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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좌 및 강연

[목요강좌 제19회] 한 여성신학도의 눈으로 본 경계인 김재준 / 구미정 교수

목요강좌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7-07-27 14:21
조회
2076

[제19회 長空사상연구 목요강좌] 발제 일시 : 2009년 5월 28일(목) 오후 5-7시  

한 여성신학도의 눈으로 본 경계인 김재준

구미정 교수
(숭실대학교 겸임교수/기독교윤리와 여성학)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달빛과 그림자의 경계로 서서 담장을 보았다
집 안과 밖의 경계인 담장에
화분이 있고
꽃의 전생과 내생 사이에 국화가 피었다

저 꽃은 왜 흙의 공중섬에 피어 있을까 해안가 철책에 초병의 귀로 매달린 돌처럼
도둑의 침입을 경보하기 위한 장치인가
내 것과 내 것 아님의 경계를 나눈 자가
행인들에게 시위하는 완고한 깃발인가
집의 안과 밖이 꽃의 향기를 흠향하려
건배하는 순간인가

눈물이 메말라 달빛과 그림자의 경계로 서지 못하는 날
꽃철책이 시들고
나와 세계의 모든 경계가 사라지리라

- 함민복, “꽃”,『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I] 문지방에서 흐르는 생명수

이 시대에 신학하는 젊은이들을 생각하면, 예언자 에스겔이 포개져 떠오른다. “악기 잘 다루고 듣기 좋은 목소리로 노래 잘 부르는 가수”(에스겔 33:32 참고) 같던 에스겔이 더 이상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아니, 부를 수가 없다. 바벨론 제국에게 나라를 빼앗겼기 때문이다. 민족 정체성이 완전히 말살되었다. 그것이 터하고 있던 야훼 하나님 신앙이 철저히 오염되고 해체된 마당에 어찌 “남의 나라 낯선 땅에서 야훼의 노래를 부르랴!”(시편 137:4)

만약에 예루살렘이 건재했다면 지금쯤 성전에서 제사장 노릇을 제대로 해볼 나이다.1) 유대 명문 귀족가의 자제로 스물다섯 살에 제사장 인턴 과정을 시작했을 적에는 전도유망한 장래가 보장되어 있던 그였다. 그랬던 에스겔이 피정복자 포로 신분으로 그발 강 대운하 사업에 동원되어 있으니, 도대체 무슨 노래가 나온단 말인가?2)

1) 예루살렘 성전 체제에 따르면, 스물 다섯에 수습 제사장직 봉사 일을 시작하여 서른 살에 정식으로 보수를 받는 제사장이 될 수 있었다. 김회권,『청년설교』 (서울: 복 있는 사람, 2005), 64쪽. 2) 그발 강가는 유다 포로들의 집단 거주지였다. 그 위치는 아마도 텔아빕(겔 3:15)이었을 것이다. 바빌론 역사 기록에 의하면, 유다의 포로들은 유프라테스 강의 지류 정도였을 그발 강의 운하공사 현장에 투입된 것으로 보인다. 윗 글, 60쪽.

가진 것이라고는 뜨거운 심장과 차가운 머리밖에 없다. 힘과 세(勢)로 밀고 들어오는 강자 앞에서 마냥 주눅 들 수밖에 없는 초라한 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스겔은 스스로를 ‘제사장’이라 부르는 데 전혀 부끄러움이 없다.(에스겔 1:3) 바빌론 정복자들의 눈에는 일개 포로 노동자일 뿐인데, 그는 그러한 외부 규정에 자기를 넘겨주지 않는다. 그에게는 안에서 강고하게 다듬어진 확고한 정체성이 있는 탓이다. 요컨대 에스겔은 “하나님이 하늘을 열어 보여주신 환상”(에스겔 1:1)에 입각하여 ‘나’를 규정하고 역사를 바라보며 시대를 해석한다. 나라는 빼앗기고, 성전은 무너지고, 아내는 죽고, 직업은 잃었지만, 그래도 절망하지 않고서 애써 자존심을 곧추세운다. 역시 비전(vision)이 중요하다.

하늘을 향해 열린 눈으로 그는 무엇을 보는가? 마른 뼈가 살아나는 환상을 본다.(에스겔 37장) 사방에서 하나님의 생기(生氣)가 불어오는 환상을 본다. 영적으로 회복된 ‘남은 자들’이 전쟁과 폭력과 반목과 적대로 얼룩진 과거를 청산하고, 화해와 치유, 일치와 연합의 새 시대를 열어가는 주체세력이 되는 환상을 본다. 급기야 그토록 염원하던 예루살렘 성전이 회복되는 환상을 본다.

성전에서 졸졸졸 물이 터져 나오는데, 그 물은 흐를수록 불어나 발목에 차고, 무릎에 차고, 허리에 차고, 그러다가 마침내 헤엄쳐야 건너는 강물이 되더란다.(에스겔 47:1~12) 그 강물이 흐르는 곳마다 산천초목이 살아나고, 온갖 생물이 번성케 되니, 과연 생명수가 틀림없더란다. 여기서 물이 터져 나오는 최초의 발원지가 ‘문지방’(threshold 또는 liminality)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에스겔 47:1) 제단도, 바깥뜰도 아니고, 하필이면 문지방이다! 문지방은 안과 밖의 경계다. 안에서 그것을 넘으면 밖이요, 밖에서 그것을 넘으면 안이다. 안팎을 나누되 벽처럼 무섭게 가르지 않고, 안팎을 잇되 문처럼 요란하게 잇지 않는 고요한 경계가 바로 문지방이다.

만약에 성전 제단에서 물이 터져 나왔다면 제사장의 어깨에 힘 꽤나 들어갔겠다. 반대로 성전 바깥에서 물이 터져 나왔다면 세상을 살리는 건 복음이 아니라 이데올로기라는 선동에 힘이 실릴 수 있다. 헌데, 용케도 문지방이다. 문지방 밑에서 최초로 터진 물이 성전 안으로 흘러 들어가 제단을 감싸고 돌더니 이내 밖으로 흘러 나간다. 그 물은 오직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데, 곧 ‘동쪽’을 향하더라는 것이다.

왜 동쪽인가?3) 거기에는 사해(死海)가 있기 때문이다.4) 도저히 생명이 깃들어 살 수 없는,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 버려진 땅, 지옥처럼 고통스러운 세계(苦海)가 생명의 장소, 생명을 낳고 키우는 모태(母胎)로 변화한다. 단지 성전에서 흐른 물이 들어가 섞였을 뿐인데, 죽어 있던 모든 것이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3)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도 이와 유사하지 않을까? 4) 김회권, 윗 글, 151, 154쪽을 볼 것.

식민지 조선 땅에 태어나 어쩌다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되고 선생이 된 김재준에게 평생 하나의 꿈이 있었다면, 바로 이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소성대(以小成大)”5)를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고서 “창조의 모습대로 인간 회복”6)을 꿈꾸며 또 이를 구현하기 위해 “거룩한 열심”7)을 내었던 김재준은 그 자신이 한국교회의 문지방이었다. 그에게서 분출해 나온 생명의 물은 소위 보수 정통 근본주의라는 박제화된 신학사조에 갇혀 스스로를 교회 안으로 유폐시킨 사람들을 지나, 엄혹한 분단과 서슬 퍼런 독재의 야만이 광기를 부리던 바깥세상으로 한없이 흐르고 또 흘렀다. 김재준의 삶과 사상에서 나온 물도 역시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동쪽이란 다름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가 앞서 가신 자리, “어렵고 작고 눌린”8) 소자(小子)들이 정의와 자유와 해방을 간절히 소망하는 ‘갈릴리’였다.

5) 작은 것으로 크게 이룬다는 이 말은 김재준의 평생 좌우명 10가지 중에서 네 번째, “버린 물건, 버려진 인간에게서 쓸모를 찾는다.”와 통한다. 천사무엘,『김재준: 근본주의와 독재에 맞선 예언자적 양심』 (살림, 2003), 204쪽. 6) 이 글귀는 김재준이 종종 제자들에게 붓글씨로 써서 건넨 문장이다. 고정희,『뱀사골에서 쓴 편지』 (미래사, 1991).
7) 김재준에게 “거룩한 열심”이란 “하나님과 사람을 위하여 전존재를 희생시키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마음”으로 이해된다. 이 거룩한 열심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복음선전’과 ‘사랑의 실행’에 힘을 쏟게 하는데, 이를 김재준은 신앙생활이 아니라 생활신앙으로 풀이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복음을 만인에게 삼투시키려면 또는 우리가 사랑을 ‘실행’하려면 이 사회의 만반사위(萬般事爲)에 직접 관계하여 그것을 기독교적 이상에 가까운 기관으로 화하려는 운동을 일으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長空 金在俊牧師 기념사업회 엮음,『金在俊全集』(이하『全集』으로 표기), 제1권, 141쪽, 한신대학출판부, 1992.
8) 이 표현은 조선신학교 개강식 때 초대 원장을 맡은 김대현 장로의 취임사에 나온 것으로, 그는 김재준의 ‘이소성대’ 정신을 조선신학교와 접목시켜 잘 풀이하였다. 김재준,『범용기』, 183쪽 ; 좀 더 상세한 취임사 요지는『한신대학 50년사』 (한신대학출판부, 1990), 20~21쪽 참고.

한 번도 제도교회를 벗어난 적은 없지만, 교회 밖 세상의 불의한 구조에 대해 눈을 감지 않은 사람, “그리스도인이 역사 안에 보냄 받은 것은 역사에서 도피하거나 역사를 초월하라는 것이 아니라, 역사 안에 그 전존재를 쏟아 그리스도의 속량의지에 충성하라는 것”9)임을 굳게 믿은 사람, 그러한 믿음이 교권주의자들의 심기를 자극해 차별과 배제와 추방의 빌미가 되기도 했지만,10) 그렇다고 희생양 콤플렉스에 빠져 마냥 동굴 속에서 자기 상처만 핥지는 않은 사람, 도리어 떨쳐 일어나 약자를 주변화(marginalization)하는 온갖 사회적ㆍ정치적 책동에 맞서 “연대신학, 편애신학, 해방신학”11)을 온몸으로 살아낸 사람……, 김재준은 그러므로 경계인이다.

9) 『全集』, 제4권, 435쪽. 10) 미국 프린스턴 신학교와 웨스턴 신학교에서 수학한 김재준이, 만약에 한경직처럼 서북파(평양 출신)에 속했더라면, 조선 기독교의 권력 상층부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을 것이다. 그러나 함경북도 경흥 출신이었던 그는 유학 후 귀국해서도 배제와 차별의 정치학에 떠밀려, 환영은커녕 추방의 푸대접을 받는다. 구한말 조선 기독교의 정치사회적 역학관계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Chung-shin Park, Protestantism and Politics (Seatle and London: University of Washing Press, 2003). 특히 김재준 신학과 박형룡 신학을 비교 논의한 연구에 대해서는 제2장을 볼 것.
11) 이는 김재준의 여제자들이 김재준에게서 배운 신학이라 꼽은 내용으로, 김윤옥의 입을 빌어 나왔다. 김윤옥 외,「김재준 목사님에 대한 회고 - 여제자들의 좌담」, 장공 김재준 목사 탄신 10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편,『장공이야기』(한신대학교 출판부, 2001), 382쪽.

시인 함민복이 말했듯이, 무릇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12)고 했던가? “보수와 진보 어느 하나에도 자기 발을 붙이지 않는 진보적 보수주의, 보수적 진보주의 사상을 글귀마다 펴 나가는 폭넓은 진리의 탐구자. 신앙과 윤리, 교회와 사회, 신학과 철학, 전통과 혁신의 테두리를 자유스럽게 넘나드는 자유의 탐구자”13)로서 김재준은 온 우주의 삼라만상이 다 한 가지 근원에서 나온 한 송이 꽃임을 알고 있었기에 ‘전우주적 사랑의 공동체’14)를 설(說)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에게 이 용어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를 세간 사람들이 알아듣기 쉽도록 환치한 말이면서, “자연계와 초자연계, 개인과 사회 집단, 남자와 여자, 기독교인과 타종교인, 현재와 미래와 과거, 사람과 천사와 영물들, 역사와 자연, 물질계, 생명계, 정신계, 영계가 모두 각각의 자기 질서와 고유한 실재 차원을 지니면서도 하나로 통하고 어우러져 생성ㆍ발전하는”15) 생명 공동체를 지칭하는 말이다. 이렇듯 품이 크니, 그의 호가 ‘장공(長空)’인 것도 무리는 아니다.

12) 함민복,『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창비, 1999). 13) 『장공 김재준 목사 전집』서문 (한신대학 출판부, 1975).
14) 전우주적 혹은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가 장공 사상에서 갖는 의의에 대해서는 장일조,「김재준의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신학연구』제42집 (한신대학교 출판부, 2001), 71~94쪽을 볼 것. 한편, 강원돈은 김재준의 이 ‘전우주적 사랑의 공동체’ 개념이 그 나름대로 하나님의 나라와 역사를 매개하는 ‘중간공리’였다는 점에 착안하여 김재준의 ‘생활신앙’을 사회윤리적 차원의 경세(經世)사상으로 풀이하였다. 강원돈,「장공 김재준의 경세사상」,『기독교사회윤리』제16집 (2008, 겨울), 125~162쪽 참고.
15) 김경재,『김재준 평전: 성육신 신앙과 대승기독교』(삼인, 2001), 201쪽.

[II] ‘길의 신학자’와 여성신학의 만남

이 글은 여성신학의 관점에서 김재준의 삶과 사상을 조명하려는 관심으로 출발했다. 이 과제를 책임 있게 수행하려면 우선 김재준의 신학이 여성신학과 어떻게 겹쳐지는지부터 살펴야 옳다. 페미니즘이, 세간의 오해대로 ‘반(反)남성주의’가 아니고, 오히려 “성차별주의와 성차별주의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종식시키려는 운동”16)으로 이해한다면, 이 대의에 동참하는 모든 남녀를 페미니스트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16) 이 명제는 흑인 페미니스트 사상사인 벨 훅스(bell hooks)가『페미니즘 이론: 주변에서 중심까지』(Feminist Theory: From Margin to Center, 1984)에서 처음 언급한 것으로, 본명이 Gloria Jean Watkins인 그녀는 모든 저작에 자신의 필명을 사용한다. 그녀의 책 Feminism is for Everybody: Passionate Politics (2000)는 ‘과연 누구를 위한 페미니즘인가’라는 질문에 명쾌한 답을 주고 있다. 여기서 훅스는 페미니즘 운동의 최종 목표가 ‘모든 지배가 종식된 세상’이라고 천명한다. 이 목표가 달성되기 위해서는 인종주의, 학벌주의, 제국주의 역시도 종식되어야 하기 때문에, 페미니즘 운동은 결국 그러한 운동들과 연대하는 광의의 휴머니즘 운동이 된다. 벨 훅스,『행복한 페미니즘』, 박정애 옮김 (백년글사랑, 2004), 9쪽.

이렇게 정리하고 나서 김재준을 다시 들여다보면, 삶과 사상 전체에 걸쳐 줄곧 ‘작은 자들과의 연대’를 강조한 그이기에, 누군가 자신에게 페미니스트라는 딱지를 붙인들 전혀 노여워하거나 불편해하지 않았을 것 같다. 사실 그에게 신학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였다.17) 명사로서의 신학은 이른바 신학적 지식의 축적이요, 체계화이며 계보학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러나 김재준은 그것이 ‘보수주의 신학 체계’든지 아니면 ‘자유주의 혹은 신정통주의 신학 체계’든지 간에 어느 하나의 체계 또는 계보에 자신을 고정시키는 일을 아예 하지 않았다. 신학함이란 역사적 현실 속에서 결연하게 결단을 내리는 일 혹은 진실을 추구하는 그 자체라고 믿은 까닭에, 그는 “신학의 순례에 있어서 학(學)의 체계화란 것을 두려워하고 반항”18)했다. 신학자로서의 김재준의 진면목에 대해 잘 밝힌 전경연19)의 말을 들어 보자.

17) 동사로서의 신학에 대한 필자의 생각은 다음의 책을 참고하라. 구미정,『한 글자로 신학하기』(대한기독교서회, 2007), 31쪽. 18) 주재용 엮음,『김재준의 생애와 신학』(풍만출판사, 1986), 40쪽.
19) 김경재는 전경연이 “신학자로서의 김재준의 진면목을 곁에서 가장 정확히 지켜볼 수 있었던” 제자라고 평한다. 김경재, 윗 글, 209쪽.

그의 신학의 순례는 칼빈, 와필드, 하지, 바르트, 브루너, 라인홀드 니버, 리처드 니버, 벨자에프, 베닛, 틸리히, 하크니스와 많은 실존주의 사상가 등 그가 영향을 받지 않은 현대의 사상가들이 적지만, 그 어느 하나에 낙착하여 거기에 큰 체계의 건축을 시도하지 않고, 변천하는 시대와 함께 걸어가며 그 가운데서 시대의 문제들을 해결하고 그 시대가 필요로 하는 증언을 한 데 지나지 않는다.……그는 무슨 개론, 무슨 원론 같은 것을 쓰지 않았다. 오직 단신 빛의 붓끝으로 우러나오는 정직한 고백을 적어서 내던짐으로써 어둠의 물결을 막아내는 사명을 다하였다. ‘영원한 신학’을 찬란하게 세우려고 하지 않았다. ‘길’의 사람으로서 비판하고, 증언하고, 항의하고, 재해석을 내렸을 뿐이다.20)

20) 주재용 엮음, 윗 글, 40~41, 47쪽.

6ㆍ25 전쟁의 참화에 시달리던 부산 피난 시절, 김재준이 캐나다 선교부의 장학 기금을 얻어 두 사람을 캐나다로 유학 보낼 때, 그 둘로 강원용과 이우정을 천거한 사실에서 여성신학에 대한 그의 앞선 감각과 의지가 엿보인다.21) 또한 해방 이후 공간에서 신학 교육을 재정비해야할 과제에 직면하여 송창근, 한경직 등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여자 신학교’22)를 설계한 것으로 보아, 누구보다도 그는 여성 신학교육에 관심을 갖고 애정을 기울였음을 알 수 있다.

21) 교회와 사회에서 여성이 지도력을 발휘하도록 도와주고 훈련시켜야 한다는 생각은 김재준의 변함없는 소신이었던 것 같다. 신학교에 들어온 여성들이 신학 공부는 안중에도 없고 시집갈 궁리나 한다는 것이 교수들 사이에서 흔하게 생각되던 시대에 김재준은 여학생들에게 신학 공부를 하도록, 그것도 여성의 관점에서 사고하도록 격려하고 응원하였다. 삶에서도 역시 김재준은 ‘부부 이름 나란히 쓰기’를 실천하고 있었는데, 가령 여제자들은 스승 김재준이 붓글씨를 써서 보내주거나 편지를 써 보낼 때 수신자로 부부 이름을 나란히 기입한 점에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김윤옥 외, 윗 글, 382~383쪽 ; 여성 지도력에 대한 김재준의 확신은 초대 교회에서 활약한 예수의 여성제자 및 바울의 동역자들을 떠올리게 하는데, 이에 대한 논문으로는 다음을 참고하라. 최영실,「초대교회의 모체가 된 여성 사역」, 109~133쪽 ; 한편 피오렌자는 1세기 말부터 2세기에 이르는 시기에 교회가 점점 가부장제화 되어 가면서 교회 직분의 성별화(性別化)가 일어나고 여성 사역의 길이 차단되었다고 분석한다. E. S. 피오렌자,『크리스찬 기원의 여성신학의 재건』김애영 옮김 (종로서적, 1986) ; 교부시대의 교리들이 어떻게 여성 사역의 길을 가로막아왔는지에 대해서는 안상님,『여성신학 이야기』(대한기독교서회, 1992), 81~111쪽을 볼 것. 22) 김재준과 한경직은 조선신학교 교육 시설을 확보하기 위해 미 군정청 산하 서울시장격인 미 육군대령 윌손을 찾아가 천리교(일본의 토착종교인 신도와 불교가 혼합하여 생겨난 신흥종파로, 일본이 패망하자 서울에서만 40여 곳이나 되었던 교회당 건물이 적산 시설로 남게 되었다.) 재산 일부에 대한 ‘임대차 계약’을 요청하고 두 곳의 중요한 적산 시설과 땅을 조선신학원이 넘겨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청원하여 결정을 얻어냈다. 지금의 서울역 앞 벽산빌딩 뒤편 언덕에 세워진 동자동 성남교회터 일대가 당시 천리교 본부가 있던 곳인데 이곳에 남자 신학교 교사와 기숙사가 들어서게 되었다. 그리고 현재 영락교회 교회당이 자리 잡고 있는 영락정의 천리교회 터와 건물은 여자 신학교와 기숙사 용도로 접수하고, 한경직이 그 교장으로 취임하게 되었다. 그러나 영락정의 이 터와 건물에 이북에서 내려온 기독교 피난민들이 몰려들면서 여자 기숙사가 피난민 수용소로 변모하게 되었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 한경직과 조선신학교의 갈등이 불거지면서 우여곡절 끝에 영락정은 영락교회의 소유로 넘어가게 되었고, 한경직은 남한산성에 영락여자신학교를 따로 세워 운영하게 되었다.『全集』 제13권, 245~247쪽 참고.

동사로서 그의 신학은 필경 가부장적 성차별주의를 ‘비판하고, 증언하고, 항의’하며, 여성 차별과 배제와 억압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되는 성서 본문을 ‘재해석’하고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데까지 이르렀을 것이다. 설령 그것이 자신에게 일차적인 화두가 아니라서 능동적, 적극적으로 그러한 신학 작업에 뛰어들지 않더라도, 김재준은 적어도 그런 종류의 신학이, 지엄한 가부장제가 여전히 여성의 숨통을 조이는 이 척박한 땅에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데, 곁에서 때를 따라 물을 주고 모진 비바람을 막아주며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추측은 단순히 희망사항이거나 과장된 바람일 수 있다. 그가 본격적으로 스스로를 여성신학자로 자리매김하고 여성신학에 천착하여 작업한 물적 증거가 없는 까닭이다. 하지만 성서를 “미완성 드라마 대본”으로 본 라이트(N. T. Wright)의 견해에 기댄다면,23) 그 추측이 억측이 아님을 납득하게 된다. 라이트가 비유한 대로, 셰익스피어의 미완성 희곡 대본이 발견되었다고 상상해 보라. 그 대본에는 생생한 인물 묘사가 있고 플롯이 선명하며 극적 감동의 강세도 분명하다. 따라서 이 대본을 무대에 올리는 데는 아무런 이견이 없다. 다만 완성되지 않은 제5막이 남아있는 게 문제일 뿐이다. 이 난감함을 어찌 풀어야 할까? 공연계획을 중단하자니 대본이 아깝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첨가하자니 세익스피어의 본래 의도에 맞지 않을까봐 두렵다. 그럴 때는 “준비된, 감수성이 예민하고 노련한 전문 배우에게 연기를 맡기는 것이 낫다”24)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4막까지 세익스피어 연극에 몰입하면서 세익스피어의 생각을 속속들이 꿰뚫고 있는 배우들이 연극의 나머지 부분을 즉흥적으로 연기해야 한다. 물론 이 때의 즉흥 연기는 지금까지의 대본과 조화를 이루어야 하고, 플롯의 의도와 일치하지 않으면 안 된다.

23) N. T. Wright, "How Can the Bible Be Authoritative?", Vox Evangelica 21(1991), 7~32쪽. 24) 윗 글, 18쪽.

따지고 보면, 김재준의 신학 순례에서 그가 직접 쓰지 않은 제5막을 연기할 배우는 비단 한국기독교장로회에 속한 여성신학자25)에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성서 해석에 있어서는 축자영감설로, 신학 체계에 있어서는 보수 근본주의로, 윤리 실천에 있어서는 바리새적 경건주의로 무장한 채, 마치 “숫자도 많고 힘도 세서 감히 아무도 건드리지 못할 것이라는 자신감으로”26) 소수자 신학과 비주류 교단 위에 군림해 온 한국의 주류 ‘정통’ 교회에 대항하여,27) 그야말로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28) 자유로운 복음의 숨통을 퇴어준 김재준의 호방함이 없었더라면, 이 땅의 여성신학은 그저 ‘못 다 핀 꽃 한 송이’로 낙화하고 말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서를 대할 때 반드시 “의심의 해석학(hermeneutics of suspicion)”29)을 적용할 수밖에 없는 여성신학의 입장으로서는, 초지일관 비판적 성서읽기를 강조한 김재준에게 진 빚이 크다.30)

25) 이 글에서 나는 ‘여성신학자’의 정의를, 통상 이해하듯이 생물학적 의미의 여자신학자이거나 ‘여성신학을 전공한 박사학위 소지자 또는 대학에서 여성신학을 가르치는 교수’라는 식으로 협소하게 잡지 않고, ‘여성으로 대변되는 약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관점에서, 또한 성별 감수성(gender sensitivity)을 지닌 채 신학적 사유를 펼치는 모든 남녀(목회자와 평신도 포함)’로 폭넓게 잡는다. 26) 이진구,「타종교에서 이웃종교로!」,『오늘의 한국사회와 기독교윤리』, 2009년 5월 16일 한국기독교윤리학회 정기학술대회 자료집, 72쪽.
27) 1930년대 한국 기독교, 특히 장로교의 특징은 교권주의와 극단적 보수신학이라 할 것이다. 그 배후에는 평양신학교를 지배하는 보수적 선교사들과 또한 박형룡을 비롯하여 그들 선교사들과 야합, 보수적 정통주의 신앙을 복음 자체보다 더 중요시한 조선 신학자 및 목회자들이 있었다. 근본주의 신학으로 무장한 당시 장로교 교권 집단은 교회사가 김양선의 증언처럼, 축자영감설과 다름없는 ‘성서 무오설’을 모든 신학사상과 신앙의 정통성 여부를 판단하는 유일한 척도로 삼았다. 김양선,『한국기독교 해방 10년사』(서울: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종교교육부, 1956), 264쪽 ; 미국 유학에서 귀국한 김재준은, “그리스도가 보여준 사랑의 따뜻한 마음을 잃고 굳어지고 율법화되고 교권으로 동맥경화증이 심해가고 있었던” 조선교회의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나는 노회 뒷좌석에서 얼마 동안 방청했다. 방청 금지까지는 아니었으니 천만다행이라고 하겠다. 내 인상으로는 은혜도 화평도 증발된 사무 절차뿐이었는데, 예외 없이 평양신학교 출신 목사님들이니만큼 ‘정통 신학’ 일색이었다. 나는 좀 더 ‘복음적’인 신학 교육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정통주의는 그대로가 ‘율법주의’여서 거기에는 자유하는 인간이 있을 수 없다고 보았다. 목사님들과 노회원 장로님들 얼굴은 평화 없는 ‘목사 탈(마스크)’로 굳어져 있었다. 『全集』 제13권, 128쪽.
28) 이 구절은 불교의 <숫타니파타> 경전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로,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의 일부다.
29) 여성신학의 성서해석 방법론에 대해서는 피오렌자의 통찰이 탁월하다. 그녀는 말한다. “여성해방적 성서해석은 오늘날의 남성중심적 성서해석의 형식에 대해서도 그리고 성서 자체와 관련해서도 의심의 해석학을 채택함으로써 시작하고 있다. 어떤 성서본문은 가부장적인 사회와 교회에서 여성의 종속성과 그들의 이차적인 위치를 합법화하기 위해서 사용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본문이 뭔가 전적으로 잘못 해석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본문 자체가 가부장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태에 직면해서 우리 가운데 몇몇 여성해방주의자들은 우리가 성서와 성서의 종교를 포기해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하였다. 그러나 나는 이 글에서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다.……성서는 수많은 여성들이 입을 열어서 불의, 착취, 그리고 선입견에 대항해서 싸우도록 했으며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성서본문이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에 대한 결정적인 기준은 해당 본문이 지배와 착취의 가부장적 구조에 반대하고 있고 그것을 제거하려고 하는가 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에서 나타난다.” E. S. 피오렌자,『돌이 아니라 빵을』, 김윤옥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1994), 11~14쪽.
30) 유동식은 1930년대를 “한국 신학의 정초기”라고 평가한다. 이 시기에 외국에서 신학을 전공하고 돌아온 신진학자들이 각기 글을 내놓기 시작하면서 한국 신학의 주요 흐름들이 잡히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유동식은 1930년대 한국 신학계의 잡다한 양상을 검토하여 세 가지 범주로 정리하였다. 첫째, 박형룡으로 대표되는 성서의 근본주의적 교리적 이해, 둘째, 김재준으로 대표되는 성서의 진보주의적 역사적 이해, 셋째, 정경옥으로 대표되는 성서의 자유주의적 실존적 이해가 그것이다. 유동식,『한국 신학의 광맥』(전망사, 1982), 165~175쪽.

[Ⅲ] 동정녀 마리아 새로 보기

그렇다면, 김재준의 신학 순례라고 하는 미완성 드라마의 제5막을 연기하기 위하여 주의 깊게 살펴야 하는 플롯은 무엇인가? 그 단초는 아무래도 보수 근본주의 신학과 대립한 김재준의 성서해석에서 먼저 찾아져야 할 것이다.

1934년 1월호『신학지남』에 김재준은 한 편의 논문을 기고하게 된다.31)「이사야의 임마누엘 예언연구」라는 제목을 단 이 논문은 구약성서「이사야」7장 14절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는 내용을 주석한 것이었다. 여기서 김재준은 ‘동정녀’라는 단어가 ‘방년의 젊은 여자’를 가리키는 히브리어 ‘엘마’를 번역한 것으로, 반드시 생물학적 의미의 동정녀라고 옮길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잉태’를 가리키는 히브리어 ‘히라’는 히브리어의 상태 동사 ‘하라’의 분사형태이기 때문에, ‘엘마’의 형용사 역할을 하는 것이라 했다. 즉, “잉태한 방년의 젊은 여자가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는 번역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31) 이하의 논문 내용은 천사무엘, 윗 글, 87~88쪽에서 다시 따옴.

이러한 주장은 근본주의자들의 관점에서 볼 때 성경의 축자영감설을 전면 부인하는 것으로, 그로 인해 김재준에게는 예수의 동정녀 탄생을 부인하는 자유주의 신학자라는 낙인이 찍히게 된다. 곧이어 일어난 소위 ‘아빙돈 주석사건’32)에서도 김재준은 평양신학교를 중심한 근본주의 신학 진영의 이단 시비에 휘말려 곤욕을 치를 수밖에 없었는데, 이러한 일련의 사건이 그로 하여금 ‘길의 신학’을 하도록 몰아가지 않았을까 싶다.33)

32) 아빙돈 주석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감리교에서 선교 50주년을 기념하여 미국 아빙돈(Abingdon) 출판사에서 발행한『아빙돈 성경 주석(Abingdon Bible Commentary)』을 감리교의 유형기 박사가 편수하여 1934년에 번역, 출판한 일이 있다. 이것은 역사비평을 수용한 주석으로서, 장로교에서는 채필근, 송창근, 김재준, 한경직이 참여하였다. 이때 유형기는「요나」를 제외한 소선지서의 주석을 김재준에게 부탁하였는데, 김재준은 나름대로 보수적인 학자들의 책을 참고하여 주석을 써 보냈다. 물론 감리교에서는 이 책이 문제시되지 않았으나, 장로교에서 이 책을 이단시하면서 문제가 커지게 되었다. 길선주 목사는 이 주석의 집필자 대부분이 자유주의 신학자이고 그 내용도 자유주의적이므로, 이 사상이 장로교회 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평양신학교 교수로 있던 박형룡도 이 주석이 고등비평의 원칙을 따르므로 성경을 파괴적으로 해석하며 계시의 역사를 종교적 진화의 편견으로 분석하고 있다고 단정했다. 결국 장로교회는 1935년 9월에 열린 총회에서 이 주석을 구매금지토록 명령하고, 집필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공개사과를 받기로 결의하였다. 이에 채필근은 잘못을 시인하는 성명을 발표했으나, 송창근, 김재준, 한경직은 몇 달을 버티었다. 그러다가『신학지남』의 편집책임자인 남궁혁에게 장로교회 측이 이 세 사람을 집필진에서 빼라는 압력이 가해졌다. 이에 남궁혁의 요청으로, 세 사람은 공동명의로 성명서를 써서『신학지남』에 보냈는데, 골자인즉, 자신들이 쓴 주석에는 문제되는 것이 없지만, 이 때문에 교회가 소란하게 된 점은 유감으로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까지 양보하였으나, 김재준은『신학지남』의 편집실무는 물론, 논문기고까지 제재 당하는 보복을 받게 된다. 이것이 유명한 ‘아빙돈 주석사건’이다. 김양선, 윗 글, 177쪽 ; 민경배,『한국기독교회사』(대한기독교출판사, 1988), 414쪽; 천사무엘, 윗 글, 89~91쪽을 볼 것. 33) 아빙돈 성서주석 사건 외에도 근본주의 신학의 횡포가 빚은 또 하나의 야만적인 사건이 있는데, 그게 바로 김춘배 목사 사건이다. 당시 성진중앙교회 담임목사였던 김춘배는「장로교 총회에 올리는 글」을 써서『기독신보』977호에 실었는데, 여기에 언급된 “여자는 조용하라. 여자는 가르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이천 년 전의 지방교회의 교훈과 풍습이요, 만고불변의 진리는 아니다”라는 내용이 문제가 된 것이다. 그는 그 본문(고린도전서 14:34~35)이 바울이 고린도교회의 여자들에게 권면한 내용으로서, 오늘날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되고 역사적, 문화적 상황에서 재고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1935년 제24회 조선예수교장로교 총회는 “성경의 파괴적 비평을 가르치는 교역자들과 성경을 시대사조에 맞도록 자유롭게 해석하는 교역자들을 우리 교회 교역계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판결하여, 그에게서 목사 자격을 빼앗으려고 하였다. 이렇게 강한 교권의 영향으로 한국 장로교회는 여성의 목사, 장로 안수에 대해 오랫동안 금기시해 오다가, 20세기 후반에 가서야 겨우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에서 여성안수를 허용하게 되었다. 물론 합동측과 고신측 등 보수교단에서는 여전히 여성안수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천사무엘, 윗 글, 92~93쪽.

사실 ‘동정녀 신화’는 기독교가 반(反)지성주의를 부추긴다는 비난에 내몰리는 대표적인 사례다. 예수의 ‘하나님 아들 되심’에서 마리아의 처녀성이 필수불가결한 전제조건이 아닐진대, 그에 맹목적으로 집착하는 것은 얼마나 비본질적이고도 소모적인 낭비인가? 판넨베르크(Wolfhart Pannenberg)도 말하지 않았나? 예수의 ‘하나님 아들 되심’은 그의 출생 근거와 방법, 과정, 통로에 있다기보다는 선재(先在)하시는 하나님의 개입에 있다고.34) 말하자면 예수의 잉태는 그것이 ‘성령으로 말미암은’ 잉태라는 점에서 특이한 것이지, 모친의 처녀성 여부와는 무관하다는 뜻이다.

34) 불프하르트 판넨베르크,『사도신경 해설』, 정용섭 옮김 (한들출판사, 2000).

여성신학은 일찍부터 동정녀 신화가 여성 일반의 현실에 얼마나 유해한가를 폭로해 왔다. 가령, 로즈마리 류터(Rosemary R. Ruether)에 따르면,35) 기독교 도덕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취한 순결 이데올로기는 ‘유혹적이고’ ‘육욕적인’ 이브의 죄악된 이미지에 대한 반동인데, 일견 여성을 예찬하고 미화하는 것 같은 동정녀 이미지 역시 알고 보면 여성혐오의 연장인 까닭에, 이브의 신화만큼이나 여성억압에 일조한다는 것이다.

35) 류터는 현실 사회에서의 여성억압이 세 단계의 ‘상징적 합리화’ 과정을 거쳐 완성되었다고 본다. 첫째, 모친의 정복단계, 둘째, 모친의 부정단계, 셋째, 모친의 승화단계가 그것이다. R.R. 류터,『새 여성ㆍ새 세계』, 손승희 옮김 (현대사상사, 1980), 제1장 참고.

기독교는 전형적으로 여성에 대한 정신분열증적인 견해를 만들어낸다. 여자를 승화된 정신적 여성(동정녀 마리아)과 실제로 육체를 가진 여성(타락한 이브)으로 나눈다. 순결성의 이상은 육체와의 접촉으로 더러워지지 않은 “정신적 모성”이라는 높은 영역에로 승화되고, 한편 실제 여자들은 두렵고 억압된 “육욕”을 따라 형상 지워진다. 동정녀 성모숭배가 생긴 것은 육체적 모성애와 성욕의 모독을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러한 모독의 당연한 결과이다. 실제로 일어나는 성욕은 “더러운” 것이라고 보는가 하면, 억압된 욕망의 감정은 신비주의적인 성적 흥분에로 승화되는데, 이것은 순결한 영혼이 그리스도와 정신적인 신성한 결혼을 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동정녀 마리아에 대한 사랑은 실재하는 여자에 대한 증오감을 고쳐주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증오감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36)

36) 윗 글, 34~35쪽.

희랍철학의 영향으로 영육이원론에서 자유롭지 않았던 중세 교부 신학자들은 영혼을 남성에, 육체를 여성에 일치시키는 방식으로, 모든 육체적인 것, 여성적인 것, 물질적인 것, 자연적인 것을 억압한 채 지극히 관념적이고 남성적인 신학체계를 세워 나갔다.37) 교부들의 인간학에서 여자는, 지배하고 통제해야할 정신과의 관계에서 육체로 정의되어, 정신에 복종하는 육체(아내)가 되든지, 아니면 반항하는 육체(창녀)가 되든지, 둘 중 하나밖에 다른 선택이 없었다. 성욕이라든가 임신 또는 출산과 같은 자연스러운 육체의 부분들은 저급하고 저속한 부패와 타락의 영역에 해당하는 것으로 치부되었다. 그러니 남성의 성욕을 자극하고 유혹하는 존재로 낙인찍힌, 또한 임신과 출산을 담당해야 하는 여성의 육체란 얼마나 오염되고 불결한 것이겠는가?

37) 로즈마리 류터에 의하면, 기독교 문명에 지배적인 성차별 이데올로기는 다름 아닌 영육이원론에 그 뿌리가 있다. 로즈마리 R. 류터,『성차별과 신학』, 안상님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1985).

이러한 인식론에서는 여성의 구원이 그 육체 내지 육체의 운명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으로 이해되는 게 당연한 수순이다. 마리아 숭배가 인기를 끈 이유가 거기에 있다. 예수의 순결한 어머니는 여성들이 타락한 이브의 저주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보여준다. 이른바 성모의 무흠수태(無欠受胎)교리와 몽소승천(蒙召昇天)교리가 확산되면서 이와 더불어 독신주의와 수녀원 운동이 팽창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시에는 여성이 구원 받으려면 금욕적인 처녀상태대로 육체를 보전해야 한다는 믿음이 팽배했다는 증거다. 이러한 맥락에서 부활한 여성의 몸에는 소위 그녀의 여성됨을 입증해주는 신체기관(자궁과 유방)이 없다는 어거스틴(Augustine)의 말은 육체혐오, 여성혐오의 하이라이트가 아닐 수 없다.38)

38) “사랑스러운 여자와 부부관계에서 즐기는 신체적 접촉만큼이나 남성의 이성을 높은 곳에서부터 끌어내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고 ‘고백’할 만큼 성적인 부분을 수치스럽게 여긴 어거스틴에게 부활한 몸이란 성적 본능을 전혀 갖지 않는 “정신적인 몸”이어야 했기에 여성의 몸은 부활시에 성행위와 출산에 관련된 기관들을 박탈당해야만 비로소 “수치보다는 영광에 적합한 몸”이 될 수 있다고 그는 보았다. Augustine, Soliloguies 1, 10 ; 로즈마리 R. 류터,「그리스도교는 여성혐오의 입장에 서 있는가」, 이우정 엮음,『여성들을 위한 신학』(한국신학연구소, 1985), 260~261쪽에서 다시 따옴.

개신교 신학은 인간의 보편적 죄성을 강조하기 때문에, 마리아에게서 성모의 이미지와 더 나아가 여신의 이미지를 제거하는 데는 성공했지만,39) 그렇다고 여성을 하나님 앞에 선 인간 본성의 대표로 보는 데까지 나아갔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루터와 칼빈은 물론이고 바르트에 이르기까지 개신교 신학자들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절대적 의존을 확증한다는 의미에서 마리아론을 교회의 상징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보았다.40) 그리하여 개신교에서는 전례 없이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 그리고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를 지배-종속의 상하질서체계로 보는 이원론을 발전시키게 되었는데, 이는 전능한 ‘남성적’ 하나님이 수동적이며 자기희생적인 ‘여성적’ 교회를 다스린다는 이미지를 낳았다. 개인적으로는 종교개혁의 주요 모토 중 하나인 만인사제설의 실패 요인이 바로 이러한 집단무의식에 있지 않나 싶은데, 왜냐하면 하나님과 그리스도 사이,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 그리고 목회자와 회중 사이를, 남성과 여성의 이미지로 투사하는 한, 평신도 회중에게 요구되는 가치는 오직 섬김과 희생일 뿐, 절대로 자율이나 독립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39) 폴 틸리히는 “동정녀 마리아는 개신교에서 아무런 계시도 되지 않는다”고 못을 박았다. Paul Tillich, Systematic Theology Ⅰ, 128쪽. 40) Thomas O' Meara, Mary in Protestant and Catholic Theology (New York: Sheed and Ward, 1966), 111~145쪽 ; Karl Barth, Church Dogmatics, Ⅰ/2, 139~152쪽.

이러한 이유로 로즈마리 류터는 마리아론이 수동적인 의존성의 상징으로 남아있는 한, 교회 안에서 여성에게 능동적인 지도력이 허용되기는 어렵다고 보고, 그 의미를 재평가하도록 촉구한다. 마리아론은 “그것이 모든 위계적 권력관계에서부터-신과 인간의 관계까지도 포함하여-자유롭게 된 새로운 인간성을 표현하는 하나의 과격한 상징이 될 때”41) 비로소 여성해방의 상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마리아는 이 세계질서 너머에, 저 밖에 놓여 있는 인간의 미지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창문과도 같은 존재다. 마리아가 칭송을 받아야 한다면, 그것은 ‘예수를 배었던 태(胎)’를 지녀서도, 혹은 ‘예수가 빨았던 젖’을 지녀서도 아니고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누가복음 11:28)의 본보기가 되기 때문이다. 요컨대 우리가 섬겨야 할 마리아는 ‘성모’ 마리아가 아니라는 것이다. 여자의 유일한 공로를 아이 낳는 능력에 두는, 그리고 여자로 하여금 자신의 육체와 불화하게 만들어 수치심과 죄의식에 사로잡히게 하는 그런 마리아는 도리어 여성의 영적 순례에 걸림이 된다.

41) R.R. 류터,『새 여성ㆍ새 세계』, 85쪽.

이렇게 해서 류터에 의해 새롭게 재해석된 마리아는 새 언약, 곧 “여자가 남자를 안으리라”(예레미야 31:22)고 한 새 언약으로 이루어질 종말론적 인간을 나타낸다.42) 더 나아가 마리아의 동정성은 메리 데일리(Mary Daly)에 의해 “남성과 분리된 여성의 자율성, 즉 그녀 자신의 온전성과 통전성의 상징”으로 재조명되기도 한다.43) 오늘날 여성신학자들은 이렇듯 모든 종교언어가 상징이요 은유라는44) 이해의 지평에서 ‘동정녀’의 의미도 ‘가부장적 부계혈통주의에 물들지 않은 새 여성’을 가리킨다는 식으로, 해석의 가능성을 폭넓게 열어두고 있다.45)

42) 윗 글, 86쪽. 43) 메리 데일리,『하나님 아버지를 넘어서』, 황혜숙 옮김 (이화여대 출판부, 1996), 178쪽.
44) 신학의 과제란 특정한 시대와 장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하나님 언어를 재구성하는 일이라고 믿는 샐리 맥페이그는 은유야말로 세속적 언어로 종교적 상징을 담아내기에 가장 적합한 그릇이라여긴다. 구미정,「샐리 맥페이그의 생태여성신학」, 한국교회환경연구소 엮음,『현대생태신학자의 신학과 윤리』(대한기독교서회, 2006), 81쪽 ; Sallie McFague, Speaking in Parables: A Study in Metaphor and Theology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75), 6쪽과 샐리 맥페이그,『은유신학: 종교 언어와 하느님 모델』, 정애성 옮김 (다산글방, 2001), 35쪽도 볼 것.
45) 한국염은 동정녀 탄생의 의미를 그리스도라고 하는 새로운 인간의 탄생에 남성이 배제되었다는 것, 다시 말하면 “새로운 구원의 세계는 가부장적 질서를 통해 유지될 수 없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고 제안한다. 이를테면 동정녀 탄생은 “가부장적 질서의 종말을 고하는 서곡”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염,「아시아 여성과 마리아」, 정숙자 외 10인,『생존과 해방을 향한 여정』(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9), 293쪽.

그런데 이와 같이 하나의 종교언어에 대한 창조적인 해석이 ‘자의적인’, 또는 ‘임의적인’, 심지어 ‘파괴적인’ 해석이라는 혐의를 받지 않으려면, 그에 앞서 성서비평학의 도움을 받는 것이 필수다. 그 과정을 생략하고 건너뛰어, 문자적 해석에서 창조적 해석으로 곧장 넘어가게 되면, 이른바 정통 근본주의 신학의 옹호자들에 의해 사이비 이단으로 몰릴 소지가 많다. 물론 해석에 임할 때 행간을 읽어내는 상상력이야말로 어쩌면 가장 중요한 도구이자 자산일 것이지만, 경직된 학문 토양에서는 상상력이 허용되기 어려울 법 아닌가? 이러한 의미에서 김재준의 고등비평은 여성신학을 위한 상상력의 틈새를 마련해준 고마운 문지방이라 하겠다.

[Ⅳ] 교권주의를 넘어 모태교회로

앞서 언급했듯이, 류터 같은 경우는 교회가 수동적이고 의존적이며 자기희생적인 성모 마리아의 이미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한, 그것이 하나님과 세계, 목회자와 회중, 남성과 여성 사이의 위계체계를 뒷받침하고 공고히 하는 데 기여한다고 하여, 교회의 여성화를 부정적으로 보는 입장에 선다. 그런 반면에 피오렌자는 여성해방적 성서해석의 해석학적 중심으로서 아예 ‘여성교회(wo/men-church 또는 ekklesia gynakion)’를 제안하는데, 이 여성교회는 가부장적 성차별주의가 야기하는 구조적 죄의 영적 내면화를 거부하고, 그러한 죄를 신학적으로 연구할 수 있게 하며, 여성들의 변화와 해방을 위한 투쟁을 격려하고, 여성의 종교적 재능과 힘을 축하하는, 언제나 개혁하는 교회(ecclesia reformanda)의 이름이라고 설명한다.46) 말하자면, 여성교회는 “부자, 권력자, 연장자, 남자, 성직자 중심의 가부장적ㆍ위계적 모델”이 아니라, “가난한 자, 힘 없는 자, 연소자, 여자, 평신도가 대접받는 포괄적ㆍ참여적 모델”에 입각해 세워진 교회의 상상적 이름이다.47)

46) E.S. 피오렌자, 윗 글, 43쪽 ; 피오렌자는, 이제까지 ‘인간’의 대명사가 된 ‘man’이 사실상 남성을 규범적 인간으로 상정한다고 지적하면서, 주변화되고 억압된 여성을 지칭하는 ‘wo/man’이라는 신조어를 통해 여성뿐 아니라 남성을 동시에 포함하는 용어로 사용하고자 하였다. 즉 남성들은 이제 ‘wo/man’이라는 용어를 만날 때마다, 여성들이 ‘man’ 앞에서 경험했던 것처럼, 자기도 그 용어에 포함되는가를 고민하는 단계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피오렌자는 하나님에 대해서도 유한한 인간의 언어가 무한한 하나님을 표현할 수 없다는 뜻에서 ‘G*d’라는 용어를 새롭게 제안하기도 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이름이 정형화되고 구체화되는 것의 위험을 경계하려는 의미라고 한다. Elisabeth S. Fiorenza, But She Said: Feminist Practices of Biblical Interpretation (Boston: Beacon Press, 1992), 5~7쪽. 47) 피오렌자의 교회론은 다음의 책에 상세히 소개되어 있다. Elisabeth S. Fiorenza, Discipleship of Equals: A Critical Feminist Ekklesialogy of Liberation (Herder & Herder, 1993).

김재준의 한국교회 비판도 대략 이러한 맥락이 아닐까 싶다. 김재준에게 교회는 무엇보다도 어머니의 품이었다. 김재준은 영적인 어머니로서 교회의 역할을 인정하고 또 촉구했다. “신자가 모여서 교회를 만든 것이 아니라, 교회라는 어머니 품안에서 신자가 나서 자라는 것이다.”48)라는 묘사는, 교회를 세상의 여타 조직체와 나란히 보지 않고 이른바 영적인 ‘하늘 기관’으로 보는 견해를 반영하지만, 나아가 그의 교회론을 ‘모태교회’라 이름 지을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교회는 신자를 낳는 기관이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교회의 구성원이 된다는 뜻이 아니라 그에 앞서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뜻을 함축한다. 그러니까 교회는 자연인이 성령의 사람으로 거듭나도록, 다시 말해 이 세상질서로부터 떠나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고 실현하도록 양육하는 기관, 곧 모태가 되어야 한다.49)

48) 『全集』제16권, 238~239쪽. 49) 여기서 김재준이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김재준은 1948년,「인간성의 한계와 복음」이라는 글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렇게 설명한다. “기독교인의 최고 사상은 하나님 나라가 인간 사회에 여실히 건설되는 그것이다. 그러나 이 ‘하나님 나라’라는 것을 초세간적 내세적인 소위 천당이라는 말로서 그 전부를 의미한 것인 줄 알아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뜻이 인간의 전 생활에 군림하여 성령의 감화가 생활의 전 부문을 지배하는 때, 그에게는 하나님 나라가 임한 것이며, 이것이 사회에 침투되며 사선을 넘어 미래세계까지 생생발전하여 우주적 대극의 대낙원의 날을 기다리는 것이 곧 하나님 나라의 전모인 것이다.”『全集』 제1권, 159쪽. ; 모태교회에 대한 좀 더 상세한 설명은 필자의 졸고,「무덤에서 모태로: 한국교회의 환골탈태를 위한 대안적 상상력」,『신학사상』제145집 (2009, 여름)을 참고할 것.

교회론이 이렇듯 여성적이다 보니, 교리를 수호한다는 명분하에 실상은 권력 쟁탈에 눈이 먼 남성화된 교회가 그의 성에 찰 리 없다. 김재준에 따르면, 참다운 정통 신앙이란 어느 특정한 신학 사조를 보수(保守)하는 게 아니라 복음서가 전하는 예수로 돌아가 가슴으로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분의 가르침을 살아내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죽은 문자와 화석화된 교리를 목숨보다 더 중히 여기고 “교회라는 조직체를 하나님 나라와 일치시킬 정도로”50) 교회주의가 강해서야, 교권에 대한 관심이 노골적일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비판이다.

50) 全集』 제9권, 364쪽.

김재준은, 목사는 무엇보다도 ‘시인’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적어도 “시인의 마음을 이해해야 하고 그 마음을 가져야 한다. 문학을 좋아해야 한다. 미술 애호도 목사에 대한 불가피한 요청이다. 목사가 서도(書道)나 그림이나 동양 묵화나 서양화나 간에 영영 거들떠볼 의욕도 갖지 않고, ‘쓴 오이’ 보듯 경멸한다면 그는 그리스도 심정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스도는 시혼(詩魂)이 가슴에서 ‘샘’처럼 흐르는 분이었기 때문이다.”51)

51) 『全集』제15권, 41쪽.

전통적으로 ‘영적 아버지’라 해서 카리스마적 권위주의가 권장되어온 주류 목사론에 비해 김재준의 목사론은 얼마나 소박한가? 언제나 독재에 저항하는 민주화 운동의 선봉에 서 있으면서도 시심(詩心)을 잃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가 신비다.52) 이러한 김재준의 목사론은 출애굽 당시 홍해를 건넌 다음에 소고 들고 노래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한 미리암의 리더십을 떠올리게 한다. 혹은 도(道)를 “물들이지 않은 명주의 순박함”과 “다듬지 않은 통나무의 질박함”(도덕경 19장)에 비유한 노자의 가르침과 통하는 면이 있다. 노자는 말했다.

52) 김재준이 1966년에 쓴 종교시에 이동훈이 곡을 붙여 탄생한 찬송(“어둔 밤 마음에 잠겨”)을 보면, 시대적 고민을 끌어안은 시인 목사의 기도 같은 노래가 심금을 울린다. 3절은 제자 문익환이 이어 붙였다.

세상에서 그지없이 부드러운 것이 세상에서 더할 수 없이 단단한 것을 이겨 냅니다.
‘없음(無有)’만이 틈이 없는 곳에도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 도덕경 43장53)

53) 노자,『도덕경』, 오강남 풀이 (현암사, 1995), 187쪽.

사람이 살아 있을 때는 부드럽고 약하지만 죽으면 단단하고 강해집니다.
온갖 것, 풀과 나무 살아 있으면 부드럽고 연하지만
죽으면 말라 뻣뻣해집니다.
그러므로 단단하고 강한 사람은 죽음의 무리이고
부드럽고 약한 사람은 삶의 무리입니다.
- 도덕경 76장54)

54) 윗 글, 320쪽.

보수 근본주의 신학자들과의 오랜 영적 투쟁을 통해 그는 깨달았을 것이다. 정말 좋은 저항은 영성에서 나온다는 것, 갓난아기의 속살같이 부드러운 마음을 잃고 돌처럼 굳은 마음으로 변하는 순간 이미 생명은 떠나고 만다는 것을 말이다. 김재준이 그 모진 세월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그러니까 역설적으로 그가 시인의 마음을 가진 까닭이었다.

시인의 감성을 가진 그에게 한국교회는 생각할수록 아픈 상처였다. “맘몬의 사동(使童)”55)으로 전락한 교회, 교파는 그저 “회사 간판”56)에 불과할 뿐, 개교회 차원에서는 극도로 천박한 “부르주아적 기독교”57)로 ‘상품’이 통일된 교회가 그를 아프게 했다. 한국교회가 진정한 의미에서 다시 기독교화 되어야 한다는 그의 예언자적 외침은 그래서 나왔다. 시인과 예언자는 김재준의 인격에서 둘이 아니라 하나였다.

55) 『全集』 제13권, 394쪽. 56) 김재준,『하나님의 의와 인간의 삶』, 98쪽.
57) 윗 글, 같은 부분.

김재준은 한국교회의 고질병을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보았다. 첫째, 복음을 성서무오설에 입각한 성경주의적 ‘책 종교’로 전락시키는 위험, 둘째, 몰역사적이고 사회참여 책임을 오히려 비판하는 타계주의적 신앙, 셋째, 물량주의적 성장론에 빠져 버린 데서 오는 세속화의 위험이 그것이다.58) 이러한 고질병을 치유하기 위해 그는 교회개혁의 방향을 다음과 같이 세 갈래로 잡았다. 첫째, 신학하는 태도를 개혁할 것. 옛 것에 사로잡히는 ‘정통’이나 ‘보수’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신학에 자기를 개방하여 진지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배워야 한다. 둘째, 교회구조를 개혁할 것. 권위주의를 바탕으로 권력구조를 다지려는 데 분주한 악동들은 사라져야 하고, 직분이나 직책을 권력으로 생각하는 의식이 사라져야 한다. 셋째, 교회의 대 사회관계에 눈을 떠 ‘예’와 ‘아니오’를 분명히 말할 것.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의’에 대한 무관심 또는 무책임을 스스로 증거하는 것으로 심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59)

58) 김경재, 윗 글, 157쪽. 59) 김재준,「개혁교회의 개혁」,『제3일』1970/10 ; 천사무엘, 윗 글, 217~218쪽에서 다시 따옴.

물론 김재준은 한국교회에 만연한 성차별주의에 대해 구체적으로 집어서 말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가 말하지 않았다고 해서 관심이 없었다는 식으로 넘겨짚으면 곤란하다. 예수도 따지고 보면 오늘 우리가 부닥치는 많은 문제들에 대해 말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많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예수를 믿는다. 정확히 말하면 예수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믿는다. 마찬가지로 김재준의 시적인 감수성과 예언자적 상상력으로 미루어 보건대, 그가 구상한 교회개혁의 큰 그림에는 반드시 여성을 위한 ‘제3일’의 약속이 마련되어 있다고 믿을 수 있는 것이다.

[Ⅴ] 콩나물 신학을 하련다

김재준의 제자들은 그가 졸업반 학생들에게 필수과목으로 목회학을 강의할 때, “학생을 가르치는 그의 모습은 애정이 넘치는, 딸을 시집보내는 어머니의 모습과 같았다”60)고 회고한다. 김재준은 고난의 시절 동안 자연을 통해 위로를 받으며, 우주 삼라만상에 임재해 계신 하나님의 은총에 홀연히 눈이 떠진 모양이다.61) 그의 사상의 알짬인 ‘전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론이 무르익어 갈수록 그의 생태영성도 점차 깊어져서 그의 말년은 그야말로 어머니 자연의 화신인 양 그윽하고 너그럽기 한량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60) 박봉양,「장공 선생님」,『세계와 선교』제141호 (1993), 10쪽 ; 김경재, 윗 글, 223쪽에서 다시 따옴. 61) 이우정의 회고에 따르면, 김재준은 ‘자연과 더불어 사신 분’이었다. “흔히들 자연을 객관화하고 관상의 대상이나 착취의 대상으로 여기는데, 장공 선생님은 자연의 일부가 되어 자연이 곧 자신의 삶의 일부인 것처럼 자연에 대한 친밀감, 사랑, 때로는 두렵고 경건한 마음을 가지시기도 했다.……장공 선생님은 그 자연 속의 한 그루 거목과 같으신 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가지 잎이 무성하여 사람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그 그늘에서 쉬고 갈 수 있게 해 주신 분이시다.……그분의 인품과 마음은 항상 넉넉한 여유를 가지고 계셨다.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억지로 붙잡지 않는 유연함이 있으셨다.” 이우정,「선생님이 남기신 인상」,『세계와 선교』제123호(1990), 9쪽.

김재준은 글쓰기에 있어서 언어도 매우 감각적이고 여성적인 섬세함이 돋보였던 것 같다. 신앙지『제3일』을 내는 그의 목표는 땅의 현실을 외면하는 “관념화한 지식인들의 지적 유희가 아니라, 예수의 성육신 사건을 가장 위대한 우주적 ‘혁명 사건’이라고 해석하는 ‘성육신 신앙 고백’의 표출”62)이었다. 김재준은 예컨대, 흔히 다른 종교잡지가 그러하듯이, 외국의 유명한 학자들의 학설을 소개하는 데는 전혀 관심이 없고, 완전히 ‘말씀’과 ‘예수’와 ‘복음’을 새김질하고 숙성시킨 ‘자기 살과 피로 변한 생명의 말’을 쏟아냈다.63) 가령,「말씀을 새긴다」는 제목 아래 연재된 복음서 연구는 김재준의 언어 감각이 얼마나 생태여성적인가를 잘 보여준다.

62) 김경재, 윗 글, 152쪽. 63) 윗 글, 같은 부분.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이다”(마4:4) ……‘먹는다’는 것이 중요하다. 밥이 있어도 그것을 먹는 인간만이 사는 것이다. 먹는다는 것은 그것을 씹어 위장에서 소화시켜 자기의 피와 살이 되게 해야 한다는 말이다.……‘말씀’도 그렇다. 먹어야 한다. 그 말씀을 내 마음에 넣어 음미하고, 그것을 소화하여 내 생각, 내 감정, 내 생활, 내 행동으로 되게 해야 한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말’로 되어 내 몸, 내 삶으로 고백되어야 한다는 말이다.……이것을 나는 말씀의 인간화라고 말한다.……그러므로 말씀을 먹는다는 말은 예수를 먹는다는 말이 된다.64)

64) 『全集』 제9권, 33~34쪽.

말씀을 먹는다는 표현은 다시 노자의 ‘식모(食母)’사상을 떠올리게 한다. 노자에게 도는 만물의 어머니이므로, 식모, 곧 어머니를 먹는다는 것은 도에 따라 사는 삶을 의미할 터이다. 성서를 보면 뭔가 대단히 중요한 사건들이 먹는 것과 연관되는 경우가 많다. 만나와 메추라기가 그렇고, 보리떡과 물고기가 그러하며, 빵과 포도주가 그렇다. 심지어 예수 자신이 스스로를 “하늘에서 내려온 빵”(요한복음 6:48)이라고 했으니, 기독교인에게 예수를 먹는다는 것은 예수를 살아낸다는 것과 다름없는 말일 것이다. 김재준의 성육신 이해는 결국 우리 자신이 일상에서 예수를 살아내는 일로 귀결된다. 그에게 신앙생활은 곧 생활신앙이다.65)

65) 김재준에게 신앙은 철저히 “현실화한 신앙, 생활화한 신앙”이었다. 그것은 정치, 경제, 교육, 산업, 문화 등 삶의 전 영역을 포괄하는 것인데, 만약 종교가 그런 ‘생활’의 전영역과 무관한 것처럼 말한다면 그것은 ‘기만’이다. “종교는 부분이 아니다. 우주 전체를 포함한 대 ‘씨스템’이요 인간의 전부를 번제로 요구하는 엄숙한 명령이다. 우주와 인생 어느 적은 부분이라도 이 종교에서 제외될 권리를 가진 것은 없다.”『全集』 제1권, 183쪽.

이러한 김재준의 신학적 기조는 생태여성신학의 기조와 공명하는 바가 크다. 폴 샌트마이어는 서구신학의 사유방식이 크게 두 가지 기조로 흘러왔다고 지적한다.66) 하나는 “영적인 기조(spiritual motif)”로서, 이 기조에 터한 신학은 위계적이고 관념론적으로 전개될 공산이 크다. 반면에 “생태학적인 기조(ecological motif)”로 이루어진 신학은 자연 안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축하는 유기적인 에너지가 충만하다. 이렇게 볼 때 성육신 신학을 강조하는 김재준은 후자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아울러 육체성, 물질성, 이세상성, 성성, 여성을 긍정하는 성육신 신학은 생태여성신학의 주요 토대가 되기 때문에, 김재준의 신학과 생태여성신학은 앞으로 대화할 여지가 많다고 본다.

66) Paul Santmire, The Travail of Nature: The Ambiguous Ecological Promise of Christian Theology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85), 9~10쪽.

김재준의 여제자 중 한 사람은 ‘콩나물 신학’에서 큰 자극을 얻었노라고 고백한다.67) 언젠가 김재준의 집을 방문한 그녀에게 스승이 권했단다. “너희들 콩나물 신학을 해야 해. 콩나물은 물을 주면 빠지지. 그래도 그 콩나물은 자라거든. 너희도 나가서 일하노라면 ‘내가 이런 일 할 것인가’ 할 때가 있을 거야. 그럴 때마다 콩나물 생각하고, 물은 빠져도 콩나물은 자란다고……거기서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진다고 생각해.”

67) 이 회고는 기장 여신도회 회장을 지낸 나선정의 이야기로, 김윤옥 외, 윗 글, 377쪽을 볼 것.

선생은 그렇게 뭉근한 희망으로 고단한 삶을 버텼던 모양이다. 유교로부터 개종하고, 근본주의 신학과 결별하고, 서구 엘리트 신학에 항거하면서, 기존질서에 순응하는 방식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대안을 찾아 나서는 방식으로 전향적인 생을 살았던 선생은 콩나물 속에서도 하나님을 보았다. 이렇게 둥근 영성을 지녔기에 그가 아름다운 경계인으로 기억되는 게 아닐까?

한국교회가 위기에 놓였다 한다. 이대로 가다가는 죽는다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누군가 희망의 틈을 내고 길을 열어야 한다. 이래저래 선생이 그리운 계절이다.

천지간에 나 하나 바로 사는 것 이 지구 위 60억 인류 모두가
나처럼 먹고 쓰고 생활한다면
이 세상이 당장 좋아질 거라고
떳떳이 말하며 살아가는 사람

내가 먼저 적게 벌고 나눠 쓰면서 덜 해치고 덜 죄짓는 맑아진 얼굴로
모두 나처럼만 살면 좋은 세상이 되고
푸른 지구 푸른 미래가 살아난다고
내가 먼저 변화된 삶을 살아내는 것

그것이 진리의 모든 것이다 그것이 희망의 모든 것이다
그것이 혁명의 시작과 끝이다

천지간에 나 하나 바로 사는 것

- 박노해, “나 하나의 혁명이”,『사람만이 희망이다』

구 미 정 교수

이화여대 철학과와 동 대학원 기독교학과를 졸업했다. 기독교윤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여성과 자연, 생명과 평화를 화두로 삼아
다양한 방식의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나누고 있다.

저서로 "이제는 생명의 노래를 불러라"(2004), "생태여성주의와 기독교윤리"(2005),
"한 글자로 신학하기"(2007),
"야이로 원숭이를 만나다"(2008),
"호모 심비우스: 더불어 삶의 지혜를 위한 기독교윤리"(2009)가 있으며,
역서로 "교회 다시 살리기"(2001)
"기초생명윤리학"(2003),
"생명의 해방"(근간예정), "과학윤리 입문"(근간예정) 등이 있다.

현재 숭실대학교 기독교학과 겸임교수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