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용기

[범용기] (20) 서울 3년 – 하숙에서 쫓겨나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7-07-08 15:39
조회
169

[범용기] (20) 서울 3년 – 하숙에서 쫓겨나


나는 하숙집 밥값이 밀려 이부자릴 떼우고 그 추운 겨울거리에 쫓겨났다. 그러나 내 심경은 오히려 드높았다.


그 무렵에 나는 <톨스토이의 십이장>이란 책과 그의 저작집도 더러 읽었다. 부요한 귀족으로 자기 토지를 소작인들에게 나누어주고 농민들과 노동을 같이 하면서도 오히려 부족하여, 어느 낯모르는 동네에 천한 머슴살이로 종신하고 싶어 팔십노옹으로 몰래 집을 나와 야스나야 폴리아나 시골 작은 정거장 대합실에서 급성 폐렴으로 세상 떠난, 그 영원한 불꽃을 부러워 하기도 했다.


나는 아씨시 성 프란시스의 전기를 탐독했다. 그의 출가(出家) 광경이 맘에 들었다. 그리고 무일푼의 ‘탁발승’으로 평생을 걸식 방랑한 ‘공’(空)의 기록, ‘공’에 회리처럼 몰려드는 하나님의 사랑 – 그것이 퍼져가는 인간과 자연에의 사랑 – 이런 것이 나를 매혹시켰다.


나는 하천풍언의 ‘보베’ 빈민촌 생활을 동경하며 ‘일등원’ 그룹의 무소유 생활도 그려봤다. 그런데로 가서 그런 그룹에 동참하고 싶었다.


어느 날 중년 거지 한 분이 다 떨어진 홋바지 저고리로 검푸른 살을 와들와들 떨며 내게 뭔가 달라고 했다. 나는 집에서 보내 온 새 솜바지 저고리를 몽땅 그에게 주고서 혼자 좋아 하기도 했다.


하숙에서 쫓겨난 날 밤에는 함박눈이 밤새껏 퍼부었다. 장안은 온통 ‘은세계’다. 나는 아무도 밟아보지 않은 하얀 첫 눈길에 내 발자국을 인치며 하염없이 걸었다. 그때 하숙집은 종로5가 동대문 바로 곁이었기에 나는 종로 네거리, 황금정, 훈련원, 장충동 그리고 수구문에서 지금의 신설동, 동소문까지 걸었다. 걸으면서 다시 생각했다.


‘돈과 어떻게 대결하느냐?’ ① 될 수 있는대로 돈을 많이 벌어서 남못잖게 살자. ② 우선 돈을 벌어서 좋은 사업에 쓰자. ③ 애당초부터 돈을 멸시하고 오직 믿음과 사랑으로 청빈(淸貧)을 살자.


그 중에서 나는 제3을 택했다. 그것은 이미 위에서 말한 대로 톨스토이, 아씨시 프란시스, 그 밖에도 비슷한 분들의 영향이랄 수 있을 것 같다.


“돈과 하나님은 함께 섬기지 못한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깃들일 곳이 있지만 나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신 하나님의 아들의 무소유 생활이 ‘태양’이었고 다른 분들은 그 ‘반사광’이었다고 생각된다.


“돈아, 네 권세가 어디 있느냐?” 하고 호통치며 살고 싶었다.


밤새껏 눈길을 거니고서 나는 배고팠다. 배고픈게 영광이라 느끼면서도 먹기는 먹어야 했다. 나는 그때 동소문 안 지금 혜화동, 앵두밭 주인집에 하숙하고 있는 내 외조카 채관석군을 찾았다. 그는 학비문제 없이 공부하는 행운아여서 이런 경험에는 생소했다. 마침 그에게 아침상이 들어왔다. 그는 밥 한 그릇 더 청해서 같이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