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공의 글

[1253] 3ㆍ1운동의 앞날은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9-02-26 16:29
조회
42

[1253] 3ㆍ1운동의 앞날은


1919.3.1운동은 일제 군국주의 식민인 조선이 자주하는 독립국으로 서려는 “독립운동”이었다. “독립”되어야 한다. 그때부터 62년째 되는 오늘에는 “독립”이 됐는가?


자유와 실제


개인자유 없이 “자주”할 수는 없다. 자주하지 못하는 인간집단이 독립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1945년 8.15의 “해방”은 그 자체가 자주와 해방에의 열린 길이었지만 그것이 3.1운동의 “성취”는 아니었다. 본지 57호(통권101호) “우리의 길은…”이란 제목에서 필자가 대략 언급한 것과 같이 한국은 실제에 있어서 아직도 일본의 경제식민지, 미국의 군사 및 정치 거점으로 엄연한 “종주국-예속국” 관계를 고정시키고 있다. 전두환은 미국대통령으로부터 그 보장을 받고 신이 나서 김대중과 민주화 지도자들을 중형에 처한 대로 “대통령”이 됐다. 그러나 자기 동족의 “피바다”, “백골탑”을 발등상으로 한 “보좌”가 오래갈 수는 없지 않을까? 에스겔 예언자의 “비전”에서와 같이 그 산떼미처럼 누적된 마른 해골들이 서로 이어지고 그 해골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붙고 가죽이 덮이고, 여호와의 입김이 그 속에 주입되어 거대한 “군대”가 되고 보무당당하게 행군하게 되는 때(에스겔 37:1-10) 그 해골윗 보좌가 어떻게 뒤집혀질 것은 말 안해도 뻔한 일이 아니겠는가? 지금 벌써 그 징조가 보이고 있다. “신문고”소리가 높아지고 하느님의 심판이 선포된다. 교회의 어용화, 언론의 축음기화, 양심의 강제 등등 이루 헤일 수 없는 “역천적”(逆天的)인 신성모독행위가 그대로 그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이 된다.


기미 3.1운동은 갓난애기의 젖달라는 “절규”였다. 일본 군국주의 침략자들은 그 젖달라는 배고픈 어린이들을 백만단위로 살해했다. 하느님의 성령이 만일 “어머니”였다면, “라마에서 라헬이 그 살륙된 자식을 위해 통곡하는 소리가 2천만의 심장에 못박혔을 것이다”(예레미야 31:15).


성령의 애곡이 한반도에 상복을 입혔던 것이다. “그러나 네 소리를 금하여 울지 말며 네 눈을 금하여 눈물을 흘리지 말라. 네 일에 갚음을 받을 것인즉 그들이 그 대적의 땅에서 돌아오리라”, “너희 최후에 소망이 있으리라”하고 격려하는 성령의 위안도 겨울나무에 깃들인 봄생기처럼 속삭였던 것이다. (예레미야 31:16, 17)


이것은 잡혀간 내 백성, 망한 내 나라, 폐허된 수도에 홀로 남은 예언자 예레미야의 슬픈 소망이었다. 일제시대의 우리민족은 수십만이 적국에 잡혀가 형편없는 저임금으로 공장에서 생기름을 착취당했다. 소년들은 일본의 유리공장, 돌 녹이는 용광로 앞에서 녹아내린 유리물에 댓가지 같은 속빈 쇳대를 찍어 그걸 입으로 불어 “후리스꼬”를 만드노라고 볼이 늘어져 처지고 어린 몸에서 땀과 기름이 빠져 희멀건 껍질만이 벗어버린 뱀껍질처럼 속이 빈다. 그래서 유리값이 싸게 먹어 잘 팔리니 공장주는 “잘산다” - 본국에 남아 사는 우리민족은 24시간 연금된 형편이었다. “24시간 하우스아레스트”가 36년을 이어갔다면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보다 나을 것이 없지 않을까? 영세(零細) 소작인들은 “동척”의 토지겸병과 일본 농민 이식 때문에 무작정 집을 떠나, 올망졸망 어린 것들 데리고 바가지 차고 두만강을 건너 만주 동삼성 중국농장(農莊)의 “농노”가 된다. 이것 역시 이스라엘의 바벨론포로 그대로였다. 3.1의 절규는 진실로 “라마”에서 자식 학살당한 어머니의 “위로를 거부하는” 울음소리였고 어린이들의 배고파 우는 부르짖음이었고 아직 분해 또는 분석되지 않은 민족적 “한”의 분출이었으며, 그러면서도 아주 잃지 않은 “돌아옴”을 하늘의 공의와 인간의 양심과 사회의 공의와 세계의 대세에서 믿고 나선 천성(天聖) 의 메아리였다.


그러나 하느님의 사랑도 인간의 정(情)도 아랑곳 없이 총으로 쏘고 칼로 베이고 창으로 찌르고 올가미로 목매다는 침략적 군국주의의 “광자”(狂者)는, 마구 쏘고 찌르고 밟고 불질러 태워 죽이고 했다. 그 당시 우리의 수난자들은 “소리없이 세상 죄를 지고 광야를 헤매는 어린양”의 모습이었다.


이것은 먼 후일담이지만, 필자가 미국 핏즈벅 웨스턴신학교 재학 중 일본에 선교사로 가 있던 “라이샤우어”란 분이 일본과 일본민족의 습성에 대하여 강연하는 것을 들은 일이 있다. 그는 일본연구에 있어서 상당한 학자로 인정받는 분이라고 했다. “일본인”은 천황에 대한 충성으로 통일돼있다. 천황이 “싸우라” 하면, “우미유까바…”를 부르며 죽으러 간다. 그들의 영광스런 “죽음”은 순교자처럼 비장하다. “우리 크리스찬은 전쟁에서 적을 창으로 찔러 선지피가 치솟을 때, 안됐다, 끔찍스럽다” 하는 죄의식을 맘 변두리에 느낀다. 그러나 일본병정은 종교적으로 적을 죽인다. 창으로 적병을 찔렀을 때, 솟구치는 선지피를 보며, “이제 나는 천황 폐하에게 충성을 다했다”, “천황폐하 만세”를 부른다. “종교적인 희열을 느낀다”고 말했다. 해방 후의 일본은 많이 달라졌다지만 전체국민으로서의 일본인은 그 농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위에서 지적한 “멘댈리티”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겼다고는 말할 수 없다고 한다.


이런 군벌에서 한국은 먹혔다. 10년 동안, 독사에게 통채로 삼켜진 노루처럼 지냈다. 요나처럼 고래 (?) 뱃속에 있었다. 그야말로 “음부”의 어둠속이었다. 그러나 우리민족은 일본이란 뱀의 뱃속에서 소화되기에는 너무 질긴 생명이었다. 성능높은 소화액도 침투할 수 없는 전통과 문화와 민족의식을 지니고 참으며 기다린 것이었다. 뱀은 소화불량에 몸부림친다.


결국 때가 왔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이 이기고 “빠리”에서 강화회의가 열리고 미국의 우드로ㆍ윌슨 대통령은 숱한 위성국가를 만들어 독일을 포위했다. 그래서 이른바 “독립국가”들이 세계지도의 색깔을 다시 칠해버렸다. 한국의 색깔도 다시 칠해질 수 있지 않겠는가? 동경의 한국 유학생들이 독립선언서를 뿌렸다. 본국의 각양 종교단체가 민족대표로 되어 3.1독립선언서를 탑동공원에서 읽었다. 곧이어 전국이 자유, 자주하는 독립 민주국가로서의 조선임을 선언했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그리고 당연한 인간절규였다. 자유 없이 인간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국가” 이전의 “인간” 되찾기 “절규”였다. 그 결과가 보장된 것도 아니고 예약 또는 예견되는 것도 아니었다. 어쨌든 부르짖지 않을 수 없는 근원적인 생명의 발성이었다. 그러나 바라던 대로 되지 않았을 때의 좌절감, 일제의 강압과 회유 등등으로 지도자의 심상(心像)이 어지럽게 되고 일관된 목적 의식이 희미해지기도 했다.


이런 실상에서 “신간회”의 대동단결운동이 주창되었다. 그러나 도리어 분해작용을 촉진시켜 “좌”와 “우”가 분명해지고 말았다. “어린애”의 종합된 욕구가 10대 소년의 다양하고 구체적인 용구에로 “발전” 된 것이었다. 이제는 “정”과 “반”이 대립됐다: 61년의 긴 세월이 지난 오늘에 있어서도 이 “정”과 “반”은 더 높은 차원에서의 “씬테시스”를 발견 못한 대로 맞서 응얼거리는 형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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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15에 남한은 해방됐다. 북한도 해방됐다. 그러나 “독립”이라기에는 실상이 이를 거부한다. 두 편이 모두 어느 강대국의 “위성국가”처럼 됐다. “남한”에서는 북한을 “괴뢰”라고 불렀다. “위성국가”보다 더 저급의 별명이다. 그러나 “괴뢰”가 실상이라면 두 편에 다 적용될 성질의 것이 아니겠는가? 어쨌든, “3.1”은 환갑을 지냈지만 후손 없는 반신불수 늙은이로 길가에 쓰러진 채 허리를 못쓴다. 비참하고 괴상한 “역사”가 아닌가?


그 동안에 “내가 수술하면 말짱하게 낫는다”고 독재자가 전국민을 수술대에 누이고 피를 갈아대고 배를 가르고 끊고 베내고 남의 피를 집어넣고 했다. 긴급수술이나 가족도 친척도 얼씬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한지 4반세기가 훨씬 지난 오늘에도 긴급수술은 계속이고 환자는 위독상태를 지나 “혼수상태”에 잠겨든다. “혼수”의 침묵인지 침묵의 야간행군인지도 몰라도 “침묵”은 신나는 암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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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대통령 “레이건”은 취임 제일막에서 전두환을 불러 “한미 군사동맹”을 강화 또는 긴밀화했다. 자유고 민주고 독립이고 하는 민성(民聲)보다도 공산진영과 맞선 한국에서만 “만조”가 우선이어야 한다고 했다. 일본은 “일본의 안전선”이 한반도라고 공공연하게 주장한다. 그리고 한국의 “대통령”이라는 전두환은 자기나라를 고스란히 일본의 경제기지, 미국의 군사기지로 제공하고 그 댓가로 자신의 독재정권, 불법집권을 인준받았다. 그런 처지에서 우리가 3.1절을 “축하”할 수 있을 것인가? “자유한국” 되찾기 운동에서 가장 성실하게 독재자와 맞서 두번 세번 “사선”을 넘어 온 김대중과 그 동지들은 감옥에서 죽음의 “종막”을 기다리고 있다.


3.1은 아직도 비극의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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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카터”가 남긴 “인권”사상은 이주 사그라진 것 같지는 않다. “인권”이란 인간이면 누구나 갖고 있는 천부의 권리를 의미한다. 남ㆍ북을 막론하고 우리 민족도 “인간”이며 “인간집단”이다. 악마도 짐승도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남북교류, 남북통일 통일된 민족국가 재건에 있어서도 그 종합을 위한 제3차원은 “인간주의”어야 할 것이며 그럴 밖에 없다고 본다. 독재자도 어느 정도 국가에 유익한 업적을 남길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비인간화”를 전제조건으로 삼지 않고서 “독재”를 실천할 수는 없다. 인간이 인간답게 되기 위한 근원적인 조건이 “개인자유”기 때문이다. 개인자유를 인정하고서는 독재가 안된다.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도 “선의의 독재”는 없다.


3.1의 역사에 독재가 끼어들 수는 없으며 독재정권이 지속되는 한, 3.1 절은 “축제”일 수가 없다. 모든 형태의 민주운동자, 강제노동소와 감방속의 양심법, 해외 내외의 민주동자 장기적인 의미에서의 민족개조 운동자, 민주와 통일을 염원하는 종교인과 종교집단, 자유와 정의와 평화를 위한 전세계 여러 나라, 여러 민족의 공동전선형성 등등이 3.1운동의 발전적인 미래형이며 소망일 것이다.


“3.1”은 이제부터 건설적으로 발전해야 하겠고 그 전략에 있어서도 상당히 유동적이고 다양해야 하겠다.


[1] 폐쇄주의를 고집하지 말아야 한다.


장기적인 폐쇄주의는 국민과 국가를 우물안 개구리로 만든다.


[2] 강대국에 붙어살려는 노예근성을 탈피해야 한다. 나라격(格)의 위신을 높이면서 강대국들과의 떳떳한 자주외교와 군사적 경제적 호혜관계를 맺어야 하겠다. 박정희의 일본에 대한 “굴욕외교”, 전두환의 미국 및 일본 군국주의자들과의 군사적 일체화, 그것은 우리 국군이 그들의 용병(庸兵)으로 전락하는 세계가 된다. 외채의존 경제, 또다시 동족상잔을 첨예화하려는 반공제일주의 등등은 3.1독립정신을 모독하는 행위다.


[3] 정치, 경제, 종교, 문화, 교육 등등에 있어서 합리적, 도덕적, 영적인 면을 강화하고 총, 칼에 의존하는 폭력주의를 최대한 감축시켜야 하겠다. 따라서 군인은 “정치”를 그만두고 군인본연의 업무에만 충실해야 한다.


[4] 남북통일을 위한 성실한 회담과 교류와 서신교환, 가족방문 등등을 가능한 최대의 범위로 실시할 것이다. 김대중의 3단계 통일론은 어떤 정권에서도 용감하게 채택하여 그 실현에 계속 힘써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욕속부달”을 피하기 위해서 말이다.


[5] 금후의 3.1운동은 그 강령에 있어서, 그 당시에는 없었던 “통일” 운동을 의무적으로 취급해야 할 것이며 그 목표로서는 “사회화한 민주주의” 개인자유와 사회정의와 세계평화가 병행하는 복지 민족국가 형성을 핵심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진행 순서로서는 남한의 민주화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지만, 황하물이 맑기를 기다린다면 부지하세월일 것이니 둘을 병행시키는 방향으로 추진할 수도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정치적 유도(誘導)나 정보적 탐색을 주요목적으로 한 행동은 오히려 분열을 조장하는 역효과를 낼 수도 있을 것이다. 전인구의 2/3를 갖고 있는 이남을 붉은 단색으로 칠할 수도 없겠고 “에너지 쏘오스”의 대부분과 중공업기관과 그리고 용의 주도하게 세뇌되고 훈련된 이북인민을 푸른 일색으로 도말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남의 자유민주와 이북의 통제사회주의를 건설적으로 조화시켜 실생활 전략을 세우는 지혜를 강구하는 것이 3.1금후의 건설적인 미래상이 아닐까 한다.


[6] 1919년 3.1운동은 역시 “인테리”층의 주도 아래서 진행되었다. 지금과 금후에도 “인테리”를 빼놓고 이 운동이 제대로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대세는 “민중”, “대중”의 시대로 전환하고 있다. 일은 밑바닥이 움직여야 된다. 그러므로 3.1운동의 “대중화”, “인테리”가 민중 속에 파고들어 “민중”이 되고, 민중은 “인테리”가 되어 “지성화한 민중집단”으로 일제궐기 한다는 것은 무서운 힘이다. 그러나 거기에 하느님의 “생기”가 그들에게 주입되어 그들이 산 “영”과 “혼”이 되는 때, 3.1 정신의 비전은 한반도에서 민족의 산 “몸”으로, 거대한 생명의 “군대”가 되어 당당하게 행진할 것이다.


1981. 3.1
L.A 의 숙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