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공의 글

[1760] 부활은 영생의 열매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8-07-09 10:14
조회
8

부활은 영생의 열매
(마태복음 22:23-33)


창조 질서에서의 인간은 살다가 죽을 것이 아니라 영원히 살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참인간은 죽음의 종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죽을 분이 아니었고 죽을 까닭이 없는 분이었습니다.


1) 인간은 하나님 형상으로 지어진 존재인데 하나님은 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형상도 죽지 않습니다. 하물며 하나님 자신이신 성자께서는 창조주 자신이시니 죽음이 있을 수 없습니다.


2) 역사 안에 오신 예수님은 성령의 화신이시니 성령에게 죽음이 있을 수 없습니다.


3) 그리스도는 스스로 인자(人子)라고 하셨는데 죄의 얼(擊)이 없는 인간에게는 죽음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는다.”고 야고보는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참인간이신 참 하나님 형상이시니 죽음이 범하지 못할 존재자십니다.


4) 예수님은 변화산상에서 그 몸이 영광으로 변모하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본모습을 드러내신 순간이었습니다. 완전한 하나님 형상으로서의 인간 범죄 이전의 인간 원형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5) 예수님이 물위를 걸으신 것도 같은 사례의 현현이었습니다.


6) 그런 분이심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 자신에게 죽음의 씨앗이 본래부터 있어서 그러했던 것이 아닙니다. 인간들의 죄와 죽음을 영원한 생명에로 변화시키기 위한 대속제물로 속죄제단에 바친 그의 한량없는 인간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구약성서 이사야 53장을 자신의 생활목표로 정하고 돌진하신 것입니다. 그는 죽기 전에 그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제자들에게 여러 번 예고했습니다. 그것은 그 광경이 너무 비참한 것이기 때문에 제자들이 좌절하고 실망할까 걱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온전한 사랑으로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다 이루었다.”고 하시며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것만으로는 철인의 진리를 위한 죽음, 성자의 선을 위한 죽음, 의사(義士)의 정의를 위한 죽음, 충신의 나라를 위한 죽음 등과 반열을 같이한 죽음일 것입니다. 여기에는 자신의 인격적 온전성 (integrity)을 지킨 것뿐이요, 만민 대속의 직접적이고 효능적인 의미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예수의 고난과 죽음에 대하여 “아멘” 하셨습니다. “내가 너의 속죄제들을 받았다. 그리고 네 죽음을 통하여 죄가 용서되고 만민이 생명에로 진입했다. 생명이 영원한 생명체로 구현된다. 본래의 영의 몸이 회복된다. 그것이 부활체다. 신상(神像) 회복의 처음 익은 열매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영의 몸은 시간과 공간에 제약되지 않습니다. 나타남과 숨음이 자유자재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유령이 아닙니다. 영화한 몸입니다. 사람들이 만질 수 있고 그가 말할 수 있고 사귈 수 있고 식사를 나눌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몸은 육의 몸이 아닙니다. 바울이 말한 대로 썩을 몸, 죽을 몸이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의 몸도 같은 몸입니다. 우리의 죽을 몸이 죽지 아니할 몸을 입고 우리의 썩을 몸이 썩지 아니할 몸을 입습니다. 종말에는 우리의 몸이 변화산상의 예수님 몸과 같이 영광으로 변화할 것 입니다.


부활은 인간 완성의 마감매치입니다. 사회적으로는 하늘나라의 강림입니다. 통틀어 말한다면 그리스도의 부활은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 창건을 향한 처음 익은 열매입니다.


부활한 그리스도는 40일 만에 승천하셨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영원한 왕국에의 진입입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는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에 임금으로 좌정하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 신자들의 작은 생명도 그리스도의 무량애 안에서 전 우주의 상속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위대한 경륜은 신화도 환상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입니다.


우리는 이 중간 시간에 살고 있습니다. 모든 과거가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서 속량되었습니다. 모든 미래는 그리스도의 하나님 나라에 심어졌습니다. 세속 역사는 그리스도 역사로 변화되어 갑니다. 우리는 그 누룩의 구실을 맡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모습이 우리 모습의 원형입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그리스도 모습이 완전히 이루어질 때까지 날마다 옛사람의 죽음과 새사람의 부활을 경험하며 성장합니다. 교회는 그 작업을 위한 산모요, 산파요, 동시에 보육원입니다. 교회와 역사는 날마다 죄에는 죽고 의에는 부활하는 생명체입니다.


부활은 현실에서의 삶의 실상입니다. 오늘 마태복음 22장 23~33절에 기록된 levirate marriage(역연혼, 죽은 자의 형이나 아우가 그 미망인과 결혼하는 관습)에 관련된 질문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은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이 살아 있는 동안 그 삶의 의미와 양식과 사명과 의무를 밝혀 주고 그 삶을 하나님 안에서 영원한 삶으로 변형시키신 하나님이신 것과 아브라함 그밖에 족장들이 죽었을 때에는 그 생명이 그들의 하나님 안에 감춰져 하나님 생명과 함께 영원할 것을 의미한 것입니다. 족장들의 죽음은 하나님 안에서 더 크고 거룩한 생명에로 부활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우리의 세례도 옛사람의 죽음과 새사람의 부활을 의미하는 예전(禮典)입니다.


로마의 카타콤은 죽음과 부활의 상징입니다. 로마제국이 기독교도들을 무차별 살육할 시절에 죽음의 고장인 땅속 무덤을 개미굴처럼 요리조리 파고 거기에서 기도하고 예배하고, 죽으면 거기에 묻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좌절되거나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거기서 부활의 아침, 천사의 나팔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부활의 소망 없이 그들의 인내와 용기를 이해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인간의 소망이요, 역사의 소망이요, 전 우주의 소망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영원한 생명이며, 그 처음 익은 열매요, 범 우주적 생명의 공동체 창립기념 및 축하제전입니다. 우리는 그 기수입니다. 종말은 속량세계의 완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