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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좌 및 강연

[목요강좌 제31회] 장공 김재준의 ‘자연의 신학’ 연구 / 전철 박사

목요강좌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7-08-21 10:31
조회
1496

[제31회 長空사상연구 목요강좌] 발제 일시 : 2013년 5월 23일(목) 오후 5~7시

장공 김재준의 ‘자연의 신학’ 연구 - 장공의 ‘사랑의 실재론’을 중심으로 -

전 철 박사
(한신대학교 / 조직신학)

[I] 들어가는 말

장공 김재준 목사(1901-1987)의 신학은 그 폭과 넓이와 깊이의 차원에서, 그리고 그 신학을 구체적인 생활과 삶으로 체현하였다는 점에서 한국 개신교의 큰 초석이자 소중한 유산이다. 특히 장공의 신학적 ‘균형감각’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날 역설적으로 더더욱 그 큰 의미와 빛을 발휘하고 있다. 왜냐하면 고도로 분화된 삶의 양식과 문명의 존재방식 안에서 신학과 신학함의 과제 또한 통전적인 관점과 전망을 상실해버린 경향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이 자리에서 하나님이라는 가장 크고 넓은 지평 안에 살아가고 하나님의 마음과 그 나라를 현실 안에서 일구어야 할 목회자와 신학자의 과제를 장공 김재준 목사가 남긴 큰 유산 아래에서 헤아려본다.

실로 장공 김재준 목사의 신학적 사유는 넓고 깊다. 그의 방대한 사유와 선구자적인 삶의 핵심에는 무엇이 있을까. 김경재 교수(1940-)는 장공의 말년 강의와 설교 속에서 자주 나오는 핵심 개념인 “전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1)를 장공 “김재준의 신앙과 신학의 결승점”2)이라고 짐작한다. 장공의 ‘전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는 몇 가지 개념으로 포괄할 수 없는 매우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의미들이 얽혀있는 심원한 개념이다. 그렇다면 전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라는 장공의 핵심 신학적 유산을 형성하게 한 사상적 근거는 무엇일까. 유동식 교수(1922-)는 이에 대하여 떼이야르 드 샤르뎅(Teilhard de Chardin, 1881-1955)의 ‘우주적 그리스도론’ 사상과의 조우, 한민족의 고대 종교 사상인 환단 문화론과의 조우,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국인의 영성의 원형이요 뿌리인 ‘풍류도’의 체득이라고 보고 있다.3)

1) 참고. 장공 김재준, “범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 『장공 김재준 전집 16권 - 범용기 (4) 민족의 파수꾼』 (오산: 한신대학 출판부, 1992), 348-353; 장공 김재준,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 『장공 김재준 전집 18권 -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 (1985-1987)』 (오산: 한신대학 출판부, 1992), 528-532. 김경재, “장공의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에 관하여”, 장공 김재준 목사 탄신 10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편, 『장공 사상 연구 논문집 : 장공탄신 100주년 기념문집 2』 (오산: 한신대학 출판부, 2001), 278-300. 2) 김경재, 『김재준 평전 : 성육신 신앙과 대승 기독교』 (서울: 삼인, 2001), 199.
3) 유동식, 『풍류도와 한국의 종교 사상』 (서울: 연세대학교 출판부, 1997 ), 273-275(김경재, 『김재준 평전 : 성육신 신앙과 대승 기독교』 (서울: 삼인, 2001), 200에서 재인용).

이 연구의 중요한 문제제기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당대의 문자주의와 교리주의, 그리고 교권과 무신론과의 치열한 영적 투쟁을 하였던 장공의 신학의 핵심인 ‘전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의 근거 한 편에 자연과학 정신과 긴밀한 호흡을 하였던 예수회 신부 떼이야르 드 샤르뎅의 과학-신학적 사유가 있음을 이 연구는 매우 중요한 점으로 주목하기 때문이다. 즉 이 연구는 장공의 신학적 사유에 스며든 자연과학적/자연주의적 사유에 대한 연속성과 불연속성의 문제를 ‘자연의 신학’이라는 전망 속에서 조금 더 심층적으로 헤아리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장공 김재준의 신학이 자연과학과 어떻게 조우하느냐를 검토하는 것은 21세기 과학정신과 그리스도교 신앙의 대화에도 중요한 전망을 제시해준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극도로 분화되고 파편화된 존재방식 안에서 그리스도교의 드넓은 시야와 전망을 가지고 신학이 자연과학과 자연주의적 사유와 대화하기 보다는 매우 기술적이며 협소한 방식으로 오늘날 과학정신과 그리스도교 신앙과의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필자는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전히 과학정신과 그리스도교 신앙의 대화의 올바른 규범과 근거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많은 신학적 혼란과 사회적이며 교회적인 대립이 오히려 증폭되어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4)

4) Cf. Soo Bin Park, “South Korea surrenders to creationist demands : Publishers set to remove examples of evolution from high-school textbooks”, Nature 486 (07 June 2012), 14.

만약 장공의 신학적 사유가 당대 시대적 소임을 다하고 소멸된 것이 아니라 시대를 넘어 ‘신학적 균형감각’을 탁월하게 보여주는 미덕을 오늘 우리가 신뢰한다면, 우리는 한국의 새로운 신학적 패러다임의 초석을 형성한 장공의 사유 안에서 자연과학과 그리스도교의 관계를 어떻게 보았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21세기를 걸어가는 오늘 우리는 거세게 밀려오는 세련된 자연과학적 사유양식과 물질문명의 파고 안에서 신학과 그리스도교 정신의 본질과 정체성을 장공의 사상 안에서 더욱 선명하게 헤아릴 수 있으리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제 안에서 본 연구는 첫째, 장공에 있어서 진정한 ‘실재’의 의미는 어떤 것이었는지를 검토할 것이다(II). 둘째, 장공이 실재의 본성을 구체적으로 헤아리면서 제시한 진리의 세 가지 길인 ‘종교’와 ‘과학’과 ‘철학’의 구체적인 내용을 검토할 것이다(III). 셋째, 장공은 ‘사실’의 관점에서 종교와 과학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검토할 것이다(IV). 넷째, 장공이 ‘가치’의 차원에서 종교와 과학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검토할 것이다(V). 다섯째, 장공의 이러한 사실과 가치에 관한 견해는 ‘성서해석’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검토할 것이다(VI). 여섯째, 자연과 생명과 삶과 우주의 현상을 어떻게 이해하였는지를 ‘자연의 신학’의 관점에서 검토할 것이다(VII). 일곱째, 이 연구를 마치며 장공의 ‘자연의 신학’, 특히 장공의 ‘사랑의 실재론’의 그 현대적 의미를 검토할 것이다(VIII).

[II] 진정한 실재를 찾아서

장공은 그리스도교라는 종교적이며 문화적인 패러다임 안에서 자신의 삶을 출발하지 않았다. 그는 유교의 문화에 정신의 뿌리를 두었으나, 21세에 김익두 목사의 부흥집회를 통하여 그리스도인이 된다.5) 오히려 그리스도교가 우리가 경험하는 생명, 삶, 죽음, 세계, 인간의 본질을 구체적으로 드러내 보여주었기 때문에 장공은 평생 그리스도교를 선택하였으며 그 복음의 전승 안에서 그의 생을 걸었다. 그러므로 장공의 그리스도교와의 만남에는 그리스도교가 보여주는 그 '진리의 세계' 안에서 그가 무릎을 꿇고, 그리스도교의 우주관과 인생관을 자신의 삶 안에서 체현하고 관철시켰다는 점을 우리는 주목한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장공이 ‘실재’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 의도와 그 맥락을 우리는 어렴풋이 헤아릴 수 있다. 장공은 평생 진리를 찾아 헌신한 순례자였으며, 우주와 인생의 실재를 찾아 평생을 탐구하고 고투한 매우 탁월한 신학자이자 지식인이었다. 그렇다면 그의 ‘실재’에 대한 사상적 관점과 견해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5) 장공 김재준, “서울 3년”, 『장공 김재준 전집 13권 – 범용기(1) 새 역사의 발자취』 (오산: 한신대학 출판부, 1992), 47-48.

장공은 본격적으로 그의 나이 30대 중반이 되는 1934년 “실재를 찾아서-전도서를 읽음”(1934. 10. 5)이라는 글을『落穗』에 발표한다. 이 글에서 장공은 ‘생의 의의’를 찾아 실재의 세계를 더듬어 빈들에 헤매던 순례자의 피 엉킨 속임 없는 기록인 ‘전도서’의 의미를 헤아린다. 장공은 전도서가 그저 성서 경전의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에 큰 의미가 있다고 보는 태도로 전도서를 주목하지 않는다. 오히려 전도서의 순례에는 “탐구를 더하고 관찰을 더하여 오직 실재를 찾아 순례의 걸음을 이어나간 용감한 진리의 탐구자”6)의 생생한 모습이 담겨 있기 때문에 그는 전도서를 자신의 진리탐구의 중요한 교훈이자 본문으로 채택한다.

6) 장공 김재준, “실재의 탐구-전도서를 읽음”, 『장공 김재준 논문 선집』 (오산: 한신대학교 출판부, 2001), 39.

흥미로운 것은 전도서에 나타난 소위 사람의 지혜와 지식의 무의미에 대한 강조를 장공은 ‘자연주의적 사유’(naturalistic thinking)에 기반하고 있는 지식과 과학에 대한 비판과 연결시킨다. 장공에 의하면 이들은 실재의 본질을 꿰뚫어 보지 못하는 이들이다. 그들은 “지식만능, 과학만능의 망상 아래에서 오직 현상만을 보고 실재를 볼 줄 모르”7)는 이들이다. 장공은 지식과 과학 자체를 비판하기 보다는 지식과 과학을 절대적인 것으로 숭상하는 이들을 비판한다. 즉 ‘지식과 과학’ 자체에 대한 비판보다는 편협한 사고로 실재의 본질을 가리는 ‘만능’의 망상에 대한 비판이 여기에 놓여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장공은 실재의 본질의 해명에 있어서 지식과 과학의 열쇠가 그 본질을 온전히 드러낼 수 없으리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는가.

7) 장공 김재준, “실재의 탐구-전도서를 읽음”, 『장공 김재준 논문 선집』 (오산: 한신대학교 출판부, 2001), 40.

장공은 삼라만상이 철칙에 의하여 움직이고 있는 모습은 실재의 실상과 본질이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그 표면적이고 현상적인 철칙에만 몰두하고 있는 이들을 “현대 대다수의 과학자, 실험심리학자, 유물론적 역사관의 주창자”8)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이들과는 달리 전도서의 ‘전도자’는 그 철칙의 배후에 신의 예정이 계심을 시인하였다고 말하면서 다시 철칙에 몰두한 이들과의 비판적 거리를 둔다.

8) 장공 김재준, “실재의 탐구-전도서를 읽음”, 『장공 김재준 논문 선집』 (오산: 한신대학교 출판부, 2001), 41.

그렇다면 왜 실재의 탐구를 행함에 있어서 실재의 물리적 본성과 삼라만상의 원칙을 다루고 그 자연의 질서를 해명하는 이들이 참 실재를 영원히 조명하지 못하는 불우한 이들이라고 장공은 이해했던 것일까. 실재의 본성을 탐구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다양한 길에 대한 장공의 종합적 이해는 47년에 발표한 장공의 글 “종교와 과학”에서 아주 분명하게 드러난다.

[Ⅲ] 진리의 세 가지 길 : 종교, 과학, 철학(1947)

장공은 그의 나이 47살에 “종교와 과학”(1947)이라는 글을 발표한다. 이 글에서 장공은 하나님, 자연, 인간이라는 세 중심을 ‘진리’의 관점에서 제시한다. 우선 장공은 진리의 존재방식을 첫째 ‘영적인 진리’, 둘째 ‘감각적 진리’, 셋째 ‘이론적 진리’로 구분한다. 장공에 의하면 영적인 진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영적인 진리 - 이것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계시된 진리로서 하느님의 대언자인 예언자, 신비 영험자를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진 진리라 하겠습니다. 신비적 영험, 직접 계시, 직관 또는 직각, 영감 등을 통하여 우리 영혼의 안테나에 감촉되는 진리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초감각적(supersensual)이어서 정확 무오를 주장하며, 진정한 실재(reality)에 대한 가장 정확한 지식을 자부합니다. 종교적 진리, 또는 신앙의 진실이라고 합니다.

장공에 의하면 영적인 진리는 하느님의 은총에 의하여 인간에게 계시된 진리를 뜻한다. 신학적으로 철저하게 계시신학적 전통 안에서 그를 바탕으로만 인간이 영적 본질과 실체를 헤아릴 수 있다는 점이 영적인 진리의 요체이다. 장공은 영적인 진리의 내용에서 하나님의 본질 경험과 관련된 신비체험, 직관, 영감 등의 역할을 매우 강조한다. 특히 초감각적인 측면과 정확무오를 강조한다. 조금 더 현대적인 맥락으로 재해석하자면 장공에 있어서 소위 비감각적 지각(non-sensuous perception)의 측면은 영적인 진리 경험의 중요한 요소이다.

장공의 사유 안에서 영적인 진리에 대한 이해에서 진리의 개별적 인식과 공동체적 인식의 상호 관련성에 대한 논의는 구체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장공은 우선 여기에서 신과 피조물의 대칭적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서 문제를 접근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행위(divine action), 혹은 영적인 진리의 전달에 있어서 오늘의 현대신학에서 매우 쟁점이 되는 신의 보편성(universality)과 피조물의 개별성(individuality) 혹은 다자성(diversity)을 기반으로한 신과 피조물의 비대칭성과 복합성의 문제는 본격적으로 다루어지지는 않았다. 장공은 영적인 진리 다음으로 두 번째 진리로서 감각적 진리를 제시한다.

2) 감각적 진리 - 감각을 통하여 얻은 사실의 진실성에 근거한 것으로서 ‘눈이 희다’ 하는 것이 감각을 통하여 얻은 사실이라면 ‘눈은 검다’ 하는 논리는 허위로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감각의 진리, 실험의 진리로서 과학은 주로 이 영역에 속한다 하겠습니다.

장공은 여기에서 감각적 진리를 실험의 진리로 보고 이를 과학(science)의 영역으로 정의한다. 이는 매우 짧고 단순하지만 과학적 방법론의 본질을 매우 핵심적으로 간파한 정의이다. 허블망원경과 같이 아무리 최고의 기술로 구현한 대형 천체 망원경으로 적막한 은하계의 그 방대한 실재를 포착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결국 ‘확대된 인간의 감각’일 뿐이다. 아무리 디테일한 해상력으로 작은 입자들의 미세한 운동현상을 관찰하는 양자현미경을 동원하여 미시세계를 고찰한다 하더라도 그것 또한 결국 ‘확대된 인간의 감각’일 뿐이다. 이러한 점에서 모든 자연에 대한 지식인 과학(science)은 근본적으로 감각(感覺, sense data)을 기반으로 한 인간의 경험과 종합적 지식(scientia)을 그 기원으로 삼고 있다. 감각적 진리는 신체성의 진리이며 몸에 기반한 진리이다. 바로 그것이 과학이다. 이제 장공은 영적인 진리와 감각적 진리와 더불어 마지막으로 이론적 진리를 말한다.

3) 이론적 진리 - 이것은 이상의 두 진리를 이성으로 종합한 것으로서 말하자면 철학적인 진리라 하겠습니다. 한 사람은 말하기를 ‘나는 감각을 통하여 경험한 것만이 진리라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 사람은 ‘절대적인 하느님의 직접 계시만이 진리’라고 주장합니다. 그 사이에서 우리의 이성은 논리와 변증법 등을 통하여 진리의 어떤 체계를 구성합니다. 수학적 진리같은 것은 감각을 통한 것도 아니며 직접 계시로 된 것도 아닙니다. 다만 인간 이성의 논리적 정당성을 통하여 얻어지는 것입니다.9)

9) 장공 김재준, “종교와 과학”, 『장공 김재준 전집 1권 - 새 술은 새 부대에(1926-1949)』 (오산: 한신대학 출판부, 1992), 289-290.

세 번째 진리는 이론적 진리이다. 이 이론적 진리는 영적인 진리와 감각의 진리를 종합하는 진리이다. 영국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버트란트 러셀(1872-1970)은 철학을 신학과 과학의 중간 영역의 학문이라고 이미 설파한 바 있다. 철학은 신학과 과학이라는 두 고유한 방법론을 종합적으로 매개하는 일종의 '방법론의 방법론'이다. 철학이 신학을 성찰할 때 그것은 종교철학과 조직신학이 되고 철학이 과학을 성찰할 때 그것은 과학철학과 자연철학이 된다.

장공은 이론적 진리로서의 철학의 과제, 특히 영적인 진리인 종교와 감각의 진리인 과학의 조화를 구현해 냄으로서 참 진리의 실재를 드러내야 하는 메타 방법론으로서의 철학의 지위를 정확하게 파악하였다. 그리고 이론적 진리의 그 근거를 종교의 원천인 ‘계시’가 아닌, 과학의 원천인 ‘자연적 질서’가 아닌 인간 이성과 논리로 바라보았다.

실로 장공의 진리에 대한 이러한 세 가지 접근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지적인 감각 안에서도 매우 원형적이며 유용한 의미를 지닌다. 오히려 21세기의 분화된 세계상 안에서 각 분과 학문의 개별성과 지엽성에 머무른 나머지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진리와 실재에 대한 드넓은 전망을 크게 상실한 듯하다. 이러한 점에서 장공의 진리에 대한 세 가지 구분은 ‘종교’, ‘과학’, ‘철학’이라는 진리를 추구하는 학문과 삶의 태도에 관한 유기적이며 통전적인 인식을 제공하고 있다.

장공은 영적, 감각적, 이론적 진리가 진리를 추구하는 인간의 3대 시스템이며, 모든 진리는 이 셋 중의 하나로 귀속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장공은 여기에서 영적인 진리가 감각적 진리보다 우선하다고 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동시에 감각적 진리가 영적인 진리를 대변할 수 있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장공은 진리를 향한 인간의 태도에 있어서 최선을 다하여 이 세 측면을 상호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 세 측면 가운데 한 측면을 과하게 강조하거나 “균형감각”을 상실할 때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바로 이 균형감각이 상실될 때 종교와 과학이 서로 충돌된다고 장공은 이해한다. 장공은 이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종교와 과학의 충돌이란 것은 결국 어느 한 편이 모든 진리를 독점한 것으로 자부하고, 감정적으로 자기 주장을 절대화함과 동시에 다른 한 편을 비진리로 규탄하는 데서 생긴 비극이라고 봅니다.10)

10) 장공 김재준, “종교와 과학”, 『장공 김재준 전집 1권 - 새 술은 새 부대에(1926-1949)』 (오산: 한신대학 출판부, 1992), 290.

종교와 과학, 영적인 진리와 감각의 진리는 애시당초 충돌의 관계는 아니다. 오히려 각각의 관점이 진리를 독점적으로 담지하고 있다는 배타적 태도에 의해서 충돌이 일어난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종교와 과학의 충돌을 통하여 발생되는 내용을 장공은 어떻게 이해했는가. 우선 감각적 진리를 주요하게 생각하는 실험과학이 그 진리체계를 ‘유일한 진리’로 주장하는 경우에 대하여 장공은 상당히 밀도 있는 분석을 가한다. 과학의 관점에서 종교와 철학의 지위를 고려하지 않는 과학적 환원주의에 대한 장공의 분석은 다음과 같다.

첫째, 초감각적 실재와 그 가치에는 전혀 몰취미하게 된다. 즉 신, 하나님, 궁극적 실재는 일종의 부차적인 요소이거나 망상이며 사태와 가치의 두 측면에서 가치는 사태의 수반이거나 파생으로 소극적으로 이해된다. 둘째, 그 대신 감각적인 세계에 대한 연구는 활발하게 전개된다. 셋째, 실증적인 철학의 경향성이 역사적으로 매우 확산된다. 넷째, 감각적인 진리는 불가피하게 유물론으로 귀결된다. 다섯째, 감각문화의 세계에서는 자연과 물질의 가치가 그 문명의 왕좌를 점령한다. 여섯째, 이러한 흐름에서 진리는 일시적으로 변하고, 상대적으로 평가되며, 개념화와 이론화가 빈약해지며, 실리주의와 힘의 철학으로 귀결된다.11) 장공은 자연과학적 환원주의의 관성이 결국 (1) 비종교적 태도, (2) 실증주의와 유물론, (3) 물질주의, (4) 상대주의와 힘의 철학으로 귀결된다고 지적한다.

11) 장공 김재준, “종교와 과학”, 『장공 김재준 전집 1권 - 새 술은 새 부대에(1926-1949)』 (오산: 한신대학 출판부, 1992), 292.

장공은 과학과 종교와 철학의 목적과 과제를 진리를 추구하는 세 가지 방법론의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헤아렸다. 그는 이 세 가지 전통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이 셋 중의 한 관점을 절대화 하고 독단시 함으로 인하여 발생되는 폐해를 지적하였다. 특히 당대 서구정신을 주요하게 사로잡았던 과학주의적 경향성과 그 그림자를 장공은 심각하게 바라보았음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과학과 종교의 개별적인 원리와 기능을 넘어선 이 양자의 올바른 관계를 장공은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여기에서는 특히 장공이 종교와 과학의 관계를 ‘사실’과 ‘가치’의 관점에서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를 검토하고자 한다.

[Ⅳ] 사실로서의 종교와 과학(1947-1948)

장공은 ‘영적인 진리’를 포착하는 종교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장공에 의하면 종교적 진리는 “하느님을 최고의 권위로 모시고 하느님 나라, 즉 하느님의 뜻인 거룩한 사랑의 땅 위의 전 사회에 이루어지게 하는 하느님의 건국대업에 동참하는 길(道)”12)이다. 이러한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진리는 감각-과학적으로 물적 현상 ‘안에서’(in) 물적 현상을 ‘통하여’(through) 온전히 추출될 수 없다. 그 진리는 철저하게 절대타자인 하느님의 계시사건을 통하여만 파악되는 진리이다. 그러나 장공은 종교적 진리의 정당성을 과소평가하거나 ‘과학적’이라는 신화로 모든 진리를 유폐시키는 현대인들의 태도를 꼬집는다. 그렇다면 과학적 신화에 사로잡힌 현대인들을 향하여 종교적 진리의 정당성을 장공은 어떻게 제안하고 있는가.

12) 장공 김재준, “종교와 과학”, 『장공 김재준 전집 1권 - 새 술은 새 부대에(1926-1949)』 (오산: 한신대학 출판부, 1992), 293.

첫 번째, 장공은 종교적 진리의 실재성(substantiality)의 차원에서 종교의 의미를 확보한다. 즉 인간이 종교적 진리를 통하여 무상함에서 영원을 체득하고, 파멸에서 영생을 체험하며, 알파와 오메가가 일직선으로 연결된 역사의 종말을 본다. 그것은 절대적, 항존적·유심적·신앙적·인격적 성격을 지니고 있기에 상대적·일시적·유물적·실험적·비인격적인 ‘과학’의 영역에서는 이해되거나 포착될 수 없는 진리이다. 이렇게 장공은 ‘감각적 진리’로 포착이 안되는 ‘영적인 진리’의 특성을 강조한다. 종교적 진리는 영적인 진리이며 이는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진리를 실재적으로 담보하는 진리이다.

두 번째, 장공은 - 종교적 진리의 실재성을 제시하면서 - 더 나아가서 종교적 진리의 유용성(availability)을 제시한다. 종교적 진리는 “크게 유익할 뿐 아니라, 인간에게 전인격적인 봉헌을 스스로 요청할 만큼 강력한 것”13)이라고 강조한다. 종교적 진리가 하나의 진리의 실재로만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그 실재에 대한 대면을 통해서 인간과 인류의 삶이 유익해지고 풍요로워졌다는 점을 장공은 매우 중요하게 포착한다.

13) 장공 김재준, “종교와 과학”, 『장공 김재준 전집 1권 - 새 술은 새 부대에(1926-1949)』 (오산: 한신대학 출판부, 1992), 293.

세 번째, 과학적 정신 또한 근원적으로는 종교성을 요청하며, 종교적 신앙 또한 과학적 진리를 거부할 수 없다. 장공은 과학활동의 동기를 ‘진리에 대한 충성’으로 이해한다. 그러므로 과학적 정신 또한 근본적으로 진리에 대한 충성과 열망의 감각이라는 종교적 감수성을 상실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는 종교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장공은 종교적 신앙이 과학적 진리를 전적으로 거부한다면 그 신앙 자체는 고루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14)

14) 장공 김재준, “종교와 과학”, 『장공 김재준 전집 1권 - 새 술은 새 부대에(1926-1949)』 (오산: 한신대학 출판부, 1992), 294.

네 번째, 과학주의의 비판적 전거로서 종교의 의미를 강조한다. 장공은 제2차대전 후 현대과학의 급속한 발달과 그로 인한 과도한 과학주의를 매우 심각하게 진단하였다. 장공은 우리의 자연적 요소만으로는 진정한 실재(ultimate reality)에 대한 감각적 진리를 획득할 뿐이라고 비판하며 자연주의적이며 감각적 인식을 상대화한다. 장공에게 감각은 실재에 대한 제한적 진리일 뿐이다. 감각은 영적인 진리에 대하여 궁극적인 조명을 던져주지 않는다. 특히 성찰이 결여된 과학주의는 인간과 인류를 파멸로 몰고 갈 수 있음을 주목하고, 장공은 과학주의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종교의 재건에 정력을 기울이는 시기라고 사상적인 진단을 한다.15)

15) 장공 김재준, “종교와 과학”, 『장공 김재준 전집 1권 - 새 술은 새 부대에(1926-1949)』 (오산: 한신대학 출판부, 1992), 294.

다섯 번째, 조선 땅에서의 종교의 과제를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조선에서는 실질적으로 과학이 제대로 발달되지 못하였다고 장공은 평가한다. 그러나 과학적 정신이 뿜어내는 그 사상적인 힘과 분위기는 실감나게 느끼고 있다고 말을 하며 그 현상은 결코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없다고 진단한다. 장공이 비판하는 내용을 헤아려보면 건강한 과학정신이 아니라 모든 철학과 종교의 긍정성과 지평에 대한 고려 없이 치닫는 거친 ‘과학주의’의 신화로 보여진다. 장공은 과학은 과학대로 발전시키면서 바로 그 ‘과학’의 세계를 ‘철학’으로 감싸고, ‘종교’로 순화하여 전우주적인 구원의 과제를 수행하고 추진시켜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16)

16) 장공 김재준, “종교와 과학”, 『장공 김재준 전집 1권 - 새 술은 새 부대에(1926-1949)』 (오산: 한신대학 출판부, 1992), 294.

마지막으로 과학의 진보는 빠른 속도로 진행되지만 종교적 정신은 오히려 후퇴한다는 관점으로 장공은 과학과 종교의 관계를 바라본다. 장공은 “인간성의 한계와 복음(1948)17)이라는 글에서 당대 과학문명과 기술문명에서 드러난 인간 능력의 발전을 경탄하고 칭송한다. 그러나 정작 종교, 철학, 예술, 문화 등에 관한 인간의 정신활동은 오히려 기술보다 훨씬 더 명백한 제한 안에 놓여 있다고 지적한다. 수천 년이 지나도 고대의 현자나 지혜자, 그리고 석가모니, 예수, 바울을 능가할 인물은 없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이유로 과학의 진보와는 달리 정신활동은 퇴행을 겪고 있다고 말한다.

17) 장공 김재준, “인간성의 한계와 복음”, 『장공 김재준 전집 1권 - 새 술은 새 부대에(1926-1949)』 (오산: 한신대학 출판부, 1992), 316-318.

과학 정신의 진보와 종교적 정신의 퇴행에 관한 장공의 지적은 그가 얼마나 자연주의적 사유와 종교적 사유 사이의 심연을 민감하게 보고 있는지를 헤아릴 수 있다. 장공의 이러한 과학정신의 진보와 종교정신의 퇴행에 관한 지적은 양자물리학자이자 신학자인 존 폴킹혼(John Polkinghorne, 1930-)의 지적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존 폴킹혼은 오늘날 물리학자들은 단지 삼백년 후에 살고 있다는 이유 때문에 천재 뉴턴(Issac Newton, 1643-1727)이 평생 우주에 관하여 이해했던 것보다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었지만, 정작 2천 년 전의 예수가 보여준 종교적 심원함을 우리는 더욱 폭넓게 계승하고 있는지를 묻는다.18)

18) John Polkinghorne, Quantum Physics and Theology. An Unexpected Kinship (New Heaven and London: Yale Univerity Press, 2007), 10.

[V] 가치로서의 종교와 과학(1952-1954)

장공은 40대에 형성한 진리의 세 가지 차원에 대한 매우 종합적인 안목을 바탕으로 더욱 구체적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과학과 종교 사이의 비판적 대립각을 이후 50대의 사상적 완숙함을 바탕으로 더욱 예리하게 다루고 세운다. 특히 사실과 신앙, 물질과 정신, 육체와 영혼과 같이 2천 년 그리스도교 역사의 중요한 전승이자 오늘날 여전히 첨예하게 쟁점이 되는 신학적 실재론(theological realism)의 주제들을 드넓은 전망을 통하여 종합적으로 구성한다. 우선 장공은 1952년 발표한 “인생과 종교”(1952. 11)에서 사실(fact)과 신앙(faith)의 관계에 대한 조명 속에서 자신의 신학적 실재론을 제시한다.

“사실이 사실 제 힘으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을 발굴 또는 발견하는 것은 인간입니다. 그리고 위대한 사실은 <신앙>을 내포합니다. 신앙적 사실이 모든 사실 창건의 동력이 되고 근본이 됩니다.”19)

19) 장공 김재준, “인생과 종교”, 『장공 김재준 전집 2권 - 복음의 자유(1950-1953)』 (오산: 한신대학 출판부, 1992), 294.

사실 그 자체는 아무런 대답을 주지 않는다. 사실을 참 사실로서 드러나게 하는 동력이 바로 믿음이다. 믿음이 없으면 사실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믿음의 사실이야말로 모든 사실의 근거이자 동력이다. 이러한 점에서 믿음은 그저 주관적이고 소박한 망상이 아니다.

장공이 40대에 고민하였던 실재의 두 기둥이 ‘영적인 차원’(spiritual dimension)과 ‘감각적 차원’(sensual dimension)이라면 이제 50대 장공은 더욱 구체적으로 ‘믿음의 차원’(dimension of faith)과 ‘사실의 차원’(dimension of fact)의 문제로 실재의 본성을 성찰한다. 이러한 변화는 장공의 신학적 실재론과 그리스도교적 세계관이 보다 더 신학적이며 윤리적 함의로 전회함을 강하게 드러낸다.

장공은 “과학과 종교”(1953. 5)20)라는 글을 발표한다. 부제는 “실험과학과 기독교”이다. 이 글은 50대를 걸어가는 장공이 섭렵했던 과학과 종교의 최신 경향에 대한 정리와 신학적 전망을 담고 있다. 여기에서 장공은 ‘감각적 진리’(과학)와 ‘영적 진리’(종교) 사이의 관계를 매우 비판적으로 다루고 있다. 특히 감각적 진리에 의거한 과학이 그 올바른 방향성을 상실할 때 이는 과학주의의 폐단을 야기하며 그 부분을 종교의 관점에서 지적하고 비판한다. 이 글의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과학은 조직화된 지식(systematized knowledge)으로 이해될 수 있으며 구체적으로 실험과학으로 정의될 수 있다. (2) 과학연구의 불순한 부산물로 과학주의(scientism)란 것이 있어서 여러 가지 폐단을 일으킨다. 과학주의의 내용은 구체적으로 유물론과 감각문화(sensual civilization)이다.
(3) 그러나 성숙한 자연과학은 연구 능력이 깊어질수록 자연철학으로 상승한다. 물질적인 관심에서 정신적인 관심으로, 사실의 세계에서 가치의 세계로 발전한다.
(4) 성숙한 자연과학은 깊이 들어가면 자연철학이 되고 더 깊이 들어가면 창조주 신앙으로 나아간다.

20) 장공 김재준, “과학과 종교-실험과학과 기독교”, 『장공 김재준 전집 1권 - 새 술은 새 부대에(1926-1949)』 (오산: 한신대학 출판부, 1992), 289-290.

장공은 ‘사실’의 관점에서 종교와 과학을 규범적으로 접근하는 태도를 넘어서서 ‘가치’의 관점에서 종교와 과학의 그 위치와 과제를 긴밀하게 성찰한다. 특히 감각의 진리와 영적인 진리의 날카로운 구분은 자연에 대한 지식과 하나님에 대한 지식의 구분, 그리고 자연세계와 하나님에 대한 구분 안에서 일관되게 드러난다. 장공은 “하느님 안에서 사는 사람”(1953. 11)이라는 글에서 과학주의에 대한 정의를 다음과 같이 가한다: “실증적인 과학주의 사변은 현상(phenomena)만을 말하고 그 의미(meaning)는 말하지 않습니다.”21)

21) 장공 김재준, “하느님 안에 사는 사람”, 『장공 김재준 전집 3권 - 전통과 개혁(1953-1954)』 (오산: 한신대학 출판부, 1992), 256.

장공은 과학주의를 비판한다. 그렇다면 비판의 역사적 상황은 무엇인가. 1953년에 쓴 장공의 글 “사랑의 글”(1953. 7. 19)에서 우리는 과학주의 비판의 역사적 상황을 작게나마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서 장공은 오엔의 <과학주의, 인간, 종교>라는 책의 내용을 인용하며 과학주의의 핵심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1) 진리는 과학만을 통하여 얻어진다. (2) 물질이 유일한 실재다. (3) 모든 행동(Behavior)은 기계적으로 결정되어 있다. (4) 가치는 사회적 편의에 따라 정해진다(Relativism). (5) 理想社會는 과학의 발달에 의하여 보장되고 있다(Utopianism).”22)

22) 장공 김재준, “사랑의 길”, 『장공 김재준 전집 3권 - 전통과 개혁(1953-1954)』 (오산: 한신대학 출판부, 1992), 80.

장공은 이러한 ‘감각적’ 진리가 진리 전체로서 둔갑되고 교육되고 있는 현대교육기관 안에서 자녀들을 보내고 안심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통탄한다. 즉 장공은 “과학, 문학, 예술”이라는 ‘감각적 진리’는 결코 영적인 진리를 온전히 포섭할 수 없다는 점, 그리고 영적인 진리인 ‘종교’가 여전히 진리를 탐구하는 교육기관과 사회에서 폄하와 소외를 당하고 있다는 점을 매우 안타깝게 지적한다.23)

23) 장공 김재준, “사랑의 길”, 『장공 김재준 전집 3권 - 전통과 개혁(1953-1954)』 (오산: 한신대학 출판부, 1992), 80.

장공은 1954년 “존재현상의 저편”(1954. 5)이라는 글에서도 영적인 진리와 감각적 진리의 깊은 심연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우리 인간은 결코 존재 현상의 저편을 감각으로 이해할 수 없다. 그는 여기에서 “물체”와 “생명”을 구분한다. 생명은 물체처럼 보이지도 않고 무게도 없고 피도 없다. 그러나 생명은 물체와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육체와는 별개의 세계”24)에 속한다고 장공은 강조한다. 그는 육체와 생명을 별개로 바라본다. 그렇다면 우리의 육체, 우리의 자연, 우리의 우주 안에 깃든 생명과 진정한 실재의 본질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장공은 “하느님을 믿는 심정”25)으로 우주와 자연을 볼 때에만 그 진상이 알려진다고 말한다.

24) 장공 김재준, “생명에의 길 ”, 『장공 김재준 전집 1권 - 새 술은 새 부대에(1926-1949)』 (오산: 한신대학 출판부, 1992), 328. 25) 장공 김재준, “존재현상의 저편”, 『장공 김재준 전집 3권 - 전통과 개혁(1953-1954)』 (오산: 한신대학 출판부, 1992), 329.

우리는 여기에서 장공의 신학적 실재론(theological realism)의 핵심을 본다. 장공은 진정한 사실(fact)을 인간이 자연주의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보는 자연주의적 사유를 부정하지는 않으나 그것에 안주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사실의 핵심은 ‘감각적 진리’를 넘어선다. 사실은 자연적으로 인간에게 파악되지 않는다. 사실 그 자체는 우리에게 대답이 아니라 미궁이다. 진정한 사실은 오히려 하나님의 눈으로,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랑으로 바라볼 때에만 우리에게 드러난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참 사랑과 믿음 안에서 사실은 참 의미를 우리에게 드러낸다.

[Ⅵ] 성서의 사실과 가치

장공은 영적인 진리와 감각적 진리를 진리의 중요한 두 축으로 파악하였다. 동시에 가치의 관점에서 감각적 진리보다 더 고양된 지위에 영적인 진리를 설정하였다. 감각적 진리와 영적 진리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은 장공 진리론의 변증법적인 두 선율이다. 장공은 감각적 진리를 영적인 진리보다 우위로 생각하는 태도를 비판한다. 그러나 동시에 영적인 진리를 감각적 진리와 동등하게 생각하는 태도 또한 비판한다. 더 나아가서 영적인 진리로 모든 진리를 환원시켜 독단적으로 포섭하는 태도 또한 비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장공이 “영적인 진리”를 어떻게 변증법적인 선율 안에서 종합적으로 파악했는지를 헤아릴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장공의 글 “축자영감설과 성서무오설에 대하여”(1950. 3, 십자군)에서 발견할 수 있다.26) 장공은 이 글에서 성경무오설을 강조하는 박형용 박사에 대한 두 가지 신학적 비판을 가한다. 첫째, 감각적 진리와 영적인 진리가 각자 고유한 지위를 배려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영적인 진리로 모든 진리를 독점적으로 환원하는 태도에 대한 장공의 비판이기도 하다. 즉 영적인 진리가 감각적 진리를 독점할 때 그것은 감각적 진리도, 영적 진리도 될 수 없음을 장공은 보여주고 있다. 이를 근거로 장공은 박형용 박사의 ‘성서의 과학적 무오류성’을 비판한다. 둘째, 영적인 진리의 가치를 강조하기 위하여 그 의미를 감각적 진리로 증명하려는 태도 또한 장공은 비판한다. 이를 근거로 장공은 박형용 박사의 ‘성서의 과학적 증빙 가능성’을 비판한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26) 장공 김재준, “축자영감설과 성서무오설에 대하여”, 『장공 김재준 논문 선집』 (오산: 한신대학교 출판부, 2001), 83-98.

장공은 박형용 박사가『신학난제』에서 주장하고 있는 내용, 즉 “성경은 과학서류가 아니다”라는 주장은 동의하나 “성경에는 과학적 오류가 없다”라는 주장에는 비판한다. 박형용 박사가 성경이 과학책이 아니라고 말하였을 때, 장공은 오히려 “성경은 과학적 오류가 있다”고 말할 수 있으며, “과학적 서술은 성경의 핵심 관심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장공은 박형용 박사의 주장 - (1) 자연계에 관한 성경 기사는 저서 당시의 지식 정도보다 훨씬 뛰어나는 과학적 서술이 아니다. (2) 어떤 학자는 그 기사는 자연과학의 예시이다. (3) 과학이 발달된다면 성경과 합치될 것이다. - 에 대하여 “성경을 사랑하는 그의 고충을 상상할 수 있으나 성경의 권위는 이런 구차한 변호를 요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드리고 싶다”27)고 반론한다.

27) 장공 김재준, “축자영감설과 성서무오설에 대하여”, 『장공 김재준 논문 선집』 (오산: 한신대학교 출판부, 2001), 93.

장공에 의하면 성경 자체의 사실은 문자적 무오를 입증해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학설을 고집한다는 것은 ‘경건한 기만’이라고 장공은 지적한다. 그에 의하면 성경의 역사적, 과학적 오류와 문장의 오류가 다소 있다고 하여 무슨 큰 일이나 난 것 같이 야단법석하는 것은 가소로운 일이다. 장공은 성경의 ‘사실성’과 ‘가치’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신학적으로 결론 내린다. 첫째, 성경에는 문자적, 과학적, 역사적 오류가 있다. 둘째, 이 오류로 인하여 ‘성경무오설’은 무너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성경의 목적은 과학적 해명이 아니라 우리에게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번째, 성경은 과학교과서, 철학개론서가 아니라 영혼의 구원을 위하여 예수를 지향 증언하는 책이며, 예수를 만나 구원을 얻었다면 성경의 과제는 “완수”된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성경의 진리는 성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서를 체현한 구체적인 인간의 삶에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성서무오설’이다.28)

28) 장공 김재준, “축자영감설과 성서무오설에 대하여”, 『장공 김재준 논문 선집』 (오산: 한신대학교 출판부, 2001), 95.

[Ⅶ] 장공 김재준의 ‘자연의 신학’

장공의 종교와 과학의 관계를 성찰할 때 좀 더 숙고해야할 지점이 존재한다. 즉 장공이 종교와 과학을 실재를 향한 두 동등한 길로 바라보는가 아니면 종교가 과학보다 더 근본적이며 심원한 진리를 해명하는 더 고양된 길로 바라보는가의 문제이다. 장공의 사상에서는 진리 추구를 향한 종교와 과학의 고유한 '방법론의 차이'와 '방법론의 깊이의 차이'가 더불어 공존하고 있다. 이는 장공이 학제간 영역을 포괄적으로 아우르는 메타이론적 진술(meta-theoretical description)과, 지식과 지혜의 길항관계에서 실재의 본성을 질적으로 접근하는 가치지향적 진술(value-oriented description)을 동시에 구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위에서 이러한 장공의 두 관점을 검토하였으며 점진적으로 장공의 사유는 전자에서 후자로 옮겨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에서는 장공이 과학에서 종교로 더욱더 무게중심을 이동하면서 하나님이 창조한 자연과 피조세계를 어떻게 신학적으로 바라보는가를 ‘자연의 신학’의 관점에서 주요하게 헤아리고자 한다.

[1] 지식과 지혜

장공은 과학의 방법론과 종교의 방법론이 다르다는 것을 정확하게 파악하였다. 종교는 앎과 지식의 영역을 넘어선다. 즉 종교의 핵심은 결코 앎과 지식으로 포착되지 않음을 그는 강조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종교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장공은 “종교는 사랑으로 인하여 아는 지식”29)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장공은 종교를 “철두철미 인격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종교는 신에 대한 체험을 객관적으로 진술한 지식이 아니라 오히려 신에 대한 사랑, 순명, 복종, 참여를 통하여 얻어지는 지식이자 지혜이다.

29) 장공 김재준, “생명에의 길”, 『장공 김재준 전집 1권 - 새 술은 새 부대에(1926-1949)』 (오산: 한신대학 출판부, 1992), 344.

그는 이러한 점에서 자연적 지식과 하나님의 지혜는 완전히 분리될 수는 없으나 구분될 수 있다는 관점에 서 있다. 더 나아가서 지혜는 지식으로 환원될 수 없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장공은 “무엇에 대하여 안다는 것(knowledge about)과 사랑에 의하여 아는 지식(knowledge of acquaintance)은 다르다는”30) 점을 강조한다. 그리고 장공은 신의 계시를 믿음을 통하여 받아들여 ‘순종’하는 것이 종교라는 점을 강조한다.31) 실로 장공은 앎과 삶을 불연속적으로 보았다. 앎과 삶의 불연속은 그에게 이론과 생활의 대립으로도 드러난다: “좋은 이론과 좋은 생활과는 다릅니다. 아무리 좋은 이론이라도 그것이 생활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32) 물론 앎과 삶의 관계는 상호 보완적인 면이 있다. 그러나 앎과 삶이 첨예하게 구분되는 그 지점이 존재한다. 장공이 평생 생활신앙을 강조하고 성육신의 신학을 추구한 구체적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장공에게 삶으로 체현되지 않은 앎은 그 자체로서는 죽은 앎이다.33)

30) 장공 김재준, “생명에의 길”, 『장공 김재준 전집 1권 - 새 술은 새 부대에(1926-1949)』 (오산: 한신대학 출판부, 1992), 343-344. 31) “종교는 인간이 인간 이상의 신과 관계짓는 것으로서, 인간은 인간이 갈 수 있는 한계선까지 가고 거기서 신의 계시를 기대하는 자세인 것이며, 신이 인간에게 오셔서 자기를 계시하시고 인간이 믿음으로 그 계시를 받아들여 그 뜻에 순종하는 삶에서 종교는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격적인 결단에 의한 것이요, 기계적인 반사작용이 아닙니다. 종교는 인간활동의 어느 한 부분만에 관여하는 것이 아니고 전인간과 전우주의 창조주이신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자기를 보며 역사를 보는 것입니다. 극히 창시적이며 극히 포괄적입니다. 동시에 극도로 퍼스널한 것이어서 어느 다른 인간이나 다른 물건의 개입을 불허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내가 만나는 지성소에서 그 거룩한 만유주와 사귀는 신비를 품고 있습니다.” 장공 김재준, “과학과 종교”, 『장공 김재준 전집 3권 - 전통과 개혁(1953-1954)』 (오산: 한신대학 출판부, 1992), 32.
32) 장공 김재준, “생명에의 길 ”, 『장공 김재준 전집 1권 - 새 술은 새 부대에(1926-1949)』 (오산: 한신대학 출판부, 1992), 343.
33) 학문, Wissenschaft, 지식을 삶으로 체현할 때에만 진정한 학문과 앎과 지식이라고 생각하는 장공의 ‘체현의 해석학’은 안병무(1922-1996)에게도 큰 영향을 끼친다. 특히 안병무는 장공과 함석헌을 통하여 이러한 앎과 삶의 경계에 대하여 큰 배움을 얻었다고 술회한다: “안병무는 소학교 시절 용정의 은진학교에서 은사 장공 김재준을 만나고 그의 나이 30인 1952년에 함석헌을 만난다. 이 만남에서 안병무는 지적이며 영적인 충격을 경험한다. 적어도 그가 서구의 학(Wissenschaft)과 동양의 학(学) 사이의 명료한 차이를 인식하게 된 계기는 함석헌의 철학함과 학문에 대한 강한 충격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와의 만남에서 나는 동양의 학(学)이란 Wissenschaft와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서양의 학은 머리로 하지만 동양의 학은 몸으로 한다.”” 참고. 전 철, “초기 안병무가 바라본 서구신학의 빛과 그림자”, 『신학사상 152집』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2011), 83.

[2] 인간 생명

장공은 인간을 창조 이래 몇 억만년 전부터 발전해 온 생명의 모든 과거가 내 안에서 활활 타오르는 존재로 이해한다. 모든 개인은 진화의 중심에서 타고 있는 생명이자 심장이다. 그리고 다가올 세대를 위해 더욱더 높고 풍부한 생명의 원천을 제공해야 할 과제가 있다. 그 과제의 최종 종착점은 아름다운 정신의 왕국이다.34) 이러한 점에서 장공의 생명관은 유신론적 진화론을 바탕으로 하여 형성된 신학적 생명관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당대의 시점에서는 매우 과감하고 전위적인 신학적 인간론과 생명관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장공의 유신론적 진화론의 생명관은 그의 사고의 후반부에도 일관되게 흐른다. 장공이 70세 어간 1970년 8월에 발표한 “인간: 모순과 역설과 고민과”(1970. 8)라는 글에서도 그의 인간이해는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35) 그는 이 글에서 떼이야르 드 샤르뎅이 강조한 “동물권”(動物圈)에서 “정신권”(精神圈)을 향한 인간 진화의 내용을 다룬다. 그러나 장공은 결코 이 생명의 진화를 목적이 없는 자연적 진화로만 생각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 진화는 다윈의 환경론적 진화가 아니라 생명자체에 내재한 창조적 진화이며 그 핵심에는 사랑이 있음을 분명히 말하였다. 그리고 이 사랑은 우주적인 것임을 장공은 그의 나이 83세에 쓴 글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1983. 1. 16, 토론토 연합교회)에서 샤르뎅을 언급하며 일관되고 분명하게 말한다.36) 장공의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에는 샤르뎅의 오메가포인트가, 장공의 “신령한 몸의 변화”37)에는 샤르뎅의 Noosphere가 사상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38)

34) “내가 한 <인간>이 됐다는 것은 창조이래 몇 억만년 전부터 고투하며 발전해 온 생명의 모든 과거가 지금의 내 안에 압축되어 불붙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진화의 촛점에서 타고 있는 생명의 빛이다. 이제 이후에도 이 과정은 계속될 것이다. 나는 다음 세대를 위해 더 높고 풍부한 생명의 원천을 제공해야 한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더욱 숭고한 정신권을 넘겨주는 그것이라 생각된다. 바르고 참되고 자유롭고 아름다운 정신의 왕국이 진화의 열차가 달리는 종착점일 것이기 때문이다.” 장공 김재준, “생명의 언어”, 『장공 김재준 전집 8권 (1967-1969) - 신앙생활과 생활신앙』 (오산: 한신대학 출판부, 1992), 325. 35) 김재준, “인간: 모순과 역설과 고민과”, 『기독교사상 14/8』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70.8), 28-31.
36) 장공 김재준,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 『장공 김재준 논문 선집』 (오산: 한신대학교 출판부, 2001), 493.
37) ‘신령한 몸’(Spiritual Body)이라는 주제는 21세기 자연의 신학, 과학과 신학의 대화, 신학적 인간론의 매우 중요한 주제로 다양한 방식으로 논의되고 있다. 미하엘 벨커, “자연과학과 대화하는 신학”, (제1회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국제석학 초청 강연 강연문, 2012. 4. 3), 9; Michael Welker, "What is the 'spiritual body'? On what may be regarded as 'ultimate' in the interrelation between Gott, matter, and information", Paul Davies & Niels Henrik Gregersen (Ed.), Information and the Nature of Reality : From Physics to Metaphysic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0), 349-464.
38) “가톨릭 신부로서 세계적 과학자요, 인류학자요, 제일급 고고학자요, 종교학자요, 역사학자요, 문학자인 떼이야르 드 샤르댕은 ‘다윈’의 환경론적 진화론을 탈출하여 생명자체에 내재한 진화 의욕을 진화의 dynamics로 생각했답니다. 그 생명적 진화의 dynamics는 ‘사랑’인데 그것은 전우주적인 것이라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사는 길이요, 살리는 길이요, 그의 부활은 영원한 생명의 성취였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사랑의 극치이기 때문입니다. “육신은 무익하니라…”가 아니라 하느님 사랑 안에서 몸이 영의 몸으로 변질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Noosphere’에서 영의 몸으로 변화하여 자유하는 것이겠습니다.” 장공 김재준,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 『장공 김재준 논문 선집』 (오산: 한신대학교 출판부, 2001), 493.

[3] 기적

전통적인 자연신학(theologia naturalis)은 자연세계 안에 깃든 신성의 흔적에 집중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자연신학의 전통에서는 물리적 기적은 신성의 중요한 표징이었다. 하나님은 물리적 질서를 능히 넘어서고 새로운 방식으로 물리적 질서의 패턴을 형성함으로 신의 행위(divine action)를 증빙한다. 이러한 점에서 기적은 자연신학의 중요한 관심사였다. 특히 자연신학의 관점에서의 기적은 물리적 질서의 파괴를 통하여 증빙되는 신성에 대한 강조와 집중이다. 그것은 한편으로 초자연적 기적에 대한 열광, 성물주의에 대한 과한 강조로 퇴락될 수 있다.

그러나 자연의 신학(theologia naturae)은 하나님의 피조세계와 자연세계의 의미를 하나님의 계시의 빛에서 고백한다. 자연의 신학에서도 기적은 중요한 주제로 채택된다. 그러나 물리적 질서의 파괴로서의 기적을 주목하는 자연신학과는 달리 물리적 질서로 조명되지 않는, 소위 물리적 질서의 영점(zero point)과 관련하여 기적을 주목한다. 물리적 세계에 대한 자연주의적 해석의 빈 틈에서 신의 행위는 발현된다. 여기에서 기적은 물리적 질서를 통하고(creatio continuua) 허용하며 넘어선다.

그러나 장공은 자연신학과 자연의 신학이 주목하였던 기적이라는 주제에 대한 전혀 다른 시각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장공에 있어서 기적은 물리적 질서의 파괴도 아니고 물리적 질서를 통한 혹은 물리적 질서의 경계의 사건이 아닌 제3의 관점을 제시한다. 즉 장공에 의하면 하느님이 하시는 그 모든 것이 우리에게는 기적인 것이다. 장공에게는 창조가 기적이요 성육신이 기적이며 물리적 질서 자체가 기적이다. 그러므로 자연과 초자연의 구분, 물리적 질서와 물리적 질서의 파괴라는 구분으로 의미를 얻는 기적 이해를 장공은 비판한다:

참으로 믿는 사람은 기적을 구하지 않습니다. 기적을 높이 평가하지도 않습니다. 기적에 놀라지도 않습니다. 하느님이 인간이 되신 그리스도가 최대의 기적인데 기적에 놀랄 까닭이 있겠읍니까? 기적 자체를 믿지 않아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얼마든지 원하시는 대로 필요에 따라 기적을 행할 수 있읍니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나 그의 성격과 그의 구속의 경륜에 따라서 행하시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하시는 일은 모두가 기적입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것은 최대의 기적입니다. 우주만상이 한 법칙에 따라 일사분란 운행되는 것도 기적입니다. 자연은 기적이 아니고 초자연만 기적이란 말은 당치도 않은 근시안 환자나 하는 말이라 하겠습니다.39)

39) 장공 김재준, “예수와 이적”, 『장공 김재준 전집 4권 - 역사변혁의 그리스도 (1955-1959)』 (오산: 한신대학 출판부, 1992), 318.

장공에 있어 기적은 그 자체로 독자적인 의미를 얻을 수 있는 사건이 아니다. 오히려 기적은 하나님의 구속과 경륜 안에서 의미를 얻는 사건이다. 물리적 기적을 주목하는 태도에는 사실상 물리적 질서라는 2차 질서와 하나님의 질서라는 1차 질서의 구분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장공은 이러한 전제를 거부한다. 오히려 모든 피조물과 피조질서는 하나님의 구원경륜에 속한다는 고백신앙의 태도 속에서 기적의 의미를 재해석한다.

[4] 불멸

불멸은 기독교신학에서의 시간론, 인간론, 종말론에 관련된 중요한 물음이자 신비이다. 흐르는 시간 안에서 영원한 시간은 어디에서 어떻게 존재하는가. 유한한 인간의 삶을 통하여 인간은 무엇을 남기는 것일까. 인간의 삶은 소멸하는가, 불멸하는가. 무로부터의 창조와, 창조의 지속, 그리고 새 창조(creatio nova)의 이 과정 속에서 허무와 공허와 종말을 넘어 인간과 피조세계의 모든 경험은 어떻게 불멸의 요소로 남게 되는 것일까. 소멸과 불멸, 유동과 영원의 문제에 대하여 자연신학과 자연의 신학은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논의를 전개하였다. 우리는 그 복잡다단한 전승을 주체적 불멸(subjective immortality)과 객체적 불멸(objective immortality)이라는 해석과 개념으로 정립할 수 있다. 이는 경향적으로 자연신학과 자연의 신학이 각각 주요하게 주목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점은 장공 김재준은 피조물, 생명, 인간이 “주체적으로 불멸하는가”, “객체적으로 불멸하는가”라는 양가적 해석의 틀 안에서만 귀속하여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장공 김재준은 오늘 이 시간에 “사랑”의 삶을 완성할 때에 그에 의하여 항구한 가치의 세계가 창조되며 그 사랑은 불멸의 선한 일로 기록된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이는 전통적인 자연신학과 자연의 신학이 보여주고 있는 자연주의적/신학적 시간관과 불멸론의 사변적 요소를 과감하게 극복한 측면을 보여주고 있다.40)

40) Michel Welker도 영원한 생명의 참여는 양(Quantity)의 문제나 믿음의 행위를 통한 기억의 확산의 문제로 보지 않고 그것의 특성(quality)을 통하여 영원한 생명에의 참여가 완성된다고 본다. Michael Welker, “Ressurrection and Eternal Life”, John Polkinghorne & Michael Welker (Ed.), The End of the World and the Ends of God: science and theology on eschatology (Harrisburg: Trinity Press International, 2000), 288.

내가 오늘이란 이 시간에 시간이 지워 버리지 못할 어떤 항구한 가치의 세계를 창조했는가? 말하자면 사랑은 영원하다고 고린도전서 13장에 쓰여 있는데, 내가 오늘 얼마나 사랑과 봉사의 생활을 했는가? 만일에 내 삶이 이웃을 위한 삶이었다면 그건 오늘의 시간이 흘러간 다음에도 생명의 장부에 기록된 내 불멸의 행위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런 불멸의 선한 일을 내 손으로 조각한 그 시간만이 내 시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41)

41) 장공 김재준, “세모의 변”, 『장공 김재준 전집 8권 - 신앙생활과 생활신앙 (1967-1969)』 (오산: 한신대학 출판부, 1992), 134.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어거스틴과 보에티우스, 칼 바르트와 폴 틸리히로 시기마다 첨예하게 드러나는 영원과 시간, 불멸과 소멸, 영생의 삶과 유한한 삶의 길항적 관계는 김재준의 사유 속에서 돌파된다. 그는 영원과 불멸 자체의 자명성을 사랑이라는 행위를 통하여 상대화 시킨다. 그리고 사랑을 통하여 잉태한 시간과 사건만이 영원과 불멸의 지위를 얻게 된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사랑의 실재론(realism of love)은 장공이 보여주고 있는 매우 독특한 신학적 해석학이다.

[5] 사랑의 실재론

장공의 ‘사랑의 실재론’은 모든 소멸하는 것을 불멸하는 가치로 이월시키는 중요한 그의 고백이자 근거이다. 장공은 사랑을 포장이나 감상이 아니라고 본다.42) 사랑은 자명한 실재(Reality)이다. 특히 우리는 정의와 사랑의 관계에 대한 장공의 이해에서 독특한 지점을 발견한다. 즉 그리스도교의 두 원천이자 정신인 정의와 사랑을 장공은 동시에 강조하였으나43) 어떠한 문맥에서는 사랑을 정의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채택하였다는 점이다.

42) “마감으로 반성할 것이 있습니다. 특히 “사랑”이라면 우리 기독교인의 전매특허인 것 같이 자랑삼아 선전하고 상품같이 “판매” 합니다. 그러나 “사랑”은 달콤한 감상(Sentiment)이 아닙니다. 사랑은 자신의 죽음을 내포합니다. 사랑은 자기 진실을 요구합니다. 거짓으로 꾸며지는 “거짓 사랑”처럼 가증스러운 것은 없습니다. ... “사랑”이란 값싸게 이리 저리 이동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장공 김재준, “隣人不在의 安保?”, 『장공 김재준 전집 11권 - 예언자와 우상 (1974-1977)』 (오산: 한신대학 출판부, 1992), 248. 43) “정의와 사랑은 일체양면(一體兩面)입니다. 사랑 없는 곳에 정의가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지 않은 그 자체가 불의이기 때문입니다. 정의 없는 곳에 사랑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균형적 보복은 율법주의요 자유하는 사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실을 사랑 안에서 말하는 사람, 솔직하게 잘못의 책임을 지면서 용서를 청하는 사람, 그리고 이의로운 사랑의 감격에서 새로운 삶을 전개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크리스천의 본모습입니다.” 장공 김재준, “한국교회 윤리생활의 재검토”, 『장공 김재준 논문 선집』 (오산: 한신대학교 출판부, 2001), 120.

어쨌든 나는 정의실현이 간접적으로 인간애에 공헌한다는 입장에서 사회 정의는 말하게 됩니다만, “사랑”을 말할 자격은 없는 것 같아서 스스로 고민합니다. 있는 것 같다가도 따져보면 결국은 없는 것이 고발됩니다. 그러나 있어야 할 것만은 사실이기에 말한 것 뿐입니다. 하나님이 용서하시고 도와 주시기를 바라면서 “제야의 참회” 한토막을 마감에 붙입니다.(장공, 1975년 除夜)44)

44) 장공 김재준, “隣人不在의 安保?”, 『장공 김재준 전집 11권 - 예언자와 우상 (1974-1977)』 (오산: 한신대학 출판부, 1992), 248.

후기 장공에게 있어서 사랑은 정의보다 더 어렵고 심오한 주제로 깊이 성찰된다. 그는 사회 정의는 말하게 되나 사랑을 말하기에는 매우 조심스러워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를 구한다. 그는 정의와 사랑의 관계를 말할 때 정의는 그 자체로서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가치가 아니라 “사랑 안에서의 의”라고 명백하게 정의한다. 하지만 그리스도교 신자는 “사랑 안에서의 의”가 아닌 “균형적 보복 원리”로서의 의를 말한다. 그리고 사랑을 행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대가를 바라는 사랑의 행위라고 장공은 날카롭게 꼬집는다. 불온한 사랑은 그 자체로서 의미를 완성하는 사건이 아니라 그를 매개로 무엇인가를 기대하는 조건이 된다. ‘사랑이 없는 정의’와 ‘대가를 바라는 사랑’ 이 둘 모두를 장공은 지적한다.45)

45) “우리의 의는 이 사랑 안에서의 의입니다. 사랑은 대가없이 주려는 의욕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그 대가를 치룸으로 ‘무법주의’를 입다물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기독신자는 사랑에서 단절된 의를 주장합니다.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 갚는다”는 균형적 보복 원리를 의로 정하고 그 이상의 의를 추구하려 하지는 않습니다. 한 걸음 나아가서 사랑을 주장할 경우에도 정실관계가 앞섭니다. 온정주의, 센티멘털리즘에 사로잡힙니다. ‘내가 누구에게 사랑을 베풀었는데 그가 나에게 아는 체하지 않습니다. 그런 놈하고는 사귈 생각이 없다’ 합니다. 분열이 생깁니다. 흔해빠진 것이 그런 인문들이니 분열에 분열을 거듭합니다.” 장공 김재준, “한국교회 윤리생활의 재검토”, 『장공 김재준 논문 선집』 (오산: 한신대학교 출판부, 2001), 120.

[Ⅷ] 결론 : 장공의 자연의 신학과 사랑의 실재론

장공은 ‘감각적 진리’와 ‘영적 진리’는 상호 조화 가능하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진리에 대한 장공의 추상적 신념만이 아니었다. 장공이 당대 축자영감설의 전통을 보완, 비판, 극복하기 위하여 역사비판학을 소개하고 그 의의를 폄하하지 않은 이유도 이러한 영적 진리(축자영감설)와 감각적 진리(역사비평설)에 대한 균형감각에 기인한다. 그러나 이러한 균형감각의 태도가 전혀 형성되지 않았던 당대의 신학적이며 교회적인 환경으로 인하여 장공은 소위 ‘이단’으로 축출 당하였다. 장공은 실재의 본성을 접근하는 ‘위에서 아래로의 방법론’과 ‘아래에서 위로의 방법론’의 의의를 모두 소중하게 생각한 선구자적인 신학자였다. 그는 우로 기울어졌던 당대 한국신학과 교회의 중심을 잡기 위하여 좌로 그 축을 이동하였다. 그러나 우에게 그것은 중심의 지향이 아니라 불온한 좌였다. 하지만 장공으로 인하여 한국신학은 전세계적인 신학지평의 근거와 신학적 균형감각의 기초를 획득할 수 있었다.

특히 본 연구에서 우리는 장공의 탁월한 균형감각이 단지 축자영감설과 역사비평의 도입과 관련된 다양한 논쟁에서 빛이 나는 것뿐만 아니라 그의 ‘자연의 신학’ 안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장공은 창조와 진화의 변증법적 종합을 자신의 창조신학을 통하여 구상하였다. 그것은 오늘날의 시선에서 보아도 매우 소중한 통찰이기도 하다. 그는 ‘과학정신’을 소중하게 생각하였으나 ‘과학주의’를 비판하였다. 과학을 진리를 추구하는 인류공동체의 중요한 유산으로 보았으나 종교적 감수성이 배제된 ‘과학주의’를 비판하였다. 과학의 사실성을 옹호하였으나 ‘종교의 가치’에 대한 고려 속에서 이 둘의 협력과 공생을 꿈꾸었다. 그리고 과학주의와 연동되는 유물론, 자본주의와의 연결고리를 매섭게 비판하였다.

장공은 그리스도교가 한 영적인 진리만을 붙잡고 다른 모든 것을 도외시하는 그러한 속좁은 진리관과 실재관을 추앙하지 않았다. 이러한 장공의 ‘대승적 실재관’의 고백과 구현은 당시의 신학과 교회의 역사에서 첨예하게 격동했던 축자영감설과 성서비판학의 대립과 현실적 소용돌이 가운데에서 거침없이 드러났다. 장공은 성서를 사실의 보고가 아니라 가치의 보고로 보았다. 장공에게 ‘축자영감설’은 가치와 사실이라는 ‘사유의 범주를 혼동’46)한 오류이다. 장공에게 ‘성서무오설’은 성서 자체가 무오하다는 것이 핵심이 아니라 성서를 삶으로 온전히 체현할 때 성서의 진리가 완성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이해하며, 성서무오설을 주장하는 이들보다 더 급진적이며 창조적으로 성서무오설의 구체적인 의미를 성육신적 신학의 관점에서 재해석하였다.47)

46) 장공 김재준, “축자영감설과 성서무오설에 대하여”, 『장공 김재준 논문 선집』 (오산: 한신대학교 출판부, 2001), 92. 47) 장공 김재준, “축자영감설과 성서무오설에 대하여”, 『장공 김재준 논문 선집』 (오산: 한신대학교 출판부, 2001), 95.

실로 여전히 영적인 진리와 감각적 진리에 대한 혼동, 그리고 이에 관한 담론과 성찰이 미약한 상황에서 종교와 과학을 둘러싼 여러 신학적이며 교회적인 혼돈 가운데 오늘 21세기의 한국교회는 서 있다. 그리스도교의 진리는 그저 일방적인 도그마와 교권과 영적인 가치만을 절대시하는 그러한 진리는 아닐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교는 어느 한 구석에서 수군거리는 적은 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전세계적인 거대한 유기체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한 지체입니다.”48) 실로 교회는 “진리를 추구하는 공동체”(truth-seeking communities)49)이다. 이러한 점에서 장공이 보여준 자연의 신학의 큰 전망은 오늘날에 더욱더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48) 장공 김재준, “편지에 대신하여”, 『장공 김재준 논문 선집』 (오산: 한신대학교 출판부, 2001), 80. 49) Michael Welker, The Theology and Science Dialogue: What can Theology Contribute (Neukirchen-Vluyn: Neukirchener Verlag, 2012), 73.

특히 장공의 감각적 지식과 영적 지식의 조화 감각과 신학적 해석학은 후기 사상으로 진입할 수록 ‘사랑의 실재론’(Realism of Love)이라는 그의 독특한 신념 속에서 더욱 크고 넓게 중심점을 확보한다. 사랑의 실재론은 우리 피조세계의 세계의 가장 근원적인 문법임에도 불구하고 감각적 지식과 영적 지식에 대한 해명에서는 사실상 적절하게 고려되지는 않은 경향이 있다. 장공은 ‘사랑’의 관점에서 자신의 신학적 해석학을 정립하였다. 특히 ‘사랑’이라는 관점에서 장공은 자연의 의미와 가치를 새로운 방식으로 참신하게 조명하였다. 장공의 자연의 신학은 이러한 점에서 사랑의 실재론을 기반으로 한 ‘자연의 신학’이다.

진정 사랑이 빠진 자연의 지식은 그 운동의 공허함을 보여준다. 사랑이 빠진 영적인 지식은 그 방향의 맹목성을 보여준다. 장공은 사랑의 실재론으로 자연의 지식과 영적인 지식을 변증법적으로 결합하려 하였다. 장공의 시선에서 인간의 생명, 진화, 창조, 기적, 불멸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에는 중요한 해석학적 핵심인 ‘사랑의 참여’가 빠져 있었던 것이다.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사랑이다. 관조보다 중요한 것은 참여이다. 진리 그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진리의 체현이다. 성육신의 기적은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참여 안에서 성육신의 기적은 삶에서 펼쳐진다. 그것이 성육신적인 ‘사랑의 실재론’이다. 이렇게 장공은 초기 그리스도교의 사랑의 탄생, 중세 그리스도교의 사랑의 찬양, 개신교의 사랑의 참여를 넘어서 오늘 우리 그리스도교가 ‘사랑의 체현’의 과제 앞에 서 있음을 새롭게 강조하였다.

특히 장공은 그가 평생 신앙과 신학의 화두로 삼았던 사랑의 최종적인 구현과 완성을 “무소유의 거룩한 가난”에서 보았다.50) 장공은 그의 삶의 평생을 사로잡았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말씀을 몸으로 살아내어 참 사랑을 몸소 가르쳐 주었다. 장공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한국 기독교를 보고 무슨 말씀을 하실까. 세상의 부유함과 권력에 눈이 멀고 취하여 살다가 우리도 모르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하신 그 거룩한 가난을 도둑맞았다고 슬퍼하실 듯하다. 사랑 안에서 자연과 영의 완성을 보고, 사랑 안에서 ‘우주의 불멸’(immortality of our universe)을 본 그의 ‘자연의 신학’과 ‘사랑의 실재론’은 우리 신학이 두고두고 음미해야 할 장공의 소중한 통찰이자 아름다운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50) 장공 김재준, “생명에의 길 ”, 『장공 김재준 전집 1권 - 새 술은 새 부대에(1926-1949)』 (오산: 한신대학 출판부, 1992), 344.

참고문헌

〔1차 참고문헌〕

장공 김재준.『장공 김재준 전집 1권 - 새 술은 새 부대에 (1926-1949)』 (오산: 한신대학 출판부, 1992). 장공 김재준. 『장공 김재준 전집 2권 - 복음의 자유 (1950-1953)』 (오산: 한신대학 출판부, 1992).
장공 김재준. 『장공 김재준 전집 3권 - 전통과 개혁 (1953-1954)』 (오산: 한신대학 출판부, 1992).
장공 김재준. 『장공 김재준 전집 4권 - 역사변혁의 그리스도 (1955-1959)』 (오산: 한신대학 출판부, 1992).
장공 김재준. 『장공 김재준 전집 8권 - 신앙생활과 생활신앙 (1967-1969)』 (오산: 한신대학 출판부, 1992).
장공 김재준. 『장공 김재준 전집 11권 - 예언자와 우상 (1974-1977)』 (오산: 한신대학 출판부, 1992).
장공 김재준. 『장공 김재준 전집 16권 - 범용기 (4) 민족의 파수꾼』 (오산: 한신대학 출판부, 1992).
장공 김재준. 『장공 김재준 전집 18권 -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 (1985-1987)』 (오산: 한신대학 출판부, 1992).
장공 김재준. “인간: 모순과 역설과 고민과”. 『기독교사상 14/8』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70.8), 28-31.
장공 김재준 목사 탄신 10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편. 『장공 김재준 논문 선집 : 장공탄신 100주년 기념문집 1』 (오산: 한신대학교 출판부, 2001).
장공 김재준 목사 탄신 10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편 『장공 사상 연구 논문집 : 장공탄신 100주년 기념문집 2』 (오산: 한신대학 출판부, 2001).

〔2차 참고문헌〕

김경재. 『김재준 평전 : 성육신 신앙과 대승 기독교』 (서울: 삼인, 2001). 유동식. 『풍류도와 한국의 종교 사상』 (서울: 연세대학교 출판부, 1997 ).
전 철. “초기 안병무가 바라본 서구신학의 빛과 그림자”. 『신학사상 152집』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2011), 79-108.
미하엘 벨커. “자연과학과 대화하는 신학” (제1회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국제석학 초청 강연 강연문, 2012.4.3).
John Polkinghorne. Quantum Physics and Theology. An Unexpected Kinship (New Heaven and London : Yale Univerity Press, 2007).
John Polkinghorne & Michael Welker (Ed.). The End of the World and the Ends of God: Science and Theology on Eschatology (Harrisburg: Trinity Press International, 2000).
Michael Welker. The Theology and Science Dialogue: What can Theology Contribute (Neukirchen-Vluyn: Neukirchener Verlag, 2012).
Michael Welker. "What is the 'spiritual body'? On what may be regarded as 'ultimate' in the interrelation between Gott, matter, and information". Paul Davies & Niels Henrik Gregersen (Ed.). Information and the Nature of Reality : From Physics to Metaphysic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0), 349-464.
Soo Bin Park. “South Korea surrenders to creationist demands : Publishers set to remove examples of evolution from high-school textbooks”. Nature 486 (07 June 2012).