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용기

[범용기 제2권] (3) 해방직전 “일제”의 발악상 – 윤인구 원장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7-08-02 10:02
조회
1240

[범용기 제2권] (3) 해방직전 “일제”의 발악상 – 윤인구 원장


초대원장으로 계시던 김대현 장로님이 별세하신 후, 이사회에서는 윤인구 목사를 제2대 원장으로 선정했다.


그때부터 윤원장은 조선신학원을 총독부로부터 인가된 신학전문학교로 ‘승격’시키려는 운동에 전력을 기우리는 것 같았다. 경성제대 교수라는 ‘다까하시’란 젊은 교수는 자기가 해 준다고 장담하고 나선다. 윤원장은 그의 의견에 열심으로 협력했다. 그러나 내 보기에는 ‘다까하시’란 사람은 교수나 학자라기 보다도 ‘부로커’ 타입의 인간인 것 같았다.


결국 전문학교령에 의한 조선신학교는 ‘유산’되고 말았다. 그 당시 전문학교령에 의해 인가된 신학교는 ‘경성신학교’ 즉 ‘성결교신학교’였다. ‘다까하시’와 윤인구는 그 신학교와 합하자는 교섭을 진행시켰다. 그것도 될듯하다가 말았다. 경성신학교 당국에서 거부했기 때문이다. 최종안은 감리교 신학교와 ‘합동교수’ 과정을 거쳐서 전문학교로 승격되게 하자는 것이었다. 감리교신학교도 인가받은 전문학교가 아니기 때문에 이 교섭은 쉽게 낙착됐다.


이렇게 되기 직전에 조선신학원에서는 제1회와 제2회 졸업생을 내보냈다.


그것이 날짜로는 1942년 3월 31일, 밤이었고 장소는 승동예배당 하층이었다. 촛불켜고 성찬예식 중심으로 예배드리며 졸업장을 나누었다. 예배와 성찬은 울음 속에서 진행되었다. 졸업생 수는 제1회 11명, 제2회 48명이며 그 중에서 순교자가 16명이다.


‘합동교수’의 양상은 이러했다. 현관 좌우에 하나는 윤인구 원장실, 하나는 김인영 교장실이 있고 큰 교수, 강사들 방이 있다. 커리큘럼에는 중복된 것이 없다. 김인영 교장이 구약담당이었기에 내가 가르칠 구약과목은 별로 없다. 그래도 시간은 메꿔야 했기 때문에 히브리어니, 그릭이니, 그밖에 부스레기 과목들이 주어졌다.


이제부터의 총독부 전략은 조선신학원의 경영비 출처를 막는 일이었다. 김대현 장로님의 맏아드님인 김영철 장로가 설립자였다. 형사들은 은근히 그를 공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