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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강좌 제38회] 장공의 그리스도론 / 명승인 목사

목요강좌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7-09-07 19:48
조회
880

[38長空사상연구 목요강좌] 발제
일시 : 2016428() 오후 5~7


장공의 그리스도론
-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중심으로 -


명승인 목사
(군산 갈보리교회)


[1] 서 론


오늘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모습 속에서 과연 그리스도가 표상(表象)이 되고 있는가? 모든 교회들이 대형화와 거대화를 꿈꾸면서 결국 교회 간의 경쟁은 불가피한 것이 현실이 되었다. 그래서 교회들마다 ‘우리 교회만 잘되면 된다!’는 편협성이 이웃과 공동체에 대한 관심을 점점 줄어들게 한다. 결국 교회와 사회 전체가 신자유주의라고 하는 물질만능시대에 그 방향을 상실하고 있고, 나아가 이로 인한 비인간화가 낳은 현상들은 사회 전반에 가중되어 가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교회가 본래의 모습에서 벗어나 복음의 왜곡과 모순으로 제 갈 길을 찾지 못하고 결국에는 그리스도의 가르침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필자는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시대와 상황 속에서 진정한 그리스도의 모습을 담아내며, 새로운 방향설정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고민하던 중 장공 김재준(이하 ‘장공’으로 표기한다.)의 글들을 대하며 새로운 빛을 보게 되었다. 장공의 신학은 삶의 신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신앙생활이 현실의 삶에서 유리되거나 무관심하게 되면 생명력이 없게 된다고 하며 그리스도인들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다. 한마디로 행함이 없는 믿음은 관념적인 믿음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는 “신앙은 교리에서 싹터서 생활에서 열매를 맺는다. 생활 없는 믿음은 열매 없는 나무”라며, “신앙은 멀리 바라보는 무지개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생활화한 신앙이란 생활의 전 부분이며 종교가 문화의 일부분이라는 것은 현대인들이 만들어낸 가장 공교한 기만”이라고 일갈(一喝)했다.1)


1) 김재준, “광야에 외치는 소리,” (삼민사, 1984)


그 동안 장공에 대해서는 한국교회의 진보적 사회참여 신학의 전통을 세운 사회운동가로서 평가되었다. 물론 이것은 사실이지만 온전한 평가라고 할 수 없다. 이러한 평가 때문에 교회 현장에서 장공의 사상과 신학이 외면 받아 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장공에 의해 세워진 한국기독교장로회(이하 기장)에 속한 교회들에서조차 그를 오해한 부분들이 많다. 그러나 장공은 목회자로서 길선주 목사가 강조한 새벽기도를 위해 새벽마다 산에 올랐던 열심을 가지고 있었고, 성령체험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했고, 만우 송창근 목사처럼 성 프란체스코를 존경하며 청빈의 삶을 실천하였으며, 꿈이나 환상가운데 하나님의 메시지를 발견하려는 구도자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즉 그는 말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심정을 이해하고 고백되어진 실천적 삶을 통해 생활신앙을 소유했다. 필자는 본 소고를 통해 장공의 글들에 나타난 그가 이해하고 또 닮고자 노력하며 실천했던 ‘그리스도’를 그의 사역을 중심으로 살펴봄으로써 복음의 능력을 잃어가는 교회와 그리스도의 모습과 유리되어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새로운 신앙적 도전을 주고자 한다.


필자는 우선 장공이 이해하는 그리스도에 관한 신학적 이해를 설명하겠다. 그리고 장공이 바라 본 ‘예수 그리스도’, ‘구원과 역사의 문제’, 그리고 ‘하나님 나라’ 이 세 가지 영역을 중심으로 논하고자 한다.


[2] 장공의 눈으로 본 예수 그리스도


- 참 신, 참 인간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성서는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면서 ‘그리스도’와 분리되지 않는 ‘예수’를 끊임없이 보여준다. 마가복음 8장 29절에서 예수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라고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은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게도 역시 신앙적 자기성찰의 물음이 된다. 브루너(E. Brunner)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이 기독교를 형성하며 전기독교 신앙의 중심과 근거는 기독론이라고 했다.2) 푈만(H.G. Pöhlmann)은 초기 기독교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기독론과 관련된 다음과 같은 문제들을 통해 역사적으로 논의된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에 대한 인식론적인 그리고 존재론적인 논제들을 제시한다.3)


2) E. Brunner, the Mediator, (London: Luther Worth Press, 1934), 232.
3) H. G. Pöhlmann, 이신건 역 『교의학』, 266.


① 그리스도론, 위로부터냐 아래로부터냐?
② 우리 밖에서, 우리를 위해 일어난 그리스도의 구원행위,
③ 십자가와 부활,
④ 십자가에서의 배상만족의 문제,
⑤ 빈 무덤의 문제,
⑥ 예수의 신성과 인성,
⑦ 현대인과 그리스도 혹은 바깥의 그리스도론,
⑧ 역사적 예수의 문제


고대교회의 기독론은 위로부터 아래로 사고했다. 즉 선재적 신성을 지닌 예수 그리스도에서 출발한 기독론이다. 이러한 고대교회의 기독론을 확실하게 견지한 인물이 칼 바르트(Karl Barth)이다.4) 그는 인간이 하나님에게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이 인간에게 도달한다는 점을 이야기 하고 있다.


4) 바르트 외에도 ‘위로부터의 그리스도론’을 주장한 신학자로서는 브루너(E. Brunner)와 보겔(H. Vogel) 등이 있다.


칼 바르트는 위로부터의 그리스도론을 매우 확고히 옹호하고 있다. 즉 인간이 하나님에게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에게 도달한다는 점을 지적하기 위하여 초기 바르트의 신학은 온 열정을 기울였다. 그리스도는 아래로부터 온 자가 아니라 위로부터 온 분이다. … 그리스도 사건은 하나님의 “값 없는 은총의 행위”와 “주권적 행위”로서 필수적으로 위로부터 아래로 가는 길이지 그 반대방향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와 접촉한 것이 아니라 “우리 없이” 일어났고, “뒤로부터” 우리를 급습한 것이기 때문에, 오직 이 길만 존재할 뿐이다. 그래서 바르트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 하나님과 관계 맺고 있다”는 사실에서 그리스도론의 “첫째 관점”을 보았다. …“예수 그리스도가 참 하나님이라는 사실”은 물론 “낯선 곳으로 가는 그분의 길에서,” 그분의 인간됨에서 “증명된다.”5)


5) H.G. 푈만, 이신건 역 『교의학』, 266-267.


이상에서 진술하듯이 전통적인 위로부터의 기독론은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지만 참 인간이기도 하다는(vere Deus-vere homo) 역설적 기술을 하고 있다.


개혁가 마틴 루터(M. Luther)는 그의 주기도문 해설서에서 “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한 독생자이심과 하나의 영원하고 신성한 성품과 본질 안에서 영원으로부터 탄생하셨음을 믿을 뿐 아니라, 만물이 그의 아버지에 의해서 그에게 복종하도록 만들어졌고, 그의 인성으로 그는 나와 만물의 주가 되셨고, 그의 신성으로 아버지와 함께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믿는다.”고 고백한다.6)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에 대해 확실한 실존적 신앙적 고백과 동시에 구원론적 고백을 하고 있다.


6) Martin Luther. Luther's Works. edited by Jaroslav Pelikan and Helmut T. Lehman. 55 volumes. (Saint Louis: Concordia/Philadelphia:Fortress, 1955〜1986)


그럼 장공은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장공 김재준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가?’ 라는 물음에 대해 니케아-칼케돈 종교회의의 전통에 근간해서 대답한다. 장공은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 자신이 육신을 가진 인간으로 오신 분으로, 역사 안에 오신 神人(God-Man), 곧 ‘참 하나님-참 인간’으로 고백한다.


그리스도는 누구십니까? 그는 보통 인간으로, 또는 어떤 천재적인 특출한 인간의 한 사람으로 오신 이가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심부름꾼인 ‘예언자’의 한 사람으로 오신 것도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로, 하나님 자신이 육신을 이루어 인간에 오신 분입니다. … 하나님은 계십니다. 그러나 인간에게 파악되지는 않습니다. 제사를 드리고 주문을 외우고 논리를 전개하고 묵시를 받으려 합니다. 그러나 알려진 듯, 잡혀진 듯 하면서 어이없이 막연한 것이 하나님 문제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편 에서 하나님이 친히 우리에게 그 자신을 일러주시고 보여 주시고 말씀하시고 하시기 전에는 우리가 그를 믿고 그를 알고 그에게 순종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역사 안에 오신 하나님이십니다.7)


7) 김재준, “교회력에 따른 멧세지; 내가 온 것은,” 장공김재준목사기념사업회, 전집3권, (경기도 오산: 한신대학출판부, 1992), 89. (이하 전집○권으로 표기한다.)


이상의 장공의 고백을 살펴보면, ‘위로부터의 기독론’에 가까운 인식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에 대한 장공의 인식을 면밀히 살펴보면 일방적인 위로부터의 기독론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일방적인 위로부터의 기독론은 잘못하면 예수 그리스도와 인간의 인간성을 좌시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위로부터의 기독론’의 인식과 장공의 그리스도에 대한 인식을 비교해 본다. 푈만은 그의 책에서 바르트의 ‘위로부터의 그리스도론’은 다음과 같은 삼중적(三中的) 도식으로 설명하고 있다.8)


8) H.G. 푈만, 이신건 역 『교의학』, 268.




바르트는 예수 그리스도의 세 가지 형태를 ‘내려오심’, ‘들리심’, 그리고 ‘보증’이 세 가지로 구분하여 논하고 있다. 기독론의 문제의 본질적인 접근 방식은 성육신의 내용 - 하나님과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됨 - 그리고 그 계시의 신비 안에서 제한된 표현으로 나타남을 밝히는 것이다. 성육신은 계시의 성격을 이해하는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그리스도의 하나님 되심과 인간되심(God - Manhood)의 개념을 나타낸다.9) 이러한 성육신의 핵심을 장공은 “예수는 하늘에서 땅에로의 방향, 즉 위에서 아래로 하나님이 인간이 되어 역사 가운데 인간을 찾기 위해 오심”에서10) 보여준다.


9) Karl Barth, The Doctrine of the Word of God, church Dogmatics, Ⅰ/2 (Edinburgh: T.& T. Clark, 1936), 3
10) 김재준, “한국교회의 기독교화,” 전집9권. 360-361.


장공은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왜, 무슨 일로 역사 안에 오셨는지 성서를 통해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로, 그리스도는 율법과 선지자를 완전케 하러 오셨다.(마 5:17) 둘째로, 죄와 사망에 시들어진 인간들에게 풍성한 생명을 주시려고 오셨다.(요 10:11) 셋째로, ‘섬김’을 통한 위대한 봉사를 위하여 오셨다.(막 10:45)11)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려고 오신 뜻을 깊이 이해하고 그의 생애에 동참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11) 김재준, “교회력에 따른 멧세지;내가 온 것은,” 전집3권. 90-92.


그리하여 장공은 예수 그리스도의 ‘참 하나님’ 되심이 드러난 사건을 십자가에서 찾는다. 즉 십자가의 수난은 단순한 수난이 아니라 진정한 거룩한 영광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생과 사, 시간과 영원, 옛 것과 새 것, 선과 악, 고와 락, 시작과 끝 등 온갖 문제가 모두 해결된 사건이다.12) 그리고 예수는 만유의 주(主) ‘참 하나님’ 되심을 드러내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들 - ‘하나님의 형상’인 ‘참 인간’으로 진리와 정의와 사랑을 가지고 역사 가운데 몸으로 오셨다. 그 결과 인간에게 속한 육신적인 연약함을 지니셨고 온갖 번뇌와 갈등과 시험을 경험하셨다.(히 4:15) 즉 인간의 모든 공통된 속성을 취하셨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시고자 역사 안에 오셨으며 그 구원의 목적은 모든 죄로부터 받는 유혹, 시험을 경험하고 그것을 극복한 후 인간을 구원의 길로 인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와 접한 인간, 그의 앞에 선 인간은 “새로 난 인간”이 된다.13)


12) 김재준, “산상의 그리스도,” 전집3권. 46.
13) 김재준, “왜곡된 예수상,” 전집11권. 331.


- 살아계신 예수


한국의 보수주의 교계에서는 장공을 자유주의자 혹은 파괴적 비평가, 성서의 이적을 불신하는 자, 혹은 교회를 문란케 하는 자라고 비난해 왔다.14) 1930년대부터 보수적 근본주의 신학을 대표하는 박형룡과 진보적 사회참여를 대표하는 김재준의 대결속에서 학문, 신앙, 양심의 자유를 기치로 근본주의의 아성에 도전한 장공을 보수주의 측에서는 자유주의 신학자로 매도한 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다.


14) 이상규, “이상규의 새롭게 읽는 한국교회사,” (52) 김재준의 신학, (국민일보, 2012)


19세기의 일반적 사조였던 자유주의적인 연구 태도를 성서해석에 도입했고 적용했던 자유주의 신학에서는 하나님의 내재성만 강조하며 성서의 초자연적 사건을 용납하지 않는다. 따라서 동정녀 탄생, 부활, 승천, 재림 등의 일련의 초자연적인 요소를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상징, 신화, 전설로 해석하려고 시도한다. 즉 성서의 계시적인 진리보다는 상징적인 의미만을 부각한다고 할 수 있다.


장공은 1950년대 한국 교계의 현실 속에서 정통신학, 정통교리를 내세우며 그 신학체계를 기독교의 최고 기준으로 삼으려는 시도를 단호히 거절하며, 오히려 기독교를 관념화시키며 율법종교로 만들어 살아계신 삼위일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만든 관념체계를 숭배하는 것이어서 이 같은 행위는 우상숭배라고 비판했다.15) 장공은 정통주의신학에 근거한 보수주의자들이 평가하는 자유주의 신학자도 아니며 자유주의 신학을 신봉한 사람도 아니다. 이 같은 사실로 장공의 예수의 부활에 대한 연구를 통해 알 수 있다.


15) 김재준, “크리스챤의 인간상,” 전집3권. 132.


그는 그리스도의 신자가 부활할 때에 받을 몸이 그리스도의 영광의 몸과 같으리라고 말하고 그 몸의 성질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화로운 것으로 심고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혈기의 것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혈기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도 있느니라.’(고전 15:42-44) 이로 보건데 그는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육체와 장차 가질 영체(靈體)와를 상대적 의미에서 말하였다. 전자는 동물적 생명의 원칙위에 선 것이요, 후자는 영적 생명의 원칙위에 선 것이다. 양자는 서로 혼동하거나 타협할 수가 없다. 전자가 후자의 삼킨바 되어야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체라는 것도 몸인 이상 필연적으로 형체를 갖추었을 것이다.16)


16) 김재준,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연구,” 전집1권. 77.


장공은 바울이 말한 생리적 존재였던 육체를 가진 몸이 부활 후에 그 동일성을 잃지 않고 어떻게 영체화(靈體化) 하는가에 대한 것은 결국 창조주 하나님의 전지전능에 속한 사역이므로 인간이 알바도 아니요,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강조한다.17)


17) Ibid., 78.


장공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승천과 우리의 신앙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 그리스도의 품위에 대한 결론적 입증이다. 즉 예수를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것이 구원에 참여하는 그리스도인의 첫 고백이기에 예수가 그리스도의 품위를 보유하셨다는 최후의 결론적이며 객관적인 입증이 부활의 사건이다.


둘째, 신자의 구원에 대한 최후 및 최종의 확증이다. 즉 그리스도의 부활은 또한 일반신자의 부활에 대한 전제임과 동시에 그 원동이 됨으로 인해 우리의 죽을 몸 즉 육체까지 부활시키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 구원의 처음과 나중에 확증을 주는 것이며 영생의 희망도 이 부활의 사실에서 확실성을 본다.18)


18) Ibid., 79-81.


위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장공은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의 핵심인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확실한 신학적 논지를 가지고 있다. 예수의 부활에 대한 장공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그가 살지 않으셨다면 창세 이래의 구원의 전 경륜이 무너짐이니 사람과 천사와 온갖 계급, 온갖 질서를 위하여 때를 따라 세기를 따라 예언하고 기대한 영광스러운 결말이 한마당 허튼 꿈으로 돌아가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는 죽음에서 일어나서 모든 자의 처음 익은 열매가 되었으매’ 성경전체가 신탁(信託)임이 입증되었으며 암흑의 나라가 함몰되고 사탄이 번개같이 하늘에서 떨어져 진리가 허위(虛僞)를 이기고 악이 선에 삼킨바 되고 죽음이 생명에 삼킨바 되었으니 진실로 그리스도교는 부활의 종교라는 찬사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이다.19)


19) Ibid., 전집1권. 81.


장공은 예수를 관념적이며 신화적으로 보지 않았다. ‘참 하나님-참 인간’으로서의 예수는 십자가의 자발적 희생으로 죽음에 이르렀다가 부활하셨다. 그는 관념의 세계에서 인간이 그린 초상으로서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며, 그리스도도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끝마친 이가 아니라, ‘부활하신 살아계신 그리스도이시며 승천하시고 다시 오실 영원부터 영원까지 살아계신 그리스도’라고 역설한다.20) 그리고 그리스도는 오늘도 우리와 함께 살아계시고 일하고 계신다.


20) 김재준, “산 말씀,” 전집3권. 366.


이와 같은 장공의 기독론은 20세기 가장 위대한 예언자적 신학자인 레온하르트 라가츠(Leonhard Ragaz)와21) 상통하는 점이 있다. 라가츠는 예수의 부활에 대한 보도를 역사적 기록과 학문의 일이 아니라, 신앙의 사건과 신앙의 증거로 취급한다.22) 라가츠의 부활에 대한 이해는 살아 계신 하나님과 그의 계속적인 창조 및 살아 있는 영혼과 생동하는 행위에 대한 믿음에서 기인하는 세계상을 전제로 한다. 예수의 부활 사건은 예수의 전 생애, 예수의 총체적 현현, 그리고 우선적으로 하나님 나라와 그의 구체화와 함께 연구할 때만 그 의미가 정확하게 드러난다. 왜냐하면 예수의 부활만은 그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21) 라가츠(Leonhard Ragaz. 1868-1945)는 스위스 태생의 목회자이며, 종교사회주의 운동을 통해 당시 물질주의적 세계관과 결합된 과학적 사회주의와 세상을 위한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상실한 잘못된 기독교 영성주의를 비판하고 행동하는 신앙인으로 사회주의와 기독교를 개혁하려고 노력했던 행동가이며 신학자였다.
22) 류장현, 『하나님 나라와 새로운 사회』 (수원: 동신, 2000), 120.


라가츠는 예수의 부활 사건이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첫째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가장 큰 행위의 계시”이며, 둘째는 “하나님에 대항하는 모든 권세들에 대한 거룩한 영의 승리”이다.23) 예수의 부활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의 완성과 실현”이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나라로서 “생명의 나라”이며, 그의 승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죽음-모든 죽음에 대한 승리”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는 죽음과는 반대로 “생명의 복음”과 “죽음의 극복”이다. 라가츠는 여기서 하나님과 그의 나라의 현실성에 근거해서 영원한 생명의 현실성과 현재성을 강조한다. 즉 영원한 생명은 무덤 저편에 있는 생명이 아니라 “현세에서의 생명”과 “세상의 구원”이다. 라가츠는 부활에 대한 보도들을 철저하게 죽음에 대한 하나님 나라의 승리의 “표적”과 “죽음의 세계에 하나님의 생명의 침입”으로 해석한다. 라가츠의 부활에 대한 이해는 살아 계신 하나님과 이 세상을 위한 그의 나라의 현실성에 대한 신앙에 근거한다.24)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 계신 이유가 무엇인가? 장공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23) Ibid., 120-121.
24) Ibid., 122-123.


그리스도가 이렇게 살아 계신 것은 우리도 살게 하며 더욱 풍성하게 살리기 위함이라 하셨다. 크리스챤도 영원히 살아 일하는 인간이 되는 것이 그 목표(Destiny)인 것이다. 풍성한 생명, 영의 자유, 가슴에 솟아 넘치는 스스로의 샘터를 가지고 사는 인간이 되게 하려는 것이다.25)


25) 김재준, “산 말씀,” 전집3권. 366-367.


그리스도인에게 구원은 곧 예수의 삶, 그의 사건에 직결되어 있다. 즉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가?’ 라는 질문은 곧 역사적 예수와 케리그마의 그리스도가 어떤 관계에 있는지에 관한 해명이기도 하다. 장공은 역사적인 예수가 바로 그 역사적 공시를 뛰어넘는 ‘그리스도’ 라는 우리의 믿음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


- 역사의 화해자 그리스도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는 그의 기독론에서 ‘그리스도는 역사(Geschichte)의 중심’이라고 전제한다. 그리스도가 역사의 중심이라는 의미는 역사의 한계와 동시에 중심이 된다는 의미이다. 즉 ‘역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라는 약속을 소유하고 있고 이러한 약속은 곳곳에 포진해 있다. 역사는 이러한 약속의 성취를 지향에 나간다.26)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인간 또는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의 역사는 곧 ‘구원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그 구원 역사의 화해자이며 중보자로 오셨다. 그래서 본회퍼는 그리스도가 역사 존재의 한계와 중심이 되며, 역사가 서 있어야 하는 곳에서 그리스도가 하나님 앞에 서 있다고 보았다.27) 따라서 그리스도는 역사의 중보자가 된다.


26) 디트리히 본 회퍼, 유석성 역, 『그리스도론』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0), 48.
27) Ibid., 49.


장공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을 단순히 ‘예수’라는 역사적 인물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그리스도이신 것을 믿는다’는 뜻으로 본다.28) 그러므로 기독교 구원의 복음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고후 5:19)라는 말씀처럼 화해의 복음이다. 즉 그리스도의 화해 사건이 구원의 기본이 된다. 그래서 장공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만이 역사 속에서 유일한 승리자라고 고백한다.29) 그래서 그리스도인 각 사람과 나라와 인류의 역사 속에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다시 사신 그리스도가 죄악적인 토양 속에 들어와 계시며, 그리스도의 형상이 역사 가운데서 이루어지고 있다.30)



28) 김재준, “예수와 그리스도와…,” 전집4권. 106.
29) Ibid., 146.
30) 김재준, “어찌 땅만 버리랴,” 전집4권. 218.


장공은 죄를 범하여 타락한 개인과 나라와 인류의 역사를 위하여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끊임없는 사랑과 긍휼로 속죄의 은총을 베푸시지만 거부하는 것이 인간의 비극이요 역사의 비애라고 개탄한다. 또한 인간은 역사의 격류 속에서 떠밀려가며 역사 자체를 우상화하거나 자연과 같이 기계적으로 생각하여 역사적 회의주의와 상대주의 그리고 비인간적인 경향에 빠졌다.31) 이러한 상황 속에서 기독교는 역사적인 종교로서 역사 안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이야기하지만 그리스도인의 구원은 역사의 피안에 있다. 역사는 시간에서의 사건이므로 영원일 수도 없다.32)


31) 김재준, “역사 안에 임한 그리스도,” 전집4권. 523.
32) Ibid., 527.


그럼, 이러한 현실 속에서 그리스도의 속죄함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우리는 한국역사 안에 그리스도의 속량역사를 조성하며 한국 역사를 그리스도의 천국역사로 변질시키는 업무를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이다. 천국 가는 것은 하나님 자신의 기쁘신 뜻대로 될 것이므로 그의 뜻에 맡기고 바랄 것뿐이며 우리들 자신의 당면한 과제는 주어질 이 한국역사를 어떻게 그리스도의 바탕으로 화할까 하는 일념에 있는 것이다.33)


33) 김재준, “대한기독교장로회의 역사적 의의,” 전집4권. 304.


장공은 그리스도가 인간 역사에 성육신하셔서 인류 역사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의 사건으로 ‘한 알의 밀’이 되신 것 같이, 그리스도인들이 역사 안에 보냄을 받은 것은 도피하지 말고 역사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쏟아서 그리스도의 속량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데 소명이 있음을 강조한다.34)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장공은 그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 속에 심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35) 즉 장공은 역사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일러지는 것이 예언이요 역사 안에 ‘말씀’이 육신을 이루어 들어오신 것이 그리스도이시므로, 이 말씀을 기점으로 하여 역사의 시작을 바라보고 말씀의 진전 과정 속에서 역사의 과정을 비판하고 말씀의 마지막 지향점에서 역사의 마지막을 찾아야 한다고 보았다.36)


34) Ibid.
35) 김재준, “자라는 하느님 나라,” 전집4권. 367.
36) 김재준, “역사 안에 임한 그리스도,” 전집4권. 527.


오늘날 경제의 위기, 환경의 위기, 인간성 말살의 위기 등으로 인해서 세월호 참사처럼 무고한 희생들이 이어질 때, 이러한 현실 가운데 교회가 선포하는 속죄와 구원은 희생자들에게 어떤 의미를 줄 수 있는가? 전통적으로 많은 교회가 예수를 신앙의 그리스도에 머물도록 강요한다. 즉 수동적으로 고난을 당하고 십자가를 지고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한 그리스도를 신앙한다. 그러나 역사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주체이며 능동적이며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이루어 가기 위해 화해자의 삶을 살았다. 장공은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초점 삼아 살고, 일하고, 죽었다고 역설한다.37)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역사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케 하시는 말씀을 부탁하셨다. 우리는 우리나라의 역사에 책임이 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십자가의 사건을 통해서 화해의 사건을 만드셨듯이 우리가 살고 있는 역사의 현장에서 화해를 사건화(事件化)할 수 있는 개인과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37) 김재준, “비장한 결의,” 전집4권. 331


[3] 예수 그리스도와 구원의 역사


-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량


예수 그리스도가 역사의 현장에서 죽어서 사는 길을 몸으로 보여주신 길이 곧 십자가의 길이었다. 십자가는 인간이 만든 잔인한 사형 틀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타인을 위해 그의 전 존재를 속죄 제물로 드려서 생명으로 가는 길로 바꾸셨다. 결국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썩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이치를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을 통해 새 창조의 기쁨으로 초대하고 있다.38)


38) 김재준, “몸으로 주를 기념하여,” 전집1권. 361.


고전적인 속죄 관념에서는 인간의 합리적인 체계화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신학적이며 심리학적인 이율배반들을 포함한, 악으로부터 인간을 구해내시는 그런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의미한다. 이와 유사하게 라가츠는 예수의 십자가에는 이중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39)


39) 류장현, 『하나님 나라와 새로운 사회』, 118.


첫째, 예수의 십자가는 세상에서 가장 큰 하나님의 은사이며, 인류에게 하나님의 값비싼 은사이다. 하나님의 은사에는 이중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바울이 말한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의 표적”과 “세계의 심판”이다. 따라서 예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은사로서 세상에 대한 긍정과 세상에 대한 부정이다.


둘쩨, 예수의 십자가는 인간의 과제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에게 참된 제자직의 길을 제시한다. 예수의 십자가의 길은 대리적 고난, 희생의 죽음, 자기 부정과 죽음 속에서 권력과 명예를 추구하고 자기를 주장하는 자연적 인간의 포기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예수의 십자가는 올바른 하나님에 대한 인식의 장소와 하나님과 인간, 하늘과 땅, 초자연적인 것과 세상적인 것을 결합하는 장소이다. 예수의 십자가에서 자신을 계시하신 하나님은 십자가를 통해서 현실의 마지막 깊이까지 들어온 살아계신 하나님이며, 또한 예수의 십자가에서 사랑과 심판으로 자신을 계시하신 초월적이며 내재적인 하나님이다.40) 이와 관련하여 장공은 십자가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40) Ibid., 119.


십자가와 영광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또한 드러냈습니다. 십자가의 수난은 그대로 거룩한 영광의 불붙는 초점이었습니다. 십자가 때문에 낙담한 제자들은 좀 더 뜻있게 보았어야 할 것입니다. 만왕의 왕될 자격은 만민을 대속하기 위한 수난의 길에서 밖에 찾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수난은 결국 단순한 수난이 아니라 진정한 영광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리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생(生)과 사(死),시간과 영원, 옛 것과 새 것,선과 악,고(苦)와 낙(樂),시작과 종국 등 온갖 난문제가 다 해결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만유의 주가 되심이 드러났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이들이오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에게 들으라」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증언은 세상일만 생각하고 낙담한 제자들에게 다시없는 계몽과 격려가 되었어야 할 것이었습니다.41)


41) 김재준, “산상의 그리스도,” 전집3권. 46.


장공은 죄 없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통은 속량의 공적인 효력을 가지고 온다고 보았다.42)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해 이룬 공적인 속량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의 오해가 있다. 즉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단번에 온 인류를 위해 죄와 죽음을 속량했기 때문에 우리는 다만 십자가의 속량과 부활을 믿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장공은 그와 같은 태도는 이기주의요, 속량의 사랑에 대한 감격이나 믿음의 증거가 아니라고 주장한다.43)


42) 김재준, “고통의 의의,” 전집2권. 196.
43) 김재준, “십자가를 지고,” 전집18권. 66.


또한 장공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실 때 아직 연약한 심령들이 능히 십자가의 길, 사랑의 길, 죽음으로 사는 좁은 길을 걸어갈 수 있다고 보고 이 그리스도의 수난을 같이 동참하는 자만이 자신도 살리고 나라도 살리고 미래 생명의 씨도 된다고 역설한다.44)


44) 김재준, “고난의 친교,” 전집3권. 114.


만일 십자가와 그 속량 사랑이 가정과 교회 공동체에서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특징짓는 것이라면, 세상에서의 삶에 있어서도 마찬가지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십자가를 통해 우리에게 있어 창조주 하나님이 만드신 세계를 훼손하고 피조물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모든 분야들, 곧 국제적, 정치적, 인종적, 경제적, 성적, 교육적, 종교적인 불의에 맞서 싸워야 한다. 그 때문에 사랑-구체적인 십자가 사랑-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지상명령이며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반드시 실현되어야 한다. 장공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앙생활이 단지 무기력한 도피주의가 아니라, 용감하게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를 향하여 나아가며 결국 무덤을 헤치고 다시 살아 역사의 종말을 하나님 나라의 완성으로 치환하려는 전투적인 생활이라고 강조한다.45)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속량의 사랑으로 구원 받은 믿는 자들의 삶이다.


45) 김재준, “산상의 그리스도,” 전집3권. 65.


- 통전적 구원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한국 기독교가 위기에 처해 있다고 말한다. 그 뚜렷한 증거로 교인수의 정체내지 감소를 들고 있다. 지난 수십 년 간 고속 성장을 해오던 한국교회가 이제는 성장이 멈추고 있는 현실이다.46) 한국 교회, 특히 보수적 교회는 개혁과 변화를 요구하는 소리를 비신앙적 행위라고 밀어붙이고, 헌신과 헌금은 강조하지만 사회적 공의를 실현하는데 무관심 하다. 소위 보수적 교회는 물론이고 많은 한국교회의 이러한 현실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바로 개교회의 부흥과 개인의 구원만을 강조하는데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46) 1985년부터 2005년까지 20년간 종교인구(종교별) 변화를 살펴보면, 불교는 완만한 증가, 개신교는 완만한 하강, 천주교는 급상승을 보여준다. 특히 한국 개신교는 1995년을 정점으로 하강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출처-문화체육관광부; 2011년 한국의 종교현황 / 인구센서스 조사〕



한국 교회는 여전히 ‘은혜와 믿음’으로만 의인이 된다는 ‘칭의론’을 강조하며 정의와 윤리의 문제를 도외시하는 왜곡된 칭의론을 부단히 강조하여 그 칭의론의 한계에 봉착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루터의 칭의론의 한계를 지적할 수밖에 없다. 즉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의 개인주의적인 측면으로 협소화 되었던 칭의론의 영역을 극복하고, 인간의 전인적인 차원과 사회적인 차원으로까지 회복시켜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앞에서 칭의를 통해 책임적 존재로서의 새로운 인간이 되었다.


이웃과 사회를 돌아보지 않는 하나님의 칭의란 있을 수 없다. 개인적인 삶의 영역과 교회와 사회의 영역을 포괄하는 삶의 현실을 주시하고 관심을 갖고 있어야 한다.


필자는 앞에서 지적한 루터의 칭의론의 한계를 장공의 통전적인 구원관을 통해서 극복하려고 한다. 장공은 먼저 구원을 위한 전제로써 신앙을 강조 한다.


하나님이 내 창조주이시고 나는 그의 피조물이며 그가 타락한 인간을 사랑으로 속량한다는 것을 믿는 신앙만이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넘어서 자기를 설명할 수 있게 하는 것이며, 그것이 운명의 막다른 골목을 돌파하고 자유를 되찾는 유일한 활로인 것이다. 이 신앙에서 하나님이 인간을 만나고 그 만나는 인간과 화해한다.47)


47) 김재준, “해방의 신학,” 전집10권. 26.


구원의 전제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신앙이다. 그리고 장공은 구원의 문제에 신학적 다양한 갈래가 있음을 인정하지만, 구원의 문제를 통전적으로 이해하는 “통적인 구원”(Total Salvation)을 다음의 9가지로 주장한다.


① 육체적 질병으로부터의 구원
② 정신적인 구원
③ 가정적 이기주의에서의 구원
④ 편협한 민족주의에서의 구원
⑤ 비인간화에서의 구원
⑥ 종교적인 학대에서의 구원
⑦ 사회 구조악에서의 구원
⑧ 영의 질서로 회복함으로서 영혼구원
⑨ 생태적 구원


장공은 결국 인간이 ‘통전적으로 구원’되고 참된 자유를 누리는 인간으로 재창조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장공이 1930년대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한국 기독교는 오늘날도 갖고 있는 문제의 근본적 요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교권주의, 율법주의와 사이비 신비주의이다. 관료화된 교회사회는 평안함을 교회에서 점차 사라지게 만들고 있었고, 율법주의는 도덕적 도그마들로 민중의 일상에 더 강한 억압을 가하고 있었고, 그 근본에 ‘문자적 무오영감설’이 있었다. 그것은 지성(知性)과의 단절을 유발했다. 사이비 신비주의는 복음의 예언자적 사명과 정의와 사랑을 핵으로 하는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잃어버리고, 자아 망실의 황홀감과 신접 현상을 능사로 하여 몰역사적이고 현실 도피적인 종교로 기독교를 변질시켰다.48)


48) 김경재, 『김재준 평전』 (서울: 삼인, 2001), 48.


장공의 통전적인 구원 사상은 라가츠의 실제적 구원 사상과 상통한다. 라가츠는 하나님과 그의 나라의 현실성에 근거한 실제적 구원을 강조하면서 개인 구원과 사회 구원만이 아니라 우주적 구원으로 그 범위를 넓혀 간다. 우주적 구원은 운명, 과실, 병, 죽음으로부터의 구원과 동시에 자연의 구원을 의미한다. 그리고 우주적 구원은 구약 성서의 약속의 완성과 계속이며, 창조의 회복과 계속이다.49)


49) 류장현, 『하나님 나라와 새로운 사회』, 100-101.


그러므로 어떤 한 부분의 구원론을 교리화하여 절대시하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을 인간의 내면성으로 축소시키거나 사회적 이데올로기와 동일시하는 위험이 있다. 하나님의 구원은 역사적 상황과 문화의 전통에 따라서 강조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언제나 온전한 형태로 선포되어야 한다. 그리고 다양한 구원론 중에서 ‘오늘 우리에게’ 적합한 구원론은 항상 역사적 상황과 관련해서 주장되어야 한다. 그것은 교리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이다. 그것은 어떤 구원론이 인간, 자연, 세상에 더 풍성한 삶을 가져오느냐가 선택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장공의 통전적 구원론은 루터의 의인론을 극복하고 인간, 자연과 세상을 풍요롭게 하는 구원론의 대안이 될 수 있다.


- 복음의 사회적 성격


장공은 예수께서 제자들을 민중가운데 들어가게 하신 것은 단순히 백성들을 겉에서 명령하고 비판하는 위치에 서게 한 것이 아니라, 비장한 마음으로 민중들 가운데 가서 그들을 회개하도록 가르치고, 각종 병도 고치고 하늘나라의 복음을 전파하게 하신 것이라고 보았다.50) 즉 복음은 단순히 가르치는 차원이 아니라 민중들의 영과 육을 함께 돌보며 필요할 때 가진 것을 나누는 것이다.


50) 김재준, “성경을 읽으며,” 전집2권, 169.


그러므로 장공은 기독교는 다음과 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스도교는 신적이면서도 인간적이다. 영원이면서 시간적이다. 종교적이면서 이론적이다.
수직선적이면서 수평선이다. 타계적이면서 현세적이다. 예정적이면서 자유다.
믿음이면서 행위다. 개인적이면서 사회적이다. 보수적이면서 진보적이다.51)


51) 김재준, “그리스도교의 양극성,” 전집2권. 207.


따라서 장공은 통전적인 그리스도를 전파할 것을 강조한다. 즉 그는 그리스도의 생애라 하여 그의 행위만을 말할 것도 아니고, 그리스도의 신성만 증거할 것도 아니며 그리스도의 십자가, 부활, 재림만 이야기할 것도 아니라고 보았다. 복음은 그리스도 자신이므로 그리스도를 물상화하지 말고 사람들로 하여금 살아계신 그리스도 자신에 접촉하도록 하는 것이 복음 전파이다.52) 그래서 복음은 전 인간을 구원하는 실증이 되어야 하므로 개인 영혼뿐 아니라, 국가 사회의 건설에도 온전한 지침과 능력이 되어야 한다.53)


52) 김재준, “금후의 전도운동,” 전집2권, 327.
53) Ibid., 328.


이와 관련해서 장공은 ‘생활신앙’을 강조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생활을 생활의 일부분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즉 ‘신앙생활’은 경제생활, 정치생활, 직장생활 등 가운데 또 하나의 신앙생활이 붙어 있는 것으로 해석하기 쉽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앙생활이 일종의 취미생활과도 같은 생활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장공은 “신앙생활”이 아닌 “생활신앙”이라는 표현으로 신앙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54) 장공은 자신의 신학을 “생활신학” 혹은 “인간의 신학”, 더 정확히 “인간의 생활”에 주목하는 “제 4일의 신학”으로 표현했다.55) 그 특징은 다음과 같다.56)


54) 김재준, “신앙생활에서 생활신앙으로,” 전집9권, 151-152.
55) 김재준, “장공칼럼(6),” 전집12권, 90.
56) 류장현, 『종말론적 신학과 교회』, 219-225.


첫째, 생활신학은 체험의 신학이다. 장공 자신이 젊은 시절 성령체험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 성령의 역사, 삼위일체 하나님 체험을 고백했다. 그 체험 후 그는 “나는 변하여 새 사람이 됐다”는57) 사실을 실감했고 그의 삶은 온전히 하나님께 이끌린 삶이 되었다.58) 그는 진리의 신학적 체계화를 거부하며 언제나 하나님과의 인격적 만남, 곧 실존적 체험을 강조한다.59)


57) 김재준, “그리스도와 함께 50년(1),” 전집12권. 130.
58) 김재준, “출애굽,” 전집18권. 424-425.
59) 류장현, 『종말론적 신학과 교회』, 220.


둘째, 생활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십자가의 구속에 주목하는 그리스도 중심적 신학이다.60) 즉 그리스도를 신학적으로 탐구하는 이론적 신학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삶을 재현하는 실천적 신학이다. 그는 자신의 신학적 입장을 자유주의와 근본주의를 넘어서는 “살아계신 그리스도주의”라고 말했다.61)


60) 류장현, 『종말론적 신학과 교회』, 220.
61) 김재준, 『범용기』 (서울: 풀빛, 1983), 97.


셋째, 생활신학은 통전적(統全的) 신학이다. 장공은 자유주의 신학과 근본주의 신학의 한계를 깨닫고 20세기 신학은 통전적 신학이어야 한다고 확신했다.62) 즉 그는 교파 신학, 근본주의와 자유주의 신학, 정통주의와 신정통주의, 가톨릭과 개신교 신학의 논쟁을 지양하여 세계교회적인 신학을 추구하고, 주관적 체험과 객관적 논리 및 인간으로부터의 신학과 하나님으로부터의 신학을 종합하여, 인간 실존의 공통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타종교와도 대화하는 통전적 신학을 주장했다.63)


62) 류장현, 『종말론적 신학과 교회』, 221.
63) 김재준, “신학의 갈 길,” 전집5권. 334-344.


넷째, 생활신학은 신학이 인간의 삶에서 사건이 되는 살아 있는 신학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정점으로 하고 개인과 사회를 저변의 두 점으로 한 삼각형적 생명체로서의 생활신학”과 “하향적인 권위주의가 아닌, 자유와 정의와 신실로 교류하는 아가페적 사랑의 신학”이며,64) “밑바닥에서부터 경험된 서민의 생활신학”이다.65) 그러므로 장공은 ‘신학은 실제 사회의 생활인의 신학이다’라고 말한다.66)


64) 김재준, “장공컬럼(6),” 전집12권. 90.
65) Ibid., 91.
66) 김재준, “「생활종교」를 지향하는 교회의 갱신,” 전집7권. 334.


다섯째, 생활신학은 한국적 신학의 모색이다. 그는 당시 한국의 역사적 상황에서 만난 하나님 체험을 기초로 하는 신학을 수립하여 예수의 삶과 죽음을 남한과 북한과 해외동포의 공통적인 민족적 종교로 만들어 우리 민족의 모든 생활에 활력소가 되게 하자는 것을 의미한다.67) 그래서 장공은 우리 민족의 역사와 고대 종교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했으며, 한국 교회의 과제를 한국사의 토양에 뿌리박은 한국적 기독교를 발전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했다.68)


67) 김재준, “북미유기 제7년,” 전집15권. 204.
68) 류장현, 『종말론적 신학과 교회』, 223.


‘생활 신앙’의 목표실현을 위한 행위 전체는 각 사건과 각 공동체에서의 시스템이 최종 목표에서 통일되는 것이며, 그 완성은 하나님 나라가 종말에서 완성되는 것과 같이 역시 종말에서 예수의 모습에서 완성되는 것이다.69) 이러한 장공의 생활신학은 자연스럽게 그리스도인들의 삶에서 생활신앙으로 구체화된다. 특히 장공은 신앙에서의 관념화되는 부분을 최대한 경계하고 있다. 즉 생활신앙이란 곧 ‘행하는 믿음’을 의미한다고 보았다.70) 장공은 그리스도인들이 생각으로는 무엇이 옳은지 알면서도 생활 속에서 결단할 때는 이중적인 잣대를 가지고 불의와 결탁하는 것을 ‘죽은 믿음’에 비유한다. 그런 의미에서 장공은 생활신앙으로의 개혁을 강조한다.71)


69) 김재준, “신앙생활에서 생활신앙으로,” 전집9권. 152-153.
70) Ibid., 153.
71) 김재준, “야화원잡기,” 전집15권. 266.


그런데 이러한 생활신앙이 제대로 실천되기 위해 이루어져야 할 환경이 있다. 장공은 그 환경을 하나님, 개인과 사회를 엮어 내는 도식으로 설명한다.72)


72) 김재준, “장공컬럼(11),” 전집12권. 328.



생활신앙은 하나님-개인-사회의 삼각구도 속에서 실현되어야 한다. 즉 하나님과 개인, 개인과 사회, 사회와 하나님, 이 세 주체가 유기체 생명으로 막힘없이 교류할 때 진정한 기독교 공동체가 이루어진다. 장공은 생활신학의 원리를 구체적인 삶과 밀접하게 적용한다. 그리고 인간혁명을 기초로 교회와 사회 개혁을 이루어 가며 궁극적으로 인간과 사회와 자연이 하나 되는 ‘범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 목표이다.73) 그래서 장공은 자신에게 체화(體化)된 바울의 신앙과 야고보의 신앙의 양면성을 실천적 신앙으로 종합하여 선린형제단과 야고보전도교회(현 경동교회) 등을 설립하여 자신의 기독교적 세계관을 전 사회적으로 확대시켜 나갔다.


73) 류장현, 『종말론적 신학과 교회』, 229.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는 장공 신학의 핵심이며 그의 초기 사상에서부터 니타난다.


[4]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


- 장공의 종말 이해


장공은 한국 교회가 전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종말론적 내세관을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한국 기독교의 중점적 선교 표어는 죽은 다음에 천당간다는 약속이었습니다. 종교에는 물론 내세관이 정립되어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은 내세를 포함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종교는 개인과 사회, 활동과 인식, 금세와 내세, 항구성과 변천성, 신앙과 행위, 타력과 자력, 예정과 자유 등의 두 「극성」이 서로 긴장하면서 전진 발전하게 하는 생산적인 양극성(productive polarity) 입니다. 그러므로 일방적인 견해는 오해 또는 곡해를 가져와서 종교의 활력을 폐쇄, 정체 또는 파괴하기 쉽습니다.74)


74) 김재준, “인생과 종교,” 전집2권, 290.


장공의 종말 이해는 이런 점에서 구속사적 종말론의 형식과 닮아 있고, 루터의 개혁적인 종말 이해에 잇닿아 있다. 그러나 명확히 어떤 종말론의 사상을 견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장공은 묵시 문학을 중심으로 종말 신앙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종말 사상이란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의 백성에 국한된 의미에서 취급되는 것이나, 나라들과 전 세계, 자연까지도 하나의 유기적인 전체로 이에 관련되는 것이므로 넒은 의미에서 말한다면, 「종말의 교리란 것은 그 관점이 개인적이든, 일반적이든 간에 세상 마감에 관한 교리를 말함이라.」(Beckwith)고 하겠다. 그런데 이 대망이 메시야적인 관련에서 전개되고 있으므로 사실상 메시야 사상과 종말 사상은 동의어라 할 것이다.75)


75) 김재준, “요한계시록 주석, A. 예비적 연구,” 전집6권, 281.


결국 장공은 기독교의 종말이란 하나님을 만나는 인간의 상태를 의미한다고 보았다.76) 그 하나님은 절대적인 주체이기 때문에 단순히 세상의 대상을 만나는 것과 달리 ‘시간’에서 ‘영원’을 만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 개인이 죽는다(종말)는 것은 나의 ‘시간의 세계’를 떠난다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한 개인에게 찾아오시는 사건은 그 존재가 죽는(종말) 것을 의미한다.


76) 김재준, “종말적 신앙,” 전집3권, 282.


장공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종말로 보고 있다.77) 그것은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되기 때문이며, 십자가로부터 부활과 영광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역사의 종말도 마찬가지이다. 역사 전체로서 하나님 나라를 맞이하는 것이 종말이라는 것이다.


77) 김재준, “종말적 신앙,” 전집3권, 283.


그래서 역사 전체가 하나님 앞에서 종말을 고하게 되면 전 인류의 잘못된 집단 의지, 집단 죄악, 대 환란이 찾아오게 된다. 또한 그리스도의 재림은 ‘시간’ 안에서 인간의 나라가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부딪쳐 깨지고 그 속에서 택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때를 말하는 것이다.78)


78) Ibid., 283.


그러므로 장공은 단순히 하나님을 믿는 자는 천국으로 가고 믿지 않는 자는 지옥에 간다고 가르쳐 온 한국 교회의 타계주의에 경종을 울리며, 인격의 종말을 현세와 내세, 역사에 충실한 믿음과 내세의 영생신앙과의 관계를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라는 대승적 안목에서 이해하고 있다.79)


79) 김경재, “김재준의 성서실재론에서 부활체와 사후생 이해,” 장공기념사업회 광주강연, 2011.


- 범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


장공은 예수 그리스도가 선포한 하나님 나라를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로 이해한다. 그는 노년에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라는 주제로 설교 또는 강연을 많이 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자녀된 그리스도인들이 이루어야 할 사업과 비전은 실낙원인 이 땅을 다시 하나님의 낙원으로 회복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머물도록 해야 하는 것이며,80) 이 비전은 단지 우리가 사는 이 지구만이 아니라 전 우주적인 것이며, 모든 인간행동과 생활을 이 비전 안으로 통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것은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를 통하여 기존의 지엽적인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확대시키고 심화시킨 것이다.81) 즉 장공은 1945년 해방정국에서 하나님 나라의 현실성, 역사 속에 구현해 가는 과정으로서 실재, 초자연적인 측면과 현실적 차원의 통전, 현세와 내세를 아우르는 통전적 실재세계로 ‘하나님 나라’를 강조한 것이다. 우선 장공은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라는 주제의 핵심인 ‘사랑’의 개념을 재인식 시킨다.


80) 김재준, “범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 전집16권. 349.
81) 김경재, “장공 김재준의 삶과 신학-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 비젼의 교회론적 의미를 중심으로” 장공기념사업회 순회강연, 2015.


그리스도의 사랑은 위로부터 오는 성령의 생명이 신자의 심장 속에서 치솟는 생명샘입니다. 샘터가 자기 가슴속에 있으니 다시는 목마르지 않습니다. 그것이 도덕적이니 거기에 죄악이 없습니다. 공의가 바다에 물 덮이듯 합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사랑은 에로스, 아가페, 필로스를 모두 갖춘 사랑입니다. 인간을 예쁘게 봅니다. 더럽다, 밉다 하는 인간도 예쁘고 사랑스럽게 보입니다. 선과 악을 똑바로 구별하여 모두가 바르게 살기를 원합니다마는, 도둑놈도 양상군자라 하며 그 앞에서 절하고, 도와드리지 못한 것을 사과하며 수요품을 나눕니다. 이런 사랑의 범위를 넘어서 개인, 가정, 사회, 국가, 그리고 국제적으로 확충시키려는 것이 사랑의 공동체 운동입니다.82)


82) 김재준,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 전집18권, 530.


이처럼 장공은 하나님 나라 운동을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 운동을 통해 그 비전을 더욱 확대시키고 있다.


결국 장공은 사랑의 범위를 전 우주적으로 넓힐 때 우리의 공동체가 우주적으로 넓어질 수 있고 그 공동체가 이 땅위에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된다고 역설한다. 장공에 의하면, ‘사랑’은 비교하는 선택가치가 아니라 모든 것을 종합하고 하나로 만드는 완전체이다.83) 그러므로 인간은 우리만이 아니라 위로 하나님을 아래로 자연을 사랑하고, 이웃을 서로 사랑해야 한다.


83) 김재준, “범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 전집16권, 351


그렇다면 장공이 말하는 우주적인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는 어떤 모습일까? 장공의 “범 우주적 공동체” 비전은 장공의 신앙과 사상이 총괄된 정수이다. 김경재는 장공이 말한 범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에 대한 강연의 요지를 8가지 테제로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84)


84) 김경재, “장공 김재준의 삶과 신학-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 비젼의 교회론적 의미를 중심으로” 장공기념사업회 순회강연.


테제1. 범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 비전은 성육신적 영성을 그 신학적 기조로 삼는다.
테제2. 범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 비전은 인간의 존엄성과 죄성을 동시에 주목한다.
테제3. 하나님의 무량애(無量愛)와 속량적 회복과 창조질서의 우주적 영광을 바라본다.
테제4. 범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 비전은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소망한다.
테제5. 범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는 ‘사랑’이 궁극적 실재이고 영원함을 믿는다.
테제6. 범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는 만유의 영화(靈化)를 지향하는 우주적 그리스도이다.
테제7. 교회는 이 ‘범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의 거점이며 전선기지이다.
테제8. 교회는 본질상 신령한 영적사역이 본 임무이기에 사회복지기관을 넘어서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행한 일은 하나님의 이름이 땅에서 거룩하게 일컬어지고, 하나님 나라가 땅 위에 임하고,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고, 땅의 인간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땅의 자연이 하나님의 동산으로 되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고,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온 우주가 하나님의 영광의 장막으로 만드는 것이다.85)


85) Ibid.


따라서 장공은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가 전 우주에 적용되는 영원한 생명의 길이라고 보았다.86)


86) 김재준, “범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 전집16권, 352.


특히 교회는 이 ‘범 우주적 공동체’의 거점(據點)이며 전선기지이다.87) 이런 의미로 보면 장공의 신학에 있어서 교회는 단지 교회 건물이나 신자들이 임의대로 모여 조직한 단체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물론 교회라고 했을 때 ‘가시적 교회’와 ‘불가시적 교회’로 단순히 이야기하는 차원이 아니라, 장공의 신학에서 말하는 교회는 바울이 강조하는 ‘신령한 그리스도의 몸’이고 디트리히 본훼퍼가 강조한 ‘거룩한 성도들의 공동체’로서 그 안에 ‘그리스도의 영, 곧 성령’이 내주하시고 이끄시는 ‘하늘 기관’이다.88) 하지만 오늘날 교회는 자신의 본질을 상실하였다. 그것이 교회 위기의 원인이다.


87) Ibid., 352-353.
88) 김경재, “장공 김재준의 삶과 신학-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 비젼의 교회론적 의미를 중심으로,” 순회강연.


장공은 ‘범우주적 공동체’가 이 땅 위에 세워지고 운영되고 성장해야 한다는 비전을 제시한다.89)


89) Ibid., 351.


기독교인의 최고사상은 하나님 나라가 인간사회에 여실(如實)히 건설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하나님나라’ 라는 것을 초세간적(超世間的)인 내세적인 소위 천당이라는 말로서 그전 부를 의미하는 것인줄 알아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뜻이 인간의 전(全) 생활에 군림하여, 성령의 감화가 생활의 전부문을 지배하는 때, 그에게는 하나님나라가 임한 것이며 이것 전 사회에 침투되며 사선(死線)을 넘어 내세에 까지 생생발전(生生發展)하여 우주적 대극(大極)의 대낙원의 날을 기다리는 것이 하나님나라의 전모일 것이다.90)


90) 김재준, “기독교의 건국이념,” 전집1권. 159.


장공은 이미 그의 생애 중년기에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 사상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선포한 ‘하나님 나라’를 이해하였다. 그것은 1950-60년대 당시 대부분의 한국 교회들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해가 너무나 타계적이고, 초세간적이어서 현세적 인간 삶과는 유리된 초자연적 실재세계라는 오해를 바로잡으려는 의도가 있다.


또한 그것은 하나님 나라가 현세적인 시공간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후세계까지 연계되면서, 역사와 대자연의 실재가 하나님의 주권적 사랑의 지배 아래로 통전되는 우주적 변화의 비전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온 만물의 탄식에 응답하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과 역사와 우주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의 곧 ‘우주적 그리스도’의 복음이 개인과 사회에 생명으로 현실화될 때 하나님나라는 완성될 것이다.


[5] 한국 교회와 장공의 그리스도론


- 칭의론에 치중한 강단


오늘의 한국 교회, 특히 보수적 교회는 그러한 개혁과 변화를 요구하는 소리를 비신앙적 행위라고 밀어붙이고, 교회 안에서 헌신과 헌금은 강조하지만 사회적 공의를 실현하는데는 무관심 하다. 소위 보수적 교회는 물론 이제는 많은 한국교회가 그들만의 공동체로 전락하고 있는 현실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먼저 개교회의 부흥과 개인의 구원만을 강조하는 풍토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즉 한국 교회는 “은혜와 믿음”으로만 의인이 된다는 칭의론을 강조하며 정의와 윤리의 문제를 도외시하는 왜곡된 칭의론을 부단히 강조하여 칭의론의 한계에 봉착하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은 결국 한국교회 강단에 있다. 장공은 이미 70년대 한국교회의 모습을 바라보며 “믿음의 타계화”를 지적했다. 즉 칭의론에 치우친 한국 교회 강단이 ‘믿는 사람은 세상에서 탈출하여 교회 안에 들어와 있다가 거기서 천당에 가는 것이다’라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일상생활은 믿음에 거추장스러운 장애물 정도로 생각하게 된다.91) 결국 신자들이 “믿음으로” 천국행 티켓을 땄으면 된 것이고, 이 땅의 삶은 자신들이 알아서 살거나 국가나 기업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선포한다.


91) 김재준, “말씀을 새긴다(10),” 전집10권, 37.


현실적인 한국교회의 문제는 교회 강단에서 선포되는 설교의 갱신을 통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의 개인주의적인 측면으로 협소화된 칭의론의 영역을 극복해야 하며, 인간의 전인적인 차원과 사회적인 차원으로까지 나아가는 통전적으로 회복시켜야 한다.


이러한 대안으로 “시간과 역사의 주인이어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그의 안에서 통전되고 하나로 되어 영원에 잇닿아 인간 역사를 하늘의 영광에로 변화시키는 힘”을92) 가진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장공의 통전적 구원론을 제시한다. 그리하여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칭의를 통해 책임적 존재로서의 새로운 인간이 되어야 한다.


92) 김재준, “영광의 그리스도,” 전집3권, 385.


- 사회적 책임성의 결여 문제


최근 들어 대형교회의 내부 갈등, 교단 선거를 둘러싼 법적 소송, 목회자들의 비도덕적, 비윤리적 문제 등으로 한국교회는 비난과 질책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7-80년대 괄목할 만한 교세 확장을 보인 한국의 개신교는 90년대를 기점으로 양적으로 하향세가 두르러진다. 이러한 위기 상황을 대변하듯 “한국인의 종교생활과 의식조사”에 나타난 한국교회에 대한 이미지를 평가하는 항목에서 한국의 기독교인 하면 연상되는 단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93) 전도/노상전도(20.2%), 성경/성경책(14.1%), 기도(14.0%), 목사/목회자(14.0%) 등이며, 그 외 이기주의(5.0%), 가식적/위선적(3.4%), 시끄럽다(3.1%), 맹목적(2.4%), 집요함(2.2%)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또한 종교별 전반적 신뢰도 평가에서도 천주교(26.2%), 불교(23.5%), 개신교(18.9%) 순으로 한국 교회의 신뢰도는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한국교회의 영향력에 대한 평가를 묻는 질문에 주목할 만한 지적들이 다음과 같이 조사됐다.


93) “한국인의 종교생활과 의식조사” 기본설계, 조사수행기관 : (주)글로벌리서치 <책임연구원:지용근, 담당연구원:조성실, 황요한, 박영신>


첫째, 한국교회가 개인·사회적 차원의 순기능은 해왔지만 사회 구조 자체를 바꾸는 측면에의 노력은 타 종교대비 미약하다.
둘째, 한국교회가 선교와 복음전파의 양적 투입에도 불구하고 성과가 크지 않기 때문에 선교적 전략을 재검토해야 한다.
셋째, 한국교회가 개인의 행복과 힐링 측면에는 어느 정도 역할을 하나, 사회 갈등 상황에서의 중재하는 기능이 부족하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회적 그리스도”이며94) 그의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사회적 복음”이다. 전통적 기독교는 지금까지 예수의 복음에서 그 사회적 의미를 주목하지 못했다.95)


94) Weltreich, Religion und Gottesherrschaft, 1 Bde, (Erlenbach-Zürich; München; Leipzig, 1922), 108.
95) 류장현, 『하나님 나라와 새로운 사회』, 114.


장공은 “산 아래로 내려가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에 주목한다.


그리스도 자신은 영광을 십자가로 대체시켰습니다. 그는 십자가 없는 영광을 원치 않았습니다. 산 아래 거기에는 아직도 받아야 할 세례가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스도교 그것은 역시 묵시에서 생활로 예배에서 봉사로, 망대에서 거리로, 수도(修道)에서 선교에로, 원수까지도 영접하는 활짝 열린 마음의 소유자로 사는 인간들입니다. 그 길에는 십자가의 언덕이 반드시 있습니다.
우리가 따라 갈 그리스도는 행진하는 그리스도십니다. 한 자리에 앉아 예배나 받으시는 좌상(坐像)이 아닙니다. 몰아내야 할 성전 안의 강도떼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깨끗함을 받아야 할 환자들이 있습니다. 해방되어야 할 피압박 계층이 있습니다. 이 모든 악의 세력에 도전하려면 스스로 결사대가 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우리가 이 전투에서 얼마나 용감하냐 하는데 따라 그만큼 기대되는 면류관도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격세간적인 초연 (aloofness)에서 우리의 신앙을 완전케 할 시대가 아닙니다. 신비에 도취하여 꿈에 잠길 시대가 아닙니다. 지금은 우리의 전 존재,우리의 전 소유와 목숨을 대속제단에 드리기를 요구하는 시대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거리에 내려가 거기에서 우리 무대를 찾아야 하겠습니다. 거기는 우리를 부르는 폐허입니다.96)


96) 김재준, “산상의 신학,” 전집3권, 38.


장공은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지 몇 가지 믿음의 테제를 제시한다.97) 첫째, 믿음은 행동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행동으로 나타난다.


97) 김재준, “말씀을 새긴다(10),” 전집10권, 35-36.


둘째, 믿음은 하나님의 행동에 동참하는 인간의 행동이다.


셋째, 믿음은 세속사회에서 사건으로 나타난다.


장공은 교회가 선포하는 복음이 결코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것을 둘 다 포함하는 것이라고 보았으며, 이 세상이 잘못되는 책임은 불신자나 하나님에게만 전가시키는 것은 결코 기독교적인 태도가 아니라고 일갈한다. 그리고 진정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사회적 의식에 철저해야해야 함을 말하고 있다.


즉 그리스도인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사회의식이 신앙면에서 철저해야 하며, 둘째로 도덕적으로 모범적이어야 하고, 셋째로 기술적으로도 능숙해야 함을 지적한다.98)


98) 김재준, “교회와 사회,” 전집2권. 226.


[6] 결 론


한국의 보수주의 교계에서 장공을 오해하고 있는 점은 그가 성서의 기적을 불신하고, 성서를 파괴적으로 비평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장공은 문자에 갇혀 성서의 진리를 왜곡하는 태도를 비판한 것이지 복음의 내용을 파괴하거나 헤치지 않았다. 장공은 젊은 시절 성령의 체험을 통해 확실한 하나님 신앙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믿음의 핵심인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신학적 논지를 펼쳤다.


장공은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 자신이 육신을 이루어 인간에 오신 분으로, 역사 안에 오신 신인(神人, God-Man)으로 고백한다. 장공의 기독론은 ‘위로부터의 기독론’에 가깝지만 일방적이지 않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들로서 ‘하나님의 형상’인 ‘참 인간’으로 진리와 정의와 사랑을 가지고 역사 가운데 몸으로 오셨다. 그 결과 인간에게 속한 육신적인 연약함을 지니셨고 온갖 번뇌와 갈등과 시험을 경험하셨다.(히 4:15) 즉 인간의 모든 공통된 속성을 취하셨다. 즉 장공은 실존적으로 인간을 위한 그 의미에 따라 해석되는 ‘아래로부터의 기독론’의 모습도 취하고 있다.


장공은 예수 그리스도를 관념적으로나 신화적으로 보지 않았다.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끝마친 분이 아니라, 부활하신 살아계신 그리스도이며 승천하시고 다시 오실 영원부터 영원까지 살아계신 분이다.99) 우리는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통해 풍성한 생명, 영의 자유, 영원히 살아서 일하시는 인간이 된다.100)


99) 김재준, “산 말씀,” 전집3권, 366.
100) Ibid., 366-367.


장공은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 역사의 화해자요 중보자가 되심을 강조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화해 사건이 구원의 기본이 된다고 말한다.101)



101) 김재준, “사탄의 실태,” 전집4권, 146.


장공은 역사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주체이며 능동적이며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이루어 가기 위해 중보자요 화해자의 삶을 살았음을 피력하고 우리도 그런 삶으로 초청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십자가를 통해 우리에게 있어 창조주 하나님이 만드신 세계를 훼손하고 피조물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모든 분야 - 국제적, 정치적, 인종적, 경제적, 성적, 교육적, 종교적인 -와 불의에 맞서 싸워야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통치를 이루기 위해 화해자의 삶을 살지 못하는 데는 잘못된 믿음의 행태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여전히 ‘은혜와 믿음’으로만 의인이 된다는 루터의 ‘칭의론’를 강조하며 정의와 윤리의 문제를 도외시하는 왜곡된 칭의론을 부단히 강조하여 그 칭의론의 한계에 봉착하게 되었다. 이러한 칭의론의 한계를 장공의 통전적인 구원관에서 그 희망을 갖게 된다. 장공은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 육체적 질병으로부터의 구원, 정신적인 구원, 가정적 이기주의에서의 구원, 편협한 민족주의에서의 구원, 비인간화에서의 구원, 종교적인 학대에서의 구원, 사회 구조악에서의 구원, 영의 질서로 회복함으로서 영혼구원, 생태적 구원을 강조한다. 그것은 전통적인 개인 구원과 사회 구원을 넘어서 생태적 구원까지 포괄하는 “통전적 구원”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리스도를 전파할 때도 “통전성”을 담보해야 한다.


장공은 “신앙생활”이 아닌 “생활신앙”이라는 표현으로 신앙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102)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생각으로는 무엇이 옳은지 알면서도 생활 속에서 결단할 때는 이중적인 잣대를 가지고 불의와 결탁하는 것을 ‘죽은 믿음’에 비유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생활신앙으로의 개혁을 강조한다. 장공은 이러한 생활신앙이 한국기독교장로회의 정신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바울이 주장한 “복음의 자유”와 야고보가 말하는 “그리스도로 닮아가는 생활”이다.103)


102) 김재준, “신앙생활에서 생활신앙으로,” 전집9권. 151-152.
103) 김재준, “야화원잡기,” 전집15권. 266.


장공은 진정한 기독교 공동체가 이루어지려면 하나님과 개인, 개인과 사회, 사회와 하나님 이 세 주체가 유기체 생명으로 막힘없이 교류할 때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것은 인류가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하나된 ‘가족 공동체’를 의미한다. 그것은 라가츠의 ‘하나님의 가족공동체(Familia Dei)’와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한국 교회는 세대주의 종말론의 영향으로 교회를 사회적으로 고립된 종교 단체로 전락시키고 믿음의 본질을 변질시켰다. 장공은 한국 교회의 문제점을 타계적이며, 보수적이고, 개인적이라고 비판한다. 더 이상 신자들이 “믿음으로” 천국행 티켓을 땄으면 된 것이고, 이 땅의 삶은 자신들이 알아서 살거나 국가나 기업이 알아서 할 것이라고 사회적 책임을 미루는 한 통전적인 구원은 불가능하게 된다.


필자는 목회현장을 통해 추락하는 한국 교회의 실상을 절감하면서 이러한 위기상황에 대한 대안으로서, 개인적인 구원과 사회적인 구원을 넘어서서 통전적 구원을 주장한 장공의 신학사상을 살펴보았다. 더 이상 사회와 역사문제에 유리된 선포가 만연한 강단과 그로 인해 현실적 문제에 둔감한 교인들의 모습 때문에 현실과 역사의 문제에 초연해 있는 교회가 아니라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의 교회로 거듭나서 통전적인 구원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 모든 교회는 교파주의와 신학주의를 넘어서서 생활신앙을 통해 살아있는 종교가 되어야 한다.104)


104) 김재준, “생활종교를 지향하는 교회의 갱신,” 전집7권, 333-334.


필자의 소고는 장공의 예언자적 혜안(慧眼)은 단순히 교회에 비판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통전적 구원을 방해하는 타락한 교회와 비인간화하는 불의한 사회에 새로운 목회적 안내서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즉 장공의 신학의 결정체인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의 비전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극대화하며,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가 자기 개혁을 통해 실낙원의 세상을 회복시켜 나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