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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강좌 제30회] 성서비평학의 전망과 기장 신학 - 창세기에서 놓친 본문들을 다시 읽어내기 - / 이영재 박사

목요강좌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7-08-17 12:42
조회
354

[제30회 長空사상연구 목요강좌] 발제
일시 : 2013년 4월 4일(목) 오후 5~7시


성서비평학의 전망과 기장 신학 - 창세기에서 놓친 본문들을 다시 읽어내기 -


이영재 박사
(전주화평교회 담임목사 / 전주성경학당)


[1] 들어가면서


최근에 박형룡과 김재준을 평가한 글을 보았는데 이 글은 박형룡을 근본주의로 규정하면서 한국교회에 경건의 기초를 놓았다고 평가하는 한편, 장공 김재준을 진보주의라고 규정하면서 신학과 사회운동을 접목하는 계기를 한국교회에 마련해 주었다고 평가하고 있었다.1) 장공은 민주주의에 관한 글을 여러 편 남겼고 조국의 민주화 과정에서 장준하 선생과 함께 사회개혁운동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그래서 그를 진보주의라고 규정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장공의 진면목은 성서비평을 향한 열정에서 찾아야 한다고 본다.


1) 「농촌과 목회」, 2013년 봄.


나는 이번 <長空사상연구 목요강좌>에 발제하는 기회를 틈타서 다른 무엇보다도 한국기독교장로회(이하: 기장)의 성립을 가능하게 한 그의 성서관에 집중하여 우리의 현주소를 한 번 되짚어 보려고 한다. 장공은 biblical criticism이란 영어를 ‘성서비판(聖書批判)’이라고 옮겨서 사용하였는데 이것은 당시 성서를 일점일획의 오류도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가르치던 축자영감설 내지 성서문자주의와 큰 충돌을 일으키기에 충분히 파격적인 용어였다. 감히 성서를 비평하다니? 그는 축자영감설을 맹렬히 비판함으로써 교조적 교권주의자로부터 성서의 진리를 수호하려고 하였다. 장공의 노력을 통해 한국교회는 성서비평학의 장을 열고 학문의 국제적인 교류로 나아갈 수 있었다. 기장이란 교단의 성립은 애초부터 성서비평학의 쟁점에서부터 자신의 정체성을 언제나 정립해 나가야 하는 생내적인 과제를 안고 있다고 할 수 있다.2)


2) 이 쟁점에 대해서 논할 때에는 언제나 1950년「십자군」에 발표한 그의 두 편의 논문에 의거해서 오늘의 과제를 검토해야 할 것이다.「金在俊全集」(이하: 장공전집) Ⅱ권, “축자영감설과 성서무오설에 대하여”, pp. 17-30; “성서비판의 의의와 그 결과”, pp. 57-66.


[2] 성서와 교리


교리는 성서의 내용에서 신앙의 주제들을 발췌하고 요약하고 정리한 것이다. 교리는 교회를 이끄는 교권자들이 성서를 일목요연하게 요약하여 평신도들의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도록 정리한 것이다. 그러므로 교리가 성서보다 상위에 있을 수 없으며, 성서 자체는 교리보다도 훨씬 더 풍부하고 자세한 내용을 담고 있다. 성서를 자세히 읽어서 교리가 담지 못하는 내용을 개진할 수도 있다. 또 교리가 성서 자체를 미처 다 읽어내지 못하여 다루지 못하고 빠뜨린 사항도 있을 수 있다. 따라서 교의학은 성서학에 의해 부단히 보충되어야 하며 성서학은 교의학과 무관하게 별도로 성서읽기를 진행해야 한다. 이러한 요구에서 가블러(Gabler) 이후 성서학이 출범하였다.


교회는 성서의 권위를 사수하기 위해서 성서 자체에 의거하지 않고 교의학에 의거하다가 오류에 빠지고 말았던 적이 많았다. 성서보다도 교회를 더 상위에 두고 교회의 교권 아래서 안전을 누린 교권주의자들이 성서학자들을 단죄함으로써 성서의 자유로운 연구를 방해하였던 것이다. 우스꽝스럽게도 성서학자들을 박해할 때마다 교권주의자들은 성서의 권위를 내세웠다.


이와는 반대로, 성서의 축자영감설이나 문자주의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성령의 영감무오설을 펼치다 보니 너무 왼쪽으로 멀리 나아가는 안타까운 오류도 생겨났다. 성서에서 모순되는 부분들의 상이점을 해석하기 위해서 너무 빨리 역사비평방법이 제시한 합리적 가설에 의존함으로써 성서의 본문이 지금 보여주고 있는 현재의 상태를 경전으로 받아들일 수 없게 되었다. 현재의 본문이 노정하고 있는 모순되는 듯 보이는 상이점을 통하여 현재의 본문이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지를 읽어내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말았던 것이다. 성서 본문 자체를 읽기보다는 본문의 형성과정을 연구하느라 본문을 조각내어 분석해야 했고, 그 결과 본문의 저술과 독자의 시대를 읽어내지 못하고 본문의 과거를 캐내어 본문의 형성사를 읽어내는 역사적 과업에 치중하고 말았다. 마침내 성서비평을 통해서 본문이 보여주는 모순과 상이점에 관한 의문을 해결하였다고 믿었지만, 정작 성서 자체가 뿜어내는 말씀에 대한 감응력은 약해지고 말았다.


현재의 성서가 말씀하고 있는 것을 받아서 삶 속에서 실천해내려는 경건의 노력이 성서비평학을 배운 설교가들에게서 점점 약해지고 자신의 경험과 논리에 성서를 종속시키는 경향성이 나타나게 되었다. 사회참여의 과제를 선도해온 한신대학은 민족주의와 통일 그리고 민주주의의 정치학에 대한 열정에 사로잡혀서 성서비평학의 연구를 소홀히 하는 경향성이 생겼다. 성서의 말씀에 입각하여 모든 정책을 입안하고 실천하기보다는 사회적 당위와 현실의 필요를 성서보다 더 앞세우는 경우도 생겨났다. 게다가 성서를 함부로 비평하는 습관에 젖어 있다 보니 성서 자체에 대한 경외심도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신학도들 가운데 성서를 열심히 읽지 않게 되는 이상한 풍조도 생겨났다. 신학교에서 이러한 풍조가 생겨나게 되자 목회 현장에서 성서공부를 게을리 하는 목회자들이 점점 늘어나게 되었다. 게다가 종교다원주의의 잘못된 영향으로 성서를 다른 여타 종교들의 경전들과 동일한 차원에서 읽으려고 시도하는 신학도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교권주의나 교리주의를 극복하려고 애쓰다보니 도리어 성서 자체를 경시하게 된 이상한 풍조가 생겨난 것이다.


[3] 성서비평학의 문제


역사비평학의 한 방법으로서 문서비평학은 한신대학의 성서연구방법론으로 채택되어 오래 동안 설교자가 될 학생들에게 가르친 성서연구방법론이다. 문서비평학은 본문의 형성사와 역사적 배경을 연구하는 데 유용한 것이지만, 성서의 본문을 문서단위로 분해하고 사문서를 각 단위로 이해함으로써 현재 본문의 온전성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였다. 역사비평학의 방법론으로서 양식사연구와 전승사연구와 편집사연구가 소개되어서 성서를 통시적 역사적으로 연구하여 성서본문의 형성사를 짚어보거나 성서본문의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비평학의 방법들이 성서 자체가 현재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최종본문을 올바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지 못하였다.


학문의 자유를 외치며 교권으로부터 대학의 자율권을 보장했으나 대학 자체가 교회에 올바로 봉사하지 못하는 학문의 침체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성서연구의 논문들이 다른 교단에서 나오는 것들 보다 앞서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한신대학의 일부 학자들은 사회에 대한 기장의 이미지를 자유주의자 교단의 모습으로 제멋대로 구성해 나가고 있다. 이에 현장에서는 한탄과 개탄의 소리가 드높아지지만 교회는 한신대학에 대해 아무것도 요구할 수 없는 형편에 빠져 있다. 대화와 소통의 고리가 끊겨 있다.


교회의 모든 설교는 성서의 본문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현재의 본문이 현재의 형태 그대로 그리스도를 어떻게 증언하고 있는지를 읽어내고 설교자가 그 그리스도 메시지를 성도들에게 선포할 때 성도는 그리스도를 기억하고 기념하며 그리스도를 찬양하며 그의 은혜에 감사하는 가운데 그를 따라 살려고 결단하도록 인도해야 한다. 역사비평학은 설교를 위한 방법론이 아니기 때문에 한신대학에서 공부한 설교자들은 성서연구와 설교를 자연스럽게 연결시키지 못하는 약점을 보이고 있다. 설교와 성서연구가 따로 놀다가 보니 기장의 설교자들은 현장에서 괴리감을 느끼고 다른 보수적인 교단이 내놓은 출판물들을 애독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교회에서 성서의 문자무오설을 신봉하는 보수파 설교자들은 성서를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는 경향성을 보이고 있다. 주관적 편향을 극복하기 위해서 그들은 주로 칼빈의 주석이나 웨스터민스터 교리의 틀 안에서 성서를 해석한다고 주장한다. 교리적 설교나 문자주의적 설교는 성서가 선포하는 무한히 다양하고 깊은 메시지를 일정한 틀 안에 가두어 두는 경향성에 빠기기 쉽다는 점은 간과한다. 문자주의적 경향성에 빠지면 인문학 일반과의 정당한 유관성을 지닐 수 없고 독단에 빠지게 됨으로써 교권주의에 빠진다.


역사비평학을 성서연구의 도구로 삼건, 아니면 문자무오설에 입각하여 교리를 설교의 도구로 삼건 간에, 설교자들이 성서의 최종본문을 읽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된다. 여기에 분열을 극복하는 단서가 보인다. 최종본문이 현재의 그 위치에서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가를 있는 그대로 읽어내려는 노력이 앞으로의 시대에 절실히 요청된다. 여기서는 창세기의 최종본문을 가지고 성서를 있는 그대로 읽어낼 수 있겠는지 설교자 제위와 함께 모색해 보려고 한다.3) 장공 김재준은 고등비평을 가리켜서 ‘역사과학적으로 연구한 성서문학사’라고 정의하였다.4) 또한 ‘문서편집설에 의하여 성서기록의 여러 가지 모순이 무리 없이 해결되며 점진적 계시라는 입장에서 지적, 도덕적, 또는 종교적 불완전성이 만족하게 설명되어 회의와 혼란의 구실이 제거되었다’라고 성서비평학의 성과를 높이 평가했다.5) 그러나 성서비평의 결과들이 교회 현장에서 수용할 수 없을 만큼 파격적인 경우도 많이 있다.


3) 한신대학에서는 박경철 교수가 최종읽기의 방법론에 열중하고 있다. 그러나 연구논문이 나오지 않고 있어 아쉽다.
4) 장공전집 Ⅱ권, p. 60.
5) 장공전집 Ⅱ권, p. 65.


예컨대 반시터즈(John Van Seters)는 창세기 14장의 본문이 B.C. 1,500년만큼이나 오래된 본문이 아니라, B.C. 8세기 무렵의 가나안의 사회상을 반영해 주고 있다고 분석한다. 그는 또한 하나님을 야훼라고 부르는 오경저자(J)가 역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헤로도토스와 거의 동시대 인물로서 오경은 헬레니즘 고전시대 곧 포로기에 처음 생겨났다고 주장하였다. 포로기 내지는 포로기이후 시대를 살았던 야훼기자 J는 소돔전쟁기를 아브라함의 시대에 발발한 사건으로 보도하기 위해서 역사적 자료들을 8세기 분열왕국 시대의 역사자료에서 뽑아 왔다고 분석했다.


성서비평학은 성서저자의 역사를 객관화하여 재구성한다. 성서역사에 따르면 아브라함은 B.C. 1,650년경의 인물이다. 이 시기는 고바빌로니아의 하무라비 왕이 법전을 집대성한 시대다. 또 아브라함은 B.C. 1,250년경에 살았던 이집트 중왕조 람세스 2세보다 400년 이전의 사람이므로(창 15:13) 아브라함의 시대를 B.C. 1,650년경으로 판단하게 된다. 그러나 성서비평학의 결과 오경의 사건들은 B.C. 750년경에 발생한 사건들로 판단되기도 하고, 오경의 저자가 포로기 시대의 인물로 판명되기도 하니 아브라함의 시대와 무려 1,000년이나 차이가 난다. 이러저러한 증거를 바탕으로 성서비평학은 아브라함을 위시한 창세기의 인물들을 가공의(fictional) 인물로 간주하고, 성서의 이야기들을 실제의 역사가 아니라 픽션(fiction)으로 간주하게 된다. 여기에서 현실 교회가 성서비평학의 결과를 수용할 수 없게 된다는 자못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신앙과 신학은 다른 것이다’, ‘신학은 차가운 머리로 하되, 신앙은 뜨거운 가슴으로 하라’, ‘학교에서 배운 것을 교회에서는 가르치지 말아라’, ‘우리는 예수를 믿지 성서를 믿는 것이 아니다’라는 따위의 이상한 교훈들이 기장 안에 난무하게 되었다.


오경저자가 믿고 저술했던 역사적 사실은 성서비평학의 결과 오류임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성서의 저자가 믿었던 사실을 비평해 보니 오류로 드러났으니 성서비평학의 학자는 성서가 보도하는 사실을 믿지 않게 되었다는 말도 된다. 이로 인해서 현대의 교회는 성서비평학의 연구결과로 인해서 큰 혼란에 봉착하였다. 무엇보다도 먼저 성서가 하나님의 말씀이요 진리라는 믿음이 무너지게 되었고, 성서는 일점일획도 틀림없으며 무오하고 정확하다는 믿음이 송두리째 흔들리게 되었다. 성서비평학은 성서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고백하는 성도들의 믿음을 문자주의 내지는 축자영감설에서 기인된 잘못된 믿음으로서 성서주의(biblism)이라고 규정하는 이상한 결과에 봉착하고 말았다. 칼빈의 성서영감무오설을 근거로 성서를 기록한 성령의 영감에 오류가 없는 것이지 인간의 작업에는 오류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변명하면서 새로운 성서관을 개척하려고 애쓰고 있다.


[4] 성서를 경전으로 읽기


성서비평학의 결과 오경이 포로기에서 시작되어 포로이후기를 거쳐서 마카베오 시대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 동안에 점진적으로 저작되었다는 결론이 나왔다. 포로이후기를 살았던 저자가 오경을 저술했다면, 그는 족장기를 자기 시대보다 무려 1,200년이나 앞선 과거의 역사로 제시하고 있으며, 출애굽 사건을 무려 800년 이전의 사건들로 당대에 제시하고 있는 셈이 된다. 다시 말해서 오경저자는 자기 시대의 디아스포라 독자들에게 아주 먼 옛날이야기를 전해 주려고 했다는 것이다. 오경저자는 무슨 동기로 그처럼 오랜 옛이야기를 포로기의 디아스포라 유민들에게 전해주려고 했던가?


나는 오경저자의 옛날이야기가 말하려고 의도했던 바를 제대로 이해하고 그 저자의 의도를 오늘날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오경저자가 픽션을 가정한 것이 아니라 그가 믿고 있는 바를 그대로 독자들에게 전달하려고 애썼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오경본문의 보도하는 역사적 사실의 진위를 따지는 현대의 작업은 나에게는 성서의 믿음과는 상관없는 일로 간주된다. 역사적 사실이면 믿고 역사적 사실이 아니면 믿지 않는다는 합리주의적 태도는 성서을 읽는데 필요한 태도가 아니다. 역사학은 믿음과는 무관하다.


그러나 성서를 읽는 독자의 믿음은 성서가 증언하려고 하는 바 그 메시지에 대한 믿음이다.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통해서 성서의 저자는 동시대의 독자들에게 무슨 메시지를 전하려고 했는가? 이것이 시종 나의 질문이며 연구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성서의 주제가 잡히면 그것을 당시의 사회적 배경에 비추어 이해하고 현대의 상황에 적용하여 새롭게 고백하는 것이 오늘을 사는 설교자의 과제다. 성서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진실하게 고백할 때 성도의 삶은 말씀을 실천하는 방향으로 전환될 수 있다. 성서가 하나님의 뜻을 계시한 책이라는 고백 위에 든든히 서야만 성도가 성서적 실존으로 더욱 확고하게 성장하게 된다.


축자무오설과 성서비평학 사이에서 오래 서성이다가 마침내 제삼의 확고한 방법론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많은 세월을 보내야했다. 모든 교회가 통일된 성서관에 도달하는 일은 주의 몸된 교회가 하나 되기 위해서 너무나 중요한 과제이다. 칼빈 선생님께서 ‘개혁교회는 늘 개혁해야 한다’고 가르치신 교훈에 따라 교회의 개혁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은 개역의 기준을 성서에서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분열된 교회가 개혁하여 하나로 서기를 염원하면서 우리는 오늘도 계속 성서를 읽어 나가자.


이런 취지에서 나는 오늘 창세기의 최종본문을 가지고 설교동역자 제위와 함께 성서를 있는 그대로 읽되 어떻게 새롭게 읽어낼 수 있겠는지 모색해 보려고 한다. 우선 평소에 놓치기 쉬운 본문들을 골라서 다시 생각해 보는 기회를 함께 가져 보기 바란다.


☞ [5]~[9]는 도표가 많은 관계로 제목만 적어놓았습니다. 내용이 필요하신 분은 첨부파일을 다운받아 보시기 바랍니다.

[5] 창세기의 위치와 기능


[6] 창세기의 짜임새


[7] 토라서론〔창세기 1~11장〕


[8] 세 족장 이야기〔창 12~50장〕- 하나님의 백성을 설정하기 위한 준비


[9] 기독론적 해석과 알레고리 해석에 대한 새로운 이해


☞ [5]~[9]는 도표가 많은 관계로 제목만 적어놓았습니다. 내용이 필요하신 분은 첨부파일을 다운받아 보시기 바랍니다.

 

[10] 나가는 말


오경의 주제는 매우 다양하다. 다양한 주제들 가운데 가장 중심되는 핵심 주제를 뽑아내고 그것을 중심으로 일관된 신학사상을 읽어내는 일은 쉽지 않다. 매우 다양한 주제들이 오경 안에 실타래처럼 엉켜 있다. 위에서는 창세기에 한정하여 다양한 주제들을 이끄는 통주제를 찾아보았다. 그것은 문명을 비판하는 문제였다.


현대문명의 현실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일관된 하나님나라의 삶을 추구하도록 일목요연하게 신학의 주제들을 정리해 주는 일은 설교자의 과제다. 성도의 영성을 인도하는 일을 위해서 이 작업은 매우 중요하다. 구원의 하나님과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창세기를 통해서 회복되어 삶의 다양한 경험들 속에서 실패와 좌절하는 때마다 하나님의 은총에 의존하도록 인도해야 할 것이다.


세상을 이기는 것이 성서의 뜻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특히 창세기에서 주의 뜻을 읽어내고 하나님나라의 비전을 정립하는 것이 주석가가 먼저 변화되어야 할 선결과제다. 이어서 만민을 물질문명으로부터 구원해 내시려는 하나님의 구원의지를 모든 성도가 확신하도록 오늘의 삶 속에서 증언하여야 할 것이다. 믿음의 조상들이 살아간 생애를 통하여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동일한 은총이 임한다는 말씀을 믿고 고백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이 모든 이야기들이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과 승천, 그리고 재림약속에로 이어지도록 깊이 묵상하는 일은 우리 시대의 설교자가 성취해야할 영성의 과제다.


이영재 박사


․학력
한신대학 학부(Th.B.) / 동 대학원(M. Div.)
아버딘대학(M. Th. / Ph. D.)
독일 보쿰 대학


․저서
토라로 세상읽기
광야에서 I & II
토라서론 I & II
아브라함 이야기
이삭 이야기(출판예정)


․목회력
1975~1983년 성남교회 교육전도사
1977~1979년 77고난선언으로 투옥
1983년 선산습례교회 담당전도사
1985년 울산 형제교회 개척(전도사)
1985년 경남노회 목사 임직
1989년 대구노회 대동교회 개척(現, 한일교회)
1992년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생활관 관장 역임
1994년 서울북노회 수유한신교회 개척
2007년 전주성경학당 개원
2008~현재, 전주 화평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