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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강좌 제6회] “장공 김재준의 신학여정과 생활신앙의 기독교윤리”에 관한 논평 / 이혁배 박사

목요강좌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7-07-14 14:07
조회
1109

[제6회 長空사상연구 목요강좌]
일시 : 2004년 12월 2일(목) 오후 5-7시

“장공 김재준의 신학여정과 생활신앙의 기독교윤리”에 관한 논평

이혁배 박사
(숭실대학교 기독교학대학원 겸임교수 / 기독교윤리학)

한국의 기독교윤리학이 극복해야 할 문제점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가운데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역시 체계적인 윤리학이론의 부족일 것이다. 많은 한국 기독교윤리학자들이 특정 주제들에 대해 나름대로의 윤리적 성찰을 시도하고 있고, 그 결과 상당한 정도의 기독교윤리학적 성과물들이 축적되어 가고 있다.

이렇게 특정한 이슈들에 관해서는 기독교윤리학적 연구물들이 속속 발표되는 반면,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차원에서의 기독교윤리학 이론을 체계화하는 과업은 소홀히 취급되고 있다. 이런 학문적 상황에서 발제자 정종훈 교수가 장공 김재준의 생활신앙 개념을 근거로 해서 윤리이론을 구축하려고 시도하고 있다는 것은 그 사실 자체만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발제자는 장공의 기독교윤리를 생활신앙의 윤리로 규정하고 그것의 구조와 중심내용을 분석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장공이 전개한 생활신앙의 윤리가 그의 신학여정과 분리될 수 없다는 전제 아래 발제자가 장공의 생활신앙윤리에 관한 본격적 서술에 앞서 제2장에서 그의 신학여정에 관해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발제자는 이런 서술을 통해 장공의 생활신앙윤리가 보여주고 있는 그리스도 중심주의의 신학적 배경을 더욱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고 있다.

발제문의 핵심은 제3장과 제4장이라고 할 수 있다. 제3장에서 발제자는 생활신앙의 개념, 전거, 현장 그리고 요청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제4장에서는 생활신앙윤리의 그리스도 중심성과 사회적 지평에 관해 서술하고 있다. 이런 논의과정을 통해 발제자가 내세우고 있는 핵심적인 주장 가운데 하나는 장공의 생활신앙윤리가 개인윤리를 넘어서서 사회윤리를 지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사회윤리적 지향성에 대한 강조가 오늘 우리의 사회현실과 교회현실에서 갖는 함의는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을 것이다. 윤리영역의 구분이란 측면에서 볼 때 우리 사회나 교회가 안고 있는 커다란 문제 가운데 하나는 사회문제를 개인윤리의 문제로 환원 혹은 축소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윤리는 사회구조나 사회제도를 고려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회문제를 해결하는데 근본적인 한계를 지닌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나 교회의 구성원들은 어떤 사회적인 문제가 발생하면 개인의 양심이나 행동양태를 거론하는 것이 보통이다. 정치가 잘못되면 정치가의 도덕성을 탓하고, 경제가 잘못되면 사회구성원들의 소비행태를 비판하는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가 될 것이다.

이처럼 사회문제의 개인윤리적 축소현상이 만연해있는 상황에서 발제자는 “개인의 문제가 그대로 전 사회문제로 얽혀져 버렸다. 아무도 단독자로서 자기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되었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갱신 봉사하기 위해서는 전 사회의 구조, 법률, 경제, 조직, 교육, 문화 문제 등등에 관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장공의 주장을 인용하면서 생활신앙윤리가 지니고 있는 사회적 지평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생활신앙윤리를 사회윤리로 정립하려고 시도하고 있는데 이런 시도 또한 발제문이 지닌 장점이 아닐 수 없다.

이와 같은 몇 가지 이유에서 논평자는 발제문의 관점과 내용에 전반적인 동의를 표한다. 그럼에도 이후에 이어질 토론의 심도를 더하기 위해 발제자에게 질문을 던져보고자 한다.

논평자의 소견으로는 발제문에서 신학적 보수주의와 정치적 보수주의가 분명하게 구분되지 않고 단순히 보수주의로 통칭되고 있기 때문에 발제자가 내세우는 논지의 설득력이 다소 감소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제5장에서 발제자는 자유주의와 보수주의를 모두 경험한 장공의 생활신앙윤리를 기초로 해서 한기총과 KNCC의 통합을 시도해볼 것을 제안하고 있다. 제2장의 내용에 비추어볼 때 여기서 말하는 자유주의와 보수주의는 대체로 신학적 차원의 자유주의와 보수주의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발제자도 인정하고 있는 바와 같이 한기총과 KNCC의 이념적 대립은 신학적인 측면에서 전자가 보수주의를, 후자가 자유주의를 내세우는 데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이 두 조직은 정치적인 측면에서도 전자가 보수주의를, 후자가 진보주의를 표방함으로써 서로간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신학적 보수주의는 정치적으로도 보수주의적인 성향을 보이기 쉽고 신학적 자유주의는 정치적 진보주의와 연결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기독교의 과거와 현재를 놓고 볼 때 이 등식이 언제 어디서나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신학적 보수주의가 정치적 진보주의와 결합되거나 신학적 자유주의가 정치적 보수주의와 연결되는 경우도 분명한 흐름으로 존재해왔다. 따라서 기독교 조직체들의 결합이나 연대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그것들이 지니고 있는 신학적 측면과 정치적 측면을 구분하는 작업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한기총과 KNCC의 통합을 추구한다고 할 때 전자의 신학적 보수주의와 후자의 신학적 자유주의의 결합 가능성뿐만 아니라 전자의 정치적 보수주의와 후자의 정치적 진보주의의 대화 가능성도 더 진지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닐까. 장공의 생활신앙윤리가 강조하는 그리스도 중심주의가 한기총과 KNCC의 상이한 신학적 입장을 조화시킬 수 있듯이, 이 두 진영의 각기 다른 정치적 입장까지도 결합시킬 수 있겠는가. 장공이 내세우는 희생적인 사회변혁은 정치적 보수주의보다는 정치적 진보주의에 기울어져 있다고 볼 수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장공의 희생적 사회변혁방식이 한기총의 정치적 보수성을 포괄할 수 있겠는가. 이런 물음들에 대한 발제자의 상세한 설명을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