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용기

[귀국이후] (6) [1713] 基長總會(기장총회)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9-05-20 17:27
조회
78

[1713] 基長總會(기장총회)


날씨는 어두컴컴하다. 날짜는 1983년 9월 27일, 장소는 장충동 1가 경동교회다.


서남동 목사가 車(차) 갖고 와서 같이 타고 총회장소에 갔다. 대표만으로 滿員(만원)이다. 나는 증경총회장 자리에 앉았다. 의사진행은 원활했다. 임원선거에서 총회장은 송상규, 부회장은 이영찬으로 발표됐다. 日食堂(일식당)에서 강형룡 박사의 점심대접을 받고 목사관에서 쉬었다.


밤 7시부터 8시 반까지는 나의 주제강연 시간이다. “기독교와 한국역사”란 제목으로 한시간반 강연했다. 모두들 반가와 한다. 순서가 끝나고 애기엄마와 함께 수유리에 왔다.


1983년 9월 28일(수) - 9:30 AM에 서남동 목사가 차를 갖고 수유리에 왔다. 같이 타고 수원 한신대학 캠퍼스로 갔다. 貞姬(정희)도 같이 갔다. 정대위 학장실에서 담화했다. 한신대학과의 첫 대면이다.


오전 중에, 수원 한신대학 chapel 기공식에는, 총회원 全員(전원)이 참석하기로 되어 있었다. 서남동 목사가 차로 수유리까지 와서 나와 貞姬(정희)를 태워갖고 수원에 직행했던 것이다. 기공식은 약 5분으로 끝났다. 준비된 도시락을 먹고 총회원들은 총회장소에 돌아오고 우리 식구는 수유리 집까지 同伴(동반)해 줬다.


1983년 9월 30일(금) - 오전에 김상근 총무가 수유리에 찾아왔다. 어제 오후 박형규 목사의 뱅큐바 W.C.C. 총회 보고 중에 회원 전체가 큰 소란을 일으켰는데 자칫하면 총회 단결에 지장이 있을 것 같으니 나와달라는 것이었다.


오후 2시에 총회장소에 갔다. 박형규 목사는 안 보이고 강원용 목사가 경동교회로서의 인사말과 자신의 신상발언을 약 5분간 간단하게 진술했다.


이 사건을 더 이상 천책하는 것은 총회 전체에 유익한 바 없을 것이니 제발 더 논의하지 말아달라는 것이었다. 박형규 목사의 보고는 서면으로 제출되고 총회는 폐회 예배로 들어갔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으라. 너희의 대적 악마가 사자와 같이 삼킬자를 찾아 두루 다닌다”(벧전 5:8).


지금 우리의 주위에는 우리에게 덤벼들려고 눈독 들이는 맹수가 있다. 순간 순간이 위기다. 작은 돌멩이에 걸려 넘어질까 조심해야 한다. 총회의 Finale을 그리스도 사랑의 圓舞(원무)로 끝내지 못한 것이 유감이라면 유감이겠다. 휴머니즘 기분이 부족한 탓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총회 후에 우려하던 풍랑은 잔잔해지고 하나되기 위한 기원과 운동이 승세를 이루는 것을 감사한다.


1983년 10월 9일(수) - 외조카 채관석 박사가 내방했다. 경성제대 제1회 영문학과 졸업이지만, 漢籍(한적)과 동양古典(고전)에 맘이 붙어 자기도 모르게 한학자가 되어버렸다. 금년 81세지만 기억력과 學(학)에는 老益壯(노익장) 이상이다. 談論(담론)이 분수(噴水) 같이 솟는다.


老(노)와 壯(장)이 서로 만나 즐기고 뜻을 모아 서로 돕는 일은 그리스도 안에서 아름다운 사랑의 동산이다.


그때에 반갑게 재회(再會)했던 동년배의 친구 가운데서도 반년 못가서 “면회사절”이란 이름의 장막 속에 누은 이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