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용기

[귀국이후] (7) [1714] 첫 환영의 모임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9-05-20 17:29
조회
74

[1714] 첫 환영의 모임


귀국후 – 10월 15일(토) - 첫 Reception Party가 한신대학 이사장 장하구 장로 댁에서 열렸다. 한강 건너 香隣(향린)동산 그의 저택에 초청됐다. 문재린 목사님과 문익환 목사와 박용길 장로, 김춘배 목사와 令夫人(영부인), 정대위 학장과 이주선 여사, 신애균 선생, 장하린 장로, 長空(장공) 부부 등 도합 15인이 한자리에 모였다.


성대한 식탁이었다. 內室(내실)에 기억자로 잇다은 누각 – 경회루의 축소판이라면 잔디밭이 연못 구실을 한다 하겠다. 규모는 작으나 造庭術(조정술)에 맞게 된 진짜 연못도 있고 붕어도 잉어도 헴치고 있었다.


기독교서적 출판과 판매로 건실한 중산 實業人(실업인)이 된 장하구 이사장은 종로서관 주인이다. 그는 교회와 사회와 한신학원 등 여러 기관에 성의껏 봉사한다. 그러나 경영학적으로 무모한 모험은 안 한다. 가능한 최선을 다하는 것이겠다.


“明於智而 成業
勇於義而 施愛”


라는 내 글씨가 걸려 있었다. 나는 그를 그런 분으로 보았기 때문에 그렇게 써 드린 것이다.


1983년 10월 26일(일) - 내 외조카 채태석 박사가 가족들 데리고 방문왔다. 의학박사로 개업의다. 6ㆍ25때 납치되어 이북에 갔다가 도망하여 오늘을 보게 된 것이다. 동해를 끼고 새로 달린 태백산맥 능선을 혼자 걸어 살아온 것이니 기적 아닐 수 없다. 종가집 외아들로서 香谷先生(향곡선생)의 직손이다.


채관석 박사는 둘째 형님 규홍씨 맏아들이고 채호석은 관석의 친동생이다. 모두 서울에 산다.


채태석 박사는 큰 형님 규포씨 외아들이다. 모두 母系(모계)로 오춘 조카벌이다.


나는 아이때부터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외삼춘 있는 아이들을 무척 부러워했다.


따라서 母系(모계)의 친척이 내 心情(심정)에 깊은 哀歎(애탄)을 판(刻)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