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용기

[범용기 제6권] (1627) 목자 이미지로서의 예수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8-11-15 08:23
조회
467

[범용기 제6권] (1627) 목자 이미지로서의 예수
[요한복음 10:7-16]


前章(전장)에서 예수 “이미지”를 서술하는 가운데, 예언자, 혁명가인 투사로서의 예수상을 그려 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어떤 한 가지 “이미지”만으로 소개되기에는 너무 크고 넓은 분입니다. 여기서는 예수님의 조용하고 자비하고 감싸주고 위로하고 격려해주시는 “목자”적인 면을 배우고저 합니다.


“목자상”이란 것은 동양에서도 옛날부터 있었습니다. 정부관리 특히 지방의 군수, 관찰사 등은 “목민자”(牧民者) 즉, 백성을 “목회”하는 사람이라 불렀습니다. 유명한 “목민심서”(牧民心書)란 저서는 바른 “관리상”을 가르친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무거운 짐진 자는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희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를 배우라.”


구약 이사야 42:3에 예언된 메시야 상도 그러했습니다.


“그는 상한 갈대도 꺾지 아니하며 꺼지는 등불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며, 그 소리 거리에 들리지 아니하나 만방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이 예언은 예수 나시기 6세기 전 바벨론 포로 말기에 선포된 이른바 “제2이사야”의 예언입니다.


예수님은 잘못은 잘못이라 하고 옳은 것은 옳다 하고 진실을 말하며 정의를 선포했습니다. 누구를 미워하거나 원망하거나 두들겨 패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이 그를 죽였습니까?


그들은 자신들이 예수 앞에 설 때, 자기들의 악행 – 부정, 부패, 수탈, 음모, 살인 혐의 등등의 죄과가 드러날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리고 예수와의 변론에서 이겨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수천 군중이 예수를 따라다니는 것이 부럽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습니다. 함부로 예수에게 손댔다가는 민중에게 맞아 죽을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질투심이 풀무불처럼 타올랐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죽여버리고 싶어졌습니다. 죽으면 그만이지, 예수인들 별 수 있겠나 하고 기회만 노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는 그들을 책망했습니다만 너죽고 나죽고 해보자고 대들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이 잡아가면 잡혀가고 그들이 때리면 맞았습니다. 그들이 십자가에 달면 달리고 그들이 창을 찌르면 피흘렸습니다. 마감에는 그들에게 죄값을 물리지 말라고 하느님께 용서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예수는 “내가 세상에 칼을 주러 왔다”고 했습니다만, 그는 그 칼로 세상을 찌르지는 않았습니다. 으레 찔러야 할 세상이지만 그는 세상을 찌르는 대신에 자기를 찔렀습니다. 그는 착하고 겸손하여 한 점 사특한 데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예수의 선구자인 세례 요한과 예수와를 대조해 봅니다.


요한은 예언자의 마지막 사람으로서 불의를 규탄하고 악인을 꾸짖었습니다만 그 잘못한 인간들을 거기서 구원하는 일은 못했습니다. 그 인간들을 고쳐줄 수 있는 힘도 없었습니다. 있다면 “네가 그런 일을 하면 망한다. 그러니 그러지 마라” 하는 정도였습니다. 그 사람들이 스스로 고쳐서 선한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처음부터 그런 일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선”을 행해야 한다는 양심의 명령이 있습니다. 그리고 해야 할 선은 행하지 못하고, 행해서는 안될 악은 행하게 됐을 때, 그의 양심이 죄책감으로 괴로워하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에 어떤 단편적인 사건 하나하나에 대하여 양심적으로 했노라 자부할 수도 있을 법 합니다만, 바울이 말한 것과 같이 언제 어디서나 항상 선을 행하고 악을 물리칠 수는 없습니다. 아홉가지 선을 행했다가도 한 가지 악을 저지르면 그 아홉가지 선이 통째로 무너지고 맙니다.


세례 요한에게는 이런 허약한 인간성 자체를 고쳐만들 능력이 없습니다. 그대로 두고 Demand만 합니다.


그러나 예수는 그 허약한 인간성 자체를 새로 만들어 “영”으로 갱신된 인간, 근원적인 창조능력으로 새 인간을 만들어내는 “영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예수는 “죄”의 “선고자”가 아니라 죄인의 “구원자”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예언자이면서 예언자 이상이었습니다.


“거룩한” 분이면서 “거룩하게 하는” 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은 예수를 지적하면서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크니 나는 앞에 엎드려 그의 신들메 푸는 일도 감당치 못하겠다”고 제자들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쇠해야 하고 그는 흥해야 하겠다”고도 했습니다. 이것이 세례 요한의 위대한 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여인에게서 난 인간 가운데는 세례 요한 만큼 큰 인물이 없다”고 극찬했던 것입니다. 연령으로 보나 선교 경력으로 보나 요한은 예수의 선배임에 틀림없습니다. 요한이 예수에게 취한 태도는 선후배 관계의 본보기라 하겠습니다.


예수의 “목자상”을 간추려 봅시다.


(1) 예수는 죄인을 책망하기 전에 죄인을 친히 찾아 친하고 사랑하고, 타이르고 격려했습니다. 그리고 용서했습니다. 또 범합니다. 또 용서합니다. 제자들도 딱하게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범죄자를 몇 번이나 용서하랍니까? 일곱 번까지 하랍니까?” 하고 베드로는 묻습니다.


“일곱번씩 일흔일곱번이라도 용서해라” 하고 예수는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한없는 범죄에 한없는 용서”라는 뜻입니다. “무량애”(無量愛)는 “무한서”(無限恕) 위에 서는 것입니다.


“공자”도 “인”(仁)을 묻는 제자에게 “충성과 용서”뿐이라고 간단하게 대답했답니다. (忠恕而己)


(2) 예수는 물질적으로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 다녔습니다. 그 사람들에게 “돈벌이” 비결을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가난”을 소재로, 더 높은 차원의 가치를 창조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우선 “일용할 양식”은 있어야 하겠지요. 그러나 그것도 더 높은 차원의 실재를 추구하면 다른 필수품은 하나님이 마련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모두 하나님께 밀어 맡기고 우리는 동전 한 푼 내잖아도 좋단 말은 물론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신 일에 동참해야 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예수님은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들이야말로 하나님 나라의 “초청장”을 손에 든 사람이란 것입니다.


그 반면에 부자는 하나님 보다도 재물을 더 사랑하기 때문에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란 약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보다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우선 탐욕의 시궁창에서 탈출해야 하고 지금까지의 “축재”를 여러 가지 이웃 사랑 사업에 써야 할텐데 그게 그리 수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선 그 심정부터 “빈자”의 심정으로 되어야 되기 때문입니다.


공자님도 “부자가 교만하지 않기는 쉬워도 가난한 자가 원망하지 않기는 어렵다”(富而不驕易 貧而無怨難)고 했습니다.


가난한 자의 원한이 부자에게 저주가 됩니다.


심리적으로 가난한 “부자”도 있기는 합니다. 부자를 몹시 부러워하는 가난뱅이 말입니다.


(3) 예수는 “천민”들의 목자였습니다.


우리나라 “이조” 시대에도 소위 “천민”이란 사회계층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ㆍ농ㆍ공ㆍ상(士ㆍ農ㆍ工ㆍ商)의 네 가지 공인된 직종 권내에 들지 못한 “권외인간”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사회 저변에 침전된 찌꺼기들이었습니다.


쇠고기는 식탁의 귀빈으로 모셔올리면서 소잡는 사람은 “백정”이라고 거의 비인간적으로 취급합니다.


“양반”은 갓을 쓰고 다닙니다. “군자”는 목베임을 당하는 순간에도 갓끈을 풀지 않는다고 갓을 자기 머리 만큼 존중하면서도 갓 만드는 工人(공인)은 “갓쟁이”라고 역시 천민취급을 합니다.


가마솥에 매일 밥을 끓여 먹으면서 솥 장수, 솥 땜 하는 사람은 “땜쟁이”라고 천대합니다. 남자는 상투짜고 여자는 긴 머리칼을 곱게 빗어 큰 머리를 틀어야 하니 얼게빗, 참빗이 절대 필요합니다. 그런데 빗 만드는 사람, 빗 파는 장사는 “빗쟁이”라고 역시 천민 취급을 합니다. 소위 “양반”네는 걸핏하면 이런 “천민”들을 잡아다가 댓돌 밑에 엎어놓고 엉덩이를 까고 곤장질하기가 일쑤였습니다. 법이고 절차고 없습니다.


그런 시절에 예수가 한국에 오셨습니다.


복음의 전령자들은 우선 이런 천민과 빈농들을 찾아 다녔습니다.


당신들도 꼭 같은 하나님의 자녀요, 온 천하와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인간들입니다. 하느님이 당신들 아버지신데 양반족보가 다 무업니까? 하고 격려합니다. 그들은 목마른 사슴떼가 샘터에 몰려들 듯 교회에 모여왔습니다. 선비들도 소수지만 믿고 교회에 옵니다. 교회 안에서는 양반, 상놈이 없습니다. “남존여비”도 없습니다. 양반이 평교인이고 “상놈”이 집사인 경우에 양반은 “상놈”인 집사님께 배웁니다.


한국교회가 그렇게 빨리 자랐다는 것은 초대교회가 사회 저변 계층에 우선적으로 선교한 데 그 중요 원인이 있다고 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기뻐하시는 뜻이었습니다.


(4) 예수님은 어려움을 당하고 고난에 휩싸인 사람들을 먼저 찾아 그들의 목자가 되었습니다. 인간은 어려움 당할 때, 제 모습으로 돌아옵니다. 탕자의 비유를 다시 봅시다.


그가 부모의 유산을 미리 받아 갖고 먼 지방에 혼자 가서 제멋대로 방탕할 때, 그는 돈만 낭비한 것이 아니라, 인간됨도 낭비했습니다. 자기가 “아버지”의 아들이란 것 까지도 잊어 버렸습니다. 떨어질대로 떨어져 이제는 인간으로서의 최저선 밑바닥에 거꾸러졌습니다. 배고프고 춥고 더럽고 천해졌습니다. 배고프니 먹을 생각밖에 없습니다. 그는 돼지죽을 나눠 먹으려 했습니다. 그의 인간성은 “돼지”가 됐습니다. 그래도 원래가 인간인지라 온전히 돼지노릇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 순간 그는 아버지를 생각했습니다. 자기는 돼지가 아니라 “아버지”의 “아들”임을 상기했습니다. 벌떡 일어나 아버지께로 갑니다. 아버지를 뵙고 할 말이라곤 없었습니다. 다만 “아버지”를 향하여 자기의 닫혔던 맘 문을 여는 것 뿐이었습니다. 아버지에게 벌 받아도 좋고, 아버지 농장에서 혹사를 당해도 좋다고 느꼈습니다. 아버지가 자기 이름을 족보에서 긁어버려도 불평할 생각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탕자는 집에서 효도한 자기 형 보다도 더 많은 환대와 사랑을 아버지로부터 받았습니다.


예수가 천민들의 목자로 되신 것도 이런 심정에서였습니다. 고난과 좌절 중에 파묻힌 사람들을 찾아 다닌 것도 이런 건설적인 “비전”에서였습니다.


예수님이 곤고한 사람들을 찾아 그들의 목자가 되신 것은 수난자들이 그 곤고를 “조약”대로 하여 하느님께로 돌아와 하늘나라를 땅 위에 임하게 하는 건국대업에 동참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5) 예수는 “몸”이 병들고 허약하고 불구가 된 사람들의 목자로 바뻤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병자 가까이 하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잠깐 문병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만, 오래오래, 낮에 밤을 이어 간호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보통인간의 상정으로서는 “고위층”을 택하려 합니다. 혹시 운수나 트이면, 자기도 한번 그런 맛을 보구 싶다는 계산에서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기독자는 그래서는 안된다고 합니다. 여기서도 예수님을 닮아야 하겠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약하다”, “강하다”하는 판단기준도 정반대인 경우가 많습니다.


세상이 모두 불의한데 나 혼자 “의”를 지킨다는 것은 세상 사람에게 비할 바 아닌 “강한 심장”의 소유자 아니고는 못하는 일입니다.


세상이 다 “예”하는데 나 혼자 “아니오” 하는 것도 “강”한 “혼”만이 할 수 있는 결단입니다.


폭력혁명 주장자들은 “사랑”을 약자의 넋두리라고 멸시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말합니다.


“약할 때가 곧 강할 때다…”


예수가 제일 약해 보인 때가 십자가에 달려 죽을 때였습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가 그를 부활의 강자로 만들었습니다.


교회도 약할 때에 강하다는 것입니다.


“히틀러” 시대의 독일교회도 히틀러에게 붙어서 “국가교회”로 되는 때, 그 교회는 강한 교회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약한 교회였습니다. 히틀러에게서 탈출하여 “고백교회”로 출발하는 때 그 교회는 약한 교회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강한 교회였습니다.


히틀러가 거꾸러지자, 고백교회는 옥중에서 해방되어 강한 교회로 부활했고 또 부활시켰던 것입니다.


그들의 교회는 “예수님의 교회이지 히틀러의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오직 그리스도에게만 충성하라는 “슬로건” 밑에서 “예”와 “아니오”를 바르게 또 용감하게 증언했던 것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목사는 잡히고 교인은 시달리고 교회당은 폐쇄되고 감독은 파면당하고 했습니다.


히틀러 추종자들은 그리스도에게 충성하려는 감독이나 목사들을 걸어 고소합니다. 교회 공금을 떼 먹었다느니, 유태인 혈통을 이은 열등민족이라느니, 반정부 운동, 반국가 음모를 꾸몄다느니 등등 유언비어를 퍼뜨려 고발하곤 했습니다. 그들이 파직되면 자기들이 감독도 되고 목사도 되어 “히틀러 교회”로 변질시킵니다.


그러나 고백교회 목사와 교인들은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약할 때에 곧 강하다. 내가 자랑할 것이 있다면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련다……”


목사 3천여명이 감옥에서 무기징역을 하면서도 그 긍지와 인기와 신념을 더욱 드높였습니다. 교인들은 “그들이야말로 참 목자다” 하여 정성껏 받들고 지원했습니다. 이런 경우에 교회가 없어진 것이 아니라, “승화”되어 감방에 옮겨진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목자”로서 곤고의 소용돌이 속에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과 같이 일하시면서 “선한 목자”로 그들을 건사해 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6) 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을 슬퍼하시고 그를 무덤에서 살려냈다고 합니다. 죽은 소녀도 다시 살렸다고도 합니다.


죽음은 존재 자체의 소멸이라는 강박감을 줍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과학적, 철학적 또는 신학적으로 객관화하여 관조하고 설명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죽음”을 죽음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죽음을 미워했습니다.


그는 죽음을 없애 버리고 싶어했습니다.


인간이 앓는 것도 없애야 하겠지만, 죽음은 더욱 그리해야 한다고 결심했던 것 같습니다. 앓다가도 죽지는 말아야 하고 죽었다가도 다시 살아나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죽었던 자식이 다시 살아났다면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예수님은 그런 입장에서 죽음과 싸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범사에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고 믿었습니다. 죽음에서도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니다. 이 인간 최대의 비극에서 하느님의 사랑은 더욱 위대한 창조를 보여 주시리라고 믿었습니다. 그것이 부활신앙입니다.


예수는 인간이 죽지 않기를 바라지만 어차피 죽을 바에는 바르게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바르게 죽는다는 것은 그의 삶을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이고 결국에는 죽음으로 죽음을 극복하고 영생의 처음 열매인 부활을 몸으로 나타낸다고 믿었습니다.


그 믿음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부활하신 주님으로 우리가 죽는 순간에도 우리와 함께 계셔서 우리를 영원한 생명에로 동반해 주십니다. 낙원이니 천당이니 하는 것이 우주의 어느 한 구석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있는 곳이 낙원이요 천당입니다. 그리스도 없는 곳이 있다면 그것이 “지옥”이겠습니다.


어떤 분은 말합니다.


“예수가 하느님 아들, 구원주라면 왜 그렇게 구차스러운 해결책만 생각했느냐? 아예 병도 없고 죄악도 없고 죽지도 않게 하지 못했느냐? 그저 행복만 하게 만들지 못했느냐?”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현실로 우리 앞에 존재한 상태 그대로의 인간이고 천사도 악마도 아닙니다.


그리고 인간은 몇억만년 전부터 “되어가고 있는”, “Becoming Being”이지 “기성품”이 아닙니다. 바른 사랑으로 길러줘야 합니다.


아직도 철이 덜 들었습니다.


“완성품”이란 것은 성장이나 개선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창조”의 기쁨이 없습니다. 다음은 권태와 체념과 허탈일 것입니다.


보람도 긍지도 소망도 소멸됩니다.


우리는 죄악을 미워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싸움이 영웅적입니다. 의로운 싸움에는 승리가 약속돼 있습니다. 우리는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 건설을 목표로 전진합니다. 긍지는 드높습니다. 죽이는 싸움이 아니라 살리는 싸움입니다. 나는 내가 불완전한 것을 감사합니다. 거기에 “인간미”가 있고 창조의욕이 있고 약속의 미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하늘나라가 땅에 임할 때까지 목자장의 막하에서 목자로 일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광입니다.


1976년 9월 26일
토론토 연합교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