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용기

[범용기] (28) 동경 3년 – 근우관 생활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7-07-14 17:57
조회
264

[범용기] (28) 동경 3년 – 근우관 생활


나는 송형 방에서 몇 주일 지냈다. 그러나 밤낮 그럴 수도 없었고 송형도 딴 궁리를 하고 있었다.


만우(晩雨) 송형의 아호는 그의 친우 정길환 씨를 오라 했다.


정씨는 중학 일학년부터 지금의 자혜의과대학에까지 줄곧 고학으로 뚫고 올라온 고학생의 ‘심볼’이었다. 의과대학에서도 고학이었지만 성적은 우수하다고 했다.


그는 나를 ‘근우관’이라는 고학생 합숙소에 입소시켰다. 일본집 한 채를 통째로 세내서 고학생들이 합숙하며 주로 ‘낫도’(納豆)를 팔아 제각기 자기 숙식을 해결하는 것이었다.


‘낫도’란 것은 한국의 썩장 비슷한 것인데 메주콩을 썩혀 흰 풀이 끈적끈적하게 됐을 때 그것을 한 줌씩 볏짚에 싸서 하나에 몇전씩(2전이었던가? 모르겠다) 받고 파는 아침 식사용이다. 학생들은 새벽 같이 그걸 광주리에 둘러메고 주택지대를 ‘낫도오!’, ‘낫도오!’ 외치며 돌아다닌다. 어쩌다 어느 집 아낙네가 ‘낫도야 상’하고 부르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수줍은 나로서는 소리도 제대로 지를 수가 없었다. 그래도 아침에 단 몇 개씩이라도 팔기는 했다. 어떤 학생은 하루에 사오십개씩 판다.


십전 벌면 십전어치 먹고, 못 벌면 못 먹는다. 끓는 물에 밀가루 반죽을 뜯어 넣는다. 그걸 한 공기 먹고, 한끼를 땐다. 그것도 안되면 굶는다. 배고파 견딜 수 없으면 누워 버린다. 자는 동안 배고픈 줄 모르는 행복을 노리는 것이다. 그러면서 학교에 다니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속수무책이었다. 수업료도 교통비도 학용품비도 없이 다닐 수 있는 학교는 없었기 때문이다.


눈에 설레는 것은 밥 밖에 없다. 아이 때 큼직한 주발에 산더미처럼 올려 재인 조밥을 왜 먹잖았던가 싶었다. 평생 종노릇 하면서라도 배불리 먹기만 해 준다면 한이 없겠다는 생각도 난다. 어쩌다 집에 편지하면서 배고프니 먹을 생각 밖에 안 난다고 썼더니 어머니가 우셨다고 희용 조카에게서 편지가 왔다. 희용 조카 대필의 어머니 엽서가 왔다. 돈 삼원을 부친다는 것이었다. 어머니께 돈이 있을리 없다.


내가 아내와 작별할 때, 돈 삼원 준 일이 기억난다. 그것이 아내에게서 나왔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오늘까지도 아내는 말이 없다.


하루는 ‘스미다 가와’(隅田川) 근방에 있는 고층건물 건축공사장에서 지하실 흙 실어 내는 일을 한다고 다들 간다. 둘이 한 ‘구미’되어 ‘구루마’는 공사를 청부한 회사에서 제공한다.


나는 다른 학생 하나와 짝하여 이 일을 한다고 갔다. 벌써 지하실이 깊숙이 파져서 가파로운 경사면을 밀고 끌고 해야 한다. 흙 담아주는 ‘도가다’가 따로 있어 심술사납게 많이 담는다. 경사면에 판대기를 걸쳐 놓고 그 위로 끌어 올린다. 구루마는 내려갈려고만 한다. 다른 노동꾼들은 혼자서도 식은 밥 먹듯인데, 우리만 낑낑댄다. 경사면에 닥치면 뒷부대가 ‘뭣 하느냐!’고 욕설이다. 올라오면 짧은 거리길을 지나 강 언덕에서 운반선에 내리붓는다. 흙은 저절로 운반선에 들어가기 마련이다. 한번 왕복에 냉수 한 사발씩을 마신다. 냉수가 생명수다. 나는 후일에 ‘냉수예찬’을 쓴다고 맘 먹었다. 저녁 때 돈 일원 갖고 숙소에 왔다. 녹초가 됐다. 돈 일원이 핏값이다. 나는 노동꾼의 임금은 영낙없이 핏값이라고 느끼었다. 노임을 떼먹는 놈은 ‘식인귀’라고 단정했다. 지금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무슨 일 시킬 때 내가 노임 깎는 법은 없다. 달라는대로 주고서 더 줘야 덜 미안하다.


먹는 것 때문에 이렇게 치사해서야! 하고 반발한다. 어떤 친구가 생식을 한단 말을 들었다. 나도 생식을 해 봤다. 쌀 한 공기를 저녁 때 물에 담궜다가 아침에 그걸 씹으면 된다. 아주 향기롭다. 선단(仙檀)이 입 속에 피는 것 같다. 하루에 한 공기 그리고 공원에서 냉수나 마시면 종일 배고프지 않다. 왼 종일 걸어도 다리에 피곤이 없다. 정신이 맑고 맘이 빈다. 일주일을 계속했다. 변비가 생긴다. 생콩을 섞어 먹어야 한다는데 그건 비려서 선뜻 내키지 않는다. 아흐랫만이다. 어느 대학생 하숙에 들렸다. 그도 자취다. 우동과 소바를 끓여 놓고 같이 먹자고 한다. 별스럽게 생식하노란 말도 하기 싫고 안 먹는다기도 안 돼서 같이 맛있게 먹었다. ‘파계승’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