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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좌 및 강연

[목요강좌 제9회] 논평 / 김경재 박사

목요강좌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7-07-18 11:27
조회
1037

[9長空사상연구 목요강좌] 논평
일시 : 200646() 오후 5-7

한문덕의 “장공 김재준 신학사상의 유교적 요소”를 읽고

논평자 : 김경재 박사(전 한신대 교수)

[1] 장공의 신학사상의 형성과정과 그 내용 속에 녹아 있는 유교적 요소를 본격적으로 연구한 최초의 연구논문으로써 그 학문적 가치를 높이 평가한다. 무엇보다도 방대한 분량의 『장공전집』을 하나하나 뒤져서, 장공이 직접 인용하거나 간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유교와 관련된 언급자료를 간추려내고, 그 출처를 四書三經에서 찾아내어 인용원문과 출처를 밝혀 정리해 준 문헌자료 비평적 연구업적이 크다. 더 나아가서, 단순한 문헌자료 연구만이 아니라, 유교사상이 장공 신학 형성에 끼친 영향을 해석학적 ‘영향사 의식’(가다머)이라는 관점에서 추적하고, 장공이 유교사상을 어떻게 수용하고 그리스도교 신앙 안에서 승화시켜 갔는가를 연구한 노력이 돋보인다.

[2] 이 논문은 서론과 결론을 제외하면 본론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2장 “김재준의 유교이해”와, 제3장 “김재준의 역사참여적 신학과 유교의 관계”가 그것이다. 제3장을 제2장 속에 포함시켜 논할 수도 있지만, 장공 신학의 한국 신학사에서 위치가 ‘역사참여적, 역사 변혁적 성육신 신학’이라고 자리매김 되어있기 때문에, 그 중요성에 주목하여 장공의 정치신학이 공맹의 유교적 정치철학 특히 맹자의 위민․여민․역성 정치사상과 깊은 관련성이 있다고 보고 그것을 좀더 구체적으로 논하기 위해 장을 독립시킨 것이다. 제2장은 다시 구체적으로 세분되어 (2.2) “유교를 바라보는 시각” (2.3) “김재준의 유교경전 이해”로 세분된다.

[3] 먼저 저자(한문덕)는 장공이 유교를 대하는 기본적 입장을 정리한다. 결론을 말하면, 우선 유교를 윤리적 도덕철학이라고만 보는 입장에 대하여, 장공은 유교를 하나의 고등종교 형태로 보는 견해를 취한다(6쪽, 10쪽). 유교는 비록 성직제도중심이거나, 종단중심의 제도적 종교이거나 교의적인 종교는 아니지만 분명히 ‘종교적’이다. 유교를 단순히 윤리적 교양철학이 아니고 종교적이라고 보는 뚜 웨이밍(Tu Wei-ming)의 입장처럼 유교 또한 “초월적인 것에 대한 성실한 반응과 공동적 행위로서의 궁극적 자기변화”를 추구하며 “인간본성에 고유하게 주어진 가능성으로써 인간의 자기초월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공맹사상에서 천이나 천명사상, 성리학에서 인간의 본성론, 조상제사 상제례 등등이 그것을 암시한다. 그리고, 유교가 역사 속에서 그 본래적 생명력을 잃어가는 중요한 이유로써 ‘종교성’을 약화시키고 ‘형이상학적 철학’ 혹은 도덕체계로 변질하거나, 번문욕례(繁文縟禮)의 물상화된 형식주의적 예(禮)체계로 경직화시키거나 단순화시킨 때부터라고 보는 견해도 타당하다고 여겨진다(5쪽 참조).

둘째로 중요한 것은, 그러면 장공은 유교를 종교로 보되, 기독교와의 상호관계성에서 어떤 위치를 부여했는가에 대하여 논한다. 저자는 장공의 입장을 흔히 교과서적 구분론인 ‘배타주의’, ‘포용주의’, ‘다원주의’ 틀을 만들어 놓고 그 중에 어느 한가지 입장에서 단정하여 귀속시키려는 단순한 발상에 제동을 걸고 있다. 장공의 기본입장은 ‘그리스도 예수 복음 안에서 포괄적으로 온전한 성취’가 이뤄졌다고 믿는 신앙인 이라는 점에서 장공은 포용주의 입장에 가깝다. 그것은 하나의 서구이론을 받아드린 수용결과로써가 아니라, 자신의 삶의 여정 속에서 그가 체험한 진리체험, 구원체험, 은혜 차원의 초월체험의 실존적 고백이라는 점에서 그렇다(2쪽). 그러나, 이러한 포용주의적 성취설이 잘못 이해되면, 제도적이고 역사적인 한 종교형태로써의 기독교가 유교보다 우월하다거나 전자가 후자를 완성한다는 식의 단순논리로 속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영적 생명 진리의 실재로서 ‘복음’과 ‘축적된 전통의 총체로서 기독교 종교’는 구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나친 교리적인 유신론적-초월적-인격신론이 살아 계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대우주 자연 속에서 일하시며 생동하는 맥박을 느끼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는 오류도 있으므로 유교적 자연신학에서 배울 자세를 취한다. 저자가 공자의 말씀으로써 “하늘이 무슨 말을 하리요. 사시가 바뀌고 백물(百物)이 철에 따라 생육하지만,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더냐? ”(天何言哉)라는 공자의 말씀(논어, 陽貨. 19)의 해석도 흔히 이기론적 신유학의 해석처럼 천주를 ‘原理的 天’ 개념으로 환원시키지 않는다. ‘없는 것처럼 존재하는 하늘의 존재방식으로 이해하면서 인격적인 하늘이 침묵하는 것으로’(16쪽, 전집 제5권, 243쪽) 해석하거나 ‘신성한 하늘이 일상에로 침투하는’(16쪽, 전집 제4권, 248쪽) 하나님의 면모를 설파한 것으로 해석하는 장공의 입장을 소개하는 것은 매우 신선한 느낌까지 든다.

[4] 장공이 유교를 평가하는 입장을 정리하는 저자의 논문을 읽어가면서, 요즘 한국 지성계에서 새롭게 조명 받고 있는 다석 유영모의 유교해석과 장공의 그것과의 유사성에 새삼스럽게 놀래지 않을 수 없다. 두 분 모두 유교를 로고스의 계시에 대한 반응으로써 유교의 종교성을 인정한다는 점은 두말 할 것도 없다. 무엇보다도, 신유학의 이기설이나 음양오행설보다는 유교의 진정한 생명력과 최고가치는 원시유교의 ‘하늘님 신앙’이라는 것이다. 일본 유교학자 나가에 도쥬(中江藤樹)의 효행론을 소개하면서 부모에 대한 효도는 효의 근원이자 궁극적 대상인 ‘태허황상제’(太虛皇上帝)에 대한 공경에 이르러야 한다는 입장을 장공은 소개한다. 그리고 부연하기를, ‘태허황상제’가 ‘하나님’에 대한 고대 중국적 표현인즉, 예수야말로 아버지 하나님께 끝까지 순명한 효도의 극치라고 장공은 글 쓰고 있다(전집, 3권, 111쪽). 이러한 입장은 다석이 기독교를 이해하되 전형적인 ‘유교적 기독교 이해’의 백미로써 예수님을 ‘父子有親’의 완성자로서 이해하는 것과 기본적으로 같은 입장이다.

[5] 그러나, 다석은 유교를 기독교 복음이 전래되기 전의 “자유하시는 성령의 역사(役事)에 의한 단편적인 불명료한 말씀”(2쪽, 전집, 8권 266쪽, 5권 244쪽)이라고 보는 장공의 입장보다는 더 적극적이다. 도리어, 양자의 큰 차이는 종교 특히 기독교의 궁극적 목적과 사명에 있어서, 다석은 ‘개인 영적 생명의 영글음’이라고 보는데 대하여 장공은 ‘역사현실 변혁을 통한 대동세계의 실현’이라고 본다는 점과 예수의 대속신앙을 장공은 받아드리고 다석은 그리스도를 앞선 완성자로서 받아드린다는 점이 다르다. 다석과 장공의 기독교 이해에서 보면, 역사현실 및 정치사회 현실과 종교와의 관계에 있어서 장공의 이해는 훨씬 더 인간존재의 사회성과 역사성을 강조하고 신앙의 공공성을 강조하는 ‘大乘的 立場’임을 간파할 수 있다. 그러나 마치 테라바다 부디즘(Theravada Buddhism)이 마하야냐 부디즘(Mahayana Buddhism)보다 더 발전되고 성숙한 불교라고 말할 수 없음 같이, 다석과 장공의 기독교 신앙의 궁극적 지향점 이해에 차이가 나는 것은 옳고 그름이나 우열이 아닌 ‘차이’로써 인정하고 존중되어야 한다.

[6] 장공이 20세 되던 때까지 직접 몸담고 자라며, 그 속에서 정신적 젖과 피를 수혈 받고 살았던 유교에 대한 비판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가부장중심의 권위질서, 삶과 사회의 규범으로서 복고주의, 여성 폄하, 번문욕례의 형식주의 등을 들지만, 신학적으로 가장 중요한 토론쟁점은 유교에는 진정한 의미의 ‘역사의식’이 없으며, 그 결과 유교의 치하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창조나 혁명’은 없다는 견해이다. 이 테마는 이 글의 저자가 독자에게 정당하게 주의하도록 요청하는 바와 같이, 단순한 과거에로의 퇴행적 반복이거나 전통집착이라고 유교를 이해하면 안 된다는 것을 전제한다. 저자가 말하는 대로 “(고전 전통문화와 유교사상의) 전달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해석과 적용의 새로움”(7쪽)이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창조와 혁명의 동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를 ‘인격적 결단’의 창조적 연속과정이라고 보는 장공의 견해를 두고 말하더라도, 유교사회에서 ‘인격적 결단’을 내리고 참에 순명한 인물들의 얼마든지 있다. 그렇다면 장공이 유교 안에 결여되어 있다고 보는 역사의식이란 것의 본질은, 헤브라이즘과 그리스도교의 종교 유형적 특성, 다시 말해서, 엘리아드와 폴 틸리히와 율겐 몰트만이 강조하는 셈족계 아브라함 종교의 특징으로 언급하는 ‘종말론적 약속과 기대의 실재관’을 말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7] 본 논문의 중요한 의미는 제3장 ‘김재준의 역사참여적 신학과 유교의 관계’ 속에서 공맹의 정치신학과 장공의 역사참여신학에 대한 기존의 이해보다 훨씬 더 적극적인 ‘영향사적 의식관계’를 주장하면서 독자들을 설득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전통적으로 장공의 역사참여적 현실변혁이론은 장공이 성서신학계보에서 예언자신학의 영향을 받았고, 이론신학적으로는 리챠드 니버의 ‘문화벽혁설’에 영향 받았다고 이해되어 왔다. 물론 맹자의 정치철학도 관계가 있다고 생각은 해왔지만, 본 논문에서는 맹자의 정치철학과 장공의 역사참여신학은 기존의 상호관계성보다는 훨씬 더 깊다고 본다. 물론 장공의 역사참여신학의 신학적 기초로써 저자 또한 여러가지 기독교 성서적 신앙의 뿌리를 인정한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신앙, 예언자 운동, 그리스도의 성육신 신앙, 교회의 본질로써 사회선교 등이다(19쪽).

그러나 그보다 앞서서, 혹은 동시적으로 공맹의 정치사상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데, 왜냐하면 공맹의 정치사상은 왕도정치를 지향하지만, 단순한 개인의 회개와 개과천선을 설파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정치의 책임적 수행을 통해서 대동세계를 실현시킬 수 있고, 구현시켜야 한다는 신념과 사명감이 짙고, 공자와 맹자 자신들이 정치권력이 탐나서가 아니라 고대사회 군주들의 교만이나 그들에 의한 인격적 수모를 참아가면서, 직접 정치현실에 책임적 자리를 맡으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인간본성에 대한 포기하지 않는 신뢰, 인간의 자기수양론에 대한 대책과 방법, 爲民․ 與民 정치철학과 폭군의 교체 제거에 대한 가능성, 현실적 삶의 중요성 강조 등이 어우러져 공맹의 정치철학을 구성하는데, 장공은 일찍부터 그 사상을 알고 있었고, 성서적 신앙에 의해서 더욱 승화되고 구체화되었다고 이해한다.

한마디로 장공의 역사참여신학과 생활신앙은 유교적 풍토에서 자란 장공이라는 인물이 복음의 생명씨앗을 받아, 유교적 공맹철학이 제공하는 토양의 양분을 흡수하면서 꽃피어낸 결과라고 보려는 것이 저자의 관점인 것이다.

[8] 한신대학교 건교 정신 속에, 김대현-송창근-김재준 모두 다, ‘우리의 주체적 신학형성’이라는 과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바, 이번에 저자의 연구를 통해 장공 신학 속에 스며 있고 녹아 있는 유교적 요소를 이전보다 심도 깊게 발굴해 냈고, 앞으로 과제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본 논문발표의 의미가 크다고 아니할 수 없다고 논평자는 확신하고 깊은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