?

성당은 고딕으로 장엄하고 제단은 꽃으로 아름답다.

거룩의 아름다움이 아름다움의 거룩으로
도착되면서부터
종교성은
매혹의 자장가로 잠들었다(18권, 352-353).

장공은 한국교회를 정통주의 신학의 노예로 만드는데 동의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산업화 과정에서 고통당하는 가난한 민중을 외면하며 독재정권의 억압에 침묵하는 교회에 분노했다. 그는 한국교회의 타락의 원인을 신학적으로 정통주의 신학, 사회적으로 산업화 사회의 영향과 교회사적으로 16세기 종교개혁의 한계에서 찾았다. 그는 교회의 활동의 장소인 세상이 변했기 때문에 교회는 항상 개혁된 교회(reformed church)가 아니라 개혁하는 교회(reforming church)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교회개혁에 대한 생각은 1932년 귀국 이후부터 일이었지만 1945년 해방과 함께 가시화되어 1950년대에는 급류를 달리다가 1953년 기장의 태동으로 구체화되었고 1960년대 이후 독재정권과 산업화 사회에서 교회의 사회적 책임성의 강조와 새로운 교회 모델의 제시로 나타났다. 그것은 정통주의 신학에 근거한 교리주의, 율법주의, 교권주의, 교회주의, 성직주의의 청산 및 물질주의와 물량주의, 교회성장주의와 대교회주의 등 자본주의에 순치된 교회의 개혁과 자연신비주의적 성령운동, 탈역사적 신앙, 개인주의적 기복신앙의 극복이었다. 장공은 한국교회의 개혁을 신학 논쟁이 아니라 자유로운 ‘복음의 교회’로 재건하느냐 정죄하고 오만한 ‘율법의 교회’로 퇴화시키느냐는 한국교회의 생명의 문제로 보았다.108) 그는 “신학과 교회 개혁으로 새 인간상 부활”과 “개혁교회의 개혁”이라는 논문에서 신학의 개혁, 교회구조의 개혁과 사회참여의 세 가지 방향에서 교회개혁을 생각했다.

108) 3권, “복음이 아닌 다른 복음”, 233.

1). 신학의 개혁

신학의 개혁은 교회개혁의 출발점이다. 장공은 한국교회를 네 시대로 구분하여 각각 그 특징을 설명한 후 “교회의 혁신이나 통합은 어떤 규칙이나 기구의 개편보다는 그 사고방식의 개혁이 앞서야 한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신학의 개혁’이 급선무다”라고109) 선언했다. 그가 가장 비판했던 신학은 한국교회의 모든 병패의 근원인 정통주의 신학이다. 그것은 정통신학과 교리와 신조를 기독교의 최고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교회를 복음의 종교가 아니라 율법의 종교로 만들어 하나님이 아니라 관념체제를 숭배하는 우상 숭배가 되며,110) 율법 조문에 따라서 인간을 대하기 때문에 인간을 차별하여 비인간화시키고,111) 예수에 ‘대하여’ 말하는 지식과 신념체제이기 때문에 예수와의 인격적 친교를 상실하게 한다.112) 또한 정통주의 신학은 상대적인 것을 절대화하여 우상 숭배로 만들고 자신들만이 절대 진리를 소유한다고 생각하므로 교만해지며 정신을 물상화하여 생명을 질식시킨다.113) 즉 정통주의 신학은 인간이 만든 죽은 교리와 신조로 인간을 억압하는 신학체계로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다.

109) 7권, “혁신과 통합의 출발점”, 97.
110) 3권, “크리스찬의 인간상”, 132.
111) 4권, “권고의 날”, 41.
112) 4권, “성구명상”, 222.
113) 11권, “전통과 이단”, 78-79.

그러므로 먼저 신학하는 태도가 개혁되어야 한다. 고정 불변의 절대적인 신학체계로 자부하는 정통주의 신학체계에서 벗어나 발전하는 새로운 세계 신학에 자신을 개방하는 창조적인 신학태도를 가져야 한다. 그것은 자기교파의 신학을 절대화하지 않으며 그리스도 신앙 안에서 공통된 형제 의식을 강화하고 신학의 차이로 성도의 교제를 단절하는 비극을 막는 일이다. 장공은 그 구체적인 실천 방법을 제시한다. 그것은 자기절대화 포기, 건전한 신학 교육의 실현, 세계교회적으로 그 방향이 규정된 기존 교직자의 재교육, 계율주의적이며 교권주의적인 교회에서 ‘수난의 종’이신 예수의 정신을 되살리는 교회로의 갱신, 타계주의적 신앙에서 현실 참여적 신앙으로 전환, 평신도의 교회와 사회생활 훈련을 위한 평신도 훈련 기관의 설립이다.114) 장공은 이런 신학적 태도와 내용을 이미 서술한 생활신학과 생활신앙과 생활종교로 설명했다.

114) 7권, “혁신과 통합의 출발점” 98-102. vgl. 9권, “개혁교회의 개혁”, 365.

2). 교회구조의 개혁

교회구조는 역사적 산물로서 그리스도를 증언하기 위한 봉사의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교회는 그 구조가 창조적이며 봉사적인 성격에서 지배적이며 권위적인 습성으로 변질될 때 자신의 본질을 상실하며, 교권이 봉사를 위한 종합적인 경륜을 세우고 신앙과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며 신장하는 권력이 되지 않을 때 교권주의에 빠진다. 장공은 교회주의와 교권주의에 물든 교회를 비판하면서 조직구조(성직주의와 수직적 교회질서)와 의식구조(교권주의와 교파주의)의 개혁을 역설했다.115) 그것은 세상에 개방적이고 역사에 봉사하며 상실된 인간을 섬기는 교회구조로 개혁되어야 한다. 그것은 1956년 이후 일관된 생각이었다. 장공은 “평신도와 교회”(1956), “평신도 운동의 위치와 그 의미”(1957), “새로운 평신도상”(1967), “교직자의 윤리”(1969), “선교 2세기를 맞는 한국교회의 당면과제 : 평신도 교육을 중심으로”(1985), “평신도 선교대회”(1985)에서 평신도 교회와 신학을 자세히 설명했다.

115) 9권, “개혁교회의 개혁”, 303.

장공은 선교 2세기를 맞이하는 한국교회가 명심해야 할 사항으로 자립적 선교, 선교방법의 다양성, 교회주의의 탈피를 주장하면서 베드로 전서 2장 5-9절에 근거해서 소그룹 형태의 평신도 교회를 새로운 교회 모델로 제안했다. “금후의 교회 형태는 점점 더 Non Conformistic하게 될 것이다. 소그룹으로 나뉘울 것이다. 복잡한 교리 대신에 예수가 우리의 그리스도라는 신앙이 유일한 신조일 것이다.”116) 초대교회는 원래 평신도 교회였다. 그러나 3세기에 시프리안이 성직을 주장한 이후 교회는 평신도 교회에서 교직자의 교회가 되었으며 그것이 제도화되어 성직자 중심의 제도적 교회가 되었다.117) 교회는 다시 평신도 교회가 되어야 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모든 신도는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한 생명체를 이룬다. 목사와 평신도는 그리스도의 지체이며 동료와 형제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교직의 교회로 발전할 근거는 없다.”118) 모든 신도는 성직자 없이 하나님과 직접 교통할 수 있다. 그들은 성직자 없이 성령을 받으며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증언할 수 있다.119) 특히 장공은 개인적 차원, 교회적 차원, 사회적 차원에서 평신도의 역할을 강조했다. 평신도는 어떤 교권적 조직체의 위계를 갖고 있지 않지만 그 조직체의 기반이 되는 사람들이다.120) 그들은 하나님의 일꾼이라는 본질에서는 교역자와 같으나 기능적으로 주요 임무가 서로 다르다. 교직자는 “모인 교회”의 주무자라면, 평신도들은 “흩어진 교회”의 전선을 맡은 사람이다.121) 교직자와 평신도의 올바른 관계는 “의무를 위한 팀웍”, 즉 협동이다.122) 평신도는 교회의 선교 사역에 책임적으로 협력하고 봉사해야 하며 교회개혁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평신도는 사회적 책임성을 가지고 지역사회개발에 선봉자가 되어야 하며 국제적으로 문화 교류와 세계 평화에 적극 협력해야 한다. 그러나 가장 이상적인 평신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인간, 곧 “인간을 위하는 가장 인간다운 인간”이다.123)

116) 김재준, 고토를 걷다, 63. 한국교회는 선교사 시대 이후 물적, 학적, 정신적, 영적으로 자립된 선교를 해야 하며, 선교 방법이 다양해야 한다. 기성교회 방식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사회관심, 역사갱신, 정의사회구현, 세계평화선봉자, 생명운동 등의 다양한 창조적인 선교 방법을 시도해야 하며 자기 교회를 우상화하는 교회주의를 타파해야 한다(a.a.O.,62).
117) 4권, “평신도와 교회”, 411. “예언자의 종교, 그리스도의 종교, 루터의 종교, 모든 개혁교회의 종교는 평신도의 종교이다.”(4권, “평신도 운동의 위치와 그 의미”, 418).
118) 4권, “평신도 운동의 위치와 그 의미”, 417.
119) 4권, “평신도 운동의 위치와 그 의미”, 417. 4권, “평신도와 교회”, 412. 목사 안수는 교직자의 권위 보장의 수단이 아니다(딤전 4:14. 8권, “교직자의 윤리”, 303).
120) 김재준, 고토를 걷다, 56.
121) 8권, “교직자의 윤리”, 301.
122) 4권, “평신도 운동의 위치와 그 의미”, 421.
123) 8권, “새로운 평신도 상”, 1-3.

평신도는 21세기 선교의 주체이다. 지금까지 선교 정책은 교회주의와 타계주의에 근거한 선교사 중심의 선교였다. 그 특징은 경쟁에서 이기는 대교회주의, 자기교회만을 생각하는 교회이기주의, 인간화에 대한 비판적 태도, 권력에 안주하는 교권주의와 여당기질, 세계교회연합운동에 대한 미온적 태도이다. 이런 선교 정책은 전반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한다. 특히 교회는 선교 사역에서 수동적 입장에 있던 평신도를 각성시켜 선교의 최전선에 세워야 한다. 평신도는 목사보다 더 효과적으로 가정과 직장에서 선교를 할 수 있다. 또한 그들은 선교를 통해서 예배를 생활화한다.124) 그것이 새로운 선교운동이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전우주적 사랑의 공동체의 형성을 목표로 한다. 이런 평신도 사역이 활성화될 때 생명력 넘치는 교회가 되고 신앙이 생활화되며 교회의 갱신이 일어난다.125)

124) 4권, “평신도 운동의 위치와 그 의미”, 418-419.
125) 4권, “평신도와 교회”, 414-415.

장공은 이런 평신도 운동을 선교 2세기에 한국교회가 발전시켜야 할 당면과제로 인식했다. 평신도 운동은 성직자 중심의 제도적 교회에서 언제나 수동적 입장에 있던 평신도가 교회의 책임적 주권자란 사실을 의식하는 평신도 자각 운동이다.126) 교회의 양적 성장과 질적 성숙은 평신도의 자각과 실천에 달려 있다. 평신도 운동은 하나님의 명령이다. “평신도여 궐기하라, 평신도 모두가 선교자가 되라! 이것이 우리 민족 생명과 나라 생명을 풍성하게 하는 영생의 샘터이다.”127) 이런 장공의 평신도 운동에 대한 강조는 21세기 교회의 대안 모델로 평신도 중심의 소그룹 교회가 강조되는 현상황에서 그 방향과 목표를 제시하는 매우 앞선 통찰이다.

126) 김재준, 고토를 걷다, 57. 4권, “평신도 운동의 위치와 그 의미”, 418.
127) 18권, “평신도 선교 대회” 59.

3). 사회참여

장공은 사회적 책임성을 결여한 타계주의적 신앙,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친교를 방해하는 교리적 신앙, 고통당하는 이웃을 외면하는 개인주의적 신앙을 한국교회의 문제점으로 파악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교회의 사회참여를 강조하는 생활신앙을 주장했다. 교회의 사회참여는 신학적으로 교회와 세상을 분리하는 교회주의와 개인의 영혼구원을 극복하는 하나님의 세상 구원, 창세기 1장에 나타난 교회와 정치를 구별하지 않은 창조질서, 역사적 언약과 율법 및 메시아의 도래와 민중을 위한 정치를 의미하는 “하나님의 정치”,128) 유일신론적 하나님 절대주의, 정의와 분리되지 않는 그리스도교적 사랑, 개인적이며 사회적인 성격을 가진 회개 그리고 역사적 상황에서 고백되는 신앙과 양심의 자유에 근거한다.129)

128) 16권, “교회와 정치”, 226. 또한 4권, “교회의 역사 참여”, 140. 16권, “교회와 국가”, 232.
129) 2권, “교회와 사회”, 224-226.

교회는 정치적이며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교회의 정치 혐오증과 정치 무관심은 일종의 자기 망상이다. 교회의 사회참여는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나라 운동이 “가장 위대한 정치 행위”이기130) 때문에 “교회의 본직”에 속하며 그 자체가 “교회의 산 설교요 피로 심은 선교”이다.131) 그것은 기독교 신앙과 윤리에 일치되는 행동이며 개인과 사회에 생명의 혈맥을 관통시키는 하나님의 지상 명령이다. 인간의 구원을 선포하는 교회가 5천만 민족의 집단 노예화에 ‘아니요’를 말하지 않으면 돌들이 소리칠 것이다.132) 따라서 교회는 민족과 역사에서 사명을 발견하는 “한국 민족의 파숫꾼”133) “한국 역사의 파숫꾼”,134) “역사의 화살촉”이135) 되어야 한다. 그러나 교회의 정치적 관심과 참여는 기독교 정당의 창립이나 정치권력의 획득이 아니라 전체 사회의 가치 기준을 하나님 뜻에 따라 선포할 의무와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역사적 과제 속에서 교회가 할 일은 교회 이기주의를 탈피하여 사회적 관심과 책임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의 “병참기지”로서136) 역사를 하나님 나라의 역사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130) 9권, “개혁교회의 개혁”, 305.
131) 4권, “교회의 역사 참여”, 141.
132) 16권, “돌들이 외친다”, 49-50.
133) 16권, “민족의 파수꾼”, 78.
134) 16권, “민족의 파수꾼”, 81.
135) 9권, “전진하는 교회”, 263.
136) 9권, “전진하는 교회”, 260.

그러므로 교회는 모든 정치적이며 사회적인 문제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적용하는 “역사적 종교”와137) “생활종교”가138) 되어야 한다. 그것은 산업화 사회에서 근로대중을 대변하는 민중교회와139) “노동의 신학”으로140) 나타난다. 그것은 제 3의 종교개혁이다. 예루살렘 교회는 본래 빈부의 차별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의 교회였다. 그러나 종교개혁 이후 교회는 “부르주아적 교회”, 곧 “산업사회 중산층의 교회”가 되었다.141) 산업화 사회에서 교회는 다시 초기 교회공동체처럼 밑바닥 민중에게 뿌리내린 민중적 교회가 되어야 한다.142) 제4일은 죽음(첫날), 무덤(제2일), 부활(제3일)을 거쳐서 동튼 새 아침이다. 그것은 정치적 갈등과 종교적 대립을 넘어서 하나님의 사랑의 화신이 되어 새 시대를 여는 것이다. 제4일은 민중이 주인되는 세계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민중의 고난에 동참하며 그들을 속량하고 의롭게 하는 전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를 이룩해야 한다. 그것을 위한 시급한 선교 전략은 민중 전도이다. 교회는 민중에게 올바른 예수상을 선포해야 한다. 예수는 자본가, 자본주의자, 교회주의자가 아니라 거리의 선교사와 인간주의자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민중 속에 들어가 민중과 하나 되어 인간 구원에 매진해야 한다. 곧 민중의 교회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제 4일의 주역이 되는 일이며 민중이 주역으로 등장하는 새 역사에서 민중이 만든 새로운 교회 형태이다. 그것은 민중의 전 생활을 창조하는 생활공동체로서 그 형태는 퀘이커와 무교회주의자 그룹과 유사한 소그룹이 될 것이다.143)

137) 18권, “역사적 종교”, 96.
138) 5권, “자유에의 헌사”, 275.
139) 김재준, 귀국직후, 209-210.
140) 4권, “노동의 신학”, 274-279.
141) 11권, “근로대중의 역사적 사명”, 43-45.
142) 12권, “그리스도와 함께 50년(4)”, 220.
143) 12권, “장공칼럼(6)”, 84-88.

장공의 교회개혁은 한신대학교와 한국기독교장로회의 태동으로 나타났다. 그것은 부패한 한국 교회의 대안이었다. 그는 교단 분열과 박해 속에서 언제나 그리스도의 심장을 이해하는 신학교육과 그리스도의 삶을 실천하는 교회를 생각했다. 그것은 “한국교회사의 과거 전부를 ‘부재’로 단정”한 것이144) 아니라 주체적 한국교회사의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따라서 장공은 한국기독교장로회의 태동을 한국교회의 비극적 분열이 아니라 줄기에서 새로 나온 가지라는 의미에서 분지(分枝) 그리고 열매 맺는 새가지라는 의미에서 결과지(結果枝)로 이해했다.145) 그것은 참으로 “창조적-건설적인 항거”였으며 “생장을 위한 분열”이었다.146) 특히 장공은 60년대 이후 사회적 상황과 관련해서 교회가 역사 속에서 그리스도의 몸으로 형상화되기를 원했으며 그것을 위해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드는 역사의 화살촉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것은 철저히 성령을 통한 인간의 자기개혁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런 의미에서 장공이 교회의 사회적 기능과 예언자적 기능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제사장적 기능을 등한시했다는 주장은147) 의미가 없다.

144) 민경배,「한국기독교회사」(서울: 대한기독교출판사, 1988), 448.
145) 김재준, 범용기, 246.
146) 4권, “건설적인 항거”, 362.
147) 천사무엘, “김재준: 근본주의와 독재에 맞선 예언자적 양심”, 221.

장공은 교회의 사람이었다. 함석헌과 김교신이 교회 밖에서 복음적 진리 운동에 전념했다면 장공은 교회 안에서 정통주의자들과 투쟁하면서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친교에 기초한 새로운 교회운동을 전개했다. 이런 장공의 교회개혁 방법은 루터(신학의 개혁)와 급진적 종교개혁자(사회개혁), 정통주의자(법과 제도), 경건주의자(중생의 체험)와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그것은 신학과 교회구조의 개혁, 중생 체험과 신앙실천, 교회개혁과 사회개혁을 종합한다.

[3] 사회개혁

그리스도를 조국에, 조국을 그리스도에게(십자군 속간사, 1950)

장공은 교회개혁만(“교회의 사회화”)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정신을 기반으로 한 사회개혁(“국민의 민주화”)을 추구했다. 그것은 인간혁명과 함께 전우주적 사랑의 공동체의 한 축을 형성한다. 장공은 매우 늦은 나이에 사회개혁에 참여했다. 그는 향동교회에서 김희영 선생과 보통학교 시절에 최두진 선생에게서 민족의식을 배웠으며 웅기금융조합에 근무할 때 상해독립신문을 읽고 민족의식을 가졌지만 사회적으로나 의식적으로 심화되지는 못했고, 기독교로 개종한 후 YMCA 일요강좌를 통해서 민족의식을 심화시켰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실천의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148) 그는 1961년 학장직을 강제 사퇴한 이후 사회개혁에 뛰어들었다. 그것은 율법적 종교로부터의 해방을 통해서 사회적 해방에 이르고 마침내 전우주적 사랑의 공동체의 실현에서 완성된다. 그것은 16세기 두 개혁자로 상징되는 루터의 종교개혁과 토마스 뮌쳐의 사회개혁의 종합이다. 종교개혁 없는 사회개혁이나 사회개혁 없는 종교개혁을 생각할 수 없다. “기독교는 다시 영(靈)의 자유로운 창조에 의하여 역사를 해방하려 한다. 역사 안에서의 하나님의 섭리를 말하며 역사 안에 종교적 힘을 도입하는 자유를 강조하게 된 것이다.”149) 장공의 사회개혁 사상은 구약성서의 예언자적 사상,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 이해, 누가복음 4장 18-19절에 나타난 예수의 삶, 구원사적 역사 이해, 통전적 구원, 성육신의 윤리 그리고 전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를 기다리는 종말론적 희망에 근거한다.

148) 김재준, 범용기, 25-37.
149) 1권, “역사 안에 임한 그리스도”, 382.

장공의 사회개혁을 올바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의 역사 발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장공은 역사를 진화론적이나 변증법적이 아니라 인간론적이며 종말론적으로 이해한다. 역사는 인간의 결단에 의해서 발전하며 하나님 나라의 도래와 함께 완성된다. 역사는 자연 질서와 영의 질서, 인간의 죄악사 혹은 세속사와 하나님의 구원사가 동시에 존재하는 하나님과 인간과 악마의 투쟁의 장소이다.150) 따라서 역사는 하나님과 인간이 함께 만들어 가는 역사이다.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며 인간(혹은 민중)은 역사의 ‘주역’이다.151) 주인은 변하지 않지만 주역은 언제나 역사적 발전에 따라서 변한다.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역사에 개입하신 역사의 주인이다. 따라서 교회는 역사를 하나님 말씀과 성령의 권능으로 변화시켜 역사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역사의 해방을 위해 일하는 역사적 종교가 되어야 한다.

150) 18권, “역사의 원점”, 221. 4권, “역사 참여의 문제와 우리의 실존”, 489. vgl. 10권, “해방의 신학”, 26. 18권, “두 갈래 역사의 해류”, 373ff.
151) 4권, “역사에 임한 그리스도”, 523ff.

사회개혁은 인간혁명을 전제한다. 인간의 변화는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가능하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거듭난 새사람, 곧 창조적 소수자만이 새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 “성령에 의한 혼의 변혁, 사랑과 봉사에 의한 사회의 질적 변혁은 그리스도 안에서 기대할 수 있는 일”이다.152) 이렇게 역사의 발전은 한 인간의 변화, 곧 변화된 인간의 결단과 생활로부터 시작된다. 따라서 장공은 정치와 복음, 나라 일과 교회 일을 양자택일의 문제로 분리시키지 않지만 논리적 우선순위는 언제나 후자이다.

152) 3권, “성탄절을 맞이하여”, 123. vgl. 8권, “고귀한 신앙의 유산”, 267, 3권, “오직 너희는”, 118.

정치운동보다도 더욱 본질적이요 더 긴급한 것이 복음운동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정치적 요청이 강할수록 더욱 철저히 신앙운동에 매진해야 하겠습니다.153) 그것은 개인 자유를 기점으로 하여 사회와 국가의 정의를 구현하자는 운동입니다.154)

153) 3권, “오직 너희는”, 117, 118.
154) 16권, “투쟁의 과녁”, 146.

또한 인간의 역사는 하나님을 원점으로 하며 하나님 나라를 목표로 한다. 즉 역사는 하나님 나라에서 완성된다. “이리하여 역사 이상의 것이 역사 안에 들어와 역사를 심판하고 역사를 속량하고 종말에는 그것을 완성하는 ‘여호와의 날’이 없다면 역사의 흥망성쇠는 무의미한 반복이요 권태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155) 따라서 장공의 사회개혁은 인도주의적 복지사회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땅에서 이루어지는 이상 사회를 지향한다. 그것은 하나님과 개인과 사회가 세모꼴을 이룬 완전한 인간의 공동사회 건설, 곧 전우주적 사랑의 공동체의 역사적 실현을 의미한다.156) 이와 관련해서 장공은 해방 이후 건국의 이념으로 하나님 나라의 정의가 실현되는 기독교적 국가건설을 생각했고, 그 후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족주의를 넘어선 “민주적 사회주의”157) 혹은 민중이 주인되는 “민중민주주의”를158) 주장했으며, 캐나다에서 귀국한 후 라가츠처럼 하나님 안에서 인류가 한 가족이 되는 세계 가족공동체를 생각했다.

155) 1권, “대전이후 신학사조의 변천”, 386.
156) 9권, “그리스도와 인간 해방”, 172. vgl. 10권, “인간상위”, 257.
157) 11권, “북미주 한국 민주화 운동”, 432.
158) 12권, “장공칼럼(12)”, 335. vgl. 12권, “장공칼럼(6)”, 86. 12권, “화해와 인심”, 12권. “장공칼럼”, 335.

장공의 사회개혁은 생활신앙의 표현이었다. 장공은 역사 참여를 하지 않는 잠자는 한국교회를 질타하며 교회의 사회적 책임성을 강조했다. 또한 그 자신이 직접 역사의 현장에 뛰어들어 불의한 사회를 개혁하기 위하여 투쟁했다. 그것은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요청 이전에 신학적 신앙적인 의무감”과159)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이 폭력에 유린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는 1961년 학장직을 강제 사퇴한 후 한일국교정상화 반대운동(1965년), 앰네스티 한국위원장(1972), 삼선개헌반대 범국민투쟁(1973), 민주수호국민협의회 공동의장(1973), 그리고 1974년 3월에 캐나다로 출국하여 북미주에서 10년간 민주화 운동과 평화 통일 운동을 하며 생활신앙을 몸으로 증언하는 삶과 활동(재북미기독학자회,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 의장, 민주주의국민연합 상임집행위원장)을 했다. 그러나 그의 사회참여는 능동적이기보다는 친구의 권면, 환경의 영향, 타고난 성품, 단체의 요구 등에 의한 수동적 행위였다. 그러나 장공은 팔십 평생을 회고하면서 그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고백했다.160) 이런 민족의식과 사회 참여의식은 혈연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사회적으로 전개되고 교회와 국가와 민족에 대한 관심으로 응결되는 방법으로 전개된 것이다. 장공은 인간구원이 개인구원으로부터 시작하여 가정과 사회 구원, 역사 구원, 종교로부터의 구원, 자연과 환경구원으로 완성된다고 생각했다.161)

159) 김재준, 고토를 걷다, 185.
160) 15권, “피동과 신의”, 368.
161) Vgl. 9권, “민주주의는 가정에서부터”, 314ff., 김재준, 범용기, 4. 12권, 438-445.

장공은 간디의 비폭력적 방법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화평, 양보, 타협만을 주장하는 값싼 평화론자는 아니었다. 장공은 하나님을 철학적인 부동의 동자, 보편적 전체, 절대정신이 아니라 “결단과 행동”의 하나님으로서 역사에 들어오신 “싸우는 하나님”으로 고백하며162) 진리를 위한 창조적 전투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그리스도인은 이 창조적 전투의 부름받은 병사들이며 교회는 이 싸움의 전초기지이다.163) 그 투쟁은 상황에 따라서 다양성을 인정하되 폭력이 아니라 사랑,164) 민주 투쟁에서 조건반사적 행동이 아니라 근원에 충실하자는 장기전,165) 자기로부터의 혁명에서 민주주의를 시작하자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166) 그리고 “적응하면서 저항한다”는167) 외유내강의 방법이다. 따라서 장공은 원칙적으로 비폭력과 불타협의 방법을 고수하지만 특히 거대한 사회구조악과 싸우기 위해서는 폭력의 사용을 인정한다. 장공의 사회개혁방법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할 수 없지만 상황에 따라서 폭력의 사용을 인정하는 일종의 상황윤리이다.

162) 3권, “건설적 전투”, 197ff.
163) 3권, “창조적 전투”, 22-24.
164) 1권, “인간 혁명”, 326-327. 장공은 경찰의 강압적 진압과 학생들의 폭력적 태도를 함께 비판하면서 그 발생 원인을 파악하여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5권, “민주 원칙은 준수되어야 한다”, 109-110).
165) 16권, “투쟁의 과녁”, 148. 장공은 3선개헌 투쟁위원회가 해체된 후 장기전을 선언하고 제3일 월간지를 복간하여 “교회의 사회화와 국민의 민주화”에 전념한다(a.a.O., 149).
166) 9권, “민주주의는 가정에서부터”, 314ff. 장공은 마이홈주의를 비판하며 가정의 사회화를 주장한다. 국가와 사회의 급변하는 정황, 민족의 문제, 이웃의 문제가 가정의 관심사가 되어야 한다(11권, “장공칼럼: 순사(殉死)”, 293).
167) 11권, “3.1 정신과 현재의 한국”, 158 또한 김재준, 범용기, 151. 김재준, 귀국직후, 261.

V. 결 론

장공의 생활신학은 일제 강점기, 해방과 한국전쟁, 70-80년대 역사적 상황에서 정통주의 신학과 그것에 근거한 성서축자영감설, 성직주의, 교회주의, 교권주의, 교리주의 및 인간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사회구조악과의 투쟁의 과정에서 형성되었다. 그는 정통주의 신학과 자유주의 신학의 단점을 지양하면서 그 장점을 살리는 건설적인 참된 신학을 수립하기 위하여 제3의 세력으로 바르트, 브룬너, 니버, 틸리히 등의 신학운동을 주목했지만 그들의 신학에 얽매이지 않았다. 그는 정통주의 신학, 자유주의 신학, 실존주의 신학, 신정통주의 신학, 과정신학, 에큐메니칼 신학을 연구했지만 어느 신학에 속하기를 거부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한국의 역사적 현실에서 몸으로 재현했던 신학자였다.

그는 하나님을 객관적 연구 대상으로 만드는 신학주의를 거부하며 이성의 권위에 근거한 합리적 지식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삶을 체현하는 실천적 지식과 하나님과의 깊은 인격적 교제를 통한 체험적 신학을 강조했다. 그는 신학을 시대의 산물로 이해했다. 복음은 불변하지만 신학은 변한다.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는 것이다. 신학은 이 복음을 그 시대 인간들에게 설명하는 방법이요 수단이다. 시대가 변하면 그 방법도 변한다. 그 때문에 그는 어떤 신학 사상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하는 생활신학과 생활신앙과 생활종교를 강조했다. 그것은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정의가 실현되는 사회를 꿈꾸었던 초기 한국교회의 민족적이며 민중적인 성격과 1920-30년대 한국기독교사회주의 운동의 전통을 잇고 있다. 그것은 성육신의 윤리에 근거해서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려는 하나님의 구원사에 동참하는 일이었다. 장공의 인권운동, 민주화 운동, 반독재운동의 뿌리는 기독교 신앙을 토대로 하는 복지국가를 건설하려는 진리운동이며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회의 공생 운동, 곧 하나님과 인간과 사회가 한 생명체로 연합되는 전우주적 사랑의 공동체에 상응한 사회 건설이었다.

장공은 동시대에 태어난 김교신처럼 합리주의적 신앙과 교회 밖에서 민족교회의 형성을 추구하거나 이용도처럼 신비적 성령체험과 신앙부흥운동을 통해 민족의 구원을 열망하는 양극단의 신학을 종합한다. 그는 합리주의적 신앙을 추구하지만 성령의 신비적 체험을 무시하지 않았고 신앙부흥을 강조하지만 역사변혁에 무관심하지 않으며 교회개혁을 통해 민족교회의 형성을 주장하지만 세계교회와의 연대성을 강조한다. 참으로 장공은 혼란과 암흑의 시대에 하나님의 대언자로서 인간의 구원을 방해하는 타락한 교회와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불의한 사회를 비판하며 교회와 사회의 미래상을 제시했던 예언자적 개혁자였다. 그의 생활신학이 21세기 변화된 사회에서 더욱 빛나는 것은 대내외적 위기에 직면해 있는 세속화된 교회개혁, 사회의 민주화와 민족의 통일이 여전히 교회의 사회적 책임과 과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류장현 박사

‧한신대 신학과 졸업 ‧한신대 대학원 신학과 졸업
‧독일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신학박사)
‧현재 한신대학교 겸임교수(조직신학)

[저서와 논문] ‧저서 : 한국의 성령운동과 영성(2004), 하나님 나라와 새로운 사회(2000)
‧논문 : “민중신학의 통전적 구원론에 대한 고찰”, “라가츠의 종교사회주의와 평화윤리”, “세대주의 종말론에 대한 비판”, “신유의 은사와 치유에 관한 이해”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