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용기

[범용기 제1권] (1) 첫머리

작성자
changgong
작성일
2017-06-26 20:08
조회
1403

첫머리


뉴욕 몽클리어 대학 사회학과 주임교수인 김병서 박사가 사회학 연구의 다원적인 재료수집중-내적 인격적인 어떤 개인의 생활기록이 재료로 요구된다면서 내 생애의 이야기를 녹음한 일이 있었다. 그때 나는 내가 살아온 생애인데도 그것이 이런 분들의 요청에 응할 만큼 정돈되어 있지 않음을 절감했었다. 그래서 내가 나 자신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서라도 될 수 있는대로 Comment 없는 내 삶의 기록을 관조하고 싶어졌던 것이다.


세상에 위인(偉人)들 전기는 많지만, 평범한 인간의 생애 기록이란 없지 않은가? 써 놓았자 시시할거고, 거의 모두가 그런 것들이니 ‘희소가치’도 없을 것이고 해서 애당초 쓰지들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못난 사람도 ‘인간’인데 아무 기록도 없으라는 법은 없지 않을까? 못난 사람에게도 무조건 사랑하는 자녀가 있고 못난 것이 좋다는 허물 없는 친구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이 애정 때문에 그 기록이 보고 싶을 것이 아닐까?


그래서 적기 시작했다. 못난이의 기록이라 해서 「범용기」(凡庸記)라 이름했다.

나는 유교의 영향 아래서 소년시절을 지냈다. 그래서 저절로 유교적인 마음이 풍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나는 지금도 대가족제도 안에서의 독립 가정을 생각한다. ‘핵가족’시대라지만 혈연(血緣) 공동체를 경시하고 싶지 않다. 형제 자매 친척이 좀 더 ‘한 집안의식’에서 자주 내왕하며 서로 나누며 사는 행복이 아쉬워진다.

내게 있어서는 아들, 딸, 사위, 며느리가 똑 같은 Status로 느껴진다. 모두가 내 혈육 하나에 딴집 혈육 하나가 합하여 한 몸된 Status기 때문이다. 따라서 며느리가 딸 같고, 사위가 아들 같다면 비슷한 표현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내 가족 아닌 다른 친구들이 내 가족들 이야기에 흥미로울 까닭은 없을 것이므로 그런 경우에는 다른 부분에로 넘겨 뛰어주기를 바란다.

나의 ‘나라’ 의식은 솔직히 말해서 해방 이후부터다. 일제시대에도 민족 의식은 있었지만 ‘나라세우기’까지는 미처 뜻하지 못했다.

나의 사회참여 의식은 ‘3선개헌반대 범국민 투쟁위원회’ 때부터 강화되었다. 그 전에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짐’(Burden)이 되어 나를 누르는 정도는 아니었다. 통털어 말해서 나는 내 혈육공동체를 내 삶의 ‘핵’으로 생각한다. 그것이 사회관심에로 전개되고 교회와 국가와 민족에의 관심으로 응결된 것이다. 교회는 내게 있어서 혈육에서가 아닌 신적인 공동체이다. ‘은혜’의 기관이다. 그러나 내 전체로서의 ‘삶’에서 분리되거나 제외된 것이 아니다. 그러길에, 내 삶의 기록에서는 내 집에서 자라나는 자녀들 이야기가 교회와 사회와 국가의 이야기 속에 자연스레 섞여 있다. 용서로 읽어주면 좋겠다. 이건 역시 유교적인 내음인 것 같다.

내가 받은 기초교육이란 국민학교 4년, 간이농업학교 2년 합쳐 6년 밖에 없다. 그리고 내 고향이란, 두만강 국경지대 유폐된 산촌이었고 한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서울, 일본, 그리고 태평양 건너 여기까지 와서 80평생의 마감 고비를 ‘나라와 정의’에 ‘분향’한다는 엄청난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바울이 고백한 것과 같이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영어 번역에서는 ‘By the grace of God! I am What I am’(고전 15:10)이다. 나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다. 그러므로 ‘What I have’가 아니라 ‘What I am’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기억’이란 놀라운 선물이다. 기억이 없으면 문화전승도 없다. 그런데 늙으면서 ‘기억’이 어디론가 증발한다. 어떤 것은 갑작스레 다시 돌아오기도 하지만, 아주 가 버리는 율이 더 많다. 그래서 ‘기록’으로 붙잡아 두자는 것이다. 그러는 것이 하나님이 내게 베푸신 ‘은혜’의 증언일 수도 있을 것 같아서다.

‘하느님이 기억하신다’고 하지만 장본인인 내가 잊어버리고 있다면 ‘핀트’가 맞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 아들도 땅에 임한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도 이 땅 위의 하늘나라 씨앗을 심는 것이다. 내 삶이 범용 그대로일지라도 땅의 미래에 묻어 놓고 언젠가 싹트기 기다려 보자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망각’은 싫다. 기억을 위해, 기록은 역시 매혹적이다. 특히 ‘범용’한 인간에게 있어서 말이다.

기억나는 대로 대강 적어 놓고 다시 읽노라면 ‘나라와 권세와 영광은 오직 하나님의 것’이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